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179화
“…정말 그만해?”
“당연하지…! 이, 이런 건 싫단 말이야…!”
중요 부위에 닿을 듯 말듯 올리비아의 몸을 능숙하게 농락하던 민준이, 돌연 애무를 멈추고 올리비아와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민준의 얼굴이 훅 들어오자 올리비아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올리비아의 입에서는 단호한 거절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이야. 올리비아. 정말로 그만할까?”
“응, 그만해. 이런 건 싫단 말이야. 적, 적어도…!”
올리비아는 민준에게 적어도 몸을 깨끗이 씻은 뒤, 이렇게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더 부드럽게 해달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올리비아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혀를 차더니, 순식간에 침대에서 내려가 다시 상의를 입기 시작했다.
“쯧-. 내숭 떠는 줄 알았는데…진짜 싫다면 뭐 어쩔 수 없지.”
“……”
갑작스럽게 바뀐 민준의 태도에 올리비아는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겁탈하기 위해서 맹수처럼 무섭게 다가올 때는 언제고,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그, 그럼 나는…! 만, 만지지나 말던가! 이 나쁜 놈!’
물론, 민준이 가슴이나 성기 같은 중요 부위를 직접 만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간접적인 애무만으로도 이미 올리비아의 몸은 훌쩍 달아올라 있었다.
보지에서 흘러내린 꿀물 때문에 이미 팬티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둬 버리니 올리비아는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 어디 가는데…! 설마 이 시간에 밖에 나가려는 거야?”
옷을 챙겨 입은 민준이 시간을 체크하더니 곧장 화장실로 가는 걸 보고, 올리비아가 따지듯이 물었다. 민준은 올리비아를 힐끗 쳐다보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파티가 있거든. 너도 웬만하면 씻어. 나랑 같이 나가야 할 테니까.”
“…흥! 내, 내가 너랑 같이 파티에 왜 가는데? 꿈도 꾸지 마!”
“누가 파티에 같이 간 데? 그냥 호텔에서 나가라는 소리였는데…”
“읏…! 이 쫌생이! 그, 그냥 좀 있게 해줘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방도 많은데! 방, 방값 같은 건 내가 나중에 몇 배로 줄 수 있으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행이 있어서 그래. 그리고 나는 나랑 자지도 않은 여자를 내 방에서 재울 만큼 친절하지 않아.”
“……”
그럼 나랑 자던가-! 이 변태야-!! 라고.
올리비아는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아직 민준에게 완전히 삼켜지지 않은 자존심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솔직히 말하면 민준을 원하고 있는 건 맞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위대한 메이어 가의 상속녀인 자신이, 고작 방값 때문에 몸을 대주는 싸구려 창녀가 될 수는 없었다.
“뭐, 내가 나가기 전에 남는 화장실에서 씻는 것 정도는 허락해 줄게.”
“……신발도 없는데 어떻게 나가라고. 이 멍청아.”
“하아-. 진짜 손 많이 가네.”
“너, 너 때문에 망가진 거잖아…!”
올리비아가 울분을 터트렸지만, 민준은 가뿐하게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 5번가에서 사 왔던 쇼핑백들을 몽땅 든 채 방으로 돌아왔다.
쇼핑백 안을 훑어보던 민준이 몇 개의 쇼핑백을 침대맡에 던지고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얼타고 있는 올리비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쇼핑백 안에 신발 많이 있으니까 맘에 드는 거로 집어 가. 필요한 옷도 있으면 가져가고. 당연히 갚아야겠지만.”
“네, 네가 갚지 말라고 해도 몇 배로 갚을 거거든? 나를 뭐로 보고…!”
“처음으로 듣기 좋은 말을 하는군. 그럼 그렇게 알고 나는 이만 씻으러…”
“잠, 잠깐만! 이름도 번호도 모르는데 돈을 어떻게 갚으라는 거야! 빨, 빨리 내 핸드폰에 번호 찍어. 아니면 SNS 아이디라도 알려주던가.”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민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민준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번호를 얻으려는 올리비아의 엉큼한 속내가 훤히 보였지만 귀여워서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고는, 올리비아의 핸드폰에 자신의 이름과 번호를 순순히 찍어주었다.
“자-. 이제 돈 갚을 수 있겠네.”
“…민준? 킴민준?”
“그래. 발음 좋네.”
민준은 가볍게 한마디 툭 던지고 곧장 등을 돌리고 욕실로 향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민준에게 칭찬을 들은 올리비아는, 한동안 침대에 주저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에 열이 올라서 현기증이 심하게 났고, 귓가에서는 민준이 해줬던 발음 좋다는 칭찬이 자꾸만 맴돌았다.
