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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256화 (256/270)

〈 256화 〉 256화

* * *

“어느 정도 차도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이제 한번 다리를 움직여 보실래요?”

“하아…하아­…”

“리아 씨?”

“아흐…네, 네에…움, 움직여 볼게요.”

폭풍 같던 민준의 다리 마사지가 드디어 끝났다.

리아는 처음 맛보는 묘한 기분에 넋 놓고 휘둘리다가, 민준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발가락 끝부터 힘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움직여 보세요.”

“네. 민준 님…하아…하아…”

여전히 머리가 멍하기는 했지만 진지하기 그지없는 민준의 태도에 리아도 점차 까먹고 있던 마사지의 목적을 다시 깨달아갔다.

리아는 다리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땀이 삐질 날 정도로 열심히 힘을 주자 리아의 발가락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꿈틀꿈틀­.

“어, 어?”

“움직이나요?”

“네, 네! 움직여요! 발, 발가락이 꿈틀꿈틀해요!”

“계속해보세요. 한 번 신경이 돌아왔을 때 최대한 재활을 해놔야 합니다.”

“네! 민준 님!! 으하…끄윽…”

리아가 힘겹게 숨을 뱉어대면서 열심히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민준은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리아의 다리를 가리고 있는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무릎을 한번 굽혀보세요.”

“네! 민준 님!”

민준은 리아의 무릎 근처에 손을 가져가서, 리아의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주기를 반복했다.

민준이 그렇게 반복 동작으로 재활을 도와주자, 리아는 빠르게 무릎을 어떻게 쓰는 건지 깨달아갔다.

“리아 씨가 한 번 스스로 해보실래요?”

“하아아…네! 민준 님! 제, 제가 한번 해볼게요! 끄아, 끄응…!”

자신감을 얻은 리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구부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다.

민준이 손으로 도와줄 때처럼 쉽게 구부릴 수는 없었지만, 리아는 전신이 땀범벅이 될 정도로 노력한 끝에 무릎을 30도 정도 구부릴 수 있었다.

“된, 된다! 무, 무릎이…! 무릎이 구부려져요!! 꺄아­! 민, 민준 님!!”

“하하, 리아 씨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죠.”

“아니에요! 다 민준 님 덕분에…! 아, 어떻게…! 저, 저도 이제 걸을 수 있는 건가요? 정말로요?”

“그럼요. 제가 꾸준히 도와드리기만 하면 분명히 걸으실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리아 씨의 예쁜 두 다리로 당당하게.”

“아, 아아…! 민, 민준 님…!”

끝없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리아가 민준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흐윽, 저 정말로…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꿈도 꾸지 않았는데…흐윽, 하아아…영원히 다리를 못 쓸 줄 알았는데…”

“진정하세요, 리아 씨. 저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아, 아니요…! 민준 님이 저를 도와주셔야 할 이유는 없었어요. 민준 님이랑 저랑은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인걸요. 그런데 이렇게 흔쾌히 저를 치료해주셨잖아요. 아, 이 은혜를 어떻게…대체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 제발 알려주세요. 민준 님.”

리아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방언 터진 듯이 말을 뱉어댔다. 민준은 곤란하다는 듯이 머뭇거리다가, 이내 리아의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리아 씨가 착하게 살아와서 하늘에서 복을 내려 주신 거겠죠. 제 덕이 아니라, 전부 리아 씨가 올바른 길을 걸어온 덕분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네요.”

신의 인도를 따라 한국으로 왔던 리아에게 민준의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준에게 입은 은혜가 당연해지거나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 그럼 민준 님은 하늘에서 저를 고쳐주기 위해 내려온 천사님인가요?”

리아의 말은 조금 뜬금없었지만, 그 속에서 리아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리아의 말을 적당히 받아주었다.

“음. 천사처럼 착하진 않지만…그래도 리아 씨를 고쳐줄 수 있는 건 맞네요.”

“아, 아아­, 감사합니다. 흐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아…끄읍, 흡…”

리아는 민준의 몸을 끌어안고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로의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빈틈없이 맞붙어 있어서, 리아의 몸에서 풍겨오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민준의 코를 자꾸만 자극했다.

황인이나 백인과는 확연히 다른 향이었다. 마치 향이 강한 향수를 뿌린 것처럼 아주 진하고 중독적이었다.

동양인이 뿌려대는 페로몬이 1 정도라면 리아가 풍겨대는 페로몬은 10에 육박했다. 살결에서 풍겨오는 체취만 맡아도 전립선이 근질거렸다.

