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29화 (29/93)

〈 29화 〉 29화 님프 시르

* * *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딱 그짝이다.

나도 설마 내가 이 정도로 바보가 될 줄은 몰랐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 내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장소에서 열렬하게 고백까지 하고, 그녀를 껴안고 거리를 달리고, 마지막에는 손을 꽉 잡고 숙소로 돌아왔다.

믿겨 지는가.

이 모든 일이 시르를 만나고 고작 5시간 만에 일어났다.

육체만큼이나 정신도 초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그 파괴에 굴욕은 없었다. 환희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 다들 사랑사랑 노래를 불렀구나.

그것을 34년이나 살고서야 깨달았다.

“시그 님.”

시르가 물기 어린 황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새하얀 피부에 떠오른 봉숭아 꽃 같은 홍조가 열기 섞인 날숨과 섞여 시각과 후각을 유혹해왔다.

작은 동작 하나하나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모든 언행의 의도를 깊게 탐구하게 된다. 모든 감각이 그녀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오늘 남자가 되는거다.

시간을 좀 더 되돌려 보자.

시르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장소는 내 방의 침대 위.

현재 시각은 태양이 어둠에 가라앉은 8시 45분.

저녁은 방에서 해결했다. 서로 좋아하는 음식을 나란히 앉아 먹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눈 저녁이었다. 지구에서 가족들과 함께 즐기던 때가 떠오를 정도로 즐거운 저녁이었다.

방도 좀 더 넓고 방음이 되는 방으로 옮겼다. 마침, 하나 남아있어서 곧바로 옮길 수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시르를 데리고 와서 방을 옮겨달라는 요청을 하는 나를 보고 매우 인상적인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이상 사정을 물어보거나 놀리지 않은 시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 숙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시르의 숙소는 길드가 소개해 준 곳이었다. 그곳으로 갈 수는 없었기에 결국 내 숙소로 왔고, 방을 바꾸게 된 것이다. 짐은 내일 가지고 오기로 했다. 한 달 치 숙박료를 미리 내서 짐이 사라질 염려는 없다고 했다. 애초에 가지고 올 짐 자체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방을 바꾸고 저녁을 먹고 우리는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주로 오늘 있었던 얘기와 취미, 읽었던 책의 내용, 살아가면서 겪었던 다양한 일들이었다.

다만, 내 본래 출신의 얘기는 해주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외계에서 갑자기 소환된 사람이라는 얘기는 함부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여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한 개씩은 있는 법이다.

그처럼 시르도 숨기고 있는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출신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끼는 것에서 많은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숨기는 것이 있고 그것에 개의치 않아 하는 우리들의 대화는 대체로 이랬다.

“시그 님.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한가지가 아니라 백가지, 천가지여도 대답해줄 수 있는데.”

“후후후. 그 권한은 천천히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서 권한의 첫 번째 사용처는 뭐야?”

“흑마법사의 저주를 어떻게 해주?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아. 그거. 그냥 기합이야. 기합.”

“기합…입니까?”

“그래. 기합. 음. 좀 더 설명하면, 일단 나는 마법은 못 쓰지만, 마법이나 저주 같은 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지식으로 알고 있어. 영혼육백???? 중에 영혼으로 마력을 정제해 술식을 통해 세상에 구현하는 게 마법이지. 저주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역시 시그 님이십니다. 마법개론을 완벽히 숙지하고 계십니다.”

“아니, 이 정도야 책만 봐도 다들 알 수 있는 내용이지. 뭐, 영혼육백의 개념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에는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렇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것을 못 해서 기공, 마법, 성법을 익히지 못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나는 해당되지 않지.”

“역시 시그 님이십니다.”

“…어째 요상한 말버릇이 생긴 것 같은데. 뭐, 사랑스러우니까 상관없나!”

“………으우.”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여워.”

“………으우.”

“…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법과 저주는 영혼을 기반으로 발동하고 적용되는 거라서 역으로 영혼으로 저항하고 물리치는 게 가능해. 항마력은 영혼의 강함에 좌우되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의 힘을 한순간에 증가시키면 강력한 마법이나 저주라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겠지?”

“그 기합이 영혼의 힘을 증가시키는 기술이었다는 겁니까?”

