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234화
* * *
“알지. 그래서 존나 아쉽긴 해. 저년들이 좀 불쌍하기도 하고. 보스보단 차라리 나한테 씹창나는 게 나을 텐데……큭.”
“그건 그렇지. 너는 목 조르고 패는 게 전부인데, 보스는 아예 반병신으로 만들어버리잖아.”
“큭, 참아 병신아. 어차피 조금 있으면 저년들 전부…………”
의자에 묶인 채 세뇌에 걸린 조직원들이 어제 감시 임무를 하면서 내뱉었던 말들을, 민준이 보고 있는 앞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뱉어댔다.
민준은 이미 저들이 전 세계 최대의 마약 카르텔인 ‘마르코 카르텔’의 조직원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저들의 계획과 목적 그리고 탈출 루트까지 모조리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들이 했던 말을 전부 들어보는 건, 복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고는 하나 그래도 인간으로 취급해줘야 할지, 아니면 가축으로 취급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해야 할지.
이 삼 단계 중에 고를 생각이었는데, 대화를 듣다 보니 삼 단계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저것들은 지구에서 꼭 없어져야만 하는 쓰레기였다.
민준은 모든 감정이 없어져 버린 잿빛 눈으로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카르텔 조직원들을 지켜봤다. 쓰레기가 쓰레기 같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으니 더 이상 감흥도 없었다.
조직원들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민준은 옆에서 대기하고 용병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시 가둬놔. 물론, 단 일 초도 편하게 지내게 해서는 안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예, 보스.”
민준의 명령이 떨어지자 용병들이 묶여있던 조직원들을 하나씩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전쟁터를 돌며 무척이나 거친 삶을 살아온 용병 중에서는 고문 기술자도 있었고, 남색이고 여색이고 가리지 않는 놈들도 있었다.
저들이야, 그렇게 끝도 없이 굴리다가 위험한 생체 실험 따위에 써먹으면 딱 좋겠지.
“보스. 방으로 들어가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민준의 옆에 서 있던 레이너가 민준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민준이 상석에 앉자 프로젝터가 켜졌고, 레이너는 스크린을 가리키며 마르코 카르텔에 대한 정보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보통 카르텔에는 카르텔의 거점 도시의 이름이 붙기 마련이지만, 마르코 카르텔은 다릅니다. 보스인 마르코 로드리게스의 이름을 차용해 조직의 이름을 지었는데, 그만큼 마르코의 조직 지배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겨우 도시 하나를 대표로 삼기에는 마르코 카르텔이 지배하고 있는 도시들이 너무 많고 광범위하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 세계 최대 조직이라며. 저 새끼가 그 마르코 로드리게스야?”
“예, 보스.”
민준이 스크린에 떠 있는 마르코의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관상이라는 걸 그리 믿지 않았지만, 마르코는 딱 봐도 범죄자처럼 생긴 인상이 매우 더러운 놈이었다. 외국인인데도 인상이 더럽다는 게 한눈에 느껴질 정도였다.
‘이 씨발…………’
사진을 보고 있는 민준의 눈빛이 점점 더 험악해져 갔다.
마르코 카르텔에서 밀수 루트를 관리하기 위해 황석대 몰래 붙여놓은 끄나풀들이 존재했고, 한국에서는 큰손에 속하는 석대와의 거래가 끊기자 마르코는 한국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를 받은 조직원들이 한국에 들어와 석대의 행방에 대한 조사를 벌이다가 민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조직원들은 민준의 여자들에 대한 정보까지 마르코에게 보고를 올렸다.
여자들을 보고 눈이 완전히 돌아간 마르코는 민준을 죽이고 여자들을 납치해오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치안이 무척 좋은 한국에서 일을 벌이기 위해 특별히 선별된 조직원들이 바로, 조금 전 온몸이 꽁꽁 묶여 용병들에게 질질 끌려간 이들이었다.
하지만 만약 민준에게 특별한 능력이 없었거나, 미리 용병들에게 집 주위를 호위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더라면, 온몸이 꽁꽁 묶여 끌려다니는 건 민준의 여자들이 될 수도 있었다.
아끼는 여자들이 꼼짝없이 붙잡혀 수많은 조직원에게 무참히 윤간당하고, 결국에는 마르코에게 진상되어 끔찍한 상황에 부닥치는 상상을 하자, 민준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가 머릿속에 한가득 부어진 것만 같았다.
“저, 보스…………”
“어…………미안, 계속해. 듣고 있어.”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보스께서 심문을 통해 알아낸 납치 루트를 따라가 봤더니 이곳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지대 인근에 있는 빈민촌으로, 전 세계에 퍼져있는 마르코의 은거지 중 한 곳입니다. 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안 좋아 외지인들을 발도 못 붙이는 곳인데다가, 카르텔이 동네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어서 베네수엘라나 콜롬비아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까지 손을 뗀 동네입니다.”
