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4화 드래곤 슬레이어
* * *
쌍각멧돼지의 돌격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1.3초 만에 60km/h까지 가속할 수 있는 몸무게가 1t을 넘을 짐승의 돌격이라니. 운동에너지가 집중되는 면적을 생각하면 같은 속도의 버스에 치이는 수준이다. 뿔에 찔리면 멋진 장식물이 될 테고.
거기다가 아직도 가속하는 걸 봐선 최고 속도는 100km/h를 훌쩍 넘을 거다. 이세계에서 치타는 좃밥이다. 아니, 지구에서도 좃밥이지만.
아니, 그런데 이런 놈이 종종 농촌을 습격하는데 대체 과거에는 어떻게 농경을 한 거야?
조금 전 마을의 목책도 제법 잘 만들었지만, 이런 놈들의 돌격을 막을 수준은 아니다. 지구의 튼튼한 담벼락을 가진 주택도 이놈들이 들이박으면 그날로 철거당할 거다.
물론, 내가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저 돌격을 그대로 받으면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성치 못하겠지만, 애초에 저런 무식한 공격을 그대로 받는 게 어리석은 거다. 나보다 약한 인간의 공격도 되도록 피하는 게 상책인데, 뭔 영광을 얻으려고 맷집자랑을 하냐. 그건 용기가 아니라 객기다.
그래. 이런 무식한 공격은 물처럼 흘리는 게 베스트지.
자세를 낮춘다. 왼손을 아래로, 오른손을 위로. 손등이 땅에 닿기 직전까지 내린 왼손의 앞까지 추악한 몬스터의 턱이 도달하기를 기다린다.
앞서 오는 놈은 예상대로 나를 한입에 삼키려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놈의 턱이 내 왼손에 닿는 순간 내 몸은 물이 되었다.
감괘?? 역류??
힘의 흐름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공격이라도 흘려낼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화경化?의 극의를 탐구했다. 힘을 흘린다는 개념. 유사 이래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번은 생각해볼 이론이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공격을 흘려내기 위해선 초인적인 감각과 생각대로 정밀하게 움직여지는 육체,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두뇌, 그것들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필요한 수련 및 경험.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갖췄다.
그 결과가 지금 내 손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돌격해온 쌍각멧돼지가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하늘을 날았다.
[부, 부오오오오오오!!!!]
놈이 괴성을 지른다. 시발놈이 귀청 떨어지겠네.
저대로 머리부터 떨어져서 죽어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놈이 솟아오른 높이는 고작 5m. 사람이라면 충분히 죽을 수 있는 높이지만 저 두꺼운 놈에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는 높이는 아니다.
그나마 놈이 달려오던 운동에너지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해서 추락속도가 빨라지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56km/h. 이 정도 속도로 땅에 키스해봐야 내장이 조금 상하는 정도겠지.
그래도 타격이 없지는 않으니, 무의미한 공격은 아니다.
그래. 남편이 날아가는 걸 보고 지금이라도 속도를 줄이려는 이 멍청한 멧돼지야. 너도 마찬가지로 날아!
[부아아아아아아!!]
한 마리가 승천하자 한 마리가 추락했다.
콰앙!!
차라리 코끼리가 덤블링을 하는 게 나을 굉음이 터졌다.
물론, 이번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소음에 고통받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진동이 크네? 여기 지면이 좀 약한데? 아래가 비어있나 본데? 공동?
흥미로운 추론을 하면서 먼저 추락한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에겐 뽀삐와 같이 막강한 공격력이 없다. 돌격과 뿔과 이빨만 조심하면 샌드백이나 다름없다.
추하게 날뛰는 놈의 머리로 파고든다. 두 개의 뿔이 위협적으로 날아들었지만, 여유롭게 피하고 놈의 앞에 도달했다.
왼발을 앞으로 딛고, 오른손에 운동에너지를 모으고 추하게 발버둥 치는 놈의 미간에 정권을 내지른다.
진괘?? 뇌격雪?
콰아아앙!
