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23화 (23/93)

〈 23화 〉 23화 시르 플레인

* * *

내가 새롭게 깨달은 진리에 감흥에 젖어 있는 동안 모험가들은 그녀의 말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너무 부정적인 평가고, 실제론 합리적인 의문들이었다.

“바람에… 구멍까지? 5층에 그런 게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긴 한데… 아니, 탐지마법이라는 게 그런 것도 감지할 수 있는 거였어?”

조사단 필두인 리에나와 잔쥬루의 의문에 그녀… 아니, 시르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사용하는 탐지마법은 옅은 마력으로 일정 공간을 흩는 방식입니다. 아래층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서 확인해 본 결과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사람 네다섯은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구멍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 레이더다. 다만, 시르가 자신이 사용한다고 언급한 점이나, 다른 모험가들의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보면 일반적인 사용법은 아닌 것 같다. 역시 대단하구만.

“…마법은 잘 모르지만, 마법사가 그리 말한다면 사실이겠지. …난감하군.”

“끄응. 사실이라면… 이거 생각보다 문제가 커지는데? 어쩔 거야? 대장.”

“…으음.”

시르의 단호한 말에 비전문가인 두 사람은 빠르게 이해하고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의식은 시르에게 향했다. 시르는 조금 전의 태도가 어디로 갔는지 다시 나를 보고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마치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았다.

…고향집에 키우는 개들이 이런 표정과 눈빛을 자주 보냈던 것 같은데…. 아니아니. 시르를 개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 매우 큰 실례다. 후우. 하지만 여기서 칭찬인가. 자연스럽게 할 법한 말이….

“굉장한데? 마법사였구나?”

“길드 마스터님께 제 특기가 무엇인지 듣지 못하셨습니까?”

“에. 그런 얘기는 안 하셨어. 그러고 보니 서로 특기가 뭔지도 모르네. 일단 나는 권법과 무기술 전반에 기술개발, 회계, 사무 능력 전반 정도일까.”

내 말에 시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는 게 정말 사랑스럽다. 그래도 그 반응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내 시르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재주가 정말 많으시네요. 역시 굉장하십니다.”

“칭찬 고마워. 그럼 시르의 특기는?”

“시그 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몸이지만… 마법, 기공, 성법을 각각 6위, 5성, 4품으로 익혔습니다. 무기술은 창공??이 4성으로 기공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시르는 부끄러워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기공, 마법, 성법.

이 세 가지 기술체계는 이 세계에서 사용하는 초능력. 그러니까 판타지 기술이다. 셋 다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이름만으로도 어떤 기술체계인지 알 수 있다.

뭐, 내가 그렇게 번역이 되게끔 조정을 해둔 거지만.

특히 기공은 보통 무협에서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판타지 소설에 자주 나오는 오러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런데 어째서 오러가 아닌 기공으로 번역이 되냐면….

내가 무협을 좋아하니까!

검기! 검강! 장풍! 보법! 경공! 검성! 천마! 불존!

이건 못 참지!

…어쨌든 이 세 가지 기술체계는 이세계 사람들이 수많은 몬스터와 자연재해에서 살아남게 만들어준 원동력이다. 하지만 배우기 쉬운 기술들이 아니다. 자질에 따라서 입문 난이도부터 성장력도 크게 차이가 나는 데다가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려면 타고난 환경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유파든 간에 전부 10단계로 경지를 구분할 정도로 체계가 잡힌 기술들인 만큼, 당연히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이다.

그 외의 경우는 은퇴한 기사나 몰락 귀족들이 팔아치운 비전을 어떤 식으로든 얻어서 성장한 모험가나 용병들 정도다.

검술 길드 같은 곳도 검술은 가르쳐줘도 기공은 가르쳐 주지 않을 정도니….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 정도로 체계가 잡혀 있으니 당연히 단계에 따라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명확하다.

시르는 자신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겸손을 떨었지만, 6단계만 되어도 일류이며, 평생 노력해도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수준이다.

무협식으로 따지면 말 그대로 일류 고수다. 판타지 소설로 따지면 소드 익스퍼트나 6서클 마법사. 뭐, 이것도 해당 소설의 파워레벨에 따라서 대단한 것도 되고 별거 아닌 것도 되긴 하다만.

이세계에서는 대단한 게 맞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를 전부 4단계 이상으로 익혔다는 건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책으로만 익힌 지식이다만.

…아니, 그런데 대체 왜 모험가를 하는 거지? 어떤 국가를 가도 요직에 앉혀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인데.

실력으로 따지면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만…, 나는 애초에 이세계 사람이 아니니 예외 중의 예외고. 뭔가 특수한 사정이 있는 걸까?

아, 그러고 보니 고향을 떠나 좀 더 큰 세계를 보고 싶어 했었지?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그게 목적이라면 어디에 사관하는 것보단 모험가가 되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 모험가라는 직업에 로망도 있고 말이야.

어쨌든 과한 겸손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다. 여기선 확실하게 지적하고 가야지.

“그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니라 대단한 거야. 시르. 과한 겸손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야. 자신감을 가져. 너는 대단한 사람이니까.”

