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15화 (15/93)

〈 15화 〉 15화 드래곤 슬레이어

* * *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시체들은 그대로 두고 도시로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해체 및 수송 인력을 빌려오는 거다. 모험가 길드라면 그 정도 준비는 되어있겠지.

하지만 이건 모양새가 영 별로다.

조금 무리하면 멧돼지 두 마리와 초거대 우파루파로 서프라이즈를 할 수 있는데 미리 알리면 재미가 없지. 장래를 생각하면 직접 수레를 만드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저녁 전까지 만들 수 있으려나.”

시간제한만 없었어도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래도 방침을 정했다면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아야지. 시간은 금이라고! 진짜로!

일단 초거대 우파루파가 있는 이상 쌍각멧돼지를 온전한 모양으로 가져갈 필요는 없다. 가죽과 고기와 뼈를 분리해서 가져가는 게 무게도 덜하고 면적도 적다. 당연한 이치.

그 작업을 위해 우파루파 시체의 이빨을 다섯 개 뽑았다. 평균 20cm 길이의 날카로운 이빨은 단검 대신 사용하기 좋았으니까. 그 뒤에 쌍각멧돼지 부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하고 피 빼내기 작업을 시작했다.

본래 이런 야생 동물은 경동맥을 잘라서 피를 먼저 다 뺀 뒤에 내장을 다 제거하는 법이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고기에 누린내가 배서 품질은 떨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지. 여차하면 그냥 내가 요리해서 먹으면 그만이다.

당연히 제거한 내장은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땅을 깊숙이 파서 묻었다. 그냥 버리면 민폐라고.

그 뒤에 튼튼한 나무에 쌍각멧돼지를 거꾸로 매달고 곧바로 벌목 작업을 시작했다.

쌩타격으로 나무를 부수고 다듬는 건 시간 낭비. 인간이란 자고로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법이다. 쌍각멧돼지의 뿔을 서로 비벼서 날카롭게 만들어 도끼 및 검 대용으로 쓰기로 했다.

팔면 제법 돈이 되는 부위라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더 큰 이득을 위해 작은 이득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일종의 투자다. 이걸 못하면 사업가로는 성공할 수 없다.

퍽! 퍽! 퍽! 퍽! 쾅! 쿵!

머리에 음란마귀가 가득하면 야하게만 들리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두꺼운 나무에 흠을 내고 그 위를 발로 걷어차서 쓰러트렸다. 그런 작업을 반복해서 열다섯 개의 통나무를 만들었다. 두께도 길이도 제각각이지만 튼튼하고 굴러가기만 해도 되니 이 정도로 충분하다.

중요한 건 나무들을 고정하는 줄이다. 단순한 덩굴로는 무게를 견딜 수 없어서 튼튼한 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튼튼하고 질긴 줄이 근처에 있다.

우파루파의 촉수다. 최소 7m에서 최대 58m까지 늘어나는 촉수의 신축성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지구에서도 이 정도의 물질을 만들려면 돈이 상당히 깨질 거다. 그걸 자연체로 가지고 있다니… 역시 판타지는 판타지야.

촉수를 잘라서 통나무들을 고정하고 바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쪽도 오래 쓸 거는 아니니 적당한 크기의 바위 몇 개를 찾아서 손과 발로 적당한 크기로 박살 낸 뒤에 수도로 원형으로 다듬었다.

이거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제법 걸려서 바퀴 열 개를 만드는데 상당한 소요되었다. 무게를 생각하면 나무 바퀴로는 감당이 안 된다. 연결 부위는 전부 촉수로 보강해서 적어도 도시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렇게 길이 20m, 너비 8m의 거대한 수레를 완성하는데 두 시간이나 소요되었다. 후. 이거 제법 아슬아슬하겠는데?

그나저나 마을 사람들이 오지 않네. 아까 전의 굉음은 마을에도 들렸을 텐데. 아, 그래서 오히려 상황을 보러 오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한 건가? 바로 도시로 가는 것보다 마을에도 들리는 편이 좋겠어.

어쨌든 수레를 완성했으니, 이제 저 추정 무게 60t의 초거대 생물을 옮겨야지. 이게 제일 빡센 작업이다. 제아무리 나여도 저런 걸 쌩 완력으로 들 수는 없다. 난 슈퍼맨이 아니라고.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속을 비워내고 토막 내서 부위별로 옮기는 건데… 이건 환경오염이 너무 심하다. 피와 내장과 살점이 흘러간 호수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무엇보다 지나친 환경오염으로 마을에서 길드로 클레임을 넣으면 내 평가만 나빠지잖아.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모험가라는 이미지는 장래에도 좋지 않다.