[꿱?!]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뼈가 박살 난다. 핏물이 얼굴에 튀고 살점이 옷에 묻고 뼛조각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흉터도 생기지 않을 작은 상처.
…그래도 조금 기분이 나쁘네. 내 몸에 튀지 않게 하려고 나름대로 조절도 했는데. 이놈의 뼈가 생각보다 두꺼웠다.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2배 정도 단단할 거라 예상하고 갈긴건데, 3배는 단단했다. 이거 깨끗하게 잡으려면 위력을 높여야겠는데?
아니지. 지금은 굳이 맨손을 고집할 이유가 없구나? 마침 딱 좋은 무기가 있잖아?
쾅!
[꾸어어어어어!!!]
그때 딱 좋게 다른 한 마리가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내 손이 이미 죽은 놈의 뿔로 향했다. 코끼리의 상아를 연상케 하는 흰색 뿔. 길이 1.5m, 최대둘레 15cm.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뿔의 끝은 강철도 뚫을 수 있을 것처럼 날카롭다.
그 뿔의 가장 안쪽. 놈의 두개골과 연결된 부분을 손으로 꽉 잡는다. 그리고 발로 시체의 머리를 밟고 그대로 힘껏 뽑아 올린다!
우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튼튼한 투창이 내 손에 생겼다.
그런데 이거… 생선가시도 닮았네?
아아.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 기나긴 모멸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맙다! 이제 창성?? 시그로 돌아갈 때다!
속으로 주접을 떨면서 자세를 잡았다. 사고의 흐림과 실제로 흐르는 시간이 다르기에 두 번째 멧돼지는 이제야 겨우 몸을 완전히 일으키고 있었다.
남편이 죽었다는 걸 아직 모르겠지. 그래. 모르는 채로 죽어라. 내가 짐승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자비다.
“뒈져!”
쐐애애애애애액!
퍽!
[꾸엑?!?!]
메이저리거의 강속구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뿔은 그 주인의 아내를 가차 없이 꿰뚫었다.
일격. 일격에 심장을 꿰뚫었다. 심장의 위치는 남편 놈을 패면서 파악했다. 예상대로 튼튼하고 뾰족한 뿔은 두꺼운 가죽을 뚫고 뼈 사이를 지나 심장을 관통한 것이다. 스트라이크! 데드볼이 안 좋은 곳에 맞아서 타자 아웃!
놈은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부르르 떨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털썩 주저앉았다. 덩치가 큰 만큼 생명력도 강했지만, 심장이 파괴되고 살아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게 왜 사람이 있는 곳에 오냐.”
저 멀리 산에서 새끼나 쳤으면 부부가 쌍으로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지구처럼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살 곳이 줄어드는 곳이 아니라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짐승에겐 동정조차 사치다. 뭐, 설사 그런 사정이 있었어도 사람을 해치는 짐승은 살처분이 답이지만.
“그런데 이거…. 그냥 들고 갈 수는 없겠는데?”
한 마리라면 어깨에 메고 갈 수 있겠지만, 두 마리는 한꺼번에 몸으로 옮길 수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해체작업을 하자니, 고기가 아깝다. 쌍각멧돼지는 고기도 제법 가격이 나오거든.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세 개.
마을에서 커다란 수레를 빌리기.
내가 직접 수레를 제작하기.
지금 당장 도시로 뛰어가서 길드에서 수레를 빌려 오기.
무난한 건 첫 번째 방법이지만, 수레를 빌리는 돈도 돈이지만, 이놈들을 실을 수 있는 수레가 있을지가 의문이다. 길드라면 당연히 있겠지만…. 미리 빌려 올 걸 그랬나? 한 마리라면 들고 올 수 있고, 그쪽이 임팩트가 크다고 생각해서 그냥 온 건데. 접수원이 굳이 시체를 가지고 오라고 한 것도 수레 빌려 가라는 뜻이었지.
“두 번째로 하자.”
