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27화 (27/93)

〈 27화 〉 27화 악신의 추종자

* * *

예상대로 돌아오는 길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역시 시그 님의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렇지? 내가 말했잖아. 이놈들이 그 이상 준비해놨을 리가 없다고.”

“굉장한 혜안이십니다!”

“하하하. 과찬이야. 과찬.”

다시 일행의 후미로 이동한 우리는 그렇게 노가리를 까면서 도시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장 앞에는 다시 리더 자리를 찾은 리에나와 아주 꼼꼼하게 포박당한 악신의 추종자를 어깨에 메고 있는 잔쥬루가 있었고 그 뒤를 청동 셋이, 다시 그 뒤를 강철 하나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뒤따르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런 진형이 된 이유는 혹시라도 습격이 있다면 그건 후방에서 올 테니 경계를 위한 거였다. 가장 실력자들이 가장 위험한 곳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

그건 다시 말하면 이 파티의 중심이 우리라는 말이다.

정정. 리에나는 리더 자리를 되찾지 못했어요. 다만, 본인도 거기에 별다른 유감은 없어 보이지만 말이야.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우리는 방음마법 속에서만 호들갑을 떨며 즐겁게 떠들었다.

“애초에 그곳에 악마와 마법사를 배치한 이유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야. 놈들도 머리가 있다면 토론토라의 재앙이 누군가에게 쫓겨서 달아났다는 걸 알았을 테고, 그 누군가가 모험가 길드나 도시에 그 얘기를 전할 거란 것도 알았을 테지. 그런데도 굳이 그런 대비를 한 것은 모험가 길드의 생리를 알고 있어서야. 실력자가 와서 우선 흔적을 확인해도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조사단을 보낼 거라는 걸 알았던 거지.”

“조사단을 전멸시키거나, 혹은 큰 피해를 줘서 길드의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했다는 겁니까?”

“역시 시르야. 바로 알아듣네. 맞아. 하급 악마 하나랑 6위 흑마법사 한 명. 약한 전력은 아니지만, 어떤 조사단이 와도 전멸시킬 수 있는 전력은 아니지.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그렇게 큰 타격은 없는 작전이었을 거야.”

“그래도 이렇게나 아무런 피해가 없을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래. 오히려 나는 저놈이 아직 죽지 않은 게 놀라워. 적에게 잡히면 곧바로 죽는 저주 같은 게 걸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야.”

“…제 생각이지만, 아마도 생포 당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호오? 어째서?”

“저 흑마법사는 본인이 생성한 암흑을 통해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6위에 걸맞지 않은 마법이지만, 흑마법이란 특정 분야에선 보통 마법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니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아! 맞다. 그래.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 마법을 이용한 거였어! 확실하게 도주할 방법이 있으니 그런 수작을 부려 놓지 않은 거구나? 그걸 알아차리다니, 굉장해!”

옛저녁에 깨달았던 사실이지만, 시르의 뿌듯해하는 표정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맞장구를 쳐줬다. 시르는 내 칭찬이 진심으로 기뻤는지 미소 지었다.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시그 님의 혜안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촛불에 불과합니다. 과한 칭찬이십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기쁜 것 같았다. 내 칭찬에 이 정도로 기뻐하다니! 무지성으로 무제한 칭찬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안 돼. 그러면 너무 싼 남자처럼 보이잖아. 나는 좀 더 무게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다고!

“아니, 너무 겸손한 건 좋지 않아. 시르는 자신의 판단력을 너무 낮게 잡지 마. 자만심은 경계해야 하지만, 자신감은 권장해야 하는 법이지. 성장에 가장 필요한 건 자기객관화야. 자신을 낮게 잡는 것도, 높게 잡는 것도, 늪에 빠지거나 절벽에서 미끄러지는 위험만 늘릴 뿐이야. 언제나 주의해야해.”

“…감사합니다. 금과옥조와도 같은 조언. 깊이 새기겠습니다.”

무심코 나온 조언에 시르는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음. 나쁜 기분은 아닌데, 마치 갓세계물 주인공이 무지성 나데나데를 받는 기분이라 조금 묘하네. 시르의 칭찬에 너무 마음이 풀어지면 안 되겠어. 나 자신을 다스려야지.

