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4화 시르 플레인
* * *
동굴 안은 역시나 어두웠다. 촛불이며 랜턴이 켜져 있던 광산과는 달리 빛 하나 없는 칠흑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방해되진 않는다. 이것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수련해본 몸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지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들은 광산에 배치되어 있던 랜턴 두 개를 빼내서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머뭇거리는 발걸음이 그들이 나를 따라오면서 어느 정도의 내적 갈등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단 한 명.
시르만은 그런 모습 없이 나에게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랜턴을 들고 있는 모험가들을 지나서 어둠 속에서 앞서가는 내 뒤에 따라붙는다. 모험가들은 그런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앞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역학관계의 역전이 일어났다.
두 명의 옥석 모험가는 이제 최후미에 머물지 않는다.
이끌어지는 입장에서 이끄는 입장으로의 전환.
나에겐 익숙한 일이다.
그리고 시르에게도 익숙한 일로 보였다.
그래. 처음 보는 순간 알았지.
그녀도 나처럼 위에 서 있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어둠 속에서도 그녀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내 얼굴을 똑바로 올려보며 말했다. 나 또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황금이 나를 응시하는 게 똑바로 느껴졌다.
“어두운 곳에서도 거침이 없으십니다.”
“익숙하니까. 이런 곳에서 제법 수련을 많이 했거든.”
“역시 굉장하십니다.”
“시르야 말로 익숙한 것 같은데?”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암흑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시르는 묘한 말을 했다.
암흑을 볼 수 없다….
무슨 뜻인지 짐작 가는 게 몇 가지 있었지만, 이 이상 습격도 없을 것 같으니 직접 듣는 편이 좋겠지.
“그래? 뭔가 특수한 체질이야?”
“…네. 그런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눈을 감아도 너에게는 다른 색이 보이겠구나.”
“……역시 시그 님이십니다. 굉장히 잘 알고 계십니다.”
“이 정도 추론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지. 네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사람인 것처럼.”
“………….”
자연스럽게 칭찬을 곁들였는데 반응이 시원찮았다.
…망했다.
시발. 이래서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함부로 하면 안 돼! 괜히 분위기 잡아보려다가 본전도 못 찾았잖아! 왜 나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법을 수련하지 않은 거지?!
총탄을 붙잡는 기술은 있어도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은 없구나!
그렇다고 이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계속 말했다. 분위기가 망했을 때는 오히려 계속 밀고 나가는 게 가장 원만한 해결책이다!
“나도 남들과 다른 게 보이는 것에 고민하던 때가 있었어.”
“…시그 님도 남들과 다른 게 보이십니까?”
생각지도 못한 고백이었는지 시르의 동요가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나는 그녀가 내 표정을 상세히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웃어줬다.
“그래. 나에게는 너무나도 잘 보여서 지나치기도 힘든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았지. 그래서 한때는 남들과 다른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사회에서 격리하려고 했었어.”
“……그런.”
“실제로 며칠 정도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지냈어. 그리고 생각했지. 계속. 끊임없이.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나에게 아주 잘 보이는 걸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보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그 괴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삼일 만에 답을 찾았어.”
“…어떤 답이었습니까?”
시르에게 이런 시선을 받는 건 두 번째다.
답을 갈구하는 시선.
첫 번째는 만족할 만한 답을 줬다.
두 번째는 어떻게 될까?
나라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녀가 받아들일지 말지 벌벌 떨면서 말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내가 그녀 앞에선 바보가 돼도 심지心?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건 내가 세운 뜻??이니까.
“나는 잘 못 되지 않았어. 나는 이상한 게 아니야. 나는 틀리지 않았어.”
“……네?”
전혀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시르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아아. 이런 반응도 이렇게나 사랑스럽다니!
충족감을 느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세상이 잘 못 된 것도 이상한 것도 틀린 것도 아니야. 그저 다를 뿐이지. 서로가 다를 뿐이었어. 그걸 깨달으니 이제까지 했던 고민이 정말 바보 같이 느껴졌어. 다름을 틀린 거로, 이상한 거로, 잘 못 된 거로 생각한 내가 정말 바보 같아졌지.”
“……….”
“세상 사람들도 서로 다 달라.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여도 그 속은 다들 달라. 나도 그런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거야. 다름의 내용은 달라도 결국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남들과 달랐을 뿐.”
“……….”
“나는 남들보다 좀 더 특출나게 다르긴 했지만 그것뿐이야.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남들이 못 느끼는 것을 느끼고 남들이 생각 못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을 뿐. 그래 봐야 같은 사람이야. 그래 봐야 그들과 같이 부대끼면서 사는 사회의 구성원이야. 그렇다면 그들과의 차이를 곱씹으면서 스스로 거리를 벌릴 필요는 없어. 그들이 자신과 다른 남들과 어울려서 사는 것처럼 나도 나와 다른 남들과 어울려서 살면 되는 거야.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의지로. 나의 신념으로. 세상에 부딪히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지.”
“………그럼 시그 님의 결과는 어떤 겁니까?”
“지금 네 눈앞에 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시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의 말실수와는 다르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이 없는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그 뒤로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어둠을 개의치 않는 남자와 어둠을 볼 수 없는 소녀의 대화는 그걸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시르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는 어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디까지나 기분으로 끝날 얘기지만 말이다.