짧은 고민 끝에 직접 만들기로 했다. 마침 이놈들이 부러트린 나무들도 있고, 주변에 튼튼한 나무들도 많이 있으니까. 음. 좋아. 이 정도 사이즈면 되겠군.
그때였다.
쿠구구구.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지진? 아니, 그건 아니네.”
갑작스러운 진동에 지진인가 싶었지만, 진동이 일어난 범위가 너무 좁았다. 고작해야 내 근처와 호수가 흔들린 정도다. 이건 지진이 아니라, 땅 밑에서 뭔가 거대한 생물이 움직여서 생긴 진동이었다.
…거대한 생물?
잠깐. 확실히 이 밑에 공동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거대한 생물의 둥지였다고? 이 정도의 진동을 만들 정도의 생물이라면 사이즈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파아아아앙!!
호수가 폭발했다.
폭발 속에서 거대한 생물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그림자가 태양을 삼켰다.
폭포처럼 쏟아진 물을 일부러 맞아서 피와 살점을 씻겨낸 나는 그 생물을 멍하니 올려보았다.
호수 밖으로 나온 몸은 비율을 봤을 때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 길이가 13m나 되었고 높이는 7m에 달했다.
잉어 같은 비늘에 덥힌, 악어의 다리를 10배 정도 확장 시킨 것 같은 두 다리로 땅을 짚고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오만함의 정점에는 수백 개의 촉수가 마치 머리카락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입은 악어처럼 앞으로 툭 튀어나왔지만, 얼굴은 전체적으로 넓적해서 악어보단 양서류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맹금류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눈이 저놈이 맹수임을 증명했다.
내쉬는 호흡은 차가웠고 대기로 전해지는 냄새는 지독했다. 아마존의 늪지에서도 이런 냄새는 맞지 못했다.
… 나는 저런 형태의 생물을 알고 있다.
크기가 비교도 안 되게 차이나고, 잉어 비늘 같은 게 없고, 머리에 달린 촉수의 길이와 개수가 심하게 차이가 나는 점만 제외하면 그 생물하고 똑같았다.
학명은 Ambystoma mexicanum.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름은 우파루파.
“오우. 쉣.”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니, 시발 이건 욕이 나올 수밖에 없지!
막 멧돼지 새끼들 잡아서 기분이 고양된 찰나에 갑자기 거대 생물이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서 그게 우파루파를 닮았다고?! 아니, 시이발. 이게 뭔 지랄이야?
“하, 시발. 말이 안 나오네.”
지난번 뽀삐도 그렇고 저 초거대 우파루파도 그렇고. 뭔, 잡몹을 잡을 때마다 갑자기 보스 같은 놈이 튀어나오는겨. 한 번이면 우연이지만 두 번이나 연속으로 일어나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뭐,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군. 지금 중요한 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저 초거대 우파루파다.
……그래.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 저놈은 이 호수 밑바닥에 굴을 파서 잠을 자고 있었던 거다. 마을 사람들이 저놈의 존재를 몰랐던 걸 봐선 그 기간이 꽤 길었을 거다. 작년 겨울에 몰래 이곳에 와서 동면했을 테지.
그런데 마침 동면에서 깨어날 때쯤에 멧돼지 두 놈이 난동을 부리고 땅을 울리는 충격이 두 번이나 가해진 것이다. 천천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강제로 깨워진 거니, 빡치는 것도 당연하다. 나도 꿀잠 자고 있는데 좃같이 깨우면 빡칠테니까.
…뭐, 사실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그래. 시발. 이런 세계가 아니면 언제 지상에서 저딴 거대생물이랑 맞짱을 떠보겠어? 몸길이만 따져도 흰수염고래에 맞먹는 생물을 지상에서 싸울 수 있는 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와꾸와꾸 스루죠! 라는 개드립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 떨림은 지난번 뽀삐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는 아니다.
그때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 그런 공포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자기객관화를 못 하는 바보들과는 다르다.
지금의 떨림엔 아무런 공포도 없다.
그저 호승심과 거대한 생물을 내 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마음뿐!
