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28화 (28/93)

〈 28화 〉 28화 님프 시르

* * *

유리와의 즐거운 협상(?)을 마친 뒤에 우리는 길드를 나섰다.

나서기 전에 접수원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는데, 평소와는 달리 빠르게 끝났다. 이전에는 대화를 나누면 10분은 기본이었는데, 오늘은 가벼운 인사말 정도밖에 나누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지이

“…………….”

지이

반개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시르 때문이었다.

…아니, 왜 이러는 거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일단, 시르의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 게 길드 마스터의 방을 나설 즈음이라는 건 안다. 그때부터 표정이 영 좋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지는 못했다.

내가 연애 경험은 없어도 눈치는 있다. 그 자리에서 물어봤자 제대로 된 대답은 듣지 못하고 시르의 기분만 더 나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1층에 내려와 접수원을 만나고 평소처럼 대화를 나눴는데… 단순히 표정이 나쁜 걸 넘어서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기세에 접수원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웃는 얼굴로 눈치 빠르게 물러났고, 나도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길드를 나서고 제법 걸어간 지금도 시르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대체 어디서 잘못된 걸까?

인터넷에서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유머짤을 볼 때 비웃었었는데, 내가 그 상황이 되니 자신의 오만함에 대가리를 땅에 들이박고 싶어졌다.

미안합니다! 선배님들! 당신들은 대체 어떤 싸움을 해오신 겁니까!

좋아. 어디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시르가 기분이 나빠진 건 유리와의 대화 도중이나, 대화가 끝난 후인 게 분명하다. 대화 내용을 되새기면서 어느 부분이 시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고민해봤다.

……으음.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봐온 시르가 기분이 나쁠 부분이 하나도 없다. 도중에 대화를 따라오지 못하긴 했지만, 그걸로 기분이 나빠진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잠깐만.

…그래. 그거군.

이유를 알았다.

시르가 계속 기분이 나쁜 이유를 알았어!

내가 이걸 놓치고 있었다니!

시르가 얼마나 실망했을까!

후회가 물밑 듯이 몰려왔다. 시간을 20분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물을 다시 담기라도 해야지!

바닥이라도 닦아야지!

“시르. 잠시 쉬웠다가 가도 괜찮을까?”

“네. 시그 님. 괜찮습니다.”

내 말에 시르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답했다. 표정이나 스산한 기운은 그대로였지만,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 모습. 무의식이 겉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분명 불만이 있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능숙하게 숨기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걸 보면 시르는 실제 나이와는 달리 상당히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외모만 보면 잘 봐줘야 고등학생이지. 지구 기준으론 중학생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는 외모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시르는 25살! 아무리 이종족이어도 25살에 성인이 아닌 종족은 몇 없다. 그리고 내가 추정하고 있는 시르의 종족이라면 25살이면 세이프다! 여긴 인간도 만 16세부터 성인이라고!

………어쨌든, 시르의 불만이 내가 추론한 데로라면 말만 잘하면 해결할 수 있다.

잠시 뒤, 우리는 다리 위에 나란히 서서 강을 보고 있었다.

제법 풍경이 좋아서 분위기 잡고 말하기 딱 좋은 장소다. 시르는 이런 곳이 있었는지 몰랐는지 건물들과 강에 반사되는 햇살을 신기해하며 보고 있었다. 조금이지만 표정이 풀렸군.

나는 양팔을 다리 난간 위에 얹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법 괜찮은 곳이지? 이 도시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발견한 자리야. 유리창과 강에 반사된 햇빛이 제법 운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곳이지.”

“…그렇습니다. 저는 두 달간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시그 님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말하는 시르의 얼굴엔 여전히 그늘이 남아있었지만, 조금 전처럼 스산한 느낌은 없었다.

시무룩해하고 있다고 할까. 자신감이 사라진 표정이다.

…역시, 예상한 대로구나. 그래. 유리와의 대화를 생각하면 시르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때 시르는 꿔다놓은 보따리 같은 상태였다.

우리들의 대화에 조금도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듣기만 하던 처지. 그나마 한 의견 표출도 나에게 따르겠다는 정도였다. 그때의 대화는 나와 유리 두 사람이 일방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시르도 당사자인데!

시르가 아무리 겸손해도 25살이란 젊은 나이에 일신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이다. 틀림없이 어렸을 때부터 각종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을 아가씨다. 그런 사람이 고향을 나와 모험가를 하는 이유는 몇 가지 떠올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다.

어쨌든 타고난 성품으로 시르는 자기 평가가 낮은 편이지만, 그게 자부심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약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비교 대상이 어디까지나 나니깐, 그런 거지 비슷한 또래의 모험가 중에 시르와 비교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리에나도 모험가 경력만 길지 전체적인 전투력은 시르의 절반도 되지 않을 거다. 마법, 기공, 성법을 전부 익히고, 그중 하나를 6단계까지 도달한 시점에서 시르는 틀림없이 천재다.

