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 248화
* * *
민준은 마르코에게 환술을 걸어 지옥 같은 장면을 영원히 돌려보도록 만들었다.
무한 환술 지옥에 빠진 마르코는 정신적 충격이 누적되어 급격히 몸 상태가 나빠져 갔지만, 그렇게 쉽게 죽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한국으로 데려가 실험실에 가둬놓고 평생 환술에 빠져 고통받게 할 생각이었다.
“으음……”
민준은 한국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교주의 서를 펼쳐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오랫동안 지속된 격한 섹스로 완전히 탈진해버린 루시와 소피아가 사이좋게 서로를 껴안고 자고 있었다.
‘여기에 뭐라고 써야 우리 교단이 화목해질까?’
교주의 서는 아주 간편하고 강력한 집단 명령 체계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 무엇을 적든, 교인들은 교주의 서에 적힌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
유용했지만, 내용을 좀 잘못 적으면 큰일 날 게 뻔히 보여서 민준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지금부터 서로를 죽여라!’
라고 장난으로 적는다고 해도 정말로 묻고 따지지도 않고 서로를 죽이기 시작할 테니, 글자 하나조차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스윽.
민준은 고민 끝에 펜을 내리고 교주의 서에 글자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1. 교인들끼리는 서로 강력한 친밀감과 유대감 느끼며, 그 느낌을 통해 교인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2. 되도록 자신의 일상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교인들끼리는 서로를 도와야 한다.
3. 교주에게 절대복종한다. 교주의 말은 그 어떤 법과 윤리 원칙보다 우선한다.
4. 교주의 성생활이 문란하다고,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존경한다….
‘흠……이건 표현이 좀 그런가?’
쭉쭉 교주의 서를 채워가던 민준이 멈칫했다.
민준은 펜으로 두 줄을 쭉쭉 긋고 4번 내용을 새롭게 수정했다.
4. 교주와의 성관계는 은총이다. 그러니 다른 교인이 교주에게 은총을 받는다고 시기, 질투하지 않는다. 부러워하는 것 정도는 허용.
5. 교주 이외에 다른 남자와 절대로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단, 이 규칙은 20~40대 여성 교인들에게만 적용되며, 교주에게 허락받은 경우에는 이 규칙에서 제외된다.
민준은 5번 규칙을 써놓고 다시 살펴봤다.
생각은 좋았는데, 그 많은 여자 교인들을 어떻게 선별해서 관리할지가 문제였다.
곰곰이 고민하던 민준은, 이어서 글자를 써 내려갔다.
6. 20~40대 여성 교인들은 꿈속에서 교주의 부름을 받아, 교주의 아웃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게 된다.
7. 교주의 계정을 팔로우한 교인들은, 다이렉트 메시지로 자신의 사진을 교주에게 보낸다. 보정 없이 얼굴과 몸매가 확연히 드러나는 사진이어야 한다.
8. 교주가 ‘O’라고 보내면 5번 규칙에 해당되고, ‘X’라고 보내면 5번 규칙에서 제외되며 성관계에서 자유로워진다.
9. 교주에게 답장이 오지 않는 기간이 1주일이 넘어갈 경우, 교인들은 다시 한번 교주에게 사진을 보내야 하며, 교주에게 확실히 답장이 오기 전까지는 성관계를 최대한 지양한다.
10. ‘O’라고 답장은 받은 교인 중 교주와 직접 대면한 적 없는 이들은 최대한 빨리 ‘스타 엔터’나 ‘MJ인베스트먼트’에 입사지원서를 넣어야 하며, 이 경우 자기 소개란에 첫 문구를 ‘교주님에게 간택 받았습니다.’라고 적어야 한다.
“캬…… 이거지. 존나 똑똑해.”
민준은 자기가 써놓은 문구들은 보며 스스로 감탄했다.
SNS를 통해서 쉽고 빠르게 비주얼 심사를 시행한 다음, 비주얼 심사에 통과한 교인들은 회사에 넣어서 따로 관리한다.
이렇게 하면 굳이 모든 여성 교인들에게 섹스의 자유를 뺏지 않아도 괜찮았고, 민준도 예쁜 교인들만 골라서 만날 수 있었다.
누구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민준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음……그다음은……”
민준은 교주의 서를 쓰는 맛에 푹 빠져서 잠을 자는 것도 잊고 하얀 종이 위에 빼곡히 글자를 적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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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MJ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한 우량 기업들만 해도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에 몰래 들어온 중동 석유 자본이 활개 친다는 루머가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런 루머조차 부족했다.
석유 자본조차 애들 푼돈으로 보이게 할 만큼 MJ인베스트먼트는 미친 듯이 돈을 쏟아냈다.
분야와 국적을 따지지 않고 우수한 기업들을 인수했으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절대 인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유망하고 우량한 대기업조차 이상하게 MJ인베스트먼트만 나서면 인수할 수 있었다.
