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화 새싹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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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뢰서를 가져가자 접수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나도 그런 표정 지을 줄 알았어.
“고블린 토벌이군요. 새싹 등급의 의뢰는 맞지만, 첫 의뢰로 하기에는 부적절하세요.”
웃으면서 단호하게 말하는 접수원에게 나도 미소를 지으면서 답해줬다.
“충분해요. 고블린 같은 건 고향에서도 많이 잡아봤거든요. 낮은 등급에는 잡을 만한 몬스터가 별로 없군요.”
“과연, 토벌경험이 있으시군요. 그래도 최소 여덟마리에요. 동굴 고블린이 아니라 숲 고블린이라 난이도는 상대적으로 낮겠지만, 혼자서는 위험해요.”
토벌경험이 있다는 말에도 접수원은 걱정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말리는 기색도 아니다. 그 시점에서 이 의뢰를 고른 게 정답이었다고 확신했다.
옥석까지 접수원 재량으로 올려줄 수 있다는 말도 그렇고… 일종의 시험이로군? 그럼 조금 더 임팩트를 줘야겠지.
나는 주머니에서 여기 오기 전에 챙겨두었던 조약돌을 꺼냈다. 그걸 보고 접수원은 물론이고 흥미진진하게 이쪽을 보던 모험가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을 때
주먹을 꽉 쥐었다.
콰드드드득!
기분 좋은 소리.
“………!”
“………!”
“………!”
기분 좋은 시선.
이럴 때 확실하게 느낀다.
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라고.
관심종자.
그래! 좀 더 놀라라! 놀라라고! 그저 키가 크고 순진해 보일 뿐이었던 동방인의 파워에 경악해라! 내가 얼마나 잘난 인간인지 똑똑히 봐라! 최고로 HIGH한 기분이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파버리는 퍼포먼스는 흡혈귀가 아니니 불가능하지만,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다. 이세계에 느닷없이 떨어진 뒤로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이 아닐까?
뭐, 관심 받는 건 이쯤 해두자. 힘순찐 놀이는 적당히 해야 재미있지. 컨셉에 먹혀버리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고.
나는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펼쳐서 접수원에게 보여줬다. 거기에는 조약돌이었던 자갈만이 남았다. 접수원의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그 반응에 만족하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이 정도로는 안 될까요?”
“……….”
접수원은 자갈이 된 조약돌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상큼하게 말했다.
“고블린 퇴치 힘내주세요.”
“네. 맡겨만 주세요.”
사람이란 서로 진심으로 얘기를 나누면 통하기 마련이다. 통하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이토록 진솔한 대화를 나눴으니 접수원도 이제 나를 신뢰하겠지. 접수원은 사람이니까.
그래. 외계인外?人도 사람人이지.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몬스터라 불리는 존재는 어떨까?
강한 탐구심과 흥미, 파괴본능을 느끼면서 길드를 나섰다.
뒤통수에 향하는 다양각색의 시선들이 참으로 감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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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서에는 고블린들의 대략적인 수와 출몰장소, 그리고 간략한 무장상태도 적혀 있었다.
고블린들이 목격된 곳은 이 도시, 타라스트의 동쪽 숲이었다. 도시 이름은 번역이 안 되는 걸로 봐선 특별한 뜻은 없는 것 같았다. 영주의 성을 딴 게 아닐까?
다시 의뢰 얘기로 돌아오자면. 의뢰서에 놈들의 생김새나 특성이 적히지 않은 걸로 봐선 이 세계의 사람들이라면, 특히 모험가라면 고블린의 정보는 상식으로 여겨지나 보다. 다른 등급의 의뢰서에는 몬스터의 생김새나 특성이 적힌 게 제법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새… 어휴. 어쨌든 최하위 등급 모험가가 일단은 처리할 수 있는 시점에서 잡몹 확정이다. 그래도 잡몹은 잡몹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인간형의 괴물을 인류 최초로 잡아보는 경험을 앞두고 있다. 감미롭다. 감미로워.
타다다다다다!