그런 아가씨의 장래에 중요한 이야기를 멋대로 진행해버렸다.

그녀가 나를 존경하고 존중해서 판단을 맡겼다고 해서… 아니, 그녀가 내게 판단을 맡기게 된 것도 내가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윗사람으로 살아서 그럴까. 타인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내 기준으로 업무를 지시하고 내 기준으로 교육하다 보니 상대방의 의사를 묻고 일을 진행하는 능력이 너무 떨어졌어! 시르가 내게 너무 순종적인 태도인 것도 한몫했지만… 이건 비겁한 변명이다. 설사, 시르의 태도가 그랬어도 반드시 제대로 짚었어야 했다.

“아니, 대단한 건 시르야.”

“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느닷없는 말이었을까. 시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빛을 잃지 않는 황금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시르같은 참을성이 없어.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씨도 시르와 비교하면 태양 앞의 촛불이지.”

“시그 님….”

“미안해. 너를 배려하지 못해서. 내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안 됐어. 설사, 네가 그것을 허락했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

“나 참. 정말 한심한 자식이야.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줘도 기고만장해서 날뛴다니까. 상호존중의 이치를 숨 쉬듯이 까먹어. 정작 그런 사람들을 보면 누구보다 먼저 욕을 하면서, 까고 보면 그런 자들과 별로 다를 게 없어.”

“아, 아닙니다! 시그 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십니다!”

발작적인 외침이었다. 영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를 보고 있는 그녀의 황금에 물기가 맺혔다. 새하얀 피부가 붉게 물든다. 굳게 앙다문 입술에서 강한 의지자 전해진다.

아아. 그래. 이걸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조했다. 내 감정을 과장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녀를 속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정말 최악의 인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속여서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을 보려 하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다.

이것 말고는 시르의 기분을 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34년 동안 연애는커녕 여성을 원한 적도 없는 내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달콤한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내 방식대로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람을 상대하는 방식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으니까.

“시그 님은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애초에 저는 시그 님의 결정에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시그 님이 어떤 선택을 하셨든 간에 따랐을 겁니다. 그것이 제가 시그 님을 믿는 방식입니다. 거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시르의 본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근데 내 예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데? …정말? 정말로 내 배려가 부족해서 기분이 나빴던 게 아니야?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기분이 나빴던 걸까? 예상했던 게 틀렸다고 그대로 끝내는 건 머저리들이 하는 짓이다. 이젠 직접 물을 뿐이다.

“그럼 어째서 계속 기분이 나빴던 거야?”

“그, 그건…….”

머뭇거린다. 부끄러워한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보니 첫인상과는 다르게 시르는 표정 변화가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시르의 기분이 나빴던 진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그걸 내 입으로 담는 건 너무…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얼굴에 열이 올라온다. 내 짐작이 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제발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아니, 그래도, 그건, 너무, 나한테, 편의주의적이지, 않나…?

바보가 된 기분을 다시금 맛보고 있을 때 시르의 입이 천천히 열었다. 약간의 열기를 품은 숨을 토해내며, 여전히 물기 어린 황금을 내게 향했다. 그리고 흘러나온 진동은 떨리면서도 단호했다.

“질투했습니다.”

“……네?”

멍청한 표정에 멍청한 대답.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인간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길드 마스터님과 시그 님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질투했습니다. …접수원님과 시그 남이 친한 것을 보고 질투했습니다!”

“………어, 음.”

“싫었습니다. 시그 님이 저 외의 다른 사람과… 다른 여성과 즐겁게 떠드는 걸 보는 게 싫었습니다! 저 외의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짓는 게 싫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추악한 질투심을 품은 저 자신이 제일 싫었습니다.”

막혔던 둑이 터졌던 것처럼 시르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졌다.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얼굴과 상반되는 물기 어린 황금색 눈빛에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의 모습이 비친다.

마치, 그녀 안에 내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모습이 이렇게 멍청한 표정이라니!

마음이 아프다.

야이, 씨발! 이래서 동정 새끼는 안 돼. 뭔, 마음에 맞는 사람이 없어서 연애를 안 한다는 거야. 못 하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조차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는 머저리가!

결국, 이딴 놈이니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던 거다. 제 잘난 줄만 아는 놈이니까! 다들 알았던 거지. 이딴 놈하곤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 수 없다고!

어쩌지? 어떻게 해야 시르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모든 지식을 총동원했다.

창작물, 인터넷 글, 내가 직접 본 광경에서 답을 찾는다.

스스로 찾은 방법은 믿을 수 없다.

