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9화 (9/93)

〈 9화 〉 9화 초고속 승급 모험가

* * *

광산으로 돌아온 뒤에 곧바로 코볼트의 귀를 빠르게 회수하면서 올라갔다. 3층을 지키고 있던 광부들이 내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와서 놀란 것 말고는 별다른 일 없이 1층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밖에 나와서 뮬틴에게 코볼트의 귀를 보여주고 구멍 얘기를 하자 화들짝 놀라면서 숙소로 뛰어 들어갔다. 연락용 도구라도 있는 거겠지. 잠시 뒤에 밖에 나온 뮬틴의 얼굴엔 화색이 만연했다.

“정말 고맙네! 자네 덕분에 큰일을 막았어! 자네 정도의 실력자가 아직 새싹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

“오늘 모험가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죠.”

“오늘이 첫날이라고?!”

경악하는 뮬틴을 뒤로 하고 도시로 복귀하기 위해 발을 옮겼다. 가슴이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은 여파로 기운이 쫙 빠졌다. 뜨거워진 금속이 급속도로 식으면 갈라지는 것과 같다. 글래스하트가 아니라 아이언하트다.

복귀 도중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애초에 꽤 큰 도시 주변 길이다. 여기에 몬스터나 산적 같은 게 막 돌아다니면 그게 더 막장이다. 뭐, 길에서 멀리 떨어진 숲이나 산에선 수상한 움직임이 보였지만, 길까지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역시 힘이 조금 빠졌는지 복귀에는 44분이 걸렸다. 그것도 일반적인 속도보단 훨씬 빨랐기에 문지기는 나를 보고 굉장히 놀라워했다. 조금이지만 기분이 나아졌다.

길드로 복귀하자 오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는 접수원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만면에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환대했다.

“어서 오세요. 시그 님.”

“네. 다녀왔습니다.”

역시 광산에서 연락이 왔군. 뮬틴이 연락한 곳도 길드였겠지. 그렇다면 그 광산은 길드 소유구만. 접수원의 겉은 화사하지만, 속은 시커먼 미소가 많은 걸 알려주었다.

“이번 의뢰도 굉장히 빠르게 완수하셨군요.”

“그렇게 어려운 의뢰는 아니었으니까요.”

보너스 스테이지가 아니었다면 좆밥 중의 좆밥이었다. 이런 놈도 못 잡으면 모험가 같은 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고블린과 더불어서 모험가의 자질을 확인할 수 있는 몬스터라고 할까. 이 두 놈만 새싹에 넣은 것만 해도 말이야.

어쨌든 나는 내 능력을 증명했다. 증명하지 못했다면 동방의 촌구석에서 올라온 멍청이의 화려한 실패담이 되었겠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다. 내가 성공담을 쓰는 건 당연하니까. 그 밑에는 이제까지 쌓아 올린 실패와 시행착오의 금자탑이 쌓여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대단한 일을 하신 거예요. 새싹 모험가가 스무 마리 이상의 코볼트를 혼자서 토벌한 건 길드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일부러 부끄러워하면서 말하자 접수원은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냈다. 그래. 이제부터 골수까지 뽑아 먹을 유망주가 순진할수록 아가씨에게는 좋겠죠.

뭐, 본성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도 된다. 멍청이도 아니니 갑자기 선 넘는 요구도 하지 않을 테고. 현명하게 행동하길 바라요. 아가씨. 상부상조합시다.

“후후후. 조만간 아실 거예요. 시그 님이 오늘 해낸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의뢰 두 개 처리한 거로 이런 대접을 받는 것도 좀…. 어, 그럼 일단 정산 좀 부탁드릴게요.”

“네. 물론이죠.”

접수원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코볼트의 귀의 수량을 확인한 뒤 의뢰비와 보상금을 지급했다. 대동화 다섯 개에 소동화 여섯 개, 의뢰비 500링에 보상금 60링으로 560링. 이제 내 재산은 820링이다.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다. 이세계 서민의 하루 수입은 얼마려나.

“그리고 이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신 값입니다.”

“와. 그걸로 이만큼이나 줘요?”