“음…………”
툭툭.
민준이 레이너가 띄워놓은 스크린 속 지도와 빈민가 사진들을 보며,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컨테이너보다 작은 허름한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빈민가. 우리나라 판자촌보다 훨씬 더 허름한데 규모는 동네가 아니라 중소 도시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사진으로만 봐도 동네의 치안이 썩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메이어 용병대의 화력을 쏟아부으면 쉽게 제압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나라 간의 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다분합니다. 경찰과 동네 주민들까지 한패여서 소수 정예로 들어가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흠. 까다롭긴 하군.”
“예, 보스. 암살자들을 대거 고용해서 습격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아마 의뢰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없을 겁니다. 마르코 카르텔은 절대 빚을 남겨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찰을 사살해서라도 감옥에 잡혀있는 조직원들을 빼 오고, 조직원이 암살당하면 킬러와 함께 의뢰인까지 찾아내서 죽이는 게 그들의 오랜 방식입니다.”
“괜찮아. 어차피 킬러를 쓸 생각은 없었어. 그렇게 쉽게 죽이기엔 아쉬우니.”
“하면…………”
“내가 직접 복수해야지. 그렇다고 무작정 쳐들어가겠다는 건 아니야. 레이너, 마르코의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지? 혹시 아끼는 여자가 있나?”
“가족에 대한 마르코의 애정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마르코에게는 미스 베네수엘라 출신의 아내와 딸이 한 명 있는데, 몇 년 전 적대 카르텔의 첩보로 마르코의 부인이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소식을 들은 즉시 병력을 결집하여 경찰서를 점거했고, 경찰관을 비롯해 동네 주민들까지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죽여댔습니다.”
“진짜 미친놈이군.”
“그렇습니다. 보스. 그래서 결국 정부군까지 출동했지만, 이미 고위급 인사들과 협력하고 있던 마르코는 군대의 진군 경로를 실시간으로 전해 들으며 게릴라전을 펼쳐 정부군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
“그 후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직원들까지 정부군의 후방에서 집결해 거세게 압박하자, 결국 정부군은 마르코에게 완전 패배를 선언하고 모든 무장을 해제한 채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카르텔은 도시에 며칠이나 더 머물렀고,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동네 주민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며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음.”
민준은 조용히 레이너의 얘기를 듣다가 침음성을 흘렸다.
카르텔이 강력해 봐야 얼마나 강력하겠나 싶었는데, 정부군을 이겼다고 하니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카르텔이 동네를 꽉 잡고 있어서 가장 큰 전력인 메이어 용병대를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었고, 직접 잠입하기도 어려웠다.
동양인이 그런 도시에 들어섰다가는 순식간에 시선이 쏠리는 게 당연했다. 소지품이나 장기를 털기 위해 접근하는 강도들은 무섭지 않았지만, 그들을 제압하려고 섣불리 무력을 썼다가는 그 소식이 곧바로 마르코의 귀에 들어가겠지.
그렇게 되면 경비가 더욱 강화될 테고, 최악의 경우 마르코가 다른 곳으로 튀어버릴 수도 있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어찌어찌 비벼본다고 하더라도 무척이나 비효율적이었다.
민준은 계속 머리를 굴렸다. 꼭 정면 돌파만이 답은 아니었다.
“레이너, 혹시 마르코의 부인이나 딸의 행방을 알고 있나?”
“사건 이후 부인은 항상 마르코와 함께 다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은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마르코 그룹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거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카라카스 역시 마르코가 지배하고 있겠지? 아마 딸 근처에도 엄중한 경비가 따라붙어 있을 테고.”
“그렇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마르코의 성격상, 저격수를 포함한 AAA 급 경비팀이 딸의 주위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진입조차 불가능한 마르코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것보단 훨씬 쉽겠군. 레이너, 지금 당장 사전 조사팀을 꾸려서 카라카스로 보내. 정보를 모아오면 내가 직접 가서 마르코의 딸을 납치하고, 그녀를 인질로 개미굴에 숨어있는 마르코를 끌어내야겠어.”
“예, 보스. 미국에 있는 대원들에게 연락하면 내일 중으로 도착할 겁니다.”
“정보 수집까지 얼마나 걸리지?”
“아무리 경비가 삼엄하다고 해도, 길어도 일주일이면 될 겁니다.”
“그래, 나도 한국에서 처리할 일들이 있으니……딱 적당하군.”
민준은 카라카스로 떠날 그 날을 기약하며 입맛을 다셨다. 당장 쳐들어가서 마르코에게 복수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복수의 실마리를 잡았으니, 이제는 하나씩 해결해가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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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엔진 소리가 조금 들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승차감은 최고급 승용차에 탄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아마 퍼스트 클래스라서 그런 거겠지.
“손님. 혹시 불편하신 곳은 없으실까요?”