“응. 나는 영혼육백을 다루는데 제법 재주가 있거든. 그 응용이지. 뭐, 그래도 마력을 물리적인 힘으로 변화시킨 마법이나 저주에는 큰 효과는 없을 거야. 그 저주는 그런 종류가 아니어서 손쉽게 날려버릴 수 있었을 뿐이지.”

“그것만이라도 정말 대단한 업적입니다! 저는 그 정도의 저주를 기합만으로 없앨 수 있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영혼육백을 의식적으로 증폭하실 수 있다니…. 역시 시그 님이십니다!”

“또 썼네.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으우우.”

별거 없는 대화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1초 1초가 극상의 미주였다.

아. 이게 사랑을 나눈다는 거구나.

34년 만의 늦깎이 사랑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나에게서 많은 것을 바꾸었다.

하루 전의 나라면 여성과 단둘이 같은 방에 있지 않는다.

하루 전의 나라면 여성과 나란히 침대 위에 앉지 않는다.

하루 전의 나라면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지 않는다.

사랑이란 사람의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는가. 수많은 고전소설에서 글로만 이해할 수 있었던 감정들이 이해되는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이건 감정 과잉이다. 호들갑을 떠는 거다. 늦게 찾아온 봄에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양된 결과이다. 그 모든 말들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야.

나는 지금 이렇게나 행복한데.

이런 사랑을 몰랐다니. 인생 절반 손해봤어요오오오!

아니, 오히려 다행일까? 시르를 만나기 전에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에 지금 순간이 더 특별한 것일 수 있다.

지금 뛰는 심장은 그녀가 찾아낸 고동이다.

지금 내가 보는 색은 그녀가 만들어낸 색이다.

나의 사랑은 그녀의 것이다.

첫눈에 반한 시점에서 내 운명은 그녀의 노예가 되었다.

미치도록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시르.”

어깨를 끌어안은 손에 살짝 힘을 줬다. 아무런 저항 없이 시르의 몸이 내 쪽으로 끌려 왔다. 그리고 시르가 나를 올려보았다.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목소리, 눈빛. 표정. 호흡. 체온이 전해줬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인생 첫 도전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느리지 않게 시르에게 다가갔다.

시르는 눈을 감았다. 황금을 잠시 볼 수 없는 사실에 짧은 아쉬움과 참을 수 없는 환희를 동시에 느꼈다.

멈출 수 없는 전진 끝에 도달한 것은 범하는 것에 깊은 배덕감을 느낄 아름다운 입술이었다.

나는 시르와 입을 맞췄다. 그리고 격렬하게 혀를 섞었다.

“으음. 하앙. 하압. 으응.”

그녀의 작은 입술을 범할 때마다, 혀와 혀가 감길 때마다, 뇌수를 파고드는 쾌락에 이성이 새하얗게 불타버릴 것 같았다.

어깨를 감싸고 있던 왼손이 천천히 자리를 바꾼다. 새하얀 목덜미를 타고 올라간 손이 그녀가 품은 은하수를 부드럽게 헤집는다.

갈 곳 찾지 못하던 오른손이 드디어 직무유기에서 벗어나 목적지로 향한다. 가늘고 매혹적인 곡선의 능선을 지나서 강줄기를 올라타서 날개를 타고 비밀의 자물쇠를 붙잡았다.

한 손은 뒷머리를 한 손은 쇄골을.

몸이 밀착한다. 옷 너머로도 그녀의 체온이 전해진다. 태양은 어리석었다. 나그네가 단단하게 동여맨 옷을 벗기는 데는 따스한 온기면 충분했다. 고통을 준 것은 북풍과 다르지 않다.

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인다. 그녀의 몸이 침대로 천천히 쓰러진다. 그러면서도 단 한시도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시르의 몸이 침대에 닿았다. 내 무거운 몸이 그녀를 짓누르지 않게 주의하면서 그녀의 몸에 나를 덮는다.

“하앙. 으음. 흐앙. 아으. 읍, 으읍. 하아….”

열기 섞인 신음을 삼키면서 계속 입을 맞춘다. 머리를 껴안고 몸을 껴안고 한 몸이 되고 싶은 것처럼 몸을 맞추며 입을 맞춘다. 타액의 교환을 멈추지 않는다.