나는 지금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목격된 숲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오전 내로 의뢰를 끝내려면 달리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시 안에서 달리는 건 에바라서 나온 뒤에 달렸는데, 도적이 출몰한 남쪽과는 달리 이쪽은 꽤 많은 사람들이 길이나 근처 초원에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하나 같이 입을 쩍 벌렸다.
흐음. 이 정도 속도에 이런 반응이면 평범한 사람들의 신체능력은 지구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
길드에서도 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몇 없었다. 그나마 청동 등급 중에서도 몇몇 만이 평범한 프로 격투기 선수 수준의 힘이 느껴졌다. 최소 강철 이상은 되어야 지구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겠지.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어줄까 했지만,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아서 달리기에 집중했다.
…역시 신체 능력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전이되자마자 점검하기는 했는데, 직접 힘을 써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 세계의 중력은 지구와 똑같다. 대기의 구성물질도 큰 차이가 없다. 자전 속도도 공전 속도도 지구와 비슷하다. 심지어 항성의 크기와 거리도 지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쌍둥이가 아닐까 싶은… 어처구니가 없는 동일성.
기분 나빠.
“…하아. 지금 고민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는 건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이 모든 의문은 머릿속 한구석에 넣어놓고 나중에 단서가 발견될 때만 꺼내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했을 때 고블린들이 목격된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몬스터처럼 보이는 것들을 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쥐뿔도 안 보였다. 하긴, 도시에서 달려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몬스터 같은 게 널려있는 게 이상하지. 게임처럼 마을을 나서자마자 몬스터가 깔려 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그나마 작은 동물이나 곤충은 많이 봤는데, 지구의 생물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확실히 지구의 생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던 게, 동물들의 경우엔 하나 같이 붉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동물들은 대다수가 황안이고, 일부만 적안인 걸 생각하면 명확한 차이점이다. 대체 어떤 진화과정을 거쳤기에 붉은색 눈동자를 가지게 된 걸까?
이것도 연구해볼 만한 사항이다. 탐구욕이 솟아오르는군!
아, 곤충의 경우엔 자세히 살피지 않았지만 징그러운 건 지구와 똑같았다. 나는 곤충이 싫어. 벌레는 특히 더더욱 싫고!
…생각해보니 판타지 세계이니 대형곤충몬스터 같은 게 있겠구나. 대형 거미는 100% 있겠지. 시발. 그런 의뢰는 반드시 피해야겠다. 존나 싫다. 세스코 출장 안 오나.
“식물은… 역시 겉보기로는 큰 차이가 없네. 하긴, 중력도 같고 대기도 비슷하고 기후도 비슷하다면 비슷한 생물들이 생기기 마련이겠지. 수렴진화란… 다윈 선생은 대단하단 말이야.”
선구자시라니까. 외계에서도 적용되는 과학이론 아닌가. 진화를 부정하는 것들은 뇌에 구멍이 뚫린 게 틀림없다.
그런데 신적인 존재가 있는 세상에서 진화론은 얼마나 통할까? 진화를 결정하는 요인이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자의식이 있는 거로 추정되는 초월적인 존재까지 추가된다면?
이것도 고찰해볼 만하다. ???己?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숲을 탐색했다. 발자국을 찾아볼까 했는데, 고블린의 발자국을 정확히 모르는 이상 큰 의미는 없는 짓이다. 그래도 고블린이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면 흔적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겠지.
그리고 예상대로 흔적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나뭇가지가 꺾인 흔적과 수풀에 남은 흔적을 통해 초등학생 크기의 생물 여럿이 돌아다닌 길을 찾아낸 것이다. 도시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어린애들이 몰려다닐 가능성은 낮으니(심지어 몬스터가 발견된 장소에) 고블린의 흔적일 확률이 높다.
자아, 그럼 이 세계의 고블린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습성은? 호기심을 계속 키워나가면서 흔적을 따라가자 생물의 기척이 느껴졌다.
소리를 최대한 줄여서 기척이 느껴진 쪽으로 다가갈수록 기척은 점점 커졌고 이윽고 소음으로 변했다. 기괴한 소리를 내는 생물이 여럿 있다. 번역 치트가 작동하지 않는 거로 봐선 효과범주가 아니거나 언어가 아닌 것. 둘 중 하나겠지.
