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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181화 (181/270)

〈 181화 〉 181화

결과부터 말하자면, 제임스는 게이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음흉한 남자일 뿐이었다. 아니, 평범하다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엄청나게 음흉한 남자였다.

“이쪽은 화끈한 SM 플레이가 가능한 교도소 컨셉의 방이고…아, 그리고 이쪽은 병원처럼 꾸며놓은 방…당연히 간호사복도 준비되어 있고요.”

5층에 올라가기 전, 제임스는 민준을 데리고 4층에 있는 여러 가지 방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제임스는 지금까지 워낙 바쁘게 살아서, 섹스를 한다고 해도 호텔이나 집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흔한 섹스의 질려버린 제임스는, 4층에 있는 방 전체를 리모델링 해서 집에서도 온갖 컨셉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개조시켜 버렸다. 교도소, 학원, 병원, 기내 화장실 등등. 없는 게 없는 수준이었고, 그 퀄리티 또한 대단했다.

복장이나 기구들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방만 떼어놓고 보면 진짜 교도소나 병원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정도였다.

‘햐-. 이 사람 완전히 변태네-. 나보다 더한 사람은 오랜만인데…?’

민준은 흔치 않은 변태력을 자랑하는 제임스를 보며 크게 흠모하고 감탄하며 방들을 구경했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은 해수욕장 방이었다.

“와-…여기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오는군요.”

“역시. 안목이 있으시네요. 모든 방 중에서 가장 신경 쓴 방입니다. 특히, 특수제작한 저 디스플레이는 가격이 어마어마하지요.”

해수욕장 방 전면에는, 벽면을 전부 가리는 초대형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화면에서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는데 얼마나 화질이 좋은지 화면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문을 연 순간 정말로 와이키키로 워프했다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디스플레이 아래에는 인공 풀장이 설치되어 잔잔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모래가 가득 깔려있었는데, 전체적인 방의 습도나 발을 감싸는 모래의 질감, 심지어는 바닷가의 짠내마저 조절하고 있었기에, 이곳이 바로 뉴욕의 와이키키라도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하네요. 제임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와이키키로 가서 여유롭게 예쁜이들을 꼬시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민준 덕분에 회장직에서도 물러나고, 부동산이나 다른 매물들까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어서 금방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제임스가 적절한 가격에 팔아준 덕분에 저야 고마울 뿐이죠.”

4층 구경을 끝낸 두 사람은 서로 덕담을 나누며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은 마치 초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운지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통유리 창으로 보이는 뉴욕의 전경은, 이런 것에 무심한 편인 민준조차 감탄을 터트리게 하기 충분했다.

민준이 화려한 야경에 푹 빠져있는 동안, 제임스는 여러 종류의 술이 전시된 수납장으로 가서 샴페인을 따고 잔에 따라서 민준에게 건네주었다.

띵-.

두 사람은 가볍게 건배하고, 여유롭게 야경을 구경하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화려한 풍경에 걸맞게, 하늘에서 별을 마시는 듯한 샴페인의 풍미는 기가 막혔다.

제임스는 샴페인의 향을 음미하다가, 창밖을 보며 아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바닥을 기고 있지만, 빅스는 한때 600억 달러가 넘는 연간 매출을 올렸습니다. 원화로 하면 75조 정도 하겠군요.”

“알고 있습니다. 제임스의 빅스는 대단했죠. 빅스를 살 수 있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단지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기 위해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민준-. 갑작스럽겠지만……빅스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데에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네? 그게 무엇이죠?”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제임스를 바라보며, 민준이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제임스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니 약간의 비장함과 함께,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모를 적대심이 보이고 있었다.

“알파인 클럽이라는 사교 모임이 있습니다. 백인 중에서도 최상류층만 가입할 수 있는 모임인데, 아직까지 백인우월주의를 주창하는 정신병자 같은 놈들이죠. 하지만 가지고 있는 힘은 상류층 비밀 모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과격합니다. KKK단 같은 극우 집단은 물론이고 미국의 우파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전부 그쪽과 연관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

“민준은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삼각 위원회나 빌더버그 회의 같은 세계 질서를 위한 회의는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파인 클럽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백인들의 질서로 세상을 돌아가도록 만들고 있죠. 당장 미국만 보더라도, 흑인들이 해마다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지만 정부와 사법부가 늘 백인들에게 터무니없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소리죠.”