“하아-……정말. 대체 착한 건지 나쁜 건지…”
올리비아는 연신 끈적하고 달콤한 숨을 내뱉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민준이 던져준 쇼핑백 속에서 옷과 신발을 고르기 시작했다.
최상급 명품 브랜드의 신상들이라 입을만한 옷들이 꽤 있었다. 극소수 VVIP에게만 먼저 구매 기회를 주는 그런 한정판 명품까지는 아니었지만, 가볍게 입기에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잠, 잠깐만-. 이, 이 속옷은 대체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 거야…?”
올리비아는 쇼핑백을 뒤지다가 민준이 미현을 위해 사두었던 망사 재질의 야시시한 브래지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브래지어의 문제는 망사인 것도, 야시시한 것도 아니고, 바로 사이즈였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자기 얼굴만 한 브라에, 올리비아는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큰 가슴이 필요 없다는 자신의 말에 코웃음을 치던 민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민, 민준의 취향은 이런 쪽인 걸까…이, 이건 글래머도 아니고 그냥 괴, 괴물이잖아. 설령 가슴 성형을 한다고 해도 이 정도 사이즈까지는…’
올리비아는 고개를 푹 숙여서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그래도 마른 것치고는 볼륨감이 있는 실속파 가슴이라고 생각했는데, 괴물 브래지어를 보다가 다시 보니까 그냥 껌딱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곧 머리를 털어냈다. 가슴은 몰라도 미모에는 자신이 있었다. 기껏 부모님께 아름다운 얼굴을 물려 받아놓고 굳이 가지지 못한 걸 보면서 작아질 필요는 없었다.
‘그래-. 민준에게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해야겠어. 민준도 보면 알겠지. 파티장에서 가장 빛나는 여자가 누구인지.’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감을 되찾고는, 갈아입을 옷을 고른 뒤에 샤워하기 위해 비어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민준과 파티에 갈 생각에, 그리고 파티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모조리 훔쳐 민준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올리비아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가지를 않았다.
바로 그 파티에, 전 세계 수십억 여성 중에서도 가장 섹시한 몸매와 비주얼을 갖고 있는 쥬얼리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
파티의 시작은 저녁 9시부터였지만, 8시 30분부터 맨해튼 울원스 빌딩의 꼭대기 층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울원스 빌딩은 맨해튼에서 가장 높고 유명한 빌딩 중 하나였고, 그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자랑했다.
파티가 열리고 있는 5층짜리 펜트하우스 같은 경우 1000원 억을 호가하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원래는 빅스의 전 회장이었던 제임스가 소유하고 있었지만, 오늘부로 소유권이 민준에게 넘어갈 예정이었다.
펜트하우스의 어마무시한 가격만큼이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월가를 주무르는 기업의 간부들부터, 저명한 신문과 잡지의 편집장급 인물들과 SNS의 질서를 주도하는 거대 인플루언서, 재벌 가문의 자제들까지.
직업은 다들 달랐지만,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만 이 펜트하우스에 초대를 받아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난다 긴다고 해도, 정작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인물들은 따로 있었다.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자들. 오로지 몸매와 얼굴로만 승부하는 세계에서 탑티어에 올랐던 랭커들.
바로, 빅토리아 스페셜의 전직 ‘쥬얼리’들 이었다.
“라라…! 이게 얼마 만이야!”
“라라! 더 예뻐졌네?”
“신디! 스테파니! 잘 지냈어?”
라라와 신디, 그리고 스테파니가 서로 포웅을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껏 화려하게 꾸민 채 아찔한 킬힐까지 신고 있는 그녀들이 모여서 인사를 나누자, 마치 이 거대한 펜트하우스가 오로지 그녀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의 시선 그녀들에게 끈적하게 달라붙었지만, 그녀들은 일상이라는 듯 주변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회포를 풀었다.
칵테일을 마시며 화려한 클럽 음악에 맞춰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웃고 떠드는 그녀들의 모습을, 남자들은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너무 다른 세계 같아서 다가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한두 명이면 모르겠는데, 속속들이 도착한 쥬얼리들이 모여들어 아예 집단을 형성하니까 끼어들 틈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9시가 되자 쥬얼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줄줄이 걸어가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쥬얼리들을 따라 슬금슬금 올라가 봤지만, 덩치가 어마어마한 가드들이 꽉 막고 있어서 쥬얼리들 이외에는 누구도 2층 이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어…뭐야?!”
“가드!! 저 새끼는 왜 안 막는데! 3층으로 올라가는 거 안 보여?!”
