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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205화 (205/270)

〈 205화 〉 205화

* * *

“하아­. 헤으, 흐으응­.”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흐아, 하응­.”

누가 보면 섹스 하는 줄 알 정도로 거친 숨소리였다.

민준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아리아나에게 물었다.

“혹시……힘들어서 그래요?”

“하아, 하으……그, 그런 거 아니니까, 길 막지 말고 어서 올라가기나 해!”

버럭 짜증을 내는 게 누가 봐도 힘들어서 잔뜩 신경질이 난 사람 같았다.

민준은 당황스러웠다. 여기는 남산의 정상 부근이었다.

물론 높은 곳이긴 했지만, 마냥 걸어서 올라온 건 아니었다. 아니, 차를 타고 와서 케이블카로 여기까지 왔으니 정확히 말하면 거의 걷지 않았다.

그런데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올라가는 그 짧은 코스를 오르는데, 아리아나가 죽을 듯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저칠 체력도 이런 저질 체력이 없었다.

‘이래가지고 공연은 잘하려나…?’

문득 든 생각에 민준의 눈빛이 짜게 식었고, 남의 시선에 예민한 아리아나는 또다시 발끈했다.

“왜 그렇게 보는데? 힘든 거 아니라고!”

“아, 네. 그럼 계속 올라가죠. 조심히 따라오세요.”

“뭐래. 내가 먼저 갈 거야. 당신이야말로 조심히 따라와.”

아리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산을 올랐다. 몇 계단 앞서있던 민준을 순식간에 추월해서 두 칸씩 성큼성큼 걸어갔다.

힘들어서 좀 헉헉거렸다고 사람을 깔보다니. 5시간짜리 공연도 밥 먹듯이 해내는 슈퍼스타를 몰라보는 민준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었다.

“하아, 하응­. 흐아, 하아, 하으으­.”

하지만 즐기면서 하는 공연과 등산은 엄연히 달랐다. 아리아나는 몇 걸음 걷다가 탈진하고 말았다. 한 칸씩 천천히 걸어도 힘든데 흥분해서 두 칸씩 깡충깡충 뛰어다녔더니, 발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별, 별거 아니야.”

민준은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리아나의 안색을 확인했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내미니까, 아리아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아리아나는 고개를 돌린 그 상태로 작게 조잘거렸다.

“그, 그쪽이야말로 걸음이 느린 게 힘든 거 같은데……너무 힘들면 조금 쉬었다가 가줄 수도 있어……”

“아뇨. 이제 곧 전망대 이용 시간이 끝나서, 빨리 가야 해요.”

“뭐? 그런데 나를 왜 데려온 거야? 시간도 얼마 없는데.”

“지금 가야 사람들이 별로 없거든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리아나가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해서요.”

“……흥. 말, 말은 잘하네.”

아리아나는 민준과 시선을 맞춘 상태가 아니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잔뜩 빨개진 볼이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가라앉히려고 해봐도 심장이 자꾸만 고장 난 것처럼 쿵쿵댔다.

“……너무 힘들면 업어줄까요?”

“……뭐?”

“업어줄게요. 아리아나가 워낙 힘들어하니까……”

“힘든 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시간이 부족하니까 제가 업어드릴게요. 제가 아리아나를 업고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으니까……”

“아, 아니. 잠시만……”

아리아나가 말릴 새도 없이, 앞에 있던 민준이 무릎과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를 낮췄다. 아리아나의 앞에는 태평양처럼 넓은 민준의 등이 보였다.

“어서요. 5분 안에 가야 그나마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거든요.”

“정말……그쪽이 재촉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절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럼요. 알겠으니까 업히기나 하세요.”

“읏, 으으­!”

아리나아는 자신을 서슴없이 일반인처럼 대하는 민준을 보며, 분하면서도 신선한 감정을 느꼈다.

슈퍼스타들이 대개 그렇듯, 어릴 때부터 재능을 타고났던 아리아나는 10살이 되기 전에도 이미 스타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늘 그녀의 곁에 있었지만, 모두가 팬 아니면 역겨운 사업가였다.

그녀를 신처럼 찬양하거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정도로 보는 사람들. 정작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와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리아나는 조금은 멍하니, 민준의 등을 바라봤다.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빨리 업히세요. 이러다 전망대 닫힌다니까요?”

“아, 알았다고. 정말. 재촉하기는……”

아리아나는 조심스럽게 민준의 등에 업혔다.

아까 먹었던 애플 망고 빙수 한 수저가 원망스러웠다.

‘무거워서 헉헉대면……진짜 짜증 낼 거니까…!’

스윽­.

하지만 민준의 등에 업힌 아리아나는 자신의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엄, 엄마얏!”

“꽉 잡아요. 안 잡아도 내가 잡긴 하겠지만.”

민준은 아리아나를 업고 너무나도 가볍게 일어났다.

