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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213화 (213/270)

〈 213화 〉 213화

* * *

죽어, 죽어, 죽어.

씨발, 씨발, 씨발.

오늘 하루, 루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릿속에서 자꾸만 울렸다.

죽어, 씨발. 죽어 씨발. 너 같은 건 죽어, 씨발.

욱씬욱씬­.

하도 맞아서 시퍼런 걸레짝 같아진 몸이 미친 듯이 아려왔다. 머릿속에서 황 사장의 목소리만 맴돌아도, 황 사장에게 당했던 끔찍했던 폭력들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틈만 나면 맞고 있었다. 저항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석대에게 잡혀있는 약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 어쩌면 석대는 영악하고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완벽하게 목줄을 걸자 본격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걸지도 몰랐다.

악마처럼 영악한 사람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석대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버틸수록 자기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석대의 말대로, 나 같은 건 죽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죽어, 죽어, 죽어, 씨발­.

“……끄하­.”

부들부들­. 챙그랑­.

식칼을 쥐어 잡고 스스로의 목을 겨누고 있었던 루리가, 목젖 바로 앞에까지 갖다 댄 식칼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너무 무서웠다. 죽기는 너무 무서웠다.

몸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러자 석대에게 맞았던 뼈마디가 망치에 가격당하고 있는 것처럼 아려왔다. 어색한 느낌은 아니었다.

숨을 조금 가쁘게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흠뻑 처맞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죽기는 무서웠다.

“끄흑, 흡­. 흐으, 흐윽­…”

루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조차 없는 자신이 한심해서, 좁디좁은 원룸 바닥에 쓰러진 채 꺼이꺼이 울어댔다.

하루하루,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더 깊은 나락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생 따위는 싫다고 비명이라도 지르는 건지, 몸과 머리가 자꾸 욱신거렸다. 아파서 욱신거리는 거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더 싸늘하고, 차가웠다.

“하아, 하윽, 끕­. 하으, 하아­……죽어. 나 같은 건……죽어.”

루리는 줄줄 흐르던 눈물이 조금 그치자마자, 다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식칼을 주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식칼은 원했던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쨍그랑­. 거리는 식칼 떨어지는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고, 루리가 바닥에 쓰러진 채 울어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짓을 이른 새벽이 될 때까지 반복했다. 기력이 다하지 않았더라면 끝도 없이 계속했을지도 몰랐다.

“……”

루리는 바닥에 누워서 멍하니 형광등을 바라봤다. 워낙 낡고 먼지가 쓸어서 조금은 누리끼리한 색깔의 빛을 뽐내고 있었다. 밝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을 보는 건 같아서 안쓰러웠다. 저것도 밝고 화려하게 빛나고 싶었을 텐데.

‘……누가 누굴 동정해. 구정물을 뒤집어쓴 더럽고 어두운 나보다는 훨씬 나은데.’

우우우웅­.

조금은 느닷없이,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머리에서 우웅­. 거리는 진동 소리가 울렸다.

루리는 바닥에 누운 채 멍하니 그 소리에 집중했다. 왠지 더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위험한 느낌인데,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루리의 눈이 조금씩 감기고, 덜덜 떨리던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점차 호흡까지 진정됐다. 아니, 곧 사라질 것처럼 미약해져 갔다.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아침일까. 그냥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다.

“……”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하지만 거의 꺼져가던 루리의 정신은,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강제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루리는 허락도 없이 멋대로 자신의 안식을 깨운 전화에 불쾌감을 느끼다가도, 이렇게 쓸모없는 자신에게 누군가가 전화를 해줬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일지는 거의 확실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이자, 매일 대표에게 구타를 당한다는 것만 빼면 자신의 거의 모든 일을 알고 있는 동생이었다.

“콜록콜록­. 큼큼­………어, 다영아.”

­언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가라앉아 있어요?

“응? 아냐……잠깐 졸아서 그래.”

­아, 시간이 시간이니까 언니가 자고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미안해요, 그건 생각 못 했다. 여하튼 좋은 소식! 좋은 소식!!

“좋은 소식? 그게 뭔데?”

­제가 언니 몰래 우리 회사 오디션에 언니 이력서를 넣었거든요? 근데 합격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연습 끝나고 핸드폰 보니까 오디션 보러 오라고 저한테 문자가 와 있던데, 제가 이거 언니한테 그대로 보내드릴게요.

“아니……다영아. 언니 지금 회사랑 아직 계약 한참 남아있는 거 몰라? 그리고 그런 것 말고도…!”

­괜찮아요! 저희 대표님이 다 해결해주실 거예요.

“뭐?! 설마 너 내 얘기를, 너희 대표한테도 한 거야?”

­아니요! 근데 해결해주실 거예요! 저희 대표님은 신이거든요!