갑자기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 벗겨낸 기분에, 민준은 조금 멍해졌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비밀 탐사 티비 쇼에서나 들을법한 이야기였지만, 그 얘기의 주체가 빅스를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키워낸 제임스였으니 허튼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알파인 클럽에 관한 얘기가 계속될수록 제임스의 표정에 깃들어 있는 적대심도 점점 커지는 걸 보면, 제임스와 알파인 클럽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악연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저 역시 알파인 클럽의 멤버였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알파인들만 존재하는 커뮤니티 속에서 자랐었죠. 당연히 저 역시 백인우월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알파인들은 알파인이 아닌 다른 천민들과 섞이는 걸 극도로 혐오하고, 그나마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자란 모든 인물이 그런 식이니, 백인우월주의에 물드는 건 오히려 당연한 절차였죠.”

“음-…”

민준은 제임스의 말을 들으며 문득 올리비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서슴없이 인종차별을 해대서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건지 의심스러웠는데, 아마 올리비아 역시 제임스처럼 알파인 커뮤니티 속에서 자라난 것 같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연주만큼이나 교인 적성이 훌륭한 올리비아가 이렇게 엉망으로 자라날 수는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네. 메이어 가문에 대해서.’

민준은 잠시 올리비아와 메이어 가문을 떠올리다가, 다시 제임스의 말에 집중했다. 단 한 마디도 흘려들어서는 안 될 만큼, 제임스가 전해주고 있는 얘기는 중요해 보였다.

“하지만 저는 사업을 시작하고, 점점 진정한 세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다른 인종의 여자들이 가진 아름다움이 결코 백인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동양인이나 흑인들과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들 역시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점점 알파인 클럽을 멀리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탈퇴 당하고 말았죠. 제 사업이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 역시, 바로 그때부터입니다.”

“설마……클럽에서 탈퇴했다고, 제임스에게 보복을 가한 건가요?”

“네.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탈퇴하자마자 온갖 언론에서 빅스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대응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얼마 뒤에는 제가 세상에서 다시는 없을 쓰레기가 되어 있더군요. 물론, 빅스에 대한 평판도 날로 나락으로 떨어졌고요. 경영을 아무리 잘해봤자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두손 두발 다 잘린 채 넝마 짝이 된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죠. 민준에겐 미안한 일입니다.”

“미안하긴요. 빅스라는 대단한 회사를 이렇게 헐값에 산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잘 압니다.”

“음-.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만……제가 떠난다고 알파인 클럽에서 빅스에 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민준이 저의 꼭두각시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을 테니까요. 만약 그들의 신경에 거슬릴 만큼 민준이 경영을 잘 해낸다면, 다시 온갖 언론과 소비자 단체에서 빅스를 성토할 수도 있습니다. 민준에게 이 말을 미리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나중에 민준이 피해를 볼지도 모릅니다.”

제임스가 민준에게 깊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건넸다. 민준은 손사래를 치면서 제임스를 일으켰다.

제임스가 지적해준 부분들을 감안하더라도 빅스를 헐값에 사들인 건 분명했고, 제임스가 모든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덕분에 알파인 클럽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라도 대비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수익이야 쥬얼리들과 떡만 쳐도 적자 날 일은 절대 없으니, 언론이 어쩌고 기업 평판이 어쩌고 해도 다 꺼지라고 하고 마음대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임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는 훨씬 더 돈이 많습니다. 빅스가 지금처럼 적자를 본다고 해도 백 년 정도는 가뿐히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러니까 제임스가 잘 물려준 이 회사를 꼭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민준은 제임스를 보며 말했다. 아직 자신의 젊은 날을 다 바쳐 키워낸 빅스에 대한 애정이 깊이 남아 제임스는,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민준의 말에 눈시울을 약간 붉혔다.

“하하-. 늙다 보니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하는군요-. 이렇게 좋은 날에 굳이 질질 짤 필요는 없겠죠. 민준-. 당신 같은 사람에게 회사를 넘겨서 정말 다행입니다.”

짠-.

민준은 말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샴페인이 담긴 잔을 내밀었고, 제임스가 민준과 마주 웃으며 건배를 하자 뉴욕의 하늘에 청명한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

민준은 내려가기 전에 제임스에게 알파인 클럽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적자가 나도 상관없으니 부회장으로서 다시 빅스를 맡아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지만, 제임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민준은 아쉬웠지만, 제임스에게 그 이유를 듣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제 삶은 너무 바빴습니다. 죽을 때까지 돈만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많은 돈이 있는데, 일에 치여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죠. 이제는 휴양지나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인종의 예쁜이들을 꼬시며 여유롭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오랜 로망이었거든요.’

