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2화 (2/93)

〈 2화 〉 2화 느닷없이

* * *

“오. 도시잖아?”

길을 따라 걷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덕 아래의 도시는 구글에 판타지 도시라고 치면 나오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에 석조 건물들이 즐비하고 도시 한 가운데에는 쓸데없이 거대한 탑이 세워져 있는 그런 도시 말이다.

눈어림으로 보니 면적은 대충 서울대 수준이었다.

작다고 느낄지 모르는데, 서울대 총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절대로 작다고 못할 거다.

그야, 현대의 도시들에 비하면 확실히 작지. 그러나 판타지 세계의 도시 치고는 제법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직접 본 판타지 도시는 여기가 처음이지만!

“말이 통하려나 모르겠네.”

나는 9개 국어가 가능한 초절토킹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이세계까지 먹히리란 보장은 없다.

번역 치트 같은 게 있으면 편하겠지만……

야이, 싯팔.

“될 대로 되라지.”

이럴 땐 부딪치고 보는 게 좋다.

문제가 생기면 적절한 판단에 의거한 임기응변능력으로 해결하면 된다. 동서고금의 완벽한 문제 해결 방법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발견한 것에 조금이지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언덕에서 도시 안을 봤을 때 확실히 인간으로 보이는 형체들이 보인 덕분이다. 녹색괴물이나 눈깔이 존나 큰 회색 괴물들이 문명을 이룬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래. 이게 왕도지. 인간이 아닌 괴물들만 있는 세계에 전이 하는 이세계물은 인기가 없다고. 쓰기도 존나 어렵고. 그리고 내 마음을 좀 더 가볍게 해준 것은 이세계의 문명이 그렇게까지 낙후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도시에 깨끗한 냇물이 흐르는 것부터가 평범한 일이 아니다. 건물도 낡아 보이는 건 별로 없었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로등으로 보이는 것들도 많이 보였다.

도로는 전부 돌로 포장이 되어있었고, 적어도 길가에 똥이 굴러다니지는 않았다. 이 정도로 위생상태가 좋다는 것만으로도 내 기분을 좋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른 건 참아도 더러운 건 못 참아.

그렇다고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니고, 군대도 멀쩡히 갖다온 만큼 험악한 환경도 충분히 견디지만, 일상생활이 더러운 건 결이 다른 문제다.

……어쩌면 이 세계에 뼈를 묻을 지도 모르니까.

야이, 싯팔.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 …그래. 이건 어찌 보면 인류 최초로 외계인들과 만나는 거잖아? 와, 나사도 못한 걸 내가 먼저 하네? 응애.”

헛소리를 하면서 흥겨운 발걸음으로 도시로 향했다. 놀랍게도 도시로 가는 동안 사람 한 명을 못 만났다.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인데도 마차도 통행인도 없었다.

단순히 우연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세계의 사람을 눈앞에서 본 것은 도시 앞까지 도착한 후였다.

성문을 지키고 있던 전형적인 은색의 판타지 경비병 갑옷을 입은 두 명의 문지기들이 내가 처음으로 직접 본 외계인들이었다.

그들은 지구의 인간과 겉보기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구인과 유전적으로 100%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수렴진화의 결과 겉보기나, 내용물만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건 DNA 검사를 해봐야 아는 문제지만… 뭐,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다.

나는 생물학에도 조예가 있지만, 그렇게까지 깊은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토착생물을 해부하거나 하는 사이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세계인들의 외모는 지구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인종을 비교하면 게르만인과 비슷한 외형.

병사들의 머리카락은 칙칙한 금색과 갈색이었고 눈동자는 푸른색과 녹색이었다.

흔한 배합이다. 흔하지 않은 게 있다면 한 명이 여자였다는 점일까.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근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이 병사가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니다.

나의 하이퍼아이로 봤을 때 키는 152cm에 체중은 40kg을 조금 넘을 정도였다. 옆에 있는 남자 병사가 169cm에 체중은 65kg정도로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들고 있는 2m 짜리 창이 너무 길어 보인다.

뭐, 여기는 판타지 세상이니 여성의 근력이 남성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도 이상할 건 없다. 외형은 지구인과 비슷해도 어디까지나 외계생물이니까.

그게 아니면 마력이라든가, 기라든가 신성력 같은 신비한 힘이 작용한 결과 일 수도 있고.

마력. 기. 신성력.

마법. 무공. 성법.

……하, 이건 시발. 존나 기대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않고 병사들 앞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긴장된 표정이었다.

어째서? 내 모습의 어디에 긴장할 부분이 있을까? 그게 아니면 내가 온 방향에 문제가 있나? 이쪽 길에 마차는 물론이고 통행인이 한 명도 없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언어다.

말이 통할까?

“정지.”

남자병사의 냉담한 목소리를 듣고 나는 환희와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통한다! 제대로 들려! 만세!

시발! 개좆같네!

상반된 감정이지만 양쪽 다 진심이다.