타인의 경험을 빌리는 게 가장 확실하다. 그것을 언젠가는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시르의 눈물을 막는 거야.

찾았다.

유일한 답을.

“저는… 저는…! 그래서…!”

“시르.”

말을 끊는다. 울기 직전의 그녀는 뭔가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어진 내 행동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시르를 껴안았다.

나에 비하면 작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들어온다. 명치 밖에 오지 않는 그녀의 숨결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내 거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허리를 휘감는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이 가슴에 가득했다.

그녀의 숨결을 느낄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의 고동을 느낄 때마다 뇌간이 떨려왔다.

그녀가 숨을 삼킨다. 순간 황금에 맺힌 물기가 흘러내렸다.

나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그녀의 얼굴을 내 품에 묻었다.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아니, 아닙니다. 시그 님이… 잘못 하신게….”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가장 먼저 이 말을 했었어야 했어. 하지만 겁이 나서 하지 못했어. 잘난 듯이 굴었지만, 사실 나는 엄청난 겁쟁이거든.”

“그런… 아닙니다. 시그 님은 그런 분이….”

“너에게만은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어. 결국, 이렇게 못난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너를 울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부터 용기 내서 하는 말을 들어줄 수 있을까?”

“……듣겠습니다.”

그녀가 나를 올려본다. 여전히 남아있는 물기 너머의 빛나는 황금에 내 모습이 맺힌다.

거기의 나는 더 이상 한심한 모습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얼굴.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랑해. 첫눈에 반했어.”

“저도 사랑합니다. 첫눈에 반했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음이 통했다.

아아. 이 감정은 영원불멸할 테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타오른 이 불꽃을 꺼트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설사, 이 세상을 전부 적으로 돌린다고 해도!

그쯤에서 깨달았다.

여기, 다리 위였지?

싸늘하다. 등줄기에 수치사의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야… 아니야! 인식하면 안 돼! 이대로… 이대로 무시하고 가면 된다. 이대로 시르와 함께 손잡고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주변을 의식하지 마! 우리에게 향하는 수십, 수백의 시선을 인식하지 마! 무시하자. 무시해.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끝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그때 옆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뇌리에 한 가지 확신이 떠올랐다.

끝났다.

고장난 기계처럼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귀까지 빨개진 천인?人이 오른손에서 푸른색 문양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거 그거지? 시르가 사용했던 그 기록마법이지?

희귀한 마법이라더니만, 쓰는 사람을 벌써 두 명이나 만났네?

그래.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야, 기자잖아? 응? 천인들은 기자니까, 기록마법을 익히고 있어도 딱히 이상할 건 없지? 문제도 없지?

거기에 나와 시르의 조금 전 장면이 기록되지만 않았으면 말이지!

“…아리야.”

“후아아아아. 여, 역시 시그 님이시네요! 굉장해요! 서, 설마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그런 열정적인 고백이라니!!!! 거기다가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시르 양! 이, 이건 특종이야! 다, 당장 기사로 만들어야해애애애!!!!!!”

“야, 야! 잠깐! 너 어디가! 돌아와! 이 자식아!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 거야아아아아!!!!!”

내 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리야는 광풍을 일으키며 저 멀리 날아갔다. 쨍그랑! 그 폭풍에 유리창까지 깨지는 걸 붙잡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얼마나 기쁘기에 저런 미친 속도로 날아가는 거냐.

이제 나는 죽었다. 사회적으로.

“시그 님.”

그때 시르의 목소리가 날 현실로 되돌렸다.

“어, 응. 시르. 어, 미안. 갑자기 소리 질러서.”

거기다가 기껏 좋았던 분위기도 단번에 박살났다. 아니, 시발. 멋지게 고백하고 성사되기까지 했는데 마무리가 왜 이 지랄이지?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쫙 빠진다.

…시르도 실망했으려나.

두려움과 걱정을 담아 시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데 시르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는 독점욕이 강한 것 같습니다.”

“어, 그, 그래? 그, 그거 놀라운 사실이네.”

“시그 님이 다른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듭니다.”

“………와우.”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제 기분 때문에 시그 님의 일상생활을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제가 미숙한 탓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

“저만을 봐주세요.”

확신했다.

나는 앞으로도 시르를 절대로 이기지 못해.

“물론입니다. 공주님.”

나는 시르를 껴안고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시르는 놀란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밝게 웃으면서 나를 꽉 껴안았다.

남들의 시선? 알게 뭐냐. 이미 팔릴 만큼 팔린 얼굴이다. 내 수치심은 조금 전 시르의 미소로 완파되어서 심해 밑으로 가라앉았다. 인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

그리고 그게 절대로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다 하자.

사랑을 노래하자. 내 첫사랑을.

이세계에 온 뒤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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