“……하아­. 다영아, 나를 좋은 회사로 꺼내주려는 네 마음은 일단 알겠어. 그런데 이렇게 다짜고짜 오디션을 보러오라고 해봤자……어차피 나 같이 나이 들고 데뷔 경험도 있는 사람을 그런 좋은 회사에서 써줄 리도 없고…나 사실 이제는 조금 지치기도 하고…”

­아잇, 정말! 언니! 저랑 깔끔하게 절교해도 좋으니까, 일단 오디션 보러오세요…! 그리고 언니, 미안한데 저 지금 연습 끝내고 대표님 뵈러 가야 해서 끊을게요! 아…! 오디션 보러 왔다가 우리 대표님한테 반하면 안 돼요? 제 꺼니까!

뚝­.

다영은 정말 급한지 자기 할만한지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쩐지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처럼 다영의 목소리는 유독 생기발랄했지만, 다영이 전해준 충격적인 소식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루리는 그런 걸 알아차릴 여력이 없었다.

­솔라처럼! 솔라처럼! 솔라, 솔라, 솔라!

죽어, 씨발 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단어가 솔라였다. 아니, 어쩌면 가장 많을 수도 있었다.

비단 황석대 사장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솔라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었다. 빌보드 차트는 물론이고 UK차트나 내수 위주인 오리콘 차트에서도 왕좌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워낙 성적이 좋아서 장기집권까지 가능할지도 몰랐다.

3년 차 중고 신인 걸그룹이 하루아침에 빌보드 탑을 찍는다는 각본은, 드라마로 나와도 말이 안 된다며 욕을 먹을 수준이었다. 그런데 솔라는 그런 신화를 현실에서 줄줄 써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솔라의 기획사이가 바로 ‘스타 엔터’.

어릴 때 같은 학원에 다녔던 절친 다영이가 소속된 곳이자, 현재 3대 기획사들을 모두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는 회사였다.

‘……그런 스타 엔터 오디션이라니……물론 좋은 기회기는 하지만…’

스타 엔터 1차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심장이 설렜었다. 내가 아직 뭔가를 이뤄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서 잠시 행복했다.

하지만 악마 같은 석대가, 자신이 다른 회사로 이적하는 꼴을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회사의 규모는 스타 엔터와 비교도 안 될 테지만, 성상납을 통해서 각종 업계의 높은 사람들과 단단히 묶여있는 석대였다.

특히 소송과 언론 플레이가 시작되면, 결코 이길 수가 없었다. 이런 것들이 루리가 석대에게 매일 학대를 당하면서도 도망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석대에게서는 절대 어떤 곳으로도 도망갈 수 없었다. 죽는 것밖에는 없었다.

띠링­.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고 오히려 자신의 노예 같은 처지만 더 확실해져서 침울해져 있던 루리는 우울한 눈으로 다영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이내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는 루리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 다영의 비타민 같은 기운이 핸드폰 화면 너머로 전해져 왔다.

그리고 쓸모도 하나 없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동생이 있다는 게 감격스러워서, 툭하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다영이 ­ 방금 대표님한테 언니 사정 간략하게 말씀드렸더니, 언니는 특별히 1대1 오디션으로 해주시겠데요!

다영이 ­ 우리 대표님은 정말 신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단 오세요.

다영이 ­ 언니가 욕하던 그 악덕 사장도, 우리 대표님 앞에서는 귀엽게 까불대는 양아치 정도랄까…?!

루리 ­ …고마워 다영아. 일단 네 말대로 해볼게. 근데 1대1 오디션은 언젠데…?

다영이 ­ 내일 오전 중에요! 언니가 그런 회사에 1초라도 더 있는 게 싫어서, 제가 대표님 엄청나게 졸라서 약속 일정을 초초초 단축해버렸답니다 ^­^

루리 ­ ……당장 내일?

다영이 ­ 넹! 안 돼요? 안되면 지금 대표님한테 말씀드릴게요.

루리 ­ 아니……안 되는 건 아닌데……너무 갑작스러워서.

다영이 ­ 괜찮아요, 언니! 일단 와서 대표님하고 만나봐요! 울 대표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니까!

“……완전 푹 빠졌네………부럽다…”

대표에게 푹 빠져있는 듯한 다영이의 반응을 보고 루리는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석대 같은 악덕 대표의 노예로 살면서, 대표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벌벌 떨리는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마 엄청 친절하고 다정하겠지. 다영에게 들었던 거로는 얼굴도 끝내준다던데.

그런 완벽한 대표는 아니어도, 적어도 손찌검은 안 하는 대표만 만났어도 좋았을 것을….

“……아! 어, 어떡해! 읏­!”

