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178화
“어이. 양키.”
올리비아의 무릎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일어선 민준이, 무덤덤한 말투로 올리비아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양키라는 심각한 비하 단어를 직접 듣는 건 난생처음인 올리비아는, 도저히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양, 양키…? 이, 이익…!! 난, 난 올리비아라고…!”
“먼저 시작한 건 그쪽이잖아. 날 칭챙춍이라고 불러놓고 설마 내가 널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라는 거야?”
“그…그건…! 내가 네 이름을 모르니까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몇 번이나 알려줬는데…!”
“누가 알려 달래? 그리고 이름 모르는 동양인은 무조건 비하하고 보는 버르장머리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제레미가 알려준 건가?”
갑자기 들려온 아빠의 이름에 올리비아가 깜짝 놀라서 민준을 째려봤다.
영락없이 모른 척하더니 사실은 자신의 집안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줄이야.
“너…너 내가 누군지 알고도 이런 식으로…! 날 이런 식으로…!!”
“아~ 메이어 가문의 상속녀? 그게 뭐 어쨌다고. 네가 어떤 가문의 자식이건 나는 골빈 여자는 싫어해. 인종 차별에 찌들어있는 여자는 더 싫어하고. 한마디로 너는 최악이라는 거지.”
민준은 여전히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올리비아의 가슴에는 민준의 말 하나하나가 뾰족한 가시처럼 날카롭게 틀어박히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올리비아는, 그저 발악하듯 민준의 말에 대꾸할 뿐이었다. 민준에게 자신이 최악으로 느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그, 그럼…! 그럼 반창고는 왜 붙여준 건데…! 최악이라면서 왜 나한테 잘해주냐고!”
“뭘 잘해줘. 고소당할까 봐 무서워서 보여주기식으로 붙여준 것뿐이야. 나 때문에 다쳤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한테 응급처치까지 해줬으니까, 네가 다친 거에 대해서 내 잘못은 없는 거다?”
“…흥. 이제 와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너, 너를 꼭 내 노예로 만들어서 평생 괴롭혀줄 거니까-. 기대해…!”
“그러시던가. 건방진 꼬맹아.”
“누, 누가 꼬맹이야! 이 미개……끄읏-.”
올리비아는 습관처럼 민준을 보며 미개한 아시안이라고 말하려다가, 인종차별을 하는 여자는 최악이라는 민준의 말이 떠올라서 급히 입을 닫아버렸다.
자신이 왜 민준의 말을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풀칠해놓은 것처럼 입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았다.
“꼬맹이지. 힐 벗으니까 키가 160도 안 되어 보이는데. 게다가 삐쩍 말라서……너야말로 백인이라고 하기엔 많이 빈약해 보이는데?”
“뭐래! 키보다 비율이 훨씬 더 중요하거든! 그리고 나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자한테는 큰 가슴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그랬어!”
“뭐?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우, 우리 아빠가…!”
“큭-. 그래. 네가 왜 이렇게 자랐는지 딱 보이네. 그저 오냐오냐해주는 게, 가정교육이 아닌데 말이지.”
“읏…! 말, 말이 너무 심하잖아…! 우리 아빠는 왜 자꾸 걸고넘어지는데?! 어서 사과해!”
올리비아는 정말로 분하다는 듯 표독스럽게 민준을 쳐다보면서 앙칼지게 말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공격적인 태도에도 민준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글쎄? 네가 먼저 나한테 인종 차별한 걸 진심으로 사과하면, 나도 사과할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지.”
“…크읏.”
“싫으면 말고. 사실 나도, 너 같은 골빈 여자한테 사과하기 싫으니까.”
“골, 골비지 않았어!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그러게 말이야. 너는 나에 대해서 대체 뭘 안다고 미개하다고 비하했던 걸까? 응?”
“그, 그건…”
올리비아는 말문이 막혀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민준을 만난 뒤로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민준이 공격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따지고 들어오자 당황스러워서 머리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아, 차 왔네-. 잘 있어, 꼬맹아. 앞으로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호텔로 갈 때 타고 왔던 리무진이 민준의 앞에 멈춰 서자, 민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별 인사를 건네며 짐을 챙겨 벤치에서 일어났다.
“잠, 잠깐만…! 설마 지금 날 내버려 두고 가겠다는 거야…? 너 때문에 내 꼴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알 게 뭐야. 위대한 메이어 가문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나, 나는 지금 가출했단 말이야…! 아빠랑 피 터지게 싸웠다고…!! 이익…! 당, 당장 멈춰…!!”
올리비아가 빠르게 짐을 싣고 차에 타려 하는 민준의 뒷모습을 보며 악을 질러 댔지만, 민준의 행동에는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다급해진 올리비아는 맨발로 뛰쳐 가서 민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신용 카드고 뭐고 다 막혀있는 상태라, 민준이 이렇게 떠나버리면 정말 대책이 없었다. 그나마 가출할 때 갖고 왔던 현금다발은, 조금 전에 망가져 버린 힐을 사느라 전부 탕진해 버린 상태였다.