그런데 그때, 모두가 제지당하는 가운데 홀연히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성난 남자들은 가드에게 불만을 제기했지만, 가드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불만을 제기한 사람들을 하나씩 노려봤고, 질투심에 눈이 멀었던 남자들은 가드의 살벌한 눈빛을 마주하고 곧 조용해졌다.
여기는 미국.
재벌이고 CEO고, 사회에서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기본적으로 총을 소지하고 있는 전문 가드들에게는 절대로 까불지 않는 게 국룰이었다.
‘좋아. 역시 총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네. 음…나도 총에는 안 되겠지…?’
민준은 유유히 3층으로 올라가면서, 만약 총기에 위협 당하는 상황에 닥치면 극복할 수 있을지, 잠깐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문득 생각난 게 아니라, 총기의 나라인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부터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던 문제였다.
‘그래도…적당한 거리에서 무빙을 아주 열심히 치면 몇 발 정도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총알은 피할 수 없겠지만, 어차피 조준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
그렇다면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은폐, 엄폐하며 현란하게 무빙을 치면서 총알을 소모 시키면 어느 정도 승산은 있을 것 같았다.
몇 발짜리 권총이 아니라 자동 소총 같은 게 튀어나오면, 무빙이고 뭐고 얌전히 손들고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겠지만….
‘큭-. 미국에 오니 별생각이 다 드네. 설마 진짜 총 맞을 일이야 있겠어?’
민준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머리를 비워냈다. 가진 게 많아지니 별생각을 다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미국이 총기의 나라라지만, 치안 좋은 뉴욕에서는 안심해도 괜찮겠지.
“와앗~? 설마…당신이 민준 킴…?”
민준은 시선을 약간 돌려서, 호들갑스러운 소리가 들려온 진원지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금발 머리를 올백으로 느끼하게 넘긴, 멀끔한 정장 차림의 백인 중년이 서 있었다.
사진으로 본 적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민준은 자신감 있게 다가가서 어리바리 까고 있는 제임스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네, 제임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허어-…왔 더……목소리로 들었을 때 젊다는 건 알았지만……민준은 회장이 아니라 회사의 대표 모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제임스도 스타일이 좋으시네요.”
“네? 크하핫. 감사합니다. 진짜 잘생긴 민준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무척 좋네요. 하하하하-.”
제임스는 민준의 가벼운 칭찬에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민준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약간의 오버 리액션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의 외모를 무척이나 중시하는 제임스는 조각처럼 잘생긴 민준을 보자마자 엄청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제임스의 뒤에 있는 거대한 소파에 둘러앉아서 눈을 빛내며 민준을 바라보고 있는 쥬얼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헐-…저 사람이 빅스의 새로운 회장이라고? 이제 스무 살이나 됐으려나…?”
“라라. 지금 그게 문제야…? 난 저렇게 잘생긴 동양인은, 아니 모든 인종을 다 통틀어서 저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 봐…완전 내 스타일-.”
“신디, 너 원래 동양인 싫어하잖아.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포기해. 내가 이미 찜했으니까.”
“그건 아니지 스테파니. 너야말로 거기가 작다고 동양 남자는 안 만날 거라고 했으면서…!”
“피너스 좀 작으면 뭐 어때? 저렇게 잘생겼는데…!”
“그건 인정. 키스만 해도 가버릴지도 몰라.”
“말도 마. 난 이미 젖어버렸어-.”
라라와 신디, 그리고 스테파니는 쥬얼리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소위 말하는 삼대장이었다.
세 명 다 백인이었지만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다. 라라는 완벽에 가까운 슬랜더 체형, 신디는 라라보다 조금 더 마른 대신 옷맵시를 잘 받는 스키니 체형, 그리고 스테파니는 거의 육덕에 가까운 글래머 체형이었다.
“자자-. 집중해주세요. 이쪽은 빅스의 새로운 회장이 된 민준 킴-.”
“안녕하세요. 김민준입니다.”
그때, 제임스가 쥬얼리들이 앉아있는 소파 앞으로 민준을 이끌었다.
민준은 쥬얼리들 앞에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고,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긴 민준을 보며 6교시의 중학생들처럼 저마다 쑥덕거리던 쥬얼리들의 입이 일제히 닫혔다.
‘어우, 이건 뭐 뜨거워서 몸이 녹아버리겠네…’
민준은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영롱하고 이국적인 초록색, 파란색 시선들을 마음껏 음이 했다.
자유의 나라라 그런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쥬얼리들의 시선에 담겨있는 뜨겁고 끈적한 기운은 너무나도 진하고 강력했다.
마치, 발정기의 암컷들만 모아놓은 우리에 맨몸으로 던져진 기분.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섹슈얼한 분위기에, 민준의 심장이 흥분으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