“그래 주면 고맙지. 내 조언이 시르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건 정말 기쁜 일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시그 님의 기쁨이 된다니! 천상의 계단을 올라갈 것 같습니다!”

“…기뻐해주는 건 고마운데, 그렇다고 정말로 승천하지는 마. 진짜로.”

정말로 승천할 것 같은 표정과 기세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해버렸다.

아니, 단순한 비유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해버렸잖아!

승천은 무슨! 아무리 판타지 세계여도 우화등선 같은 게 실제로 있겠냐! 책에도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그런데 시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어째서입니까? 승천은 저희 교의에선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업적입니다.”

…진짜로 있는 거냐고. 판타지 세계를 너무 우습게 봤나?

그리고 ‘교의’라.

뭐, 성법을 익히고 있는 시점에서 종교가 있는 건 당연한 거였지만… 으음. 어떤 종교인지 무지 신경 쓰이네. 하지만 지금 묻기엔 장소나 시간이 적절하지 않다. 곧 있으면 도시에 도착할 테니, 숙소에서 얘기를 들어 볼까.

지금은 시르의 의문을 해결해주자.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이어도,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싫어.”

“………….”

“그런 기회가 와도 승천하지 마. 이 세상에 있어줘.”

내가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긴 했지만, 이것 외엔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뻔뻔하게 나서는 게 제일이다.

그 결과 시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가, 그 열기가 귀까지 뻗었다가, 종국에는 머리에서 김이 날 것 같은 얼굴을 푹 숙이며 작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시그 님. 저는…… 으음. 아, 아닙니다.”

얼버무린 뒷 말이 매우 신경 쓰였지만, 그걸 놀리듯이 추궁할 수는 없었다.

나 또한 조금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해라. 명경지수.

그렇게 우리는 어색해졌지만, 좀 더 가까워진 분위기로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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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 온 흑마법사의 인계를 끝낸 뒤에 임시 조사단은 그 자리에서 해산했다.

리에나는 잔뜩 지친 얼굴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신의 숙소로 향했고, 잔쥬루는 그 보조를 위해 같이 물러났다.

청동 모험가 셋은 나와 시르에게 같이 술이라도 마시러 가자고 제안했지만, 나나 시르나 할 일이 있어서 거절했다. 세 사람은 그럴 거래 생각했는지 아무런 불만 없이 물러났다.

그런데 아직 해가 창창한데 술판을 벌일 생각인가. 이게 이 세계 평균인지 아니면 모험가 평균인지, 아니면 저들이 방탕한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또 다른 강철 모험가. 아틸리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길드를 떠났다.

저 눈빛과 기세. 나를 라이벌로 삼은 건가. 대단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노력하면 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지. 뭐, 나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모두 헤어진 뒤에 남은 나와 시르는 그대로 숙소로 향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내 직속이나 다름없는 접수원이 길드 마스터가 우리 두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나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접수원을 보고 시르가 묘한 눈을 보냈던 것 같지만, 내 착각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나와 시르는 길드 마스터. 유리 베르실과 마주하게 되었고,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유리 베르실은 내가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줬다.

“…악신의 추종자들인가.”

양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죽어가는 소리를 내는 그녀를 보고 나는 속으로 고소를 지었지만, 시르는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길드 마스터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시르. 고질병인 두통이 도졌을 뿐이다.”

“괜찮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치유성법을 사용하겠습니다.”

매우 걱정스러워하면서 손에 녹색 빛을 떠올린 시르를 보고 유리 베르실은 당황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정말로 괜찮다. 애초에 이 두통은 성법으로 치유되는 계통이 아니다. 고향에서 그런 병도 있다는 걸 교육받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시르는 시무룩해졌다.

…아오. 귀여워. 그리고 나 외의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생경한 감정이 떠올랐다.

아아… 이게 질투라는 건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대협. 이런 감정에 휘둘려서 꼬장을 부리는 소협이 아니다.

“하아. 유망한 모험가에게 자괴감을 주다니. 길드 마스터가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애초에 그런 지병은 남에게 보이지 말았어야죠. 길드 마스터라면. 길드 마스터라면!”

아. 라면 먹고 싶어졌다.

심술을 부리자 유리 베르실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의 이면에 보이는 시커먼 사념이 진의를 오염시키는군.”