내 울트라하이퍼슈퍼두뇌와 초절언어능력이라면 이세계의 언어를 마스터하는데 길어도 한 달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한 달 동안 생길 고생을 생각하면 번역 치­트는 상당히 편리하고 이득이 많다.

그런데

이 번역 치­트는 대체 누가 준 거지?

그걸 생각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열기를 품은 태양이.

나는 온힘을 다해서 그 태양을 무저갱 속으로 처박았다.

아직… 아직은 아니다.

명확해지기 전까지… 내 적이 누군지 명확해지기 전까지 이 태양은 무저갱 속에서 그 크기를 점차 키워나가야 했다.

그래야지만 내 원수를 불태울 수 있을 테니까.

……뭐,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나를 경계하고 있는 병사들의 긴장을 푸는 거다.

즐거운 이세계 생활의 스타트다!

“안녕하세요.”

“……….”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두 사람의 인상이 조금 풀렸다.

15년간의 사회생활로 단련된 내 영업용 스마일은 사람의 경계심을 50% 감소시키고 호감도를 50%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미연시라면 클리어특전으로나 받을 법한 사기 스킬! CG회수 특화기술이지. 미연시는 안 해봐서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인상이란 첫인상이 절반은 차지하는 법이다. 처음에 좋은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유리해진다.

“반갑소.”

남자병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긴장감은 남아있었다. 단순히 처음 보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여행자시오?”

“네.”

“흐음. 보아하니 동방 출신인 것 같은데…. 특이한 복장이군.”

병사는 내 외형과 복장을 살펴보고 그리 말했다.

과연, 동방인가. 여기도 그런가? 그런데 특이한 옷이라니. 내 패션센스에 불만 있나? 이거 겁나 비싼 옷인데. 이 도시를 다 팔아도 못살걸?

나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래서 이곳 사정은 잘 모르겠더군요. 혹시 특별히 주의할 게 있으면 알려주시겠습니까?”

“다른 곳과 다를 게 없지. 말썽만 일으키지 않으면 되네.”

다행히 독특한 풍습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동방인이라고 딱히 차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이들이 편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문지기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들 사회의 편견을 가장 알기 쉬운 직종이다.

나처럼 검은머리의 동방인(외계인이지만)이 편견의 대상이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반응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궁금했던 걸 하나 더 물어봤다.

“그런데 이쪽 길에는 영 사람들이 없더군요.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응? 자네 이쪽 길로 계속 온 게 아닌가?”

역시 이쪽 길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보다.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진짜 무슨 문제가 있었나 보군요? 저는 도중에 산을 넘어 오는 바람에….”

“아. 그쪽 길로 넘어왔으면 모를 수도 있군.”

멋대로 납득한 병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쪽에 도적들이 출몰하는 바람에 당분간 통행금지령이 떨어졌거든.”

“그런! 큰일이군요!”

“그렇지. 그래도 걱정하지 말게. 병사들과 모험가들이 조만간 파견될 거니까. 금방 토벌될 거야.”

모험가!

역시! 그래! 판타지 세계라면 응당 모험가가 있어야지!

좋아. 이걸로 귀한방법을 찾는 게 더욱 수월해지겠군. 모험가라는 직종이 없었으면, 탐색이 꽤 힘들었을 테니까.

이걸로 여기 병사에게 얻을 정보는 다 얻었다. 남은 건 판타지 세계의 도시에 입성하는 것뿐이다.

“그럼 다행이네요. 산을 넘어오길 잘했어요.”

“자네도 꽤 한가락 하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토벌대에 참가 신청을 넣어보는 게 어떤가?”

병사는 내 체격과 복장을 보고 대놓고 권유해왔다.

그야 190cm의 키에 크루저급 체격의 인간을 약골로 보긴 힘들겠지. 의복이 이 세계 기준으로 독특하겠지만, 눈이 달려 있다면 딱 봐도 좋은 재질에 튼튼하다는 걸 알 테고.

유일한 단점은 내가 맨손이라는 거지만… 여기가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라면 맨손으로 몬스터나 도적을 때려잡는 인간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몬스터나 마수 같은 거 존재하려나? 뭐, 이런 존재가 상식이라면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

이건 모험가 길드에 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그렇게 궁금증을 풀은 뒤에 나는 병사들의 미소를 받으며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받았다.

처음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

이게 첫인상의 효과다.

그들이 날 경계했던 건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남쪽에서 올라온 사람이어서다. 도적은 아니어도 수상하다 여길 만하지. 하지만 그 정도 의심은 내 선량한 미소와 조리 있는 말투, 그리고 그럴 듯한 설정으로 녹여낼 수 있다.

나름대로 커 보이는 도시의 문지기가 이 정도라면 의사소통으로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은 낮겠군.

그리고 자신의 놀라운 적응력에 감탄했다.

역시 나는 개쩔어.

지구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도 나는 잘 해나갈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판타지 세계 도시의 기념비적인 첫 입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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