물론, 전부 민준의 능력 덕분이었지만, 그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MJ인베스트먼트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하지만 대놓고 MJ인베스트먼트를 조명하는 언론사나 자본의 출처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쯤 되면 떡밥을 물만한데도 MJ인베스트먼트에 대해서 다들 쉬쉬하고 있는 건, 현재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인 3선 국회의원 유현주를 비롯한 국회의원 대부분이 MJ인베스트먼트에게 후원을 받고 있거나, 아니면 황석대 게이트로 인해 목줄이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또, 스타 엔터 역시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솔라의 전설적인 대성공이 직후에, 후속 걸그룹 ‘루나’가 런칭됐다.
루나 역시 4인조였는데, 다영, 루리, 새롬, 레이첼이 소속되어 있었다.
데뷔 앨범 티져를 통해 멤버들의 비주얼과 데뷔곡이 일부 공개되자마자, 아무리 그래도 솔라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쏙 들어가 버렸다.
맛보기 영상인 티져가 너튜브의 모든 시청 기록들을 싸그리 깨버렸고, 어마어마한 관심 속에서 데뷔곡을 발표한 ‘루나’는 데뷔와 동시에 모든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솔라의 인기를 루나가 바통 터치해서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전 세계 사람들은 여신보다 더 여신 같은 비주얼에 노래 실력까지 세계 탑 클래스인 걸그룹을 쭉쭉 뽑아대는 스타엔터를 보며 경악했고, 이제는 세계 1등 엔터 회사가 스타엔터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정도였다.
사실상 글로벌 트렌드와 대한민국의 질서가 민준의 손에 달려있었지만, 민준의 일상은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다만,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조금 더 화려하게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팡, 팡팡!!
수많은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폭죽의 양이 역대급으로 많아서 밤하늘이 마치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밝아졌다.
워낙 밝고 시끄러워서 평소라면 자던 사람들이 냅다 민원을 넣겠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는 한강 폭죽놀이는, 이제는 전통적인 축제라 서울 시민들도 그저 한강에 모여들어 화려한 폭죽놀이를 재밌게 구경할 뿐이었다.
“와! 대박…… 졸라 멋져! 짱멋져! 헤엑, 미쳤어! 진짜…… 이거 왜 이렇게 예뻐? 높은 데서 보니까 훨씬 예쁘네?”
“다영 언니. 제발 그런 말 좀 그만 써. 이제 우리 연습생 아니잖아.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에이, 여기에 우리 회사 사람들밖에 없는데 뭐 어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항상 조심해야 하니까……”
다영과 레이첼이 귀엽게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민준은 피식 웃었다.
한강 빌딩 최고층에서 MJ인베스트먼트와 스타엔터의 합동 송년회가 열리고 있었다.
민준은 통유리 앞에 서서 눈앞에서 터지는 폭죽들을 구경하고 있었고, 민준을 기점으로 왼쪽에는 유나와 송아를 비롯한 MJ인베스트먼트의 간부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간부들이라고 해도 남자 한 명 없이 싹 다 여자였는데, 심층 면접을 통해 외모와 능력을 비롯해 교인 적성이 가장 뛰어난 여성 교인들만 추리고 또 추려서 간부로 꽂아둔 상태라 민준은 그들을 보기만 해도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또, 오른쪽에는 김진주 부대표를 비롯한 솔라와 루나 멤버들이 서서 다 같이 폭죽놀이를 구경했다.
아마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송년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민준의 머리를 스쳤다.
“저, 저어. 대, 대표님……”
“네. 새롬 씨.”
샴페인이 들어있는 잔을 한 손에 든 채 새롬이 슬며시 민준에게 다가갔다.
민준에게 다가갈 타이밍만 재고 있던 다른 여자들은 속으로 탄식을 흘리며, 연신 새롬과 민준을 곁눈질했다.
다들 의식하지 않는 척하고 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오늘 밤 민준에게 간택될 순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었는데, 젊은 패기로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새롬이 꽤나 신경 쓰였다.
“이거……저, 저도 이제 마실 수 있어요……”
“아, 그렇네요. 새롬 씨도 이제 성인이니까요. 성인이 되신 거 축하드려요. 새롬 씨.”
민준이 살포시 웃으며 새롬에게 덕담을 건넸다.
새롬은 아직 술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민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해롱해롱해서 표정이 헤벌쭉 풀려버릴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치명적이고 촉촉한 표정과 눈빛을 유지한 채 민준에게 살며시 잔을 내밀었다. 민준이 역시 잔을 내밀어 새롬과 건배했다.
띵~~.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새롬은 촉촉하고 또 촉촉하게 눈가의 수분을 유지하면서, 민준을 새침하게 살짝 올려다보며 샴페인을 천천히 들이켰다.
꿀렁꿀렁.
새롬의 조막만 한 목울대가 위아래로 꿀렁대면서 샴페인을 마셔갔다. 샴페인이 조금 쓴지 새롬의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지만, 새롬은 멈추지 않고 샴페인을 원샷했다.
“흐아. 흐우…………봐요. 대표님. 저 이런 걸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 어엿한 성인이라고요.”
