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238화
* * *
“…………”
“아, 아마도 특, 특수 장비를 가지고 들어와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기존에 설치된 보안 문 말고 또 다른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고수압 워터건으로 자르기라도 한 것처럼 반듯한 단면을 자랑하는 매끈한 개구멍.
마르코는 직접 빌딩으로 와서 민준이 만들어 낸 작품을 확인하며, 빌딩의 경비원들을 추궁했다.
다니엘을 비롯한 특수 경호팀과 별개로, 빌딩의 기본적인 보안 및 관리 임무를 담당하는 경비원들이 따로 있었고, 마르코는 이미 죽어버린 경호팀을 대신해서 경비원들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고 있었다.
“몸수색 때는 아무런 특이 사항도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게…………사, 사실은 저도 도저히 영문을…………죄, 죄송합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이런 통로를 뚫어낼 수는 없겠지. 그런데 몸수색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거지? 그놈이 마법이라도 부렸다는 건가?”
“그, 그게……정말……저희는 속옷 안까지 꼼꼼하게 검사했는데…… 부디 자, 자비를…… 보, 보스……꺼헉!”
타앙!
더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마르코는 감정 없는 얼굴로, 일렬로 쭉 늘어서 있던 경비팀 팀장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경비팀은 코앞으로 드리운 진한 죽음의 그림자에 눈을 꼭 감고 몸을 벌벌 떨어댔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끈적한 핏물이 바닥에 주르륵 흐르는 소리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당장 죽은 건 팀장이었지만, 팀원들은 곧 팀장을 따라가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탕. 탕탕!!
루시가 없어진 이상 더 이상 총소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근데 그래서 좋냐고 하면, 전혀 아니었다.
마르코는 굉장한 소음과 파괴력을 자랑하는 매그넘을 사용해 경비팀 인원들을 머리통을 시원하게 터트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쏘고, 쏘고, 또 쏘고. 잘 익은 수박을 도끼로 쪼개듯 사람 머리통을 호쾌하게 날려봐도, 이미 찢어져 버린 마음은 다시 괜찮아지지 않았다.
“저, 보스…………”
마르코가 경비팀의 처형을 끝내자, 뒤쪽에 있던 간부급 조직원이 마르코에게 조용히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귓속말을 들은 마르코는 눈을 크게 뜨며 곧장 지하에 있는 마르코 빌딩의 종합 관제실로 향했다.
“……다들 나가 있어.”
관제실로 향한 마르코는 모든 인원을 내보냈다.
루시를 납치해 간 납치범에게서 협박 동영상이 왔다는데, 혹여 영상 안에 루시의 처참한 모습이 담겨있을지도 몰랐다.
“……”
긴장되는지 몇 번이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마른침을 삼키던 마르코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침내 영상을 재생시켰다.
마르코를 아는 사람이 이런 마르코의 모습을 봤다면 까무러칠 정도로, 평소의 마르코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리 세계 제일 카르텔의 보스라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납치당한 상황에서는 도저히 평점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하아.”
영상의 시작부터, 자고 있는 루시의 모습이 보였다.
영상을 멈춰놓고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보며 루시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걸 확인한 마르코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안심하는 것도 잠깐. 영상을 다시 재생시키자 갑자기 화면이 지지직하고 끊기더니 완전히 암전됐고, 곧 기계음이 가득 섞인 변조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일에 첨부한 장소로, 내일 12시까지 나오도록.
제때 와서 몸값만 지불하면, 생채기 하나 없이 딸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지.
몸값은 5천억. 100달러짜리 지폐와 무기명 수표로만 챙겨오도록.
약속 시각에 늦거나 허튼수작을 부리면, 당신 딸의 안전은 책임질 수 없다.
아, 당연히 혼자와야 할 거야……뭐, 특별히 부인을 동반하는 것 정도는 봐주도록 하지.
미녀는 언제나 환영이거든. 큭.
뚝.
1분 남짓한 동영상이 그렇게 끝났다.
마르코는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심하게 붉히더니, 주먹으로 동영상을 재생하던 노트북을 내리쳤다.