민준은 이대로 가다간 발기한 자지를 들킬 것 같아서 딱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리아를 살며시 떼어냈다.

“흠흠. 리아 씨. 죄송하지만 저도 여자친구가 있어서…”

“아, 아읏…! 내, 내가 무슨 짓을…! 죄, 죄송해요…! 너무 흥분해서 제가 그만 은인께 결례를…정말 죄송해요…!”

민준이 조심스레 몸을 밀어내자 번뜩 정신을 차린 리아가 몇 번이고 민준에게 진중한 사과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어쩐지 민준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면서 리아의 시선을 자꾸 피할 뿐이었다.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민준의 표정에 잔뜩 초조해진 리아는,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얼굴로 민준에게 물었다.

“저, 저…민준 님.”

“네, 리아 씨.”

“혹, 혹시 제가 민준 님에게 또 다른 실수를 한 게 있는지…그, 그랬다면 정말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분명 결혼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다리 보여주면…결혼해야 한다고…”

“아…!”

끼기긱­.

마치 목각인형처럼 리아의 목이 딱딱하게 내려갔다.

어느샌가 덮고 있던 이불이 싹 벗겨져 있었다. 리아는 훤히 드러난 자신의 매끈한 다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머리가 새하얗게 질려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리아의 눈동자와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심지어 허벅다리 사이에는 애액이 한가득 고여있었고, 흑설탕 같은 다리 색과 대비되는 순백의 면 팬티는 팬티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고여있는 애액에서 올라오는 비릿하고 시큼한 향이 코를 싹 스치자, 리아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보, 보셨나요? 제, 제, 제…저의 다리?”

“아니요, 못 봤습니다.”

“정, 정말요? 결, 결혼한다고 하셨잖아요. 저, 저랑 결혼…한다고…제 다, 다리 보셨잖아요. 팬, 팬티만 입고 있는데…팬, 팬티도 다 젖었는데…”

완전히 패닉에 빠진 리아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무슨 내 다리 내놔 귀신도 아니고, 집요하게 다리의 관람 여부를 물어오는 리아의 모습은 꽤나 오싹했다. 한번 놀려볼까 싶던 마음도 싹 날아가 버렸다.

민준은 지금까지 중 가장 진지하게 대답했다.

“전혀 못 봤습니다. 이불이 흘러내린 게 시야에 걸려서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진정하세요, 리아 씨.”

“정, 정말로요? 정말로 제 다리 안 보셨어요?”

“네. 말했잖아요. 여자친구 있다고. 저는 여자친구를 두고 다른 여자 다리를 훔쳐보는, 그런 바람둥이 아닙니다.”

“아, 아니 그런 말은 아니었는데…! 죄, 죄송해요. 제, 제가 또 괜한 말을…”

“괜찮으니까 어서 이불 덮으세요. 저는 눈 감고 있을게요.”

“아…!”

민준의 말에 리아가 허겁지겁 이불을 다리 끝까지 끌어올렸다.

“이, 이제 됐어요. 눈 뜨셔도 돼요. 민준 님.”

“네, 리아 씨. 이제 좀 진정되셨어요?”

“네, 네. 정말 죄송해요. 제가 너무 당황해서…”

리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이 민준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데, 자꾸만 실수하는 바람에 현재 리아의 마음은 무척이나 심란했다.

아니, 사실은 그런 것보다 자꾸만 민준이 강조하는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싱숭생숭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여자친구에게 환히 웃어주는 민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심장이 지끈 아파져 왔다.

리아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정에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럼 이제 저희 병원으로 같이 갑시다. 리아 씨.”

“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절 여기에 가둬두려고 할 텐데…”

“괜찮아요. 이미 다 해결했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그리고 가지고 온 짐 있으면 전부 챙기세요. 앞으로는 저희 병원 VIP 병동에서 지내시면 되니까요.”

“아, 아니요…! 민준 님에게 그렇게까지 큰 민폐를 끼치기는 싫어요. VIP 병동이라니…저, 저한테는 너, 너무 과해요.”

리아는 꿈속에서 MJ 치료센터를 몇 번이고 봤기 때문에, 그곳이 얼마나 호화로운 곳인지 알고 있었다.

중동에 있는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7성급 호텔보다 훨씬 더 럭셔리했고, 규모도 비교가 안 되게 컸다.

이미 평생을 헌신해도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입었는데, 더 이상 민준에게 폐를 끼칠 순 없었다.

“아니요. 리아 씨. 제가 이사장이라서, 누가 VIP인지는 제가 정합니다. 저는 리아 씨를 꼭 VIP 병동에 모시고 싶군요.”