바닥에 누워있던 루리가 깜짝 놀라서 갑작스레 몸을 일으키려다가, 삭신이 쑤셔서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가쁜 숨을 내쉰 루리를 어떻게든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해보니 지금 몸 상태가 말도 안 되었다.

넝마 짝이 따로 없는 몸으로 오디션은 무슨 오디션.

‘망, 망했어……!’

****

최근 민준은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솔라의 초대박과 다영과 레이첼, 그리고 새롬 등이 소속된 솔라의 후속 그룹을 런칭이 겹쳐, 현재 스타 엔터 모든 부서는 야근이 기본값이었다.

인력 수급이야 진작부터 과할 정도로 하고 있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MJ인베스트먼트 쪽이야 원래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거기에 스타 엔터까지 더해지니 천하의 이유나가 인력 관리만 하기에도 벅차하는 수준.

만약 수연에게서 얻은 카메라까지 없었다면, 정말 숨 쉴 틈조차 없을 뻔했다.

찰칵­. 찰칵, 찰칵­.

민준은 스타 엔터 대표실에 앉아서, 낡은 디지털카메라로 책상 위에 올려진 이력서를 한 장 한 장 찍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재 영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타고 회사에 몰래 잠입할 각종 빌런들을 걸러낼 겸 하던 일이었는데, 막상 활용해보니 스파이는 물론이고 수천, 수만 명의 사람 중에서 유능한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콕콕 집어낼 수 있었다.

딸각­. 딸각­.

사진기의 스틱을 조작해 이력서 속 증명사진을 유심히 쳐다보던 민준이,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들을 종류별로 정리했다.

증명사진 속에서 휘황찬란한 광휘가 보이는 이들, 광휘까지는 아니어도 환하게 빛나는 사람들, 그리고 불길하고 어두운 빛깔이 맴도는 사람들까지.

하나하나 분류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워낙 많다 보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느낌이었다.

“끄윽­!”

민준은 마침내 서류 분류를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뚫어져라 작은 화면만 쳐다봤더니 눈이 침침한 기분이었다.

워낙 규격 외의 신체를 가져서 실제로 그럴 리는 없었지만, 기분이 그랬다. 기분이.

‘…안 되겠다. 좀 쉬어야겠어.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휴식은 아니겠지만…’

민준은 컴퓨터를 켜서, 유송아 실장이 비밀리에 보내온 문건을 집중해서 샅샅이 훑었다.

문건 MJ인베스트먼트와 스타 엔터 직원 중에서도 유독 비주얼이 뛰어난 미녀들의 프로필이 들어있었는데, 회사가 커질수록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민준은 이제부터는 회사를 위해서라도 더 많은 인재를 폭발적으로 양성해낼 생각이었다.

물론, 인재 양성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섹스였고.

“음­. 크흠­.”

직원들의 성격이나 신체적 특이사항, 사내에서의 위치와 영향력, 심지어 가족관계까지 잘 정리된 상세한 프로필이었다. 뭐, 솔직히 그런 것들은 크게 필요 없었고, 그냥 저 아름다운 직원들과 폭풍 섹스할 생각에 벌써 꼬추가 불끈불끈했다.

문건 안에 있는 인재 중 한 명을 대표실로 오라고 할까 했는데, 막상 맛있어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영 힘들었다. 마치 31가지 맛을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온 기분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일단 급하게 한 발 빼고 차분한 상태에서 프로필을 염탐하기 위해 민준은 비서들을 부르려 했지만, 타이밍 좋게 먼저 전화가 울렸다.

어디선 전화가 온 건지 확인한 민준이 손을 뻗어서 전화기를 잡아 들었다.

“네. 무슨 일 있나요?”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이루리라는 분이 찾아왔는데…

“네. 약속이 잡혀있는 분이니까, 올려보내셔도 되는데요.

­그게 복장이 영 이상해서……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가볍게 몸수색만 해보겠다고 해도 거부하고 계십니다.

“복장이 어떻게 이상한데요…? 아니, 뭐 설명할 필요는 없고 일단 올려보내세요. 이상한 짓 하실 분은 아니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뚝­.

민준은 전화를 끊고, 혹시나 해서 다시 디지털카메라를 확인했다. 루리의 증명사진에서는 여전히 영롱한 광휘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시는 수준이었다.

“…이런 사람이 위험할 리가 없지. 더 없이 충성스러운 교인이 될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그런데 복장이 이상하다는 소리는 뭐였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곧 보게 될 테니까.

똑똑­.

­대표님. 이루리 님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민준은 집무실 책상에 앉아서, 정면을 바라봤다.

문이 조금씩 열리고 루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민준은 곧바로 왜 굳이 경비실장이 루리의 복장이 이상하다고 보고를 올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놀라운 광경에, 민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게 미라야? 사람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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