결국, 차선책을 쓸 수밖에 없구나. 초거대 우파루파를 호수 밖으로 완전히 끌어낸 뒤에 적당한 크기로 해체하는 거다. 이쪽도 환경오염이 생기지만 호수가 오염되는 것보다는 낫다.

다행히 놈이 나를 공격하려고 몸을 더 빼낸 덕분에 작업이 더 쉬워졌다. 우선 놈의 촉수를 모두 끊어냈다. 수레를 만드는데 들어간 촉수를 제외해도 70%나 남은 촉수를 다 잘라내자 421kg이나 나왔다. 머리카락에 해당하는 기관이 400kg이라니. 아무리 판타지 세계라지만 정말 신기한 생물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촉수 여러 개를 하나로 묶어서 강도를 보강해 놓고 두꺼운 통나무 여덟 개를 추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파루파의 머리를 살짝 들어서 강도를 보강한 촉수를 아래쪽으로 통하게 해서 한 바퀴 돌린 뒤에 위에서 묶었다.

새로 만든 통나무들은 입 앞쪽에 일렬로 일정 간격으로 두고 촉수로 간격을 유지하게끔 고정한 뒤에 제일 앞부분에 다시 촉수를 길게 연결해서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머리를 묶은 촉수를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자아. 힘 좀 써볼까!

“으랏차차차차!!!”

우드드드드드득!

온 힘을 다하자 우파루파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이 정도 공간이면 충분하겠네! 한 손으로 머리에 묶어둔 촉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통나무를 묶어둔 촉수를 당긴다. 머리를 들어 올려 생긴 공간으로 통나무가 들어가자 천천히 촉수를 놓았다. 턱이 통나무 위에 올라가고 또 다른 공간이 생겼다. 이제 다시 여기에 촉수를 넣고 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그 과정을 반복해서 모든 통나무를 우파루파의 아래에 집어넣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한 시간. 작업을 시작하고 벌써 3시간이나 지났다.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이 거대한 시체를 가지고 야영을 하게 될지도 몰라.

그건 죽어도 싫어!

“시발!”

튼튼하게 만든 촉수로 시체를 둘둘 감고 통나무와 함께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크하아아아앗!!!!”

우드드득! 쿠루루루루루!

온몸에서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시체가 호수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호수에서 8m 떨어진 곳까지 시체를 옮겼다.

단단하지 않은 땅에 다리가 무릎까지 들어가고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지만, 정확히 68t의 생물을 자력으로 옮겼다는 것에 말로 못 할 성취감이 차올랐다.

그래. 내가 이런 놈을 죽이고 이렇게 시체를 옮기기까지 하고 있구나. 이세계에 강제로 불려와서 유일하게 좋은 일이 이런 괴물들과 실제로 싸워볼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거라도 없으면 우울해 뒈질거야.

어쨌든 이걸로 가장 힘든 일은 끝냈다. 남은 건 저놈을 예쁘게 분리해서 최대한 가볍게 만든 뒤에 도시로 가지고 가는 것뿐. 체력이 제법 소모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쌍각멧돼지의 뿔로 만든 뼈칼과 우파루파의 이빨을 이용해서 놈의 배를 갈랐다. 다른 생물과 다르지 않은 붉은색 피가 흐르고 지독한 냄새가 났다. 꾹 참고 내장을 모조리 꺼냈다.

생각보다 피는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일부러 혈관을 건드리지 않은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피가 적은 생명체다. 심장도 덩치에 비하면 심하게 작아서 이걸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허. 진짜 이런 걸 달고 있는 생물이 있네?”

그건 심장에서 1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거대한 보석이었다. 지름 30cm의 원형 보석은 불길한 붉은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거기에 연결된 신경조직은 심장과 중요 장기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딱 봐도 이 보석이 이 거대한 생명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에너지원이었다.

“설마… 드래곤 하트 같은 건가?”

생긴 건 우파루파지만, 이 세계에선 드래곤이라 불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몬스터 도감에 따르면 드래곤과 용은 이 세계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이다. 내가 아는 드래곤과 용하고는 조금씩 다른 특성이 있지만….

어쨌든 적어도 이 몬스터는 일반적인 상식으론 알 수 없는 몬스터다. 그렇다면 드래곤의 일종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럼 내가 드래곤 슬레이어? 이세계에 오고 이틀 만에 드래곤 슬레이어라니… 쩌는구만.