아리아나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최고급 매트리스 같은 민준의 등에 업혀서, 빠른 속도로 산을 올랐다. 심지어는 아리아나가 두 발로 평지에서 걸을 때보다 훨씬 빨랐다.

아리아나는 민준이 자신을 배려해서 일부러 걸음을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해서 민준의 등이 넓고 흔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도저히 내리기 싫을 정도로 포근하고 따듯하다는 것까지.

“다 왔다. 이제 내려요.”

“응? 벌써 다 왔어?”

“네, 이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돼요.”

“그, 그래? 그, 그럼 내려야겠지……아, 아니다. 잠깐만…!”

“네?”

“다, 다리 아파! 다리 아파서 못 걷겠으니까, 그쪽이 계속 업어줘.”

“뭐, 그건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이 쳐다볼걸요?”

“쳐다보긴.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다니더만. 오히려 이렇게 가는 게 의심 안 받을걸?”

아리아나의 말은 꽤나 왜곡되어 있었다. 등산로 쪽에서는 몰라도 전망대에서까지 여자를 업어주는 커플은 없었다. 있다고 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닭살 커플 정도.

하지만 아리아나를 교화시키는 게 목표인 민준은 아리아나의 투정을 적당히 받아주었다. 아리아나는 깃털보다 조금 무거운 수준이라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단지 업혀있는 아리아나의 허벅지를 받치느라 손이 영 이상한 곳에 닿는 것과 등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아리아나의 보드라운 살결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자꾸만 그곳에 신호가 불끈불끈 오고 있다는 걸 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흠­. 생각보다 괜찮네.”

“그래요?”

전망대에 올라서 민준과 아리아나는 오붓하게 서울의 야경을 구경했다.

아리아나가 어느 쪽을 보고 싶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민준이 아리아나를 업고 그쪽으로 걸어가 주는 식이었는데, 아리아나는 민준을 조종하는 게 재밌어서 일부러 더 오랫동안 야경을 구경했다.

“높은 곳에서 보니까 확실히 다르네.”

“하긴. 아리아나는 키가 작으니까……”

“……귀 깨물어 버린다?”

“음. 그건 좀 위험할걸요?”

“그러니까 깨물 거야. 작다고 놀리지 마.”

“꼭 그래서 위험한 건 아니긴 한데……”

민준과 아리아나는 사이좋게 야경을 구경하고, 밥을 먹기 위해 전망대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렸다.

너무 분위기가 좋아서 커플들이나 올만 한 느낌이었지만, 아리아나는 굳이 딴지를 걸지 않았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서 이렇게 기분 좋은 게 얼마 만인데,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여기 바닥이 빙글빙글 돌아가요. 그래서 360도로 서울을 볼 수 있는 거죠.”

“뭐, 좋네. 근데 술은 안 시켜?”

“시켜요? 저는 좋은데, 아리아나는 관리를 할 것 같아서.”

“공연까지 꽤 남아서 괜찮아. 오늘은 한잔하고 싶어.”

“그래요. 그럼 적당한 와인으로 시킬게요. 원래 술을 즐겨 마셔요?”

“뭐……가끔?”

아리아나는 사실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혐오하는 편이라고 해도 좋았다.

옛날에 파티에 참석했다가 꽐라가 된 굴욕 사진이 찍혀서 스캔들이 터진 이후로는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다.

특히, 그 사진을 찍어서 언론사에 거액을 받고 건넨 게 한때는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걸 안 뒤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짠­.

음식과 술이 나오자, 민준과 아리아나가 술잔을 채우고 건배를 했다.

그리고 그제야 얼굴을 반쯤 가리는 빅 사이즈 볼캡을 벗어던진 아리아나가 술을 꼴깍꼴깍 들이켰다. 손님도 별로 없고 자리도 확실히 가려져 있어서 조금은 안심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캬­. 진짜 요정 같네.’

민준은 와인을 마시는 아리아나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작고 가녀린 체구였다. 키는 160이 될까 말까 해 보이는데 얼굴이 주먹만 해서 비율이 완벽했다. 그 주먹만 한 얼굴에, 어떻게 저렇게 뚜렷하고 선명한 이목구비가 모여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히스패닉 계열의 피가 조금 섞여 있는지 하얀 피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검은 것도 아닌 흑설탕 같은 색깔이었다. 저 피부가 얼마나 탄력적인지는, 아까 아리아나를 업고 있을 때 잔뜩 느낄 수 있었다.

“뭐야­. 뭘 그렇게 봐?”

“흠. 죄송합니다. 너무 예뻐서 그만.”

“……케헥, 큽­. 케헥­!”

민준이 대놓고 작업 멘트를 날리자, 잔뜩 당황한 아리아나가 사레에 들려서 캑캑댔다.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아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괜찮아요?”

“큽, 흐아, 흐으­. 괜, 괜찮아.”

“물 좀 마셔요. 미안합니다. 느닷없이 흰소리를 해서……”

“아, 아니야! 듣, 듣기 싫지는 않았어……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갑자기 진지하게 사과하는 민준을 보며, 아리아나는 크게 당혹해하며 손사래를 쳤다.