“너는 한 대 맞고 튀진 않겠지?”
자세를 잡는다. 저렇게 압도적으로 거대한 생물을 잡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해야 저놈을 맛있게 요리할 수 있을지 각종 레시피가 머릿속에서 조립되었다. …그렇다고 진짜로 먹겠다는 건 아니고.
작전은 완성됐다. 이젠 실행할 뿐이다.
그때 내 머리를 노리고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퍽!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여서 공격을 피하고 그것을 봤다.
예상대로 우파루파의 머리에 잔뜩 있는 촉수 중 하나가 땅을 관통하고 있었다.
채찍처럼 날아든 촉수의 속도는 최대 354km/h. 메이저리거 강속구의 두 배를 넘는 속도다. 화살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총탄보다는 느리다. 거기다가 궤도가 일정하고 준비 자세를 알아보기도 쉽다. 뽀삐와 비교하면 누워서 떡먹기군.
문제가 있다면, 촉수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지.
셰셰셰셰셰셰셰셰셰셰셱!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섹스!
“어이쿠! 성질도 급하셔라!”
수십 개의 촉수가 머리와 심장을 노리고 날아든다. 하지만 명중률은 형편없다. 굳이 피하지 않았어도 조금 전 83개의 촉수 중 36개는 내 몸 근처에도 오지 못했을 거다.
역시 촉수의 뿌리 부분만 조종할 수 있구만? 도중에 궤도를 바꿀 수 있었다면 좀 더 귀찮았겠지만, 이 정도라면 여유지!
그래도 아직은 공격할 타이밍이 아니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촉수의 사정거리를 가늠한다. 현재까지 측정한 거리는 43m. 내 예상으론 60m 근처까지 공격 범위일 거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그리고 예상대로 사정거리는 58m가 끝이었다. 제자리에서 촉수를 마구 쏘아댔지만, 내 코앞까지 밖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것을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보고는 고개를 올려서 우파루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양서류의 표정 따윈 세세하게 알아볼 수 없지만, 지금만큼은 놈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개빡쳤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귀염성 있는 외모와는 달리 흉악하기 짝이 없는 괴성을 지르면서 놈이 몸을 내 쪽으로 쭉 내밀었다. 동시에 이제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의 촉수가 나에게 쇄도했다.
무려 182개!
그중 태반은 내 몸 근처에도 오지 않았지만, 정면으로 쇄도하는 촉수는 빽빽해서 피할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닥이 텅 비었잖아!
순식간에 가슴이 땅에 닿을 정도로 엎드렸다. 수십 개의 촉수는 내 위를 지나갔고, 나는 양팔과 양다리의 힘으로 앞으로 힘차게 내달렸다!
쾅!
폭발적인 가속도로 놈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대다수의 무기를 쏘아낸 우파루파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그래. 너 같은 양서류도 놀라면 눈이 그렇게 변하는 구나?
놈은 다급하게 남은 촉수 중 절반을 쏘았지만, 그중에 내 몸으로 향하는 촉수는 고작 두 개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중구난방 사방으로 퍼졌고, 심지어 서로 꼬여서 엉망이 된 촉수도 있었다. 신경이 뿌리밖에 없어서 생긴 한계였다. 그래서 조금 전 공격도 모든 촉수를 쏘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노리던바.
촉수를 보는 순간 그려졌던 광경 중 하나. 그것이 그림처럼 현실에 구현되었다.
어느새 나는 놈의 머리 앞까지 도달했다.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길게 뻗은 놈의 머리는 내가 주먹을 날리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럼 다음 장면은 뭘까요?
뭐긴 뭐겠어요. 저 재수 없는 눈깔을 박살내는 거지!
진괘?? 뇌격雪?!
퍼억!
[끼에에에에에에엑!!!!!!!]
일격에 왼쪽 눈깔이 박살 난 놈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뇌격은 놈의 눈깔만이 아니라 뇌에까지 타격을 줬을 거다. 하지만 한 발로는 부족하다. 이놈의 머리통 크기를 보면 뇌의 크기도 짐작이 간다. 그걸 단순히 외부의 충격으로 박살 내는 건 지금의 내 스펙으론 무리다.