“이놈이 정말 드래곤일때나 가능한 얘기고. 다른 놈들과는 달리 이런 기관이 있는 걸 보면 특별한 몬스터이긴 하겠지.”

적어도 내가 본 책에서 몬스터의 몸에 마석(이게 마석이 아니면 뭐겠어?) 같은 게 있다는 얘기는 없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고블린이나 코볼트, 쌍각멧돼지도 마석을 가져오라고 했겠지. 이놈이 드래곤이 아니어도 특별한 몬스터인 건 확실하다.

“이건 얼마나 하려나. 역시 마법 같은데 유용하게 사용되겠지? …나도 쓸 수 있으려나.”

마법. 그 감미로운 울림. 이걸 팔면 마법을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전에 확인해 볼 문제가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빨리 돌아갈 생각이나 해야지.

즐거운 생각 덕분인지 작업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18분 만에 내장을 싹 비울 수 있었다. 피가 적은 덕분에 오염도 적어서 뒤처리하는데 드는 시간도 생각보다 적었다.

내장을 잘게 잘라서 호수에서 떨어진 장소에 묻고 생각보다 적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의 피가 흐른 땅을 뒤집어엎은 거로 뒷정리를 끝내고 수레에 무게가 확 줄은 우파루파의 시체를 실었다. 그 뒤에 쌍각멧돼지의 가죽과 뼈를 분리하고 살코기를 가죽으로 감싸서 시체 위에 올렸다.

마무리로 우파루파의 시체와 수레를 촉수로 꽁꽁 묶고 호수의 물로 온몸을 깨끗이 닦은 뒤에야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는데 걸린 시간은 4시간 33분.

…잡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들구만. 다음부터는 전문가에게 맡기자. 이런 건 한 번만 해도 효과가 확실하니까. 두 번이나 쌩쇼를 할 필요는 없지.

이제 아직 해가 지려면 1시간 30분 정도 남았는데… 그때까지 도시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에이, 시발.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안 되면 도시 입구 근처에서 야영이라도 해야지! 냄새 나는 게 싫으면 들여보내 주겠지!”

최대한 낙천적으로 생각하면서 수레를 끌고 출발했다. 아무리 무게를 최대한 줄였다지만, 여전히 톤 단위 무게여서 한걸음 내딛는 것도 제법 힘이 들었다.

평소에 고중량 수련을 해두지 않았으면 이런 방법은 생각도 못 했겠지. 미래를 위해서라지만 편한 길 놔두고 어려운 길을 걷는 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치는 일이다.

육체는 초인이어도 정신까지 초인일 수는 없는 법. 애초에 내가 목표로 하는 인간은 그런 초탈한 인간상이 아니다.

애초에 나 같은 관심병자가 그런 삶을 바랄 리가 없잖아.

이처럼 관심병자의 삶도 힘든 법이다. 능력도 없이 관심만 바라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딨겠나? 내가 비록 관심병자일지언정 그런 비참한 인간은 아니다.

그렇게 지금 행동에 합리성을 부여하면서 숲을 빠져나가자 저 멀리서 이쪽으로 오는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모두가 활과 가죽옷으로 무장하고 날렵한 몸을 가진 일곱 명의 장정들이었다. 마을의 사냥꾼들이겠지.

이제 오는 건가. 느리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고쳐먹었다. 오히려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숲으로 오는 저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저들이 내가 걱정돼서 오겠는가?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을 해야지 마을을 지킬 방법을 강구 할 수 있을 테니 오는 거겠지. 그래서 숲을 잘 알고 잘 달리는 사냥꾼들이 온 걸 테고.

내가 그들을 발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도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커다란 수레를 끄는 사람은 수km 밖에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뭐, 나처럼 표정이 세세하게 보이는 시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 테지만.

사냥꾼들은 하나 같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긴장된 얼굴로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아쉽게도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슈퍼 청각을 가지고 있어도 수km 밖의 대화까지 들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뭐, 저쪽에 와준다면 나도 편하다. 굳이 마을에 들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어지간한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 이상 성문이 닫히기 전에 도시로 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걷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혹시, 의뢰를 받고 오신 모험가님이십니까?”

나보다 열 살은 많을 사냥꾼은 나와 수레에 담긴 내용물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공손하게 물어왔다. 연장자에게 이런 공대를 듣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뭐, 초면인데 연하라는 이유로 반말 까는 것보단 훨씬 낫지만.