최대한 주변을 경계하면서 좀 더 나아가자 이윽고 소음의 정체가 나무 사이로 보였다.
그건 정말 전형적인 고블린의 모습이었다.
“키엑, 키엑, 크르르”
“캬아아아, 키우오오오,”
키는 가장 큰 놈도 140cm를 넘지 않는다. 연녹색 피부에 매부리코, 귀는 길고 대머리다. 체격은 작지만, 삼각근은 도드라졌고 배는 불룩 튀어나왔다. 다리는 짧고 상체가 길며 발가락과 손가락은 각각 4개씩이다. 커다란 입안에는 지저분한 이빨이 불규칙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매우 추하고 불쾌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음.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GB 쪽 고블린과 비슷하게 생겼네? 일본 야겜에 나오는 고블린의 스테레오타입이다.
뭐, 지구에서 고블린은 상상의 괴물이다 보니 나오는 작품에 따라 생김새나 성향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스테레오타입이라면 스테레오타입이지.
무장은… 돌도끼에 나무 곤봉인가. 그래도 동물 가죽이나 식물을 엮은 옷을 입은 걸 보면 의복개념은 있네. 덜렁거리는 성기를 안 봐도 되는 건 다행이군.
그렇게 추악한 괴물들의 수는 열두 마리. 의뢰서보다 네 마리 많지만, 어디까지나 최소치였으니 허용범위다. 놈들은 다섯 마리씩 두 그룹으로 바닥에 앉아있었고 나머지 두 마리는 뭔지 모를 고기를 굽고 있었다.
…설마, 사람 고기는 아니겠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당장은 확인할 수 없다. 설사, 사람이라고 해도 이미 먹히고 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유품 회수? 가다가 보이면 묻어주겠지만, 아니라면 굳이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놈들의 무장수준이나 겉보기 전투력은 얼추 확인했다. 예상외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겠지.
보여 봐라. 이세계 몬스터의 전투력이라는 것을!
부스럭.
“키륵?!”
“키에에엑!”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놈들에게 다가가자 예민한 놈들이 내 쪽을 바라보며 경계했다. 그걸 시발점으로 모든 고블린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고기를 굽던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반응 좋군. 멍청하진 않아. 사냥꾼의 기본이 되어있다. 야생에서 동물이나 사람을 사냥하면서 사는 몬스터답다.
그래도 내 상대는 아니야.
나는 단번에 뛰쳐나갔다.
“키륵?!”
가장 가까이에 있던 녀석은 순식간에 가까워진 나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지만, 그게 놈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다. 내 수도가 두개골을 쪼개버릴 때까지 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콰직!
뼈가 손쉽게 박살 나고 뇌가 뭉개지는 감촉이 전해졌다. 두고 볼 것도 없는 즉사. 생각보다 뼈의 강도가 약하다. 인간보다도 약하고 개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강도다.
아, 그나저나 이게 인간형 생물을 죽인 첫경험이지? …별로 느껴지는 건 없네. 이놈들 생긴 게 이런 것도 있지만, 게임에서 워낙 많이 죽여 본 고블린이라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곧바로 옆에 있던 다른 고블린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번에도 간단히 두개골이 박살 나면서 뇌도 짓뭉개졌다. 조용히 하세요!
그때까지 고블린 놈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내가 워낙 빠르게 급습한 것도 있지만, 동족 두 마리가 너무나도 쉽게 죽어서 뇌정지가 온 거겠지. 그럼 이 사이에 좀 더 수를 줄여볼까?
다른 한 놈의 배를 걷어차자 내장이 짓 뭉개지고 척추가 박살 나면서 죽었다. 다른 한 놈의 머리를 걷어차자 목뼈가 부러져서 머리가 덜렁거렸다. 다른 한 놈의 가슴을 걷어차자 갈비뼈가 전부 부러져서 함몰되었다. 다른 한 놈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목뼈가 뇌를 뚫고 올라왔다.