큭! 들켰나?! 어떻게?!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는데?!

내 당황이 표정에도 드러났는지, 유리 베르실은 짓궂은 표정으로 우리 둘을 둘러 보면서 말했다.

“어울릴 거란 생각은 했지만… 빠르군. 요즘 애들은 정말 빨라. 후우. 그래도 어른 앞에선 조금 자제해줬으면 하는군.”

“무, 무무무무슨 말인지 모르겠사와옵니다.”

“…동방에서 쓰는 말인가? 해괴한 말투군.”

유리 베르실은 황당해하면서 말했다.

“그렇게 뜨거운 시선을 주고받고 있으면 어린애라도 그대들의 관계를 알겠지.”

“……아.”

“……아.”

“……설마,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가? …그런 부분도 놀랄 만큼 닮았군. 비슷한 타입의 사람끼리 끌리는 건가.”

스탠드 술사는 스탠드 술사끼리 끌리는 것처럼.

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전력으로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무지무지 부끄럽다. 아니, 모험가들과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왜 지금 유독 더 그렇지?

시르도 유리 베르실의 말을 알아듣고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목덜미까지 빨개졌네. 귀여워.

…젠장!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뻔뻔하게 나가주마!

“아아아아니이이잇! 나이도 있으신 분이 주책맞게! 어린 친구들의 그런 사정은 입으로 내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예의! 땍! 속으로 흐믓하게 보는 것만 허용입니다! 허용!”

“……그대는 당황하면 성격이 변하는군. 재미있는 걸 봤으니 놀리는 것은 그만하겠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유리 베르실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에 맞춰서 나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시르는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래. 시르. 너는 계속 그대로 있으면 돼. 이런 가면 놀이는 나나 유리 베르실 같이 속이 시커먼 사람들만 하면 되니.

“악신의 추종자까지 이 일에 개입할 줄은 몰랐다. 이건 명백히 내 실책. 그대들에게 미안한 짓을 했군.”

“그 말은 리에나 대장을 포함한 다른 모험가분들에게 해주세요. 생각지도 못한 일에 엮어서 당분간은 몸을 사릴 것 같으니까. 그리고 최대한 빨리 현 사태를 해결해주세요.”

내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유리 베르실은 쓴웃음을 지었다. 반박할 말이 없겠지.

“물론, 그들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내려질 거다. 현 상황에선 자네가 있으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놈들이 남긴 흔적은 따로 조사해봐야겠지.”

“길드 마스터가 직접 나서는 건가요?”

“아니. 그건 다른 모험가를 쓴다. 나는 상부에 보고를 마치고 토론토라의 재앙의 추격에 힘을 쏟아야 해.”

“음.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길드를 비우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유리 베르실을 얕보는 건 아니지만, 몇 년이나 잡히지 않은 그 영악한 녀석을 그녀가 지원한다고 금세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장기전이 될 테고… 애초에 지금까지 이 지역에 남아있으려나 모르겠네.

뭐, 이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겠지.

실제로 돌아온 대답도 그녀가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다.

“내가 직접 나설 일은 얼마 없다. 대부분은 물자와 인력을 지원하는 일이지. 내가 일할 장소는 여전히 이 방이다.”

“검과 마법이 아닌 펜과 서류로 싸우는 겁니까. 모험가라는 이름이 무색하네요.”

“…좋은 비유군. 길드 마스터 정도 되면 서류로 싸우는 법이지. 모험가답지 않다라…. 내가 모험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

세월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 자기 나이 많다고 은근히 자주 어필한단 말이지. 그럼 나도 나이 많은 사람 취급을 해줄까.

“하긴, 높은 직위에 올라가면 현장에 나설 일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죠. 그리고 그 나이에 모험은 좀… 허리나 관절이 위험하지 않나요? 체력도 부족할 테고.”

“……호오. 좋아. 좀 더 떠들어 보도록.”

아아아아니이이이! 나이 많다고 티 내기에 나이에 맞는 취급을 해줬는데 왜 화를 내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네~~~

“이런, 이야기가 딴 데로 샜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말을 돌리는 방법이 조잡하군. …후. 그래. 나름의 친근감 표시로 알아듣겠다.”