여기선 상냥한 모험가 컨셉으로 나갈까.

“네. 쌍각멧돼지를 토벌하러 온 모험가 시그입니다.”

“…그, 그러시군요. 재피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있는 그건…….”

사냥꾼들은 수레에 담긴 시체를 보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야, 자기들이 자주 가는 숲에서 이런 걸 끌고 왔으니 놀랄 수밖에 없겠지.

“쌍각멧돼지를 잡으니까 호수에서 튀어나오더라고요. 아. 혹시 이 지역의 수호신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죠?”

“아닙니다! 이런 걸 수호신으로 모실 리가 없지요!”

사냥꾼들은 기겁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역시 아니었다. 시골에선 강력한 몬스터를 수호신 같은 거로 모시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까지는 아니지만,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이 그럴 리는 없겠지. 전래동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군요. 하긴, 수호신으로 모시기엔 위엄이 없는 외모죠.”

“…위, 위엄이요?”

“얼굴이 조금… 얼빵하게 생겼잖아요?”

“……그, 그렇군요.”

마지 못해 내 말에 동의하면서 시선을 돌리는 사냥꾼들을 보고 속으로 웃음을 참으면서 나는 천역덕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 이름이 뭔가요?”

“아니, 이름도 모르면서 그걸 잡으신 겁니까?!”

“그야 덤벼오는 녀석을 죽이는데 굳이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요.”

정론에 사냥꾼은 멍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아무래도 반사적으로 반박한 것 같은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내 말이 정론이라는 걸 알 테니 동의한 거겠지.

“그래서 이름이 뭔가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마도 머쉬 드래곤인 것 같습니다.”

드래곤 떴다아아아아아아아아!!

혹시나 했는데 정답이었어! 드래곤! 드래곤 슬레이어! 예에에에에에에에!

그런 기쁨을 감추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되물었다.

“…드래곤이요?”

“네. 아종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틀림없이 드래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게 우리 마을 근처에… 그 호수에 있었다니….”

사냥꾼들은 시체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종이라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보통의 판타지 세계와 같이 이 세계에서도 최강의 생물 중 하나이다. 자기들이 사는 작은 마을 정도는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는 괴물이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이 무슨 감정을 느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걸 쌍각멧돼지를 잡으러 온 김에 잡아버린 나에게 느낄 감정도.

양식이 있는 어른이었던 사냥꾼들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모험가님! 쌍각멧돼지 만이 아니라 저런 괴물까지 잡아주시다니…! 당신은 마을의 은인이십니다!”

“아, 네. 뭐. 저도 덤벼와서 잡았을 뿐이니까요. 우연이죠.”

“그래도 덕분에 저희 마을이 무사할 수 있는 겁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후. 역시 감사 인사는 기분이 좋아. 조금 겸연쩍은 감정도 들지만. 그러고 보니 보통 웹소설에서는 여기서 물질적인 보상도 바라던가? 마을을 구해줬으니 말만이 아니라 돈도 내놓으라는 식으로. 무상으로 일을 해준 거나 다름없으니, 돈을 요구하는 게 딱히 나쁜 짓은 아니지만, 나는 싫다. 애초에 하루하루 돈에 쪼들리면서 사는 인생도 아니고, 호구처럼 사는 사람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어, 그러면 나중에 길드에서 조사가 나오면 잘 좀 말해주세요. 그리고 최대한 깨끗하게 쓰긴 했지만, 호수가 오염되었고, 피나 살점 때문에 다른 들짐승이 몰려올 수 있으니 당분간 숲에 들어가는 건 조심하시는 편이 좋겠네요.”

“그,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모험가님이 아니라 용사님이셨군요!”

“아니,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고… 이 정도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죠.”

“그런…!”

사냥꾼들은 감동의 폭풍에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우와. 이런 순박한 사람들 같으니! 대체 세상의 인심이 얼마나 각박하기에 이런 당연한 행동에도 감동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거냐. 이 세계의 평균적인 도덕 수준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뒤에 사냥꾼들은 어떻게든 보상을 하고 싶다고 나를 마을로 데리고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단호하게 거절하고(마을보다 도시에서 자고 싶었고)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에게 사냥꾼들은 열렬한 성원을 보내면서 절이라도 할 기세로 감사 인사를 했다.

하. 우파루파와 싸우는 건 즐거웠고 시체 처리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역시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는 게 제일 즐겁다.

자아, 그러면 드래곤 슬레이어의 귀환이다.

접수원과 길드 마스터의 표정이 정말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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