“그만큼 중요한 정보였으니까요. 당연한 보상입니다.

뮬틴에게 얘기해줬던 게 돈으로 돌아왔다. 무려 1,000링! 코볼트 토벌 의뢰비의 두 배다!

…뭐, 중요한 정보긴 하지. 접수원의 반짝거리는 미소를 보니, 그 이상의 의미도 있는 것 같지만.

자아, 그럼 내가 뮬틴에게 해주지 않은 이 정보는 어느 정도의 값을 받으려나? 바로 믿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투의 흔적을 확인하면 사실을 알겠지.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얘기다. 나는 힘순찐을 하는 인간들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그 녀석 좀 많이 위험해 보이는 몬스터였으니까. 최소한 그런 게 출현했다는 경고 정도는 해주는 게 인간의 도리지. 그 뒤는 나도 몰라. 진인사대천명.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 정보라면, 뮬틴 씨에게 말하지 않았던 게 있는데 말이죠.”

“어떤 내용인가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빛을 빛내는 접수원. 그래. 이게 다 댁의 실적이 되겠죠. 유망한 모험가를 발굴하면 그게 접수원의 평가에도 플러스가 되는 거지? 그렇다면 앞으로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라도 아주 중요한 정보를 주지.

나는 내가 싸웠던 뽀삐… 아니, 몬스터의 얘기를 했다.

생김새부터 놈의 공격으로 추정할 수 있는 스펙과 내가 어떻게 싸웠는지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하자 처음에는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던 접수원의 안색이 점점 시퍼렇게 변하더니 종국에는 새하얗게 변했다. 특히 놈이 내 공격을 맞고 곧바로 도망쳤다는 말에는 졸도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 그 몬스터가 그런 곳에…? 그리고 그게 도망을…?”

역시 접수원은 그 몬스터를 알고 있었다. 하긴, 그런 몬스터가 유명하지 않으면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 일이다. 적어도 도시와 그리 멀리 떨어진 장소에 나올 법한 몬스터는 아닐 터.

나는 분위기를 파악했다는 듯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놈을 아는 거죠?”

“………잠시만요.”

접수원은 머리를 한 번 부여잡더니,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새싹 의뢰서를 꺼냈던 것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서랍. 그곳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 접수원은 비장한 얼굴로 그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머뭇거리는 척을 하면서 그 종이를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내가 싸웠던 그놈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의뢰등급 : 백금白

재해등급 : 재앙災?

종족 : 야천랑???

개체명 : 토론트라의 재앙

현상금 : 100,000,000링

상세 : 2년 전 토론트라 자작령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재앙급 몬스터. 도시를 습격해 시민 322명, 병사 154명, 기사 18명을 참살하고 토론트라 자작의 차녀와 삼남까지 참살 후 자작의 본대가 오기 전에 도주. 이후 작은 마을이나 상단을 습격해 두 달 만에 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 국가와 길드 양쪽 모두에서 토벌령이 떨어졌지만, 높은 지능으로 오히려 토벌대를 농락. 막대한 피해를 남기고 도주. 순수한 전투력은 순금 수준으로 추정되지만,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 토벌이 매우 어려워 재앙급으로 판정. 흔적을 발견할 시 절대로 추적하지 말고 길드에 보고할 것.]

놈이 저지른 짓의 밑에는 상세한 초상화가 있었다. 생존자가 그린 걸까? 내가 본 그놈이 맞다. 잘 그렸네.

그런데…

현상금이 1억이라고?!?!?!?

아까워 죽겠네! 젠장! 그 자리에서 반드시 족쳐야 됐는데! 그러면 내 목표까지 금방이었는데! 빌어먹을! 시발! 왜 쓸데없이 지능이 높은 거야!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하. 후회는 여기까지만 하자. 아무리 후회해도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고 다짐할 수밖에 없다. 호승심에 이런 실수를….

그나저나 전적 한 번 화려하시구만. 2년 동안 천 명 이상을 죽이다니. 거기다가 국가와 길드가 토벌대까지 보냈는데 도주해? 단순하게 강한 놈보다 이런 놈이 더욱 위험한 법이다. 나한테 한 대 맞고 바로 튄 것만 봐도 그렇지.

