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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176화 (176/270)

〈 176화 〉 176화

유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일행들을 보면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열심히 사는 것이 무조건 올바른 건 아니라는 건 유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매일 똑같은 단출한 일과를 보내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삶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유나의 기준에서, 일행들의 일과는 거의 쳇바퀴처럼 느껴질 만큼 똑같았다.

민준은 여자들과 노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미현은 살림과 운동, 연주는 게임에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매일 너무 비슷하게 살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영어 공부 같은 유익한 일들도 좀 해볼 필요가 있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평소에 혼자만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불만이라서 영어 공부를 빌미로 일행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음-. 다 외웠어요. 유나 씨.”

“안 돼요. 민준 씨. 적당히 넘어갈 생각하지 마시고, 어서 공부하세요.”

그렇게 30분이나 흘렀을까, 일견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던 민준이 그 새를 못 참고 입을 열었다.

유나 역시 정말로 자신이 나누어준 그 많은 양의 영어 단어와 문장들을 민준이 다 외울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민준이 몇 시간쯤은 더 공부해주길 바랬다.

아무리 자신이 옆에 딱 달라붙어 통역해준다고 해도, 쉬운 문장 정도는 민준 스스로 알아듣는 것이 비지니스 적으로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이었다.

유나는 자신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민준에게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민준이 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정말로 그만둬 버리면 단단히 삐질 거라는 암시 또한 유나의 표정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곧 민준의 입에서 튀어나온 유창한 영어에, 단호했던 유나의 표정은 온통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정말 다 외웠어요. 유나 씨. 이제는 유나 씨랑 영어로 대화하면서 익히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해요?”

“……”

민준은 조금은 멍청하게 보일 정도로 매우 놀라고 있는 유나의 얼굴을 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큭. 공부가 어려워서 안 했나? 하기 싫어서 안 한 거지. 내 두뇌가 얼마짜린데.’

유나의 표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우월한 두뇌를 가진 것인지 똑똑히 알 수 있어서, 민준은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약간은 재수 없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똑똑한 건 사실인데.

“거, 거짓말…! 저번에는 분명 영어 잘 못 했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그때도 기본은 다 되어 있었어요. 말로 내뱉는 게 어려웠던 거지. 그런데 유나 씨가 준 교재가 워낙 좋아서 이렇게 말하기까지 마스터 해버렸네요.”

“아, 아니…! 그게 그렇게 빨리 될 리가……”

민준의 말은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으면, 좋든 싫든 몇 년 동안 꾸준히 영어를 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몇 개월만 공부를 쉬어도 그걸 다 까먹어버려서 문제인 건데, 강화된 민준의 두뇌는 주인이 영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변기 물 흐르듯 시원하게 흘려보냈던 수업 내용까지도 모두 떠올릴 만큼 대단한 성능을 자랑했다.

암기력, 응용능력, 이해력까지. 강화 전의 두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민준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돈도 썩어나는데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어서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수많은 예쁜이들과 노는 것만 해도 하루가 너무 짧은데 공부 같은 지루한 것에 할애할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하지만 빅토리아 스페셜의 인수 과정에서 민준의 마인드는 상당히 바뀌게 되었다.

미녀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나 있었고, 전 세계 미녀들과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게 필수였다. 말이 안 통해도 몸의 대화는 가능했지만, 그래도 역시 말을 할 줄 알면 몸의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훨씬 더 깊은 상호작용을 하는 게 가능했다.

심지어 지금 만나러 가는 미녀들은, 민준을 포함한 전 세계 남자들을 홀렸던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섹시 모델 군단 ‘쥬얼리’였다. 자연스레 영어를 대하는 민준의 태도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공부가 귀찮긴 했지만,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쭉빵 여신들과 재밌게 놀려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명석한 두뇌와 굳은 의지,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접했던 여러 가지 영어 지식이 합쳐지니, 민준은 영어를 어렵지 않게 마스터할 수 있었다.

“우, 우와…! 민, 민준. 굳, 베리 굳…! 유 베리 스마트! 언, 언블리버블…!”

“예, 예스. 민준 이스 베, 베리 스마트으……아, 아임 멍청이. 영어 쏘 하드…”

“화, 화이팅…! 미현 캔 두잇! 위 캔 두잇!”

“위, 위 캔 두잇!”

민준의 양옆에서 골머리를 싸매며 영어를 배우고 있던 연주와 미현 역시, 유창하게 영어를 내뱉는 민준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있었다.

다만, 단기간에 영어에 너무 많이 노출된 영향으로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한영어’를 쓰고 있었는데, 완전 엉터리이긴 했지만, 민준의 생각에 저 정도면 어디 가서 미아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신이 영어가 가능해졌으니, 혹시나 따로 다니게 될 때는 유나를 저 둘에게 붙여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이제 영어 공부 그만하고, 놀도록 하죠. 비행기에서 노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은데.”