투경??을 써볼까 생각했지만, 이놈의 두개골을 투과시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 뇌격 한두 발론 부술 수 없는 두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일단, 눈깔 하나 더 부수고 보자.
“으하하하핫! 존나 재밌네에에에에!!!!”
놈이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 나는 촉수 중 하나를 붙잡았다. 당연히 내 몸은 위로 솟구쳤고, 공중에서 자세를 잡아 고통에 날뛰기 직전인 놈의 미간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곧바로 자세를 잡는다.
짧은 순간 보인 놈의 하나 남은 눈동자에 공포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안타깝네. 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이 인간의 시커먼 주먹이라니.
진괘?? 뇌격雪?!
퍽!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이제 더는 빛을 볼 수 없게 된 놈은 스스로 빛을 내려는 것처럼 발광했다.
제아무리 나라도 마구 몸을 흔드는 거대 생물 위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는 없다. 이건 힘이나 기술 이전에 물리법칙의 문제다. 물론, 촉수를 붙잡으면 위에 붙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나는 재빠르게 촉수 하나를 붙잡고 하강했다. 그리고 놈이 날뛰려는 순간 촉수를 놓고 바닥에 착지했다. 날뛰기 시작한 놈은 촉수를 사방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날카로운 촉수가 대지와 호수를 난자했다.
당연히 내게도 촉수가 날아들었지만, 노리고 쏜 공격도 피했는데 이런 중구난방 한 공격을 못 피할까? 뭐, 예상할 수 없는 공격이 더 위험하긴 하지만, 내 날카로운 감각은 놈의 발악을 전부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뇌격 두 발은 눈만이 아니라 놈의 뇌에도 확실하게 데미지를 줬다. 하지만 그걸로 놈이 금세 죽는 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루한 일이지.
편안하게 해주자.
“인류의 신체 능력은 비슷한 체격의 네발짐승과 비교하면 약해빠졌지.”
혼잣말을 하며 쌍각멧돼지의 시체로 걸어간다.
“그래도 인류가 짐승들보다 신체적으로 나은 점이 딱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땀 배출이 쉽고 두 다리로 달리기에 가질 수 있는 압도적인 지구력이고.”
암컷 쌍각멧돼지의 뿔을 뽑는다.
“다른 하나는 같은 유인원 중에서도 압도적인 어깨 힘이야.”
인류가 그 약해빠진 신체 능력으로 결국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원거리 투척 무기를 가장 잘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그것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신체 능력도 없었다면 지배자가 될 수 없었겠지.
처음엔 투창. 그 뒤엔 활. 그 뒤엔 총. …총은 어깨 힘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인간의 신체는 무언가를 던지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당연히 초인인 나는 말할 것도 없다.
자세를 잡는다. 발광하는 놈의 움직임을 예상한다. 어깨에 힘을 준다. 손아귀에 힘을 준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발로 몸을 지탱한다.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을 뒤로 당긴다.
내 몸은 투창을 위해 모든 운동기능을 집중한 하나의 기구가 되었다.
그 기구가 최적의 경로로 무기를 발사했다.
이 일격은 틀림없이 하늘도 꿰뚫을 수 있다.
건괘?? 천추??
하나의 빛살이 공간을 가르고 부드러운 가죽을 뚫고 두꺼운 뼈로 보호되어있는 뇌를 관통했다. 두꺼운 두개골은 목부터 파고 들어온 창을 방어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목에 난 작은 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놈은 조금 전 같은 괴성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흩뿌리면서 비틀거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모든 생명력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쾅!
굉음과 호수의 파문이 싸움의 끝을 알렸다.
남은 건 세 구의 시체 뿐이다.
그리고 그 시체를 어떻게 가지고 돌아가야 할지 이제야 진지하게 걱정되지 시작한 인간.
…야이, 싯팔.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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