콰직!!
마르코의 주먹에 노트북이 단번에 쪼개졌다. 그런데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마르코는 몇 번이고 노트북과 책상을 마구잡이로 내려쳤다.
쾅, 쾅, 쾅, 쾅!!!
“으아아아!!! 으아!! 이 개새끼!!! 개새끼가아아!!!”
마르코는 눈앞에 있는 모든 걸 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부숴버렸다.
분노에 찬 마르코의 노호성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
“으음…………”
목에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벨트로 목을 조이고 있는 기분. 다만,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루시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침구류의 느낌도, 평소에 애용하는 명품 침구류와는 완전히 달랐다.
꿈뻑.
루시는 눈을 깜빡이며 아직까지 흐릿한 시야를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보인 낯선 천장에 루시의 표정이 확 굳었다.
철렁.
“윽…… 케헥, 켁.”
루시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을 반쯤 일으키기도 전에 목에 걸려 있는 목줄이 루시의 목울대를 강하게 압박했다.
숨이 턱 막혀 다시 침대 위에 뻗은 루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눈을 껌벅댔다.
서서히 기억에 되짚어봐도 이상한 장면이 전혀 없었다.
민준과 만나서 키스를 나눈 것까지 분명 기억에 남아있는데, 거기서 기억이 툭 끊기더니 일어나보니 이 알 수 없는 방이었다.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비어있는 방. 심지어 가구는 물론이고 창문 하나 없었다. 작은 전구 하나만이 천장에 매달려 누리끼리한 불빛을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서 꿈인가 싶다가도, 목을 죄어오는 목줄의 느낌이 너무 생생했다.
마치 납치라도 된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민준은 어디 간 걸까. 민준은 어떻게 된 걸까.
끼익.
“읏……”
“……움직이지 마. 루시. 목 다쳐.”
“민, 민준……!”
갑작스레 들린 방문 열리는 소리에 몸을 움찔거린 루시의 귓가에 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시는 깜짝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다가도, 민준의 말을 듣고 다시 몸에 힘을 빼고 침대에 누웠다.
민준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곧 누워있는 루시의 시야에 민준의 얼굴이 보였다.
“민, 민준……어, 어떻게 된 거야? 나, 나 좀 풀어줘. 나 왜 묶여있는 거야…?”
“…………”
“민준…?”
“…………”
대답이 없는 민준은 본 적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득 너무나도 무서워진 루시는 억지로 웃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불길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루시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루시는 애써 모르는 척 쾌활하게 민준에게 말을 걸었다.
“장, 장난하지 마. 나 정말 무섭단 말이야? 응? 이거 좀 풀어주라, 민준. 내가 부탁할게. 응? 응? 그, 그런 무서운 표정 짓지 말고……나, 나 충분히 깜짝 놀랐으니까. 응?”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거. 그게 너의 죄야 루시.”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응? 그만……그만 하라니까?”
“사실, 방관만 한 것도 아니지. 루시, 너는 아빠의 애정까지 바랬잖아. 마르코가 결코 다정하고 상냥한 아빠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 끔찍한 괴물한테서 받는 사랑이 그렇게도 좋았니?”
“…………그만해. 그만해줘. 무슨……무슨 소리는 하는지 모르겠어. 나, 난……하나도……아무것도 몰라…………”
스윽.
민준을 향해 있던 루시의 시선이 벽면을 향해 돌아갔다.
민준은 그런 루시를 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나는 너에게 벌을 주러 온 거야. 루시. 지금껏 네가 눈감아 온 것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너는 알아야 해.”
“…………”
“루시. 더 이상 피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봐. 네가 어떤 사람을, 어떤 끔찍한 일들을, 눈감아주고 있었는지.”
꾸욱.
루시는 끝까지 민준의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눈을 꾹 감고 주먹을 꼭 쥔 채, 필사적으로 민준을 회피했다.
그런 루시에게 민준은 환술을 걸어주었다. 마르코가 저질렀던 흉악한 범죄들을 루시가 직접 볼 수 있도록.