“………가, 감사합니다.”

내 단호한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던 시르는 이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많구나. 보기와는 달라. 아니, 어떤 의미론 아주 잘 어울리는걸.

“…크흠. 흠! 즐거운 대화 중에 미안하지만, 잠시 이쪽을 봐줬으면 좋겠군.”

그때 뒤쪽에서 리에나가 헛기침을 하면서 약간 붉어진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맞다. 여기 우리만 있는 거 아니었지?

재빨리 분위기를 살펴보니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반에 멋쩍어하는 사람이 반이었다. 우리들이 어떻게 보였을 지는… 말을 안 해도 알겠군.

그렇다고 여기서 나도 부끄러워하면 상황이 더 꼬인다. 그리고 이런 거로 놀림당한다고 부끄러워할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났지! 벌써 25살에 9살을 더해야 되는 나이라고!

“네. 말씀하세요.”

내가 태연하게 대답하자 리에나는 잠깐 움찔했다가 이내 미간을 한 번 꾹 누르고는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방침이 정해졌다. 시르 양의 말대로 5층으로 내려갈 생각인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지?”

이미 자기들끼리 결론을 냈으면서 내 의견을 묻는 다라. 이건 그들이 나를 존중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봐야겠지. 굳이 여기서 기만이나 속임수를 쓸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그럼 나도 솔직하게 대답해줘야지.

“저도 내려가는 건 찬성이에요. 다만,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는 준비는 해야겠죠. 어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적의 규모도 모르는 판국이니.”

“…아래에 뭔가 있다고 확신하는군?”

“시르가 먼저 말해서 타이밍을 놓쳤지만, 저도 아래층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건 느끼고 있었습니다. 본래 있어서는 안 되는 바람의 흐름이 느껴졌으니까요.”

내 말에 리에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놀릴 생각에 가득 차 있던 다른 모험가들도 표정이 변했다. 시르에 이르러서는… 이거 이 이상 따져볼 필요도 없지?

잠시 뒤에 리에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쓴웃음을 지었다.

“…후우. 선배들이 날 보고 느꼈을 감정이 이거였나. 아니, 나보다는 덜했겠지.”

하긴, 그녀도 나이치고는 꽤 높은 등급에 오른 모험가다. 뒤처진 선배 모험가들이 한둘이 아니겠지.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마음속에 담아둘 성격은 아니군.

여기 모험가들은 다들 은근히 성격이 좋단 말이야. 단순한 무법자라고 볼 수 없는 자들이다.

“좋다. 그럼 함정에 주의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도록 하지. 잔쥬루. 선도해.”

“네네. 알았다고 대장. 그나저나 우리 신인들 장난 아니네. 이 아저씨는 따라갈 엄두도 나질 않아.”

잔쥬루는 능글맞게 웃고는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리에나가 바짝 따르고 아틸리아가 좀 떨어져서 따라갔다. 그리고 청동 모험가 셋이 나란히 뒤를 따르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장 뒤가 되었다.

음. 이거 배치가 이래도 되는 거야? 의견 개진을 해봐야겠군.

“시르가 탐지마법을 쓸 수 있으니 앞쪽에 있는 편이 낫지 않나요?”

“귀중한 마법사를 앞장세우면 어쩌자는 거지? 당연히 안전한 후방에서 돌발 사태에 대비해야지. 그리고 강력한 호위도 붙어있어야 하고.”

내 의문에 리에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째서 이런 것도 모르냐는 표정이었는데, 평생에 받아 본 적이 거의 없는 표정이라서 나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그야, 유일한 마법사이니 중요한 건 맞는데. 시르는 기공도 쓸 수 있는데?

그것도 5성인 데다가 창술도 제대로 배웠으니, 마법을 쓰지 않고 창술만으로도 나 다음으로 강할 거다.

순은인 리에나도 가장 덩치가 큰 잔쥬루도 가장 힘이 세 보이는 아틸리아도 시르와 1대1로 싸우면 3분 내로 박살 날 거라 확신했다.

…설마, 시르의 전투능력을 낮게 잡는 건가? 조금 전에 우리가 한 대화를 들었다면 시르가 기공을 5성으로 익혔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때 내 의문에 대답하듯이 시르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 들었다.

“시그 님. 조금 전의 대화를 저분들은 모르십니다.”

“…아. 마법을 쓴 거야?”

“과연. 곧바로 알아차리시는 군요. 네. 방음마법으로 저희들의 대화를 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왜?”

“자신의 경지는 남에게 함부로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그럼 나한테는?”

“…시그 님은 예외입니다.”

시르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다행히 다들 앞만 보고 있어서 그 얼굴을 본 것은 나뿐이었다.

시발. 존나 귀엽네.

덤블링을 돌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끼에에에에엑!

…후우. 그래도 이런 감정을 내비칠 수는 없다. 그러면 이제껏 유지한 이미지가 망가지잖아! 여기선 스윗한 모습을 보여야지.

“그래? 기쁘네. 나도… 시르가 남 같지 않거든.”

“………시그 님.”