자기보다 강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는 절대로 싸우지 않는 타입. 오래 살 놈이로군. 그래서 재앙인가. 단순히 강한 것보다 지능이 높은 쪽이 사회적으로도 피해가 더 크지.

내가 굳은 얼굴을 하자 접수원은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은밀하게 물었다.

“……맞나요?”

“……틀림없어요. 못 믿으시겠다면 그곳에 조사대를 파견해주세요. 놈의 발자국과 발톱 자국이 남아있으니까.”

담담하게 대답해주면서 놈의 수배서를 다시 건넸다. 접수원의 태도나 목소리를 봐도 이 얘기를 크게 떠버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긴, 이런 몬스터가 근처에 나타났다는 얘기가 통제 없이 퍼지면 큰 혼란이 일어나겠지.

…그놈의 지능을 생각하면 이미 멀리 도망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거참. 피해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뒷맛이 쓰구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스터에게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시그 님도 조사대에 합류하셔야 되는데. 괜찮으시죠?”

접수원은 비장한 각오가 담긴 눈이었다. 이건 두려워하면서도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눈이다. 자주 봤지. 그리고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의 대다수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람 보는 눈도 천재거든.

“네. 그런데 정확한 일자는…?”

“그건 마스터께 보고를 드려야 정해져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이 사실은….”

“당연히 입 다물고 있죠.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광산에도 말하지 않았어요.”

“…정말 잘 해주셨습니다. …후우. 이거 바빠지겠네요.”

접수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평소의 미소로 돌아와선 서랍장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회색의 팔찌를 꺼내 활짝 웃으며 내게 내밀더니 조금 전의 우울한 기색을 싸그리 날려버리며 활짝 웃었다.

오, 벌써?

“축하드립니다! 시그 님! 지금부터 옥석 모험가이십니다!”

접수원의 외침에 길드가 잠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제각기 다른 표정과 목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뭐?! 말도 안 돼! 하루 만에?!”

“아무리 토벌의뢰를 두 개나 해결했어도 말이지.”

“아니, 저 깐깐한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나는 세 번이나 떨어졌는데!”

“뭔가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저 남자. 복장이 이상해. 저 등의 문양은 뭐야?”

“아. 넌 지금 와서 모르겠구나. 동방의 북쪽 부족에서 왔다는데? 오자마자 시험용 의뢰를 두 개나 해결한 놈이야.”

“그럼 옥석 등급이 맞네. 애초에 그런 목적의 의뢰고 그런 목적으로 만든 등급이잖아?”

그 소란은 어떤 여성의 목소리로 진압이 되었다.

슬쩍 보니 붉은색 머리카락의 강인한 인상의 미인이었다. 키는 168cm 정도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졌는데 서 있는 자세부터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운 게 전해졌다. 그런데 무기가 없네. 손을 보호하는 수준이 아닌 건틀릿을 봐선… 격투가인가?

오전에는 없던 사람인데 의뢰를 끝내고 이제 왔나 보군. 그리고 팔찌 색이… 은색? 순은이구만.

그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대머리 남자는 오전에도 봤던 적갈색, 청동이었다. 2등급이나 차이나는 데도 굉장히 친근하게 구네. 모험가가 원래 계급의식이 없는 건지 저 사람이 특이한 건지 아직 모르겠다만.

워낙 짧은 시간 동안 살핀 거라서 그들은 내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 아직은 그편이 낫다. 지금은 한나절 만에 새싹의 굴레를 벗은 걸 기뻐할 때지.

존나 기쁘다. 그래. 시발. 이 맛이지. 이 나이에 언제까지 새싹 소리를 들어? 하루만 더 들었어도 정신건강에 아주 나빴을 거다.

역시 이 접수원은 아주 똑똑하다. 나 같은 천재를 바로 알아보고 베팅했잖아? 시그 코인에 올라탔으니 이제 남은 건 떡상 뿐이지. 접수원. 댁의 투자는 성공했어. 떡상주를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라고.