****
뚜두두두. 탕, 탕탕.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총소리가 들려왔다.
루시는 겁에 질려 몸을 숨기려 했지만, 어쩐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의 모든 감각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마치 카메라가 된 것처럼 시야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유체이탈이라도 경험하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다기엔 고정된 시야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이상했지만, 루시가 이상하게 느끼든 말든 장면은 계속됐다. 루시는 드론처럼 공중에 붕 떠서,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지켜봤다.
이곳저곳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끔찍한 비명이 이어졌다. 불타지 않는 건물이 없을 정도로 도시는 아수라장이었고, 도로에는 시체가 넘쳐났다.
강력한 화기들로 무장한 세력들이 허겁지겁 도망가는 시민들을 쫓아가 가차 없이 죽이고 있는 상황.
이런 건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끄윽, 꺄아아아아악……! 그만……! 그마아아안!!!’
총소리만 들어도 끔찍한 트라우마가 찾아오는 루시에게는 무척이나 버거운 광경이었다.
루시는 스스로 눈동자를 찔려서라도 이 끔찍한 장면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주민들이 무참히 학살되는 장면은 계속 이어졌고, 도시가 완전히 함락된 뒤에는 시야가 잠시 점멸하더니 또 다른 장면이 이어졌다.
‘아, 아빠……’
루시가 보고 있는 건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거실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마르코와, 그앞에 무릎 꿇고 있는 중년의 남녀 한 쌍이었다.
남자는 경찰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위가 꽤 높은지 남자의 가슴팍에는 여러 가지 훈장과 약장들이 달려있었다.
“아, 아내만은……내 아내만은 살려주시게. 내, 내가 뭐든지 다 하겠네. 자결이라도 할 테니, 제발 내 아내만은……”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르코 앞에 오체투지를 하며 처절하게 빌었다.
무심하게 남자를 쳐다보던 마르코는 피우고 있던 두꺼운 시가를 빼 들어서, 남자의 손등을 지져버렸다.
치이이이이익.
“아악!! 아으, 크윽, 크으으윽!!!”
‘아, 아, 안 돼!! 안돼에에에!! 그만, 제발 그만해줘, 아빠! 아빠아! 제발 그마아안!!!’
아빠가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에게 담배 빵을 놓는 충격적인 장면에 이어, 살이 익어가는 끔찍한 냄새까지 생생하게 느껴지자, 루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루시의 비명은 마르코에게 닿지 않았고, 마르코는 멈추지 않고 남자의 몸에 시가를 지져댔다.
너무 많이 지져서 시가의 불길이 꺼지자, 마르코는 아예 라이터를 토치처럼 사용해 남자의 몸을 노릇노릇 익혀갔다.
치이이이익.
“으아아악!!! 아으, 아그그으읏!!”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않고 버텨내면 아내만은 살려주지.”
“아으, 아으으읏! 그아, 아흑, 흐그으으읏! 으윽, 버, 버틸 테니……내, 내가 버틸 테니 제발 아내만은……!”
“각오가 대단하군. 그래, 감히 내 아내를 납치한 놈인데, 그 정도 깡은 있어야지.”
“아읏, 잘, 잘 못 했네. 내가, 흐윽, 내가 잘못했어……! 아, 아으, 끄아아아아악!!!”
엎드려 있던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들어 올린 마르코가, 남자의 왼쪽 눈을 라이터로 지졌다.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끔찍한 비명에 토악질을 해댔고,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고통을 참아내던 남편은 결국 눈이 타버리는 고통에 못 이겨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악!! 아그읏, 그흐으윽!!”
“움직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잊었나? 네놈한테는 아내의 목숨이 생각보다 가벼웠나 보군.”
“아아아악!! 아으, 아으으윽!!”
아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결도 하겠다며,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는, 결국 극심한 고통과 공포 앞에서 미쳐버렸다.
딸각, 띵. 딸각, 핑.
“아, 아으, 아그, 아아. 히기이잇……”
마르코가 라이터의 뚜껑을 여닫으며 뚜벅뚜벅 남자에게 걸어가자, 남자는 바닥을 질질 기며 마르코에게서 멀어졌다.