“왜, 왜죠? 저, 저는 민준 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정말 아무것도요. 그런데 저를 왜, 왜 이렇게 챙겨주시는 건지…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리아가 풀이 다 죽은 목소리로 우울하게 말했다. 민준이 원한다면 몸이라도 바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여자친구마저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몸이라도 바치겠다고 애걸복걸해봤자, 그건 민폐일 뿐이었다.

민준은 이미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어서, 하찮은 리아 아즈람 따위가 더 채워줄 게 없었다. 그래서 서글펐다.

“리아 씨. 사실은 저도 요즘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이, 이상한 꿈이요?”

“네. 들어본 적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도와달라고, 길을 알려달라고 제게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흐느꼈습니다. 꿈에서 깨면 가슴이 아파져 올 정도로 아주 간절하게 말이죠.”

“아…”

“어제는 특히 이상했습니다. 이 호텔과 리아 씨가 머무는 방의 호수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급히 찾아왔죠. 아마도 리아 씨와 저는…어떤 특별한 운명으로 묶여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리아 씨 입장에서는 완전히 정신 나간,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시겠지만…”

“아, 아니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운, 운명은 있는걸요. 네, 분명히 있어요! 제가 신에게 올린 기도를 민준 님께서 들으셨는데, 어떻게 그걸 운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민준 씨는 아마…아마도…!”

중동 지역에서 무수히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 신화에 따르면 예언자는 선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선지자는 신의 자식이자 대리인으로서, 신을 대리해 지상에 내려와 지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였다.

민준의 말을 들으며, 리아는 민준이 선지자라는 걸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흠흠.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리아 씨. 또 이불이 벗겨질 것 같군요.”

“아…! 네. 네. 아, 아으, 죄, 죄송해요…하지만…민, 민준 씨는 분명히…”

“정말 중요한 얘기라면, 남은 얘기는 차로 이동하면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곳의 시설은 영 믿음이 안 가네요. 도청한다거나 몰래 방안을 녹화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 네, 네. 그럼요. 제가 또 너무 흥분해서 그, 그런 생각은 못 했네요.”

“그럼 어서 준비해주세요. 리아 씨. 치료센터로 모셔다드릴게요.”

“네. 정말 감사해요. 민준 님!”

****

치료센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리아는 민준에게 선지자에 대해 알려주었다.

성경책에 나오는 메시아와 똑같은 개념이라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리아는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가며 적극적으로 설명했지만, 민준의 반응은 미지근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인 걸요. 기를 좀 다룰 줄 안다는 것 빼면, 리아 씨처럼 특별한 능력도 없고…”

“그, 그렇지 않아요! 민준 님은 엄청나게 특별해요! 민준 님은 분명 선지자가 맞다니까요?”

“음…일단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리아 씨 말씀처럼 제가 선지자가 맞다고 해도, 당장 해야 할 일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 그건…”

“우선은 치료센터로 가서 리아 씨의 다리를 고칩시다. 예언자에 대해서는 그 뒤에 더 얘기 나누도록 하죠.”

“아…알, 알겠어요. 민준 님.”

사실 민준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리아에게 예언자가 맞다 아니다 말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정말로 중요한 건 리아 아즈람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와 중동 정세에 언제 얼마나 간섭하느냐였다.

직접 중동 지역으로 가서 전쟁터를 돌며 기적을 뿌리고 다닐 수도 있었고, 아니면 용병들을 대거 동원해서 일단 무력으로 주민들을 싹 제압하고 개조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뭐가 됐든 더 빠르고 편한 쪽으로, 그리고 되도록 재밌는 쪽으로 하고 싶어서 민준은 머리를 계속 굴렸다.

“이제 치료센터에 거의 도착했네요. 제가 이미 말해놨으니까, 가면 모든 걸 알아서 해줄 거예요.”

“혹, 혹시 민준 님은……”

“저는 여기 말고도 가봐야 할 곳들이 좀 있어서요.”

“아,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녁에 와서 리아 씨의 상태를 봐 드릴게요.”

“아, 아니에요! 굳이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 리아 씨의 다리를 치료하는 건 저한테도 기쁜 일이거든요.”

“아, 아…”

민준의 말에 리아가 얼굴을 발그레 붉혔다.

또다시 민준이 자신의 다리를 사정없이 만지고 주무를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 심장이 쿵쾅거렸다. 역시 염불보다는 잿밥이 더 흥미로운 법이었다.

“저녁에는 더 꼼꼼하게 치료해 드릴게요.”

“하으…네, 감, 감사…감사합니다…민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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