“네, 괜찮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 손님. 실례합니다만…………이걸……”
늘 정액에 메말라 있는 수많은 여자를 일일이 몸으로 위로한 뒤, 세뇌와 환술을 적당히 이용해 자신의 부재를 최대한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 둔 후, 민준은 혼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레이너에게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한 지 정확히 나흘만이었고, 민준은 그동안 몇백 번의 섹스를 했지만, 자지는 여전히 건강했다.
단아하게 생겼으면서도 쌔끈한 바디 라인을 지닌 승무원이 대놓고 끼를 부려대고 있는 상황.
승무원 페티쉬를 가진 민준의 자지는 정직하게 반응했고, 민준은 가랑이를 티 나지 않게 움츠리면서 승무원이 건넨 포스트잇을 받아들었다.
포스트잇에는 정갈한 필기체로 적인 귀여운 메시지가 오밀조밀 적혀있었다.
손님, 이런 행동이 실례인 건 알지만, 너무나 제 이상형이셔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쪽지 드립니다!
혹시 성함과 연락처를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 명함을 건네 드릴 테니 편하게 연락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부디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쿨하게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비록, 저는 조금 슬프긴 하겠지만요…… ㅠㅠ..
민준은 메시지를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승무원의 모습이나 쪽지의 내용이나, 너무나 귀여웠다.
스윽.
민준은 승무원에게 손을 내밀었고, 승무원은 민준의 작은 행동에도 깜짝 놀라서 몸을 흠칫거렸다.
“……어, 그, 어, 어떤 게 필요하신지…………”
“펜이요. 펜 좀 주세요.”
“네…… 아, 네! 손님!”
민준의 말에 승무원이 펜을 하나 꺼내서 잽싸게 민준에게 전했다. 승무원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좀처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펜을 달라고 하는 걸 보면 최소한 거절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설레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를 적고 있는 민준의 옆모습을 바라보자 얼굴이 확 뜨거웠다.
“여기요.”
“아, 아, 네. 감사합니다. 손님.”
승무원은 민준이 건넨 쪽지를 받아든 채, 후다닥 민준에게서 멀어졌다. 어차피 퍼스트 클래스 손님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야 했으니, 지금은 너무 과열된 심장을 식히는 게 조금 더 중요할 것 같았다. 이러다간 정말 터져버린 것 같았다.
“……어?”
갤리로 걸어가면서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던 승무원은, 숨이 진정되자 고이 잡고 있던 민준이 건네준 쪽지를 조심스레 읽어갔다.
5분 뒤에 화장실 갈 거고, 문 안 잠글 겁니다.
그쪽이 들어오면 알려줄게요.
제 이름하고, 전화번호.
“…………”
분명 무례했다. 근데 어째서인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쪽지를 읽자마자 나사가 하나 빠져 버린 것처럼 머리가 헛돌았다. 쪽지 속 글자들이 머리에서 빙빙 돌아다녔다. 생각은 흐릿하고 멍한데, 머리가 자꾸 뜨거워졌다.
그 열기는 금방 가슴까지 퍼졌고, 순식간에 온몸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하아…………”
승무원이 된 지 벌써 4년 차였다. 그러나 4년 동안 전 세계의 하늘을 둥둥 떠다니면서도 이렇게 떨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승무원으로서 처음 일했을 때보다, 민준에게 쪽지를 받은 지금이 훨씬 더 흥분되고 스릴넘쳤다.
“아.”
승무원은 문득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을 정확하게 재지 않아서 그 뒤로 5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리를 살펴보니 민준은 이미 자리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또각또각.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승무원은 멍하니 화장실로 향했다.
이대로는 나쁜 짓을 하게 될 거라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뜻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시야가 흐릿했다. 머리가 엉망이었다. 그래도 몸은, 두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차버리는 비좁은 기내 화장실로 정직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탁.
승무원은 화장실 문을 살짝 열어 민준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일찍 왔네요?”
“네, 네?”
“아직 3분밖에 안 지났는데.”
“아, 아…………그, 그게…………”
승무원은 우물쭈물하며, 거의 울 것 같은 촉촉한 눈으로 시선을 올려 민준을 바라봤다.
민준은 몸을 숙여 승무원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너무나 긴장해 힘이 잔뜩 들어간 그녀의 몸이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쪽이랑 같이 서비스하던 단발머리분이, 저한테 먼저 쪽지 주고 갔어요.”
“아…………”
“그 사람은 그냥 보냈어요. 제가 원하던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하아, 하응, 저…………손, 손니임…………읏……”
민준이 승무원의 귓불을 깨물었다. 강렬한 자극에 그녀의 고개가 힘차게 꺾였고, 민준은 훤히 드러난 그녀의 기다란 목선에 고개를 박고 그녀의 목덜미를 음미했다.
“츕, 춥. 쯔읍, 쯔읍.”
“하, 하읏, 으응, 하응! 읏, 손, 손님……잠, 잠시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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