마르코는 처절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일부러 걸음걸이를 조절해가며 남자를 갖고 놀았다.
토악질을 해대며 눈물을 쏟아내던 여자가, 바닥을 기어와 남편을 괴롭히는 마르코의 종아리를 붙잡았다.
터억.
“그, 그만…… 제발요…… 제발, 그만…… 차,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이, 이건……이건 아니에요. 이건 아니야…… 이, 이런 건…………사, 사람이 할 짓이…!”
“가만히 있던 나를 짐승으로 만든 게, 네 남편이다. 더 이상 끼어들면, 너 역시 남편과 똑같이 만들어주지.”
“이익…… 이, 이, 이 악마…… 당신은 악마야…… 당신에게도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으면서…… 어, 어떻게 이런 짓을…… 천벌을 받을 거야! 당신은 물론이고 당신 가족까지 전부 지옥에 떨어져서……! 케흑……!”
퍼억.
여자의 발악을 잠자코 지켜보던 마르코가, 가족에게까지 저주를 퍼붓는 여자에게 지체 없이 사커킥을 날려버렸다.
단 한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날아간 여자의 코와 입에서는 시뻘건 피가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마르코는 그럼에도 성치 않다는 듯이, 바닥에 무방비하게 뻗어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마르코가 다가오자 겁에 질려 신음을 뱉어대며 아이처럼 몸을 잔뜩 웅크렸고, 마르코는 그런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려서 강제로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마르코의 눈가에는 이미 사람이라고 것이라고 보기 힘든 진득한 광기와 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악마지, 물론. 나는 악마야. 하지만 내 가족까지 건들지는 말았어야지……내 딸과 아내는 건들지 말았어야 해.”
“아, 아으……아, 아! 자, 자모했어요…… 자, 자못해써요!!”
“그러길래 입을 조심해야지. 입에서 피가 나잖아. 응? 이 못된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고.”
마르코는 주머니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 거의 바늘만큼 얇고 날카로운 송곳을 세워 올렸다.
엎드려서 벌벌 떨고 있는 여자의 복부를 걷어차 천장을 보게 만든 마르코는, 여자의 상체에 올라타 여자의 양 입술을 꾹 눌러 잡고, 여자의 입술에 송곳을 꽂아버렸다.
푸우우욱!
“끄으으으윽!!! 아으, 흐읏!! 흐브, 흐브읏!! 브헤에에!!”
송곳에 양 입술이 처참하게 꿰뚫린 여자는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쳐댔지만, 마르코의 미친 짓을 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모든 장면을 생생하게 구경하고 있던 루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아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아, 아, 제발! 아, 아빠…… 아빠, 아빠, 아빠아아악!!!’
할 말을 모두 잃어 넋 놓고 뇌리에 새겨지는 장면들을 구경하던 루시는, 또다시 라이터를 꺼내 드는 마르코를 보며 미친 듯이 경악했다.
사람이 아니라 악마.
자신이 늘 아빠라고 부르며 따랐던 남자는, 자신에게는 세상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따듯했던 그 남자는, 사실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다.
“입을 잘못 놀리니까, 피가 나는 거야. 아무래도 지혈이 필요하겠어. 이거면 앞으로 입도 제대로 못 놀릴 테니, 얼마나 좋아. 그치?”
“아으읏! 흐브, 흐브! 끄흐윽, 끄흐으으으윽!!”
딸깍, 띵.
눈동자에 있는 실핏줄이 전부 터질 만큼 여자가 격하게 애원했지만, 마르코는 기어이 라이터의 뚜껑을 열고, 송곳에 사선으로 관통돼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딱 달라붙어 있는 여자의 입술로 라이터를 가져갔다.
딸각.
마르코가 라이터의 화력을 최대로 높이고 케이스의 옆면을 누르자, 분화구에서 화염방사기처럼 불꽃이 쏟아졌다.
치이이이이익!!
“끄으으으으브!!!!!! 끄브, 끄브으으응으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