첫 키스는 강렬하고 격렬하고 격정적이었다.

대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얽혀 있었을까? 체내시계는 어느새 망가져서 영원 같은 이 시간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인식했어도 내가 잊어버렸을 것이다. 이 순간이 계속되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영원은 없다. 결국, 끝이 왔다.

“…하아.”

“…후우.”

영원 같던 순간이 끝나고 해어짐의 순간이 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떨어지자 조금 전까지 연결의 증거가 서로의 입술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위에서 본래 빛나고 있어야 하는 시르의 황금색 눈동자는 호수에 잠긴 달처럼 몽롱했다. 상기된 얼굴과 느리지만 짙은 열기를 담은 숨결이 내 심장을 거칠게 뛰게 했다.

달콤한 말도 열정적인 말도 필요 없었다.

나는 시르의 목을 살짝 깨물었다.

“하응!”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할 수 없었던 교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실망스럽진 않다. 오히려 흥분된다. 조금 전에 양손으로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 알아낸 성감대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성취감을 느꼈다.

뛰어난 감각과 정밀동작성은 이런 때에도 큰 효능을 발휘한다. 설마, 초인이 될 정도로 노력한 게 이런 때에도 도움이 될 줄이야. 세상일이란 정말 한치도 앞을 알 수 없다.

그 능력을 십분 사용해 시르의 온몸을 희롱했다.

읍으로 목덜미를 손으로 허리와 골반을 다리로 허벅지 사이를. 밀착한 상태에서 시작된 희롱에 시르의 교성은 계속 커졌고 열기도 거세졌다.

시르의 몸에선 꽃향기가 났다. 종족적인 특성일까? 아니면 그녀만의 향일까? 그 냄새와 맛을 혀로 음미한다.

“흐읍! 하앙…. 하으으으!”

그 소리를 성가??이자 성가??로 삼아 시르의 모든 것을 탐구하고 갈구한다.

내 입이 움직일 때마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심장이 요동치고 근육이 반응한다. 날숨에 섞인 열기는 더욱 강해지고 황금빛 눈동자는 호수 속에 잠겨 일렁이고 있었다.

또다시 조금 전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계속 그녀를 느끼고 싶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끝이 도래했다.

다만,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었다.

내 애무에 계속 숨이 거칠어지던 시르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교성이 터져나왔다.

“으, 앗. 항. 아, 아아앗! 아아아아아아아아앙!!!!!”

시르의 허리가 활처럼 꺾였다.

…설마, 내가 이런 표현을 쓰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것만큼 지금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튕기듯이 허리를 들어 올린 시르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털썩 침대에 엎어졌다. 잔뜩 힘이 빠진 숨소리와 가늘게 떨리는 손발이 조금 전 모습이 연기가 아님을 증명해줬다.

멍한 얼굴과 탁해진 눈빛의 시르는 나를 올려보며 힘없이 물었다.

“하아… 하아… 시, 시그 님. 이, 이건… 대체… 뭡니…까?”

아아. 그건 절정이라고 한다. 좀 더 적나라한 표현으로 ‘간다’라고 하지.

…그런 개드립이 떠올랐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지금 분위기를 망치기 싫은 것과 동시에 입을 열기 힘들 정도의 감정의 격류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감동과 당혹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감동은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업적에서 오는 거였다. 절정에 이르고 생전 처음 겪는 느낌에 나른함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시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올랐다.

당혹은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였다. 무슨 망가도 아니고! 애무만으로 가게 만드냐! 거기다가 이번이 처음이잖아! 망상은 한 적 있어도 연습은 한 적 없는데! 혹시, 시르가 내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가 싶었지만, 조금 전 반응과 지금 모습을 봐선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내 기술이 그만큼 미쳤다는 것과 시르가 느끼기 쉬운 체질이라는 것.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시르를 기쁘게 만들 수 있다는 거고, 그 사실에 내가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지금 가랑이 사이가 엄청나게 아팠다.

…진짜 터질 것 같다. 바지 위로 툭 튀어나오면 보기 흉해서 꽉 조여놓은 게 패착이었다. 바지의 폼이 넉넉해서 지금 상황에서도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지만, 그 대가로 나의 분신이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바지를 벗을 수는 없다. 내가 좀 더 고통스럽더라도 시르를 우선해야 한다. 그게 연인 아니겠는가.