“그렇네요. 성인이네요.”
“다 할 수 있어요. 술도 마실 수 있고……담, 담배도 피울 수 있다고요. 물론, 담배는 최악이지만…………어쨌든 대표님. 꼭 알아주세요. 저 이제 성인이니까……전부, 전부 다 가능한 나이니까…………”
새롬이 노골적으로 자신이 성인이라는 것을 자꾸만 어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자꾸 치명적이고 관능적인 척하려고 노력하는 게 귀엽다가도, 새롬의 눈빛과 마주 볼 때면 민준은 꼬추가 자꾸 움찔거리는 걸 느꼈다.
“크흠. 대표님. 저희도 오늘 성인 됐는데요. 저희도 축하해 주세요.”
“쏘데쓰응. 유이도 대표니므한테 축하받고 싶다 데스응! 대표니므 다이스키잇!!”
새롬의 어필이 꽤나 강력하다는 것을 느낀 솔라의 채린과 유이가 민준에게 다가와 새롬을 견제했다.
사실 이미 샴페인에 잔뜩 취한 유이는 견제라기보다는 술주정에 가까웠다.
“큭큭. 네, 다들 성인이 되신 걸 축하드려요. 근데 유이 씨는 이미 취한 것 같은데……”
“죄, 죄송해요. 대표님. 계, 계속 못 마시게 막고 있었는데 제, 제가 불꽃놀이에 정신 팔린 사이에 그만……”
솔라의 리더인 지윤이 다가와 비틀거리는 유이를 부축하며, 자연스럽게 민준에게 말을 붙였다.
아주 착실하고 멤버들을 잘 챙기는 지윤이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샴페인을 쭉쭉 들이켜준 유이가 고마웠다.
안 그래도 갓 성인이 된 걸 빌미로 새롬이 민준에게 들이대는 게 신경 쓰였는데, 유이 덕분에 끈적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환기시킬 수 있었다.
“이익……”
점점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심지어 다영과 루리에 더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MJ인베스트먼트 사람들까지 민준에게 슬슬 말을 걸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여배우들도 아니고…… 회사원들이 왜 저렇게 예쁜 건데…… 완전 반칙이잖아……’
새롬은 민준의 주위에 바글대는 여신들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특히 오래전부터 민준에게 꾸준히 버프를 받아온 유나의 경우에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차라리 CG로 만들어낸 미의 여신이라고 하는 게 더 믿기 편할 것 같았다.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지적인 분위기에 섹시한 도시 여자 느낌도 풀풀 풍기고 있어서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것 같은 여자였다.
이 수많은 미인 중에서 민준에게 다가가지 않는 건, 왜인지 민준과 사이가 어색해 보이는 레이첼 밖에 없었다.
용기를 내서 선수를 쳤지만, 쟁쟁한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그 뒤로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새롬은 몇 번이고 민준에게 가서 말을 걸려고 했지만, 노련함이 많이 부족한 새롬은 다른 언니들에게 번번이 기회를 뺏길 뿐이었다.
새롬은 그럴 때마다 속이 쓰려서 연신 샴페인을 들이켰고, 결국에는 거나하게 취해버렸다.
새롬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절대로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금방 술기운에 취해버린 새롬은 해롱해롱하다가 결국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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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후에에……성, 성인인데에……”
“큭.”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의 웃음소리였다.
새롬은 그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희미했던 정신이 화들짝 깨어나는 걸 느꼈다.
등이 푹신했다. 침구류의 느낌이 익숙한 걸 보면 아마도 숙소인 것 같았다.
‘내,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새롬은 빠르게 기억을 훑었다. 그리고 송년회에서 깡 샴페인을 마구 들이키고 잠들었던 걸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근데 지금은 숙소인 걸 보면, 아마도 민준이 취한 자신을 숙소까지 직접 데리고 와준 것 같았다.
‘나, 나 대표님한테 안겨서 온 건가…… 기, 기억이 하나도 안 나!’
만약 민준이 직접 데려다준 게 맞다면 분명 민준의 품에 안겨서 올라왔을 텐데, 막상 그 중요한 부분의 필름이 남아있질 않았다.
새롬은 원망스러운 머리를 콩콩 쥐어박고 싶었지만, 일단은 자는 척을 계속했다.
아직 민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민준의 시선과 숨결이 어쩐지 조금 뜨거운 것 같았다.
“…………귀여워서 진짜……오늘 참느라 힘들었어. 새롬아.”
“…………”
툭툭.
민준이 아직 젖살이 살짝 남아있는 새롬의 볼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새롬은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민준이 내뱉고 있는 말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항상 ‘새롬 씨’라고 높여 부르는 민준이, ‘새롬이’라고 편하게 불러주니까 기분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아랫배가 자꾸 근질거렸다. 야릇하고 아릿했다.
“하아……확 덮쳐버릴 수도 없고……그렇게 유혹하면……나도 참기 힘들어……새롬이가 너무 매력적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