수없이 많이 들어본 예쁘다는 소리 중에 제일 듣기 좋았으니, 단지 민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깜짝 놀라지만 않았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음. 괜찮네.”

“그래요? 다행이네요.”

작은 소란이 지나가고, 민준과 아리아나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민준이나 아리아나가 애용해 온 최고급 식당들에 비하면 조금은 떨어지는 맛이었지만, 분위기가 워낙 화기애애해서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고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난 아리아나는 민준을 상대로 마음껏 수다를 떨었다.

언제나 이런 상황을 원해왔던지라, 오늘 처음 본 사이라거나, 민준이 자신을 억지로 한국까지 오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에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실지 몰라. 민준은 나를 좀 내버려 둬. 언제 봤다고 과보호야?”

“보호해야죠. 아리아나도 알고 있잖아요.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흥. 대단하긴. 친구 한 명도 없는데……민준, 그거 알아?”

“……뭘요?”

“나 사실 공연만 끝나면 엄청 우울해. 막 펑펑 울 때도 있어. 세상 어느 곳보다 화려한 콘서트 장에서 수만 명의 환호를 듣다가, 혼자 호텔 방에서 쓸쓸하게 잠드는 그 기분이 미치도록 싫어서.”

“음­.”

“그래도 중독된 것처럼 공연을 못 끊겠어. 그때만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아. 뭐, 가수들은 다 그렇겠지만……하아. 공연 끝나고 통화 한 통쯤 할 수 있는 친구만 있어도 이렇게 우울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 저한테 하면 되죠. 친구 해드릴게요.”

“……정말?”

“어렵지 않죠. 얼마든지 전화 거세요. 가끔은 제가 아리아나한테 걸기도 할게요. 팝스타랑 친구 하는 걸 누가 마다하겠어요.”

“좋, 좋아. 꼭 친구로서 걸지는 모르겠지만……”

“네?”

“아, 아냐. 그냥 혼잣말.”

식사는 그렇게 끝이었다. 조금은 과음을 한 아리아나는 알딸딸하게 취해 민준의 등에 업혔고, 민준은 아리아나를 업고 다시 남산을 내려갔다.

“아~~호텔로 가기 싫어. 나는 사실 호텔이 제일 싫어. 맨날 호텔이야. 눈뜨면 호텔, 눈감아도 호텔.”

아리아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려댔다.

“그럼 가고 싶은 곳 있어요?”

“클럽. 클럽 가서 놀자. 민준.”

“안 돼요. 스캔들 내고 싶어요?”

“뭐, 그런 스캔들은 나쁘지 않을지도.”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쨌든 클럽은 안 돼요.”

“그럼 다른 곳 아무 데나.”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아리아나. 이쯤하고 숙소로 가는 건……”

“싫어. 안 돼. 절대 못 가. 드라이브라도 하자. 응?”

“……음, 오케이. 그럼 한 시간 정도만 돌고 들어가는 거예요. 알겠죠?”

끄덕끄덕­.

아리아나가 민준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술까지 먹어서 그런지 더 헤어지기가 싫었다. 호텔로 가면 오늘은 이걸로 끝이었는데, 아리아나는 도저히 이렇게는 오늘을 보내주기가 싫었다.

부우웅­.

민준은 남산 둘레길을 천천히 타고 돌았다. 솔직히 야경이야 이미 질리도록 봤지만, 풍경은 말 그대로 풍경일 뿐이었다.

차 안에서 아리아나는 정말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쉬지 않고 수다를 떨어댔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적당히 뻔한 대답들을 해줬을 뿐이지만, 아리아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자신의 얘기를 호들갑 떨지 않고 들어주는 게 좋았다. 민준과 함께하는 지금만은 슈퍼스타나 천재 아티스트라는 따위의 수식어를 어깨에서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런 편안한 분위기가 깨진 건 아리아나가 어쩌다 발견한, 갓길에 세워져 있는 차들 때문이었다.

“어? 여기는 갓길인데도 차들이 많이 세워져 있네? 뭐가 있나 본데? 야경이 유독 멋있나?”

“그래요? 일단 세워볼까요?”

“응! 뭔지 궁금해!”

끼이익­.

민준이 차들이 일렬로 쭉 세워져 있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아리아나가 차에서 내리려는데, 민준이 갑자기 아리아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 아? 민준?”

“잠시 만요. 아리아나. 내리지 말아 봐요.”

“어? 왜, 왜……?”

“여기 왠지……느낌이 이상한데.”

“응? 뭐가?”

민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리아나에게 턱짓으로 앞차를 가리켰다.

아리아나는 시선을 돌려서 앞차를 유심히 봤고, 곧 아리아나의 볼이 터질 것처럼 빨개졌다.

덜컹덜컹덜컹. 쿵덕쿵덕쿵덕.

앞차는 안에서 승마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쉬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다.

“차, 차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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