빠르게 상황파악을 끝낸 나는 시르에게 상냥하게 웃어줬다.

“기분이 좋아지면 생기는 현상이야. 시르의 몸이 내 행위를 기쁘게 받아 들여준 거지.”

“그렇습니까…. 아아. 정말… 정말 기쁩니다.”

시르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럽다. 나는 다시 시르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시 격렬하게 혀를 섞었다.

시르의 혀놀림은 좋게 말해도 어설펐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이렇게 혀를 섞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안엔 이제껏 얻을 수 없던 충족감이 채워지고 있었다.

키스하면서 손을 움직여서 시르의 성감대를 다시 자극했다. 다만, 조금 전과는 다른 곳들이었다. 사람의 몸에 성감대가 몇 군데만 있을 리가 없으니까.

시르는 그 중 한 곳이 가슴이었다.

봉긋 솟아오른 가슴은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내 한 손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크기다. 시르의 키와 체형을 생각하면 딱 알맞은 크기지만,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런 아쉬움과 별개로 가슴을 만질 때 느껴지는 감촉은 얇은 옷 너머인데도 불구하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말랑말랑하면서도 부드럽고, 탄력까지 있다.

스치듯이 만져도, 손가락 사이로 끼어도, 손아귀에 쥐어도.

제각기 느껴지는 감각은 달라도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을 만질 때마다 보여주는 시르의 반응이 이젠 한계지점에 도달한 내 충동을 더욱 부채질했다.

많은 사람의 착각과는 다르게 가슴이 성감대가 아닌 여성도 많다. 가슴을 만져주면 좋아하는 것은 물리적인 흥분보단 그 상황과 상대 남성의 반응에 흥분하는 것이다. …라고 지식으로만 접했다.

시르의 반응은 그런 지식을 부정하는 것처럼 격렬했다.

스치듯이 만져도, 손가락 사이로 끼어도, 손아귀에 쥐어도.

몸과 입과 눈에서 전해지는 흥분은 육체와 정신, 양쪽 모두의 것이었다.

“으읍. 하앙. 하앗! 하읍! 쯔읍! 하아앙!”

한 번 가버려서 가라앉았던 흥분이 다시 시작된 키스와 애무에 정상까지 달아올랐다. 시르의 숨결이 다시 거칠어지고 몸이 떨려왔다. 그럴수록 나도 더욱 흥분해서 좀 더 거칠게 시르의 몸을 탐닉했다.

격렬하게 입을 맞추고 손을 놀렸다.

그리고.

“아흣! 항! 앙! 앙! 아아앗! 아흐아아아아아아아앙!!!!”

두 번째 절정이 찾아왔다.

하지만 첫 번째와는 다르게 나는 멍하니 있지 않았다.

짧으면서 긴 쾌락에 잠기는 시르의 몸을 꽉 껴안으면서 더욱 격렬하게 입을 맞췄다. 옷 너머로도 시르의 절정이 전해졌다. 그녀의 온몸에서 일어나는 떨림을 나는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 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르의 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축 늘어졌다. 몸만큼 길게 늘어진 호흡엔 숨길 수 없는 열락이 담겨 있었다. 온몸에서 흘러내린 체액에 얇은 녹색 드레스가 본래의 색을 잃고 그 안에 담은 새하얀 보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시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나는 말했다.

“이제 벗길게. 시르.”

시르는 두 번이나 가버려서 말할 기운도 없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가 내게 보인 모습으론 이례적인 행동이었지만, 생전 처음 느낀 감각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 오히려 내 말에 반응이라도 한 게 대단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시르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 얇은 녹색과 하얀색 드레스는 제법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도 알아보지 못할 내가 아니다. 잔뜩 흥분한 상태라 힘 조절을 잘못해 찢지 않게 주의하면서 한 가닥씩 벗겨냈다.

두루마리처럼 몸을 감싸던 의복을 벗기기 시작하자 상반신과 하반신의 속살이 동시에 드러났다. 파츠를 하나씩 벗길 때마다 새하얀색이 눈을 가득 매웠다.

…그런데 가슴을 만질 때 이미 깨달았었지만, 시르. 입지 않았구나.