어쨌든 지금은 순수하게 기뻐하는 편이 좋겠지. 기쁜 건 사실이고.

“에? 네? 아니, 진짜요? 벌써?!”

“시그 님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셨습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오, 오오오오오!!!”

“야아아아아아아!!!”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자 접수원도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가식적인 나와는 달리 진심으로 기뻐하는 미소. 나를 찾아낸 것과 내가 앞으로 쌓아나갈 공적들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될 테니 기뻐하는 게 당연하겠지.

“첫날에 옥석이 된 모험가는 길드 역사에서 손에 꼽힐 정도! 시그 님은 대단한 업적을 세우신 겁니다아아!!!!”

“그럴 수가! 하하하!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덕분이네요!!!”

“아닙니다! 제가 뭘 했나요! 전부 시그 님의 능력입니다!”

“하하하하하!”

“후후후후후!”

우리가 초하이텐션으로 서로를 공치사하자 모험가들이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하지만 나나 접수원이나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오버하는 이유는 재앙급 몬스터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니까. 이신전심. 그녀가 오버하는 순간 나는 그녀의 목적을 깨달았다. 그녀도 내가 알아차린다고 생각하고 과장된 반응을 보인 거겠지.

“시그 님. 본래 이렇게 승급하시는 분들은 마스터와 면담을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마스터가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우셔서, 내일 오후 2시에 면담을 잡으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길드 마스터님이라…. 가슴이 웅장해지는군요.”

“후후.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권위적인 분은 아니시니까요.”

접수원은 생긋 웃으면서 빨리 받아가라는 듯이 연회색 팔찌를 더욱 내밀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팔찌를 받은 뒤에 연녹색 팔찌와 재빨리 바꿔 끼웠다.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와. 잘 어울리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 아가씨 말투 바꾸는 게 참 약삭빠르네. 뭐, 내 능력을 제대로 알아봤다는 점에서 얄밉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사람이 출세하는 법이다. 조직사회에서 출세하는 사람은 본인의 능력이 죄다 씹어 먹을 적어도 뛰어나거나 적당히 능력 있고 눈치도 좋아서 줄을 잘 서는 사람이니까.

“그러면 내일부터는 옥석 모험가로서 활동하는 거죠?”

“정확히는 마스터와의 면담이 있으신 뒤입니다. 그러니 내일 오전에는 의뢰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이 점 명심해주세요.”

“그건 어쩔 수 없죠. 추가로 하실 말씀은?”

“없습니다. 상세한 얘기는 내일 오후에 마스터와 직접 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세한 얘기란 늑대놈 얘기겠지. 종족명이 야천랑이라. 이름 하나는 멋지구만. 내 중2 감성을 자극해.

어쨌든 이제 길드에서 할 일은 없다.

“알겠어요. 그럼 내일 뵙죠.”

“네. 시그 님. 아, 숙소는 정하셨습니까?”

“몇 군데 알아본 곳이 있어요. 혹시 길드에서 운영하는 숙소도 있나요?”

“네. 길드에서 경영하는 숙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모험가분들에게는 시가보다 싸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대신 시설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겠죠.”

“…적자운영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접수원은 시선을 피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뭐, 기대도 안 했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닌데 굳이 생활 수준을 낮출 필요가 없다. 소비를 계획적으로 하라는 건 무조건 아껴 쓰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 몸이 제일 큰 자산이니 관리에 가장 돈을 많이 써야지.

“그럼 저는 제가 알아본 곳으로 가볼게요. 내일 뵙죠.”

“네. 내일 뵙겠습니다.”

접수원과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접수원 외에는 굳이 대화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을 쌩까고 길드를 나섰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다니. 조금 실망이야. 시비를 거는 사람이 한 명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없네. 뭐,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편하다. 우선 제대로 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서점에서 책을 사고 깨끗한 숙소에서 잠이나 자자.

그나저나 거기 붉은 머리의 순은 모험가 아가씨. 그렇게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지 말고 궁금한 게 있으면 말이라도 거시지? 복선이 될지 맥거핀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고?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미리 봐둔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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