“아니, 뭘 멋대로….”

“이론은 받지 않는다.”

“그러시지요.”

표정이 꽤 위험해 줘서 놀리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선 선을 잘 타야 하는 법이지. 괜히 분위기 싸하게 만들면 재미도 없다.

“그래서, 길드 마스터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보고 그 악신의 추종자들을 조사하라는 거죠? 할 수 있다면 박살도 내고.”

“…굳이 설명을 안 해줘도 되는 건 좋지만, 말을 좀 더 고르는 게 어떤가?”

유리 베르실의 황당을 즐기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쓸데없이 간보기 보다는 이쪽이 더 빠르니까요. 굳이 간보면서까지 얻을 이익도 없고. 뭐, 요컨대 도시 내부에 침입했을지 모르는 놈들이나 의뢰 중에 발견될지 모르는 흔적을 찾아 달라는 거잖아요? 보상만 합당하다면 저는 받아들이죠.”

“…저, 저도 시그 님이 받아들이시면 따르겠습니다.”

내 말에 이제까지 얼어붙어 있던 시르도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음. 역시 유리 베르실과 잘 아는 사이구나. 집안이 웃어른을 대하는 태도란 말이지. 같은 종족은 아닌 것 같지만…. 뭐, 그건 나중에 알아보고.

“시르도 그렇다니, 길드 마스터는 보상만 제대로 제시하시면 되겠군요. 와. 쉽다~ 정말 쉽다~”

“…마지막의 쓸데없는 추임새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후우. 좋다. 우선 그대들은 다음 달에 청동 등급으로 승급이 확정되었다.”

“설마, 그게 보상은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지. 이건 지금까지의 포인트만으로도 확정된 사항이다. 굳이 얘기한 이유는 청동부터의 승급은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숙지시키기 위해서이지.”

“호오. 그럼 첫 번째 보상이 뭔지 짐작이 가는군요.”

“…첫 번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군. 틀린 말은 아니다만…. 하아. 그래. 첫 번째 보상은 예상하는 대로 청동 이후의 승급도 최대한 빠르게 해준다는 거다. 이후에 너희들이 세울 공적까지 생각하면 순은까지는 매달마다 승급이라 봐도 좋겠지.”

나쁘지 않은 보상이다.

뭐, 우리는 실력이 있으니 실적은 금세 쌓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중위 이상의 등급으로 올라가는데 필요한 실적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모르는 이상, 평범한 의뢰로 쌓을 수 있는 실적으로 언제 승급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최소한 순은까지 다이렉트 승급을 약속받는 것은 괜찮은 보상이다. 다만, 이것만이라면 유리 베르실의 양심이 행성 탈출한 거다. 당연히 추가 보상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두 번째 보상은… 돈이다.”

“돈.”

“가장 확실한 보상이지.”

“매우 동감입니다.”

“활약도에 따라서 최소 100만에서 최대 1,000만까지 지급하겠다.”

“파격. 경악. 환희.”

“……원한다면 돈 대신 저택을 하나 마련해 줄 수도 있지.”

“당신은 신입니까?”

“길드 마스터다.”

“길드 마스터님!”

유리 베르실. 아니, 이젠 이름으로 부르겠다.

유리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래. 돈은 옳다.

나는 배금주의자는 아니지만, 돈의 필요성은 아주아주 잘 알고 있다.

제대로 된 경제체계를 갖춘 세계에서 돈이란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에 가까운 수단이다.

탄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다익선이다.

이번 보상에 머쉬 드래곤의 소재 판매 대금까지 들어오면… 내 목표를 훨씬 빨리 달성할 수 있을 거다.

이건 받을 수밖에 없군.

“그놈들을 보이는 족족 족치고 고문해서 모든 정보를 토해내게 한 뒤에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깨끗하게 해놓겠습니다.”

“……그래. 의욕이 났다니 정말 다행이군.”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유리를 보면서 나는 환하게 웃었다. 이야. 역시 인맥은 좋다니까. 덕분에 앞으론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돈이란 돈을 부르는 법. 투자금을 확보한 이상 남은 건 이걸 계속 불려 나가는 것뿐이다.

곧 쥐게 될 막대한 금에 눈이 멀었던 나는, 그때 시르가 나와 유리를 보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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