그렇게 얘기를 끝낸 민준과 제임스가 1층으로 내려왔다. 제임스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도 진짜 거물들에게만 민준을 따로 소개해 준 뒤, 이제부터는 즐길 시간이라며 민준을 버리고 여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휑하니 가버렸다.

“왔어요? 남자들끼리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어요?”

“그러니까요-. 민준을 기다리다가 폭삭 늙어버리는 줄 알았잖아요.”

민준에게서 마침내 제임스가 떠나자, 근처에 기회를 엿보던 라라 일행이 곧장 민준에게 접근했다.

가장 연장자이자 쥬얼리의 리더 격인 스테파니가 일행에 껴 있어서, 다른 쥬얼리들을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진한 아쉬움을 삼키며 민준이 제발 라라 일행을 까버리길 전력으로 기도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스테파니. 그리고 신디.”

“어머. 우리 이름 기억하고 계시네요? 쥬얼리들이 너무 많아서 기억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스테파니가 다시 한번 젖가슴을 은근히 내밀면서, 민준의 말에 크게 호응했다. 세 명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누가 민준을 차지하게 될지 모르니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매력 어필을 해놔야 했다.

설령, 세 명이 함께 다 같이 민준과 잔다고 해도, 민준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올 거라는 건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여러분들이 가장 빛났는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 세 분이 나란히 앉아 계시는 걸 보니, 가슴이 떨려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정말로요…? 민준도 저를 보면서 떨렸어요? 우리…같은 느낌을 느꼈네요…?”

신디는 아예 민준의 손을 잡고, 또다시 음탕한 눈을 한 채 민준을 유혹하듯이 올려다보았다.

민준과 눈이 마주치자 신디는 다시 한번 속으로 온갖 음란한 말들을 주문처럼 되뇌면서, 눈동자에 색기를 가득 불어넣었다.

“신, 신디-. 민준이 불편해하니까 너무 그러지 마.”

민준의 범상치 않은 거대 자지의 존재감을 느껴본 라라는 민준이 너무나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신디의 눈동자에 민준이 홀리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신디는 라라에 말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끊임없이 민준과 눈 맞춤을 하며 슬쩍슬쩍 민준의 몸에 자기 몸을 부비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라라와 스테파니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급하게 민준에게 달라붙어 육탄공세를 벌이기 시작했다.

파티에 있는 모든 여자가 민준을 노리고 있어서, 지금은 자존심 챙길 때가 아니었다. 오로지 부비부비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파티장 한구석에서 올리비아가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거짓말……거짓말……왜 그렇게 헤벌쭉한 표정을 짓는 건데…?! 나한테는 그렇게 차갑게 대했으면서, 왜 그런 하찮은 여자들한테는 미소를 보여주는 건데…!’

꾸욱-.

올리비아는 피가 통하지 않을 때까지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부릅뜬 채 민준을 유혹하고 있는 라라의 일행의 추태를 지켜봤다.

삐쩍 마른 여자가 하이에나처럼 민준에게 달라붙더니, 다른 여자들도 민준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천박하게 가슴을 비비고 허리를 음탕하게 흔들며 자꾸만 민준의 몸을 더럽히고 있었다.

‘손 떼…! 너희 같은 더러운 여자들이 만져도 되는 몸이 아니란 말이야…!’

몸을 비벼대는 것만 봐도 짜증 나서 죽어버릴 것 같은데, 여우 같은 여자들은 심지어 손을 뻗어서 민준의 몸을 이곳저곳 만져대고 있었다.

‘아…아아…! 제발! 제발 만지지 마! 너희 같은 여자들이 만져도 되는 몸이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올리비아는 속으로 절규했지만, 멈추지 않는 여자들의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손길에 곧 절망했다.

그리고 절망은 이내 분노로 바뀌어서, 올리비아의 모든 걸 태워버렸다.

“아, 뭐야-! 순서 지켜 이년아! 다들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야, 잠깐만. 저 여자 올리비아 메이어 아니야?”

“어…? 저, 정말이네…? 저런 여자가 왜 이런 작은 파티에 있는 거지…?”

눈이 완전히 돌아버린 올리비아가, 민준을 에워싸고 있는 쥬얼리들을 거칠게 밀치면서 민준에게 점점 더 다가갔다.

더 정확히는, 라라의 일행에게. 그것도 민준의 몸을 가장 탐욕스럽게 더럽히고 있는 신디를 향해 곧바로 직진하고 있었다.

‘더럽히지 말라고 했잖아……용서 못 해. 절대로 용서 못 해-.’

질투의 화신처럼 서늘하게 타오르고 있는 무서운 눈을 하고 있는 올리비아 작은 몸에서는,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듯 심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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