“안 돼…! 못 가! 절대 못 가! 가려면 같이 가!”
“…허. 가문이 어쩌네 하더니…꼴이 좋네? 올리비아 메이어.”
“으읏-……제, 제발. 내, 내가 잘못했어…”
“응? 뭐라고?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리네…?”
“흐, 흐윽-! 내, 내가 잘 못 했다고…!! 인종 차별한 거, 너한테 미개하다고 한 거……사과할게…! 그, 그러니까 제발…제발 나 버리고 가지 마…뭐, 뭐든 할 테니까……”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거 같군.”
민준은 말을 마치고, 격하게 빽허그를 하고 있는 올리비아의 손을 떼어놓고 차에 올라탔다.
올리비아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민준이 자신을 놓고 갈까 봐 가슴이 철렁했지만, 민준이 차 문을 닫지 않은 걸 보면서 다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빨리 안타면 버리고 간다?”
“탈, 탈게! 빨리 탈 테니까…!”
올리비아는 민준의 재촉에 차 안으로 몸을 쑤시듯 욱여넣고 차 문을 닫았다.
민준은 올리비아가 차에 올라타는 걸 확인한 뒤 기사에게 호텔로 가달라고 부탁했고,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리무진은 금방 도착했다.
“편하실 때 내려오시면 파티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네, 고마워요.”
민준은 차 문을 열고 나가 손짓으로 벨보이를 불러서, 두둑한 팁과 함께 짐을 맡겼다.
그리고 곧장 올라가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차 안에서 올리비아가 나오지 않았다.
민준은 표정을 굳힌 채 올리비아가 타고 있는 쪽의 차 문을 조금 신경질적으로 열었다. 위협적인 소리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올리비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뭐야. 안 내려?”
“어, 어떻게 내려…! 나 지금 맨발이라고…! 이 호텔에 내가 아는 사람만 몇 명인데…혹시나 이런 거지 같은 꼴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쪽팔려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하-. 진짜.”
“한, 한숨 쉬지 마…! 너 같은 서민은 이해할 수 없는 명문 가문의 명예라는 게…! 읏-! 잠, 잠깐만…! 뭐 하는 거야…!!”
민준은 한숨을 푹 쉬고는, 리무진의 시트를 잡고 내리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올리비아를 가볍게 제압해서 안아 들었다.
“읏…! 뭐, 뭐 하는 거야!! 이, 이 변태가…!! 멈춰! 멈추라고…!!”
갑작스러운 민준의 행동에 깜짝 놀라 심하게 발버둥을 치던 올리비아는, 민준이 정말로 자신을 안고 성큼성큼 호텔의 정문 안으로 들어가자 다급히 민준의 품 안에 고개를 깊숙이 파묻어 버렸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민준의 넓은 품 안에 아예 상반신을 구겨 넣는 느낌으로 최대한 민준의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민준의 품이 얼마나 넓고 단단한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올리비아는 훅 들어온 청량하고도 깊고 진한 민준의 페로몬 냄새에 단번에 취해버렸다.
단 한 모금 들이마셨을 뿐인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고 숨이 가빠졌다.
‘하아, 흐으응…거, 거짓말…이 남자…도대체 정체가 뭐야…흐앙-. 나, 나 왜 이렇게 몸이…’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호텔의 꼭대기까지 도착해 ‘띵-.’ 하는 소리는 내고 있었지만, 민준의 품에 안겨 민준의 향기에 취해있는 올리비아에게는 그 높고 경쾌한 알림음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숨을 쉴수록 숨이 가빠져 오는데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숨결에 묻어있는 민준의 냄새가 너무 진하고 달콤해서, 자꾸만 기분이 이상해져 갔다.
“흐아-. 흐우웅-. 하응, 흐으-……”
“…”
민준은 올리비아의 색정적이고 야릇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피식 웃고는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올리비아의 숨소리는 가녀린 체구답게 작고 연약한 새소리와 같았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따먹고 싶은 충동이 차올라서 자지가 불끈거렸다.
‘하지만…아직은 좀 이르지. 아무리 호텔 룸이 넓다고 해도 제대로 신음을 내기 시작하면 어차피 다 들릴 테니까, 자고 있는 일행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말이야.’
자는 걸 깨우는 것도 미안한 일이었지만, 낯선 여자의 신음 소리로 그녀들의 잠을 깨우는 더더욱 미안한 일이었다.
특히, 요즘 들어 집착이 심해져서 투정을 부려대는 유나라면, 미국 일정을 하는 내내 삐져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올리비아를 따먹는 건 보류.
‘그래도…장난 정도는 쳐도 되겠지…?’
