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22화 (22/93)

〈 22화 〉 22화 시르 플레인

* * *

“여기인가?”

“여기입니다.”

우리는 광산 4층과 5층 사이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그리 중요한 일들은 아니었다. …나에겐 아주아주 중요한 일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상항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조사단의 목적은 토론토라의 재앙이 실제로 이곳에 나타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나와 놈이 싸웠던 장소로 가야 한다. 그 입구는 광산의 4층과 5층 사이에 있는 구멍이고.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한 문제다.

아래층에서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도 포함해서.

“…무너져있군.”

“그러게. 그것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무너트린 거야.”

리에나의 말에 잔쥬루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날 내가 통과했던 통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다. 왜냐면 입구 주면에 명백한 인위적인 파괴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산의 광부들이 한 짓은 아니다.

애초에 현재 광산은 임시 휴업인 상황이었다. 광산에 들어온 코볼트는 전부 처리했지만, 놈들이 뚫은 구멍이 문제가 되어서 일시 폐쇄한 것이다.

그렇다고 구멍을 그냥 둘 수는 없어서 돌덩이를 쌓고 천막을 둘러놓았다고 하는데… 그 천막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돌덩이는 자갈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구멍 주변은 둔기로 두들긴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다.

누가 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겠지. 정확한 사정을 알고 있는 리에나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때 잔쥬루를 나를 보며 물었다.

“분명 대형 신인이 싸운 몬스터는 인간형이 아니라고 했지.”

“그렇죠. 워낙 빠른 놈이라서 생긴건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네발 짐승이었어요. 당연히 이 좁은 곳을 들어올 정도로 작은 놈도 아니었고요.”

나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자 잔쥬루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거 아무래도 좆된 거 같은데. 이봐. 대장.”

“뭐냐.”

“대장은 대형 신인이 싸운 몬스터가 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날카로운,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다. 잔쥬루는 강철 등급이지만 풍기는 분위기로 보나 나이로 보나 배태랑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그건 오랫동안 함께한 리에나도 잘 알고 있을 사실이다.

리에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알고 있지. 그런데 그걸 꼭 여기서 물어야겠냐?”

“아니, 그럼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물어봐? 딱 봐도 수상하고 위험해 보이는 일인데?”

“수상하고 위험한 일이면 안 할 거야?”

“적어도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지.”

잔쥬루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다. 그런 두 사람을 아틸리아와 그녀를 제외한 사람들이 긴장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틸리아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생긴 것과 성향이 일치하는 사람 같다.

그녀… 시르에 이르러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시선이 내게 향해있었다. 아까 전의 그 대화 이후로 옅은 미소를 지고 계속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나도 웃으면서 계속 마주 보고 싶다! 바보처럼 계속 쳐다만 보고 싶다고!

일단, 이 일이 끝날 때까지는 여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게 또 그걸 말하자니 시르에게 미안하고, 또 그렇다고 그녀가 시선을 돌리자니 그건 아쉽다! 아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우유부단한 놈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게 내가 자기성찰에 빠져 있는 동안 모험가들의 대화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잔쥬루. 너도 알겠지만, 내가 숨기고 싶어서 숨긴 게 아니야.”

“당연히 알지. 이런 일이면 길드 윗분들의 의향이 듬뿍 들어간 걸 내가 모를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쪽에서 예상한 것보다 문제가 커졌다는 거야. 우리는 그쪽에 대해선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고 말이지.”

“그건 미안하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그래. 지금 무슨 말을 하든 변명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내가 너희를 아무런 말도 없이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려고 한 건 아니야.”

“그거야 당연하겠지. 내가 널 모를까? 지금 중요한 건 네가 어떤 이유로 사실을 숨긴 게 아니야. 신인이 싸웠다는 몬스터가 뭔지가 중요하지.”

“…후우. 어쩔 수 없군.”

리에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상당히 작위적인 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건 잔쥬루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두 사람은 짜고 치는 중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거기까지 읽고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이거, 잔쥬루에게는 이미 설명 했구만?

리에나는 순은 모험가다. 당연히 토론토라의 재앙이 얽힌 일에 돌발상황이 발생할 것 정도는 상정하고 있었을 거다. 그걸 혼자서 부담하는 건 힘들었겠지. 그래서 믿을 만한 동료인 잔쥬루에게 미리 말하고 돌발상황이 발생할 시에 도와주는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우려한 대로 돌발상황이 발생하자 잔쥬루는 가장 먼저 나서서 리에나를 추궁했다. 이것은 다른 모험가, 특히 지금도 눈을 번뜩이고 있는 아틸리아가 덤벼들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거나, 청동 등급 모험가들이 리에나를 불신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서로 짜고 치는 있으니 대화의 방향을 원하는 대로 유도할 수 있을 테니, 분위기도 험악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공유하고 계속 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잔쥬루도 이 임무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조사단의 전력이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유리 베르실이 말한 호위 임무는 이런 상황을 상정한 거겠지.

그리고 대화는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우리가 조사할 몬스터는 토론토라의 재앙이다.”

“그런…!”

“맙소사!”

“아니, 그런 놈이 언제?!”

“……망했네.”

“………후후후.”