이대로 계속 함께한다면…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겠지. 당연히 시르도 나를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직 먼 미래의 얘기다. 방법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나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뒤로 미뤄두고 멈추지 않고 발을 놀려서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보인 것은 나흘 전에 봤던 광경.
절벽에 상당히 많은 동굴이 뚫려 있고 한가운데에 연못이 있던 공동이었다.
“여기가….”
“그래. 내가 토론토라의 재앙과 싸웠던 곳이야.”
한번 공동을 쭉 둘러본 나는 곧바로 나와 놈이 싸웠던 흔적을 발견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150m 떨어진 곳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시르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절벽에 난 흉악한 상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것이…… 굉장합니다.”
“굉장한 놈이긴 했어. 진짜로.”
단순한 강함을 따지면 머쉬 드래곤보다 네 배 이상은 강하지.
칫. 역시 그때 초장부터 풀파워로 조졌어야 했어. 그 정도로 강한 놈이 머리까지 좋으면 골치 아픈데 말이야.
그런데 시르가 말한 감상은 놈에 대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황금색 눈동자를 더욱 반짝이며 나를 올려보았다.
“그런 몬스터를 쫓아낸 시그 님이 굉장하신 겁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 뭐. 내가 대단한 건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큼으니 당연한 거지.”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자연의 법칙과 다를 바 없을 만큼 대단하십니다! 아니, 그 이상이십니다!”
평소처럼 당연한 말을 했는데 시르의 반응이 범상치 않았다. 아니, 보통 이러면 태클을 걸거나 건성으로 동의해주는 반응이 보통인데 이건… 너무 열렬한 반응이잖아?
그게 싫은 건 절대로 아니지만!
이야~ 같은 칭찬이어도 해주는 사람에 따라서 기분이 이렇게나 달라지는구나~ 지구에선 제아무리 미녀에게 아부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불쾌했지. 속셈이 뻔히 보였으니까.
하지만 시르는 다르다.
누군가는 내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평소의 날카로운 감을 잃었다고 말할 거다.
절대로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 명경지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고, 날뛰는 가슴과는 반대로 행동이 가능한 것도 내 이성이 멀쩡히 작동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내 이성적인 판단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미약하다.
시르는 진심으로 나를 경애하고 있었고 찬양하고 있었다.
그녀의 황금은 내가 직시하기 힘들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아. 누군가의 경애에 이 정도로 가슴이 떨렸던 적이 있었는가. 단연코 없었다. 앞으로도 내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은 한 명뿐 이겠지.
그 사실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서 시르에게 웃어주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정말 영광인걸. 하지만 시르.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런 말은 참아줘. …단 둘이 있을 때만 듣고 싶은 말이니까.”
“………네, 네. 시근 님. 이런 건… 단 둘이 있을 때만… 알겠습니다.”
내 차분한 말에 시르는 뒤늦게야 부끄러움을 깨달았는지 폭발적으로 붉어진 얼굴을 숙였다.
……얘는 왜 이렇게 하는 행동이 죄다 귀엽냐. 심장을 폭행하는데 천재인가?
그렇게 내가 감격하고 있을 때 뒤처졌던 모험가들도 동굴의 끝에 도달했다.
“후우. 드디어 나왔군.”
“상당히 깊은 굴이었어. …그리고 역시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았구나.”
“…이제 어쩌지? 이런 걸 단기간에 만드는 놈들이라면….”
“…후딱 조사만 끝내고 가야지. 안 그렇수? 대장?”
제각기 한마디씩 하며 올라온 그들이 리에나를 보고 결정을 요구할 때 그녀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와 시르가 그녀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그것들을 짧은 한숨에 흘려보내고 모험가답게 행동했다.
“토론토라의 재앙과 싸웠던 장소가 어디지?”
“저쪽이요.”
그런 그녀를 내심 높게 치면서 나는 싸움의 흔적이 남은 쪽을 가리켰다. 리에나는 눈을 찌푸리고 그쪽을 보더니 이내 손톱자국을 발견했는지 체념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 갑자기 한숨이 팍 늘었네. 처음에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말이지. 무엇이 그녀의 이미지를 바꿨을까.
“…저긴가. 확실히 있군. 그럼 가까이 가서 확인하도록 하지. 시르 양도 부탁하지.”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리에나는 멍청한 얼굴이 되었고 다른 모험가들은 아예 입을 쩍 벌리면서 경악하는 얼굴이었다.
참신한 반응이라서 그걸 보고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럴 수가… 대체 이게 무슨…….”
그 중에 유일하게 입이 움직이던 잔쥬루는 거기까지 말하곤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재빠르게 미소를 감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주자 잔쥬루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이, 이게 대형 신인! 몬스터만 빨리 잡는 게 아니었구나! 진짜 파격에 파격을 더하는 놈이로세!”
“뭔소리에요. 흰소리 그만하고 일이나 합시다.”
계속 이대로 두면 꽁트만 하다가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자연히 시르도 나를 따라서 몸을 돌렸고 내 뒤를 따라왔다.
이제는 따라오는 사람들이 된 선배 모험가들이 움직인 것은 우리가 절반 정도는 이동한 후였다.
저 멀리서 리에나의 한탄 섞인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실력도 명성도… 연애도 뒤처지는 건가…. 한심하네.”
“그러게 좀 더 젊었을 때 애인을 만들었어야지.”
“닥쳐. 잔쥬루.”
사람 냄세 나는 대화에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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