민준은 올리비아를 안은 채, 수많은 방 중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일행들이 자고 있는 방과 가장 멀리 떨어진 방이었다.
철컥-.
민준은 방문을 닫으며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 불순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올리비아는 여전히 민준의 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 아, 아우으-……”
민준이 올리비아를 침대에 내려놓자, 올리비아는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울어댔다. 달콤한 민준의 품에서 떨어지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본능적으로 나온 소리였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이 어떤 소리를 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끈적하게 녹아버려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헤에?”
하지만 아무리 그런 상태라고 해도, 적어도 남자가 여자 앞에서 옷을 벗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웃통을 벗고 순식간에 상반신을 드러낸 민준의 단단한 상체를 보고 있는 올리비아의 커다란 눈동자가 서서히 떨려오다가, 이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지금 너-…너, 뭐 하는 거야?”
민준을 보며 말을 하는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올리비아는 심상치 않은 민준의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슬금슬금 뒤로 움직이면서, 이불을 잡고 자신의 몸 위로 끌어 올렸다.
민준은 그런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너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설마 모르는 척하는 건가?”
“그게 무, 무슨 이상한 소리야…! 제, 제발 내가 알아듣게 얘기해!”
“허-. 이제 와서 내숭 부려도 딱히 감흥은 없는데……”
“이, 이상한 소리 좀 그, 그만하라고…! 읏-! 잠, 잠까안-!”
민준이 바지만 입은 채 침대 위로 올라오려고 하자 올리비아는 소리를 질렀지만, 그렇다고 민준의 움직임이 멈추지는 않았다.
침대에 올라온 민준은 올리비아가 붙잡고 있던 이불을 걷어버리고, 올리비아의 양손을 잡아챈 뒤 머리 위로 올려버렸다. 올리비아가 미쳐 반응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고,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아읏…! 뭐, 뭐 하는 거야…! 이, 이거 놔…!”
올리비아는 깜짝 놀라서 힘껏 발버둥을 쳐봤지만, 이미 민준이 허리에 올라타 있어서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큿-. 뭐든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제발 두고 가지 말라고 내 허리를 붙잡고 애원하지 않았나?”
“아, 아니야…! 그, 그건 그런 뜻이…!”
“본인이 애걸복걸해서 호텔까지 따라온 주제에……뭐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지? 아무리 공주처럼 컸다지만, 남녀가 호텔 방에서 뭐를 하는지 정도는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하읏…! 뜨, 뜨거워-. 잠, 잠시만…! 손…! 손 넣, 넣지마앗…!”
올리비아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5살 때부터 꾸준히 호신술을 배워왔었지만,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뱀처럼 자신의 허리를 기어 다니는 민준의 뜨거운 손에, 금방이라도 온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갈비뼈가 다 드러나 있군. 조금 더 살을 찌우는 게 어때?”
“흐읏-! 하으, 쓰, 쓰다듬지마…! 그, 그렇게 야하게 쓰다듬지마앗…!”
스윽-. 스으윽-.
민준은 선을 그리듯 손을 움직이며,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올리비아의 아담한 갈비뼈와 그 사이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래 갈비뼈부터 시작된 민준의 손길은 점점 더 위로 향해서, 갈수록 올리비아의 젖가슴 쪽에 가까워져 갔다.
“하읏-! 그, 그만…! 더 이상 올라오면 안돼엣…!”
“그래…? 그럼 내려가 볼까?”
“읏-! 잠, 잠시만…! 흐아, 흐으읏…!”
젖가슴에 근접했던 민준의 손이 빠르게 하강해서, 올리비아의 치마 춤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민준은 피아노를 치듯 올리비아의 하복부를 툭툭 두드리면서 넓적다리 안쪽으로 손을 가져가 올리비아의 허벅지를 애무했다.
역시나 민준의 손길은 먼 곳부터 시작해 점점 더 보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을 조이듯 슬금슬금 몰려오는 끈적하고 색정적인 느낌에 올리비아는 고개를 휘젓고 발버둥을 치면서 반항해 봤지만, 민준의 품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아-! 아읏…! 안, 안돼…! 제, 제발…! 흐윽-. 만, 만지면 안돼에…! 들, 들켜버리면…젖, 젖어있다는 걸 들켜버리면…!’
올리비아의 현재 속내는 무척이나 모순적이었다.
자신을 강제로 희롱하고 있는 민준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보지가 흠뻑 젖어있다는 걸 민준에게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다.
천박한 여자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드는데, 자신을 천박하게 만들고 있는 민준의 손길은 너무 좋아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꼬인 줄처럼 생각이 복잡해서 진절머리가 날 것 같았다.
차라리 거역할 수 없이 조여오는 민준의 절대적인 손길에 복종해버리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리비아의 가슴을 물들여갔다.
“흐윽-. 흐응, 그, 그만…! 그, 그만하라고 했는데에…! 하응, 하으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