리에나의 말에 각기 다른 리액션을 선보인 모험가들을 재미있게 바라보면서 나도 연기에 따라줬다.

“어. 죄송합니다. 길드 마스터가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재앙급 몬스터의 얘기가 나왔음에도 계속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그녀를 제외하면 정말 재미있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뒷 목을 긁었다.

“에. 그런데 그렇게 걱정하실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놈. 확실히 강하기는 했는데, 한 대 맞고 튀던데요.”

“…한 대 맞고 튀었다고?”

되물은 것은 잔쥬루였다. 이 얘기는 듣지 못했나? 아니, 리에나의 표정을 보니 그녀도 몰랐나 보군? 아마 치열한 접전 끝에 쫓아냈다는 식으로 설명한 걸까? 그럼 보충이 필요하겠군.

“고놈 지능이 높다면서요? 제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깨닫고 싸움을 포기한 거겠죠. 그 도망치는 솜씨 때문에 실제 전투력보다 위험등급이 높다는 얘기도 들었네요. 그러니, 적어도 고놈이 이곳으로 다시 올 확률은 낮을 거예요. 다시 와도… 뭐, 그때는 재앙이 하나 사라지는 날이죠.”

그리 말하면서 나는 히죽 웃었다.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다. 다시 마주치면 그때는 전력을 다해서 쳐죽일 거다. 전투를 즐기다가 놓치면 그때부터는 내 잘못이 되는 놈이니까. 지난번에 놓친 거? 그때는 그놈이 그런 놈인 줄 몰랐으니까.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실수지만 안 뒤에는 멍청한 실수다.

“………….”

내 말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호승심을 내비치던 아틸리아도 입을 다물었다. 유일하게 반응이 바뀌지 않은 건… 아니, 좀 더 눈빛이 강렬해진 건 그녀뿐이었다.

이젠 정면으로 마주 보면 그대로 이성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린 라이트 같은 걸 따질 시기는 이미 지났지?

“…음. 그렇다는군. 드래곤 슬레이어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을 거다.”

얼어붙은 분위기를 수습하기 시작한 것은 리에나였다. 대장답게 상황정리를 하고 의뢰를 마무리 지으려는 거겠지. 나도 그쪽이 편하다. 일단, 이 의뢰가 끝나야 그녀와 얘기를 하든 뭘 하든 할 테니까. 지금은… 무리야!

“…끄응. 대형 신인이 아니라 소룡小?이었나.”

“이게 드래곤 슬레이어!”

“아니, 못 믿는 건 아닌데. 그 재앙이 한 방에?”

“최소 순금 급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네….”

“승급은 따놓은 당상이구만. 네달 뒤엔 대장도 제치겄어.”

“…흐음.”

참으로 고마운 리액션들이다. 뭐, 최고의 리액션은 이젠 직시하기 두려운 수준으로 반짝이는 황금빛이지만!

“…본론으로 돌아가지. 나는 조사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리고 되도록 재앙의 흔적만이 아니라 이런 짓을 저지른 놈들까지 알아볼 생각이지. 의의 있는 사람 있나?”

“……있다면 있는데, 없다면 또 없네.”

“없다는 거군.”

“…일단 그런 걸로 하자구.”

잔쥬루는 내 눈치를 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다른 모험가들도 내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그녀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가 동의한 것을 확인한 리에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좋아. 그럼 곧바로 움직이지. 시그 군의 말에 따르면 놈이 나타난 공터의 절벽에는 동굴이 여러 개 있었다고 한다. 산을 뒤지다 보면 우리가 지나갈 수 있는 동굴도 찾을 수 있겠지. 우선 그쪽을 목표로 하자.”

합리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다.

왜냐면 이전에 왔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래층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놔두고 광산을 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민이 되기는 했다. 확 트인 곳이라면 몰라도 이런 좁은 곳에서 싸우는 건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걱정되는 일이다. 충격으로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초인인 나도 죽거나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가기에는 아래층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인다.

…음. 모험가라면 모험을 해야되는 법이지.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일 거다.

다만… 그녀는? 그녀는 괜찮을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녀가 다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 이건 너무 과보호인가? 그녀는 내 소유물도 아니고 나한테 무조건 보호를 받아야 되는 사람도 아니다. 애증을 가진 고향을 뛰쳐나와서 스스로 모험가가 되길 선택한 사람이다.

내 멋대로 그녀의 미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자. 이걸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 당장 리에나에게 말해서….

“대장님. 저는 반대입니다.”

그때. 줄곧 내게 시선을 향해있던 그녀의 입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미음美音에 잠시 멈칫했을 때 그녀는 나를 포함해서 다들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좌중에게 말했다.

“아래층에서 바람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탐지마법으로 확인해 보니 커대란 구멍이 뚫려 있군요. 가장 먼저 조사해야 할 곳은 아래층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그녀를 우습게 여기고 있었나 보다. 나 외에는 이 사실을 알아차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보는 데에만 신경이 쏠려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본 그녀는 그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것을 부정하고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상황에 빠져서 그녀 본인의 의사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녀에게 시선을 향하면서 주변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 또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기뻤다.

내가 사랑하게 된 여자는 굉장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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