시르의 황금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대체 내가 한 말의 어디에 감격할 부분이 있었는지 몰라도 이 표정을 본 것만으로도 수명이 10년은 늘어난 기분이었다. 기분 째지네. 하. 시르는 만난 뒤로 언어 기능이 고장 난 것 같아.

우리는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5층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함정이 있을까 싶었지만, 가장 경험이 많은 잔쥬루도 탐지마법을 쓰는 시르도 함정을 발견하진 못했다.

내 감각에 딱히 걸리는 것도 없었던 걸로 봐선 따로 함정을 설치하지 않은 걸로 보였다.

5층으로 내려가본다고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닐 테고…. 오히려 꾀어내려는 수일 수도 있다. 뭐가 있을지 기대되는데.

그렇게 5층으로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시르가 말한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벽에 있는 커다란 구멍은 시르의 말처럼 사람 네다섯 명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대체 이만한 구멍을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 내로 판 건지 의아할 정도의 크기였는데, 우리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그 크기보다는 그 주변에 그려진 수많은 그림들이었다.

“…이, 이건 대체.”

“…어, 대, 대장. 이거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일 같은데!”

리에나와 잔쥬루는 그 그림들을 보고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이 그러는데 그보다 못한 다른 모험가들은 또 어떻겠는가? 이를 악문 아틸리아를 제외한 세 명은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떨 뿐이었다.

심지어 시르도 안색이 좋지 않아졌다. 다른 모험가들처럼 떨거나 하진 않았지만, 입을 앙다문 모습이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 아니라. 내게서 시선을 거둔 게 너무나도 아쉬운…… 게 아니라!

어, 어쨌든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지금 상황이 심각한 것은 아주 잘 전해졌다.

나? 나는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고 있었다.

그 그림들은 추악과 잔악의 결정체였다.

사람이 사람의 목을 베고 그 자른 목을 자랑스럽게 들어 올리고 있는 그림은 가장 건전한 그림이었다.

그 밑에는 잘라낸 목에서 흘러나온 피를 그릇에 담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그 그릇에 담긴 피를 게걸스럽게 마시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 발밑에는 목이 잘리고 심장이 뽑힌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뽑힌 심장은 뒤쪽에 그려진 제단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제단 위에는 자신에게 바쳐진 심장들을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는 부정형의 괴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으로 보기만 해도 본능적인 혐오감이 느껴지는 괴물. 사람이 불쾌하게 느끼는 형상을 응축한 형태였다.

연속성이 있는 그림들은 그게 끝이었다.

그 외의 그림에는 연속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은 오로지 광기와 파괴 뿐.

사람의 눈을 뽑는 그림. 얼굴 가죽을 벗겨내는 그림.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는 그림. 사지를 절단하는 그림. 뼈와 살을 말 그대로 분리하는 그림. 토막 낸 시체를 구워 먹는 그림. 항문부터 정수리까지 꼬챙이로 관통한 그림 등등.

그런 파괴적인 그림들과 조악한 그림체로도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수많은 성애를 묘사한 그림이 있었다.

이 그림들은 내 뇌리에 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되는 것 같아서 전부 시야에서 차단했다.

가장 처음 본 게 아버지와 자식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아주 어린 여자아이를 동시에…… 우엑.

그런 식의 그림이 수십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광기의 결정체.

이걸 그린 놈은 당장 정신병원에 처박고 평생 바퀴벌레만 처먹여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승에서 쫓아내는 거고.

“……시그 님.”

그때 시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 팔을 붙잡았다. 아니, 이런 대담한 스킨십이라니! 기쁨이 복받쳐 올라 감동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을 때 시르가 구멍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뭔가… 옵니다!”

다음 순간 나는 앞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앞에 있던 다른 모험가들을 제치고 가장 앞에 있던 리에나마저도 제친 순간 구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일격을 날렸다.

진괘?? 뇌격雪?

벼락이 치고.

쾅!

굉음이 터지고.

[키에에엑!]

단말마와 함께.

펑!

검고 추악한 생물이 풍선처럼 터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천천히 주먹을 회수하면서 구멍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 감각 상으론 더 이상의 적은 없었다. 지금 튀어나왔다가 얼굴도 못 보여주고 터져나간 놈이 유일한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나는 마법을 못 쓰니까 확인을 해봐야지.

“시르. 혹시 더 느껴지는 거 있어?”

“………….”

“시르?”

“아! 네! 시, 시그 님! 더 이상 느껴지는 건 없습니다!”

어째서인지 시르가 기합이 잔뜩 들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선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숨도 약간 거칠어졌다.

음. 뭐, 방금 튀어나온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내가 손쉽게 해치웠으니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 호들갑 떤 게 될 테니까. 그 심정을 이해하기에 나는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멍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다른 모험가들을 보면서 생긋 웃었다.

“이제 위험한 것도 없는 것 같으니 안으로 들어가보죠. 제가 선도하겠습니다. 괜찮겠죠? 리에나 대장.”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리에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대동소이했다.

아. 기분 째지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지!

나는 개쩌는 놈이라고!!!!

나는 싱긋 웃고 주저하지 않고 구멍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