여섯 마리를 순식간에 죽였다. 두 마리는 반항을 해보려고 했지만, 움직이기도 전에 작살을 내줬다. 그렇게 반이 줄어들자 다른 고블린 놈들도 이제야 제대로 된 반응을 보였다.
“키에에에엑!”
“캬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복수심도 배짱도 없냐?”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데도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후려치면서 느낀 건데 이놈들은 겉보기 체형처럼 남자 초등학생 수준의 근력밖에 없었다.
남자 초등학생의 근력이라고 하면 우습게 보이지만, 조카가 있는 사람들은 알 거다. 이놈들의 전력 태클이나 앙증맞은 펀치는 단련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충분히 아픈 위력이다. 여기에 무기까지 든다면 사람을 살상하기에는 충분하지.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단련되지 않은 일반인 기준이다. 프로 격투기 선수라면 평범한 초등학생이 총이라도 들지 않는 이상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제압이 아닌 살해라면 더욱 쉽지.
그렇다면 나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도망치는 놈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저것들은 퇴치 의뢰가 내려온 해수다. 동네 밭을 망치던 고라니 새끼들을 끝까지 추격해서 목 졸라 죽였던 것처럼, 멧돼지를 두들겨 패 죽였던 것처럼 전부 죽여야 한다.
다리에 힘을 주고 한걸음 내딛자 곧바로 고블린의 뒤통수에 닿을 수 있었다. 수도로 두개골을 쪼갠 다음에 곧바로 옆에 있는 놈의 목을 쳤다. 목이 덜렁거리는 놈의 머리를 잡고 좀 더 앞서가던 고블린에게 집어 던졌다.
체중 37kg의 투척 무기는 동족의 두개골을 훌륭하게 분쇄했다. 이걸로 아홉. 남은 건 셋. 투척 무기로 사용한 고블린의 등을 밟고 뛰어올라 날아 차기로 열 마리째의 뒤통수를 날린다. 이제 남은 건 두 마리. 고기를 굽던 녀석들이다.
“멀리도 갔다. 멀리도 갔어.”
모여 있던 열 마리와 떨어져 있던 탓인지 놈들은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현재는 30m정도. 숲속에서 이 정도면 따라잡기 힘들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적용 안 되는 얘기지.
숲은 익숙하다. 숲의 사냥도 익숙하다. 아프리카와 아마존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물며 초등학생 수준의 이족보행 생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피식 웃고 놈들의 뒤를 따라갔다. 놈들은 영리하게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한 마리라도 살아남기 위함일까? 무의미한 발버둥이다. 우선 왼쪽부터 잡자. 어차피 전부 잡을 거니 누굴 먼저 잡던 의미는 없지만.
왼쪽으로 도망친 놈은 평범하게 따라가서 목을 분질렀다.
오른쪽으로 도망친 놈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서 머리를 몸통에 박아줬다.
열두 마리의 고블린을 처치하자 태양이 중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지구와 큰 차이가 없을 테니 12시 10분 정도인가. 이 정도라면 점심 먹고 바로 다음 의뢰로 넘어가도 될 것 같다.
토벌을 증명하기 위해선 귀를 잘라가야한다.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방법이다. 귀라면 죽이지 않고는 획득하기 어려운 부위고 부피도 그리 크지 않으면서 피도 덜 흐른다. 머리를 잘라가는 것보다는 훨씬 위생적이고 노동력의 소모도 적다. 그래도 기분이 좋진 않아. 닭 모가지를 잘랐을 때가 생각 난다.
“…하아. 다들 괜찮으시려나.”
군대에 있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부모님이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우울해질 수도 있구나. 빌어먹을.
…우울한 생각은 그만하자.
이 모든 울분을 언젠가는 풀 날이 올 테니까.
고블린 놈들의 옷과 넝쿨을 이용해 보자기를 만들어서 24개의 귀를 전부 넣었다. 귀를 들고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묘한 기분이다. 멧돼지 시체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꽤 재미있었는데.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모험가로 살아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어쨌든 이만한 수의 고블린을 잡아가면 승급에 큰 영향을 줄 거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자.
나는 역겨운 포대를 메고 도시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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