드레스를 벗기자 그 안에는 시르의 새하얀 속살뿐이었다.

즉, 시르는 속옷을 입지 않았다.

오늘 종일 입지 않은 것이다. 같이 임무를 수행하러 갔을 대도, 돌아올 때도, 길드에서도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어제도, 엊그제도, 그 이전에도… 평생.

…조, 종족적인 특징이겠지? 아니면, 전통일지도 모른다. 이 특징적인 드레스처럼, 속옷을 입지 않는 전통이 있는 거겠지. 그게 무슨 개변태 전통인가 싶지만, 왜! 그 지구에서도 속옷을 입지 않던 시기도 있지 않았는가!

…본인의 취향은 아닐 거다. 응. 틀림없어.

그 문제는 그렇게 납득하고 넘어가기로 하고, 나는 이제 완전히 드러난 시르의 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새하얀 피부. 매혹적인 곡선. 봉긋 솟아오른 가슴의 그 끝에는 하늘 높이 피어오른 꽃봉오리가 있었다. 그 밑에는 늑골의 윤곽이 호흡에 맞춰 자기주장을 하고, 배는 잘록했고 그 안에는 작고 귀여운 배꼽이 눈에 띄었다. 양손으로 쥘 수 있을 얇은 허리에서 이어지는 골반과 허벅지의 라인은 매혹적이었다.

그 사이엔 깨끗한 비너스의 언덕이 자리 잡고 그 밑의 계곡에선 물이 흘러 허벅지와 침대를 적시고 있었다.

…나지 않았구나. 깎은 흔적도 없다. 종족이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니지. 스물다섯이잖아? 팔이나 다리도 그렇고, 시르의 종족은 채모가 적은 종족이겠지.

그보다는… 가랑이에서 지금도 실시간으로 흐르고 있는 투명한 액체가 너무나도 신경이 쓰인다. 뛰어난 후각이 그녀의 체취만이 아니라 그 액체의 냄새도 잡아냈다.

…응. 이건 여성이 흥분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액체다. 직접 맡아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것 외엔 있을 수 없다. …조금 다른 것도 섞인 것 같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나는 그곳에서 눈을 돌리고 시르의 얼굴을 봤다.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났음에도 시르의 얼굴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힘도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열이 가득한 숨을 내쉬면서 호흡을 고르는 시르는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 사이에도 허벅지 사이에선 투명한 액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인지조차 못 하는지 시르는 몽롱한 눈으로 내 얼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의 절정은 부끄러움마저 앗아간 것이다.

그 사실에 약간의 죄책감과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환희를 느끼면서 나는 천천히 그녀의 가장 깊은 곳으로 손을 향하면서 맨살을 드러낸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흥!”

그 자극에 완전히 넋이 나간 것 같던 시르가 반응을 보였다. 아직 아래쪽은 만지지도 않았는데, 맨가슴에 손을 댄 것만으로도 이런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래쪽까지 손을 대면 과연 어떻게 될까?

시르의 가슴을 천천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느끼도록 주무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시르에게는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하지만.

좀 더 보고 싶다. 시르가 내 손이 닿을 때마다 보이는 반응을 좀 더 보고 싶다. 내 손에 헐떡이는 것을, 흥분하는 것을 열렬하게 보고 싶다! 이 밤을 전부 불태워서라도 보고 싶다!

욕망에 불타면서, 나는 오른손을 시르의 음핵과 접촉했다.

“하으읏!”

그저 닿았을 뿐인데 교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로 절정에 달하지는 않았지만, 시르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를 앙다물고는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다양한 감정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내가 가장 바라고, 아마, 시르도 가장 바라고 있을 감정만을 받아들였다.

나는 상냥하게 말했다.

“사랑해. 시르.”

“…저도… 사랑합니다. 시그 니임….”

안도감과 애정이 담긴 대답에 나는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애정의 보답을 행동과 말로 돌려주었다.

“그러면 같이 기분 좋아지자.”

“…네? 그, 잠까야아아아아아아아흐아아아아앗!!!”

가슴 위에 솟아오른 분홍색과 계곡 사이에 솟아오른 분홍색을 동시에 꼬집자 시르의 몸이 강하게 요동치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기세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기념비적인 세 번째 절정이었다.

기나긴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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