“네…? 민, 민준 씨! 승무원들하고 조종사가 들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들으라고 해요. 비싼 서비스인데, 고객들의 프라이버시야 당연히 지켜주지 않을까요?”

“잠, 잠시만요…! 그래도 여, 여기서는 좀 아닌 거 같은데요…! 민, 민준 씨!

그 뒤로, 집에서처럼 화려하게 놀지는 못했지만, 민준은 일행들과 소소하게 놀면서 비행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양손으로 연주와 미현의 가슴을 희롱하면서, 무릎 위에 유나를 앉혀놓고 키스를 한다든가.

널찍한 테이블 위에 세 명을 전부 올려놓고 마음이 가는 대로 이곳저곳을 만져주면서 놀았는데, 이렇게 다 함께 노는 건 처음이라 어색해하던 세 여자 역시 즐거운 시간이 계속될수록 뜨거운 열기에 취해 서로의 몸을 서슴없이 쓰다듬어 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져 갔다.

당연히 민준은 그 장면을 보면서 무척이나 흡족해했고, 앞으로도 이런 친목 도모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

즐거웠던 비행을 마치고 내리자, 뉴욕의 존 케네디 공항이었다.

전용기 전용 루트로 입국 절차를 마친 민준네 일행은, 빅토리아 스페셜 측에서 붙여준 리무진을 타고 뉴욕의 중심 맨해튼으로 향했다.

‘캬~ 저거 그거 아닌가? 거미맨이랑 강철맨 영화에 나왔던 타워…’

민준은 차에 타서 지나가는 뉴욕 풍경들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게임이나 영화의 배경으로 워낙 많이 쓰이는 도시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게 흥미로웠다.

죄다 영어로 쓰여 있는 간판들과 전광판을 보니, 아직 한글 패치가 안 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오픈 월드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뉴욕에 모든 게 신기했는데, 정작 이 들뜨는 기분을 함께 나눌만한 사람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유나는 몰라도…연주나 미현 누나는 나보다 더 재밌게 구경할 것 같은데…이걸 깨워 말아…?’

민준은 잠시 고민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여자들을 굳이 깨우지는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못 자고 10시간 동안 애무만 당한 여자들은, 온몸이 젤리처럼 녹진녹진해져서 리무진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좋은 운전이었어요.”

“별말씀을-.”

뉴욕 거리를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리무진은 호텔 앞에 도착해 있었다.

민준은 일단 여자들을 깨워서 차에서 내렸다. 쇼핑으로 전부 충당할 생각에 짐을 거의 안 가지고 와서, 다행히 양쪽 품에 여자들을 쏙 넣을 수 있었다.

비몽사몽 걷고 있는 여신들을 세 명이나 대동한 잘생긴 동양인에게 순식간에 사람들의 은근한 시선이 쏠렸지만, 민준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호텔 안으로 향했다.

“민준 킴으로 예약된 방이 있을까요?”

민준은 프런트로 가서 체크인을 했는데, 대접은 5성급 호텔치고도 상당히 융숭한 느낌이 있었다.

아마 빅스의 전 회장인 제임스가 말을 잘해놓은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민준은 흡족한 기분으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향했다.

“후우-. 잘 자네. 시차 적응 하고 있는 건가?”

민준의 방은, 프레지덴셜 어쩌고 하는 호텔에서 가장 넓고 비싼 방이었다.

축구를 해도 될 만큼 넓었고, 그 넓은 공간 안에 온갖 사치품들이 널려있었다.

호화롭기 그지없는 방이었지만 한국에서 자주 갔던 방들과 그리 다를 게 없어서, 민준은 큰 감흥 없이 들어가 해롱해롱하고 있는 여자들을 침대에 나란히 눕혀 주었다.

“그래도 뷰 하나는 끝내주네…”

여자들을 눕혀 주고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민준이, 창밖을 보고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거대한 통창이 몇 개씩 이어진 파노라마 안에서는, 뉴욕의 화려하게 그지없는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별을 찌를 듯이 높게 솟아있는 빌딩들 사이로 수많은 사람이 개미처럼 지나다니고 있었고,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의 헤드라이트와 빌딩 숲의 조명들, 거대한 전광판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깔들은, 이것이야말로 현대 미술이라고 소개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빛을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크-. 이게 뉴욕인가? 보고만 있어도 좀 센치해 지는 기분이네?’

어쩐지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도넛을 들고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

벌써 뉴욕커가 다된듯한 느낌에 민준은 피식 웃고는, 여자들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는 방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에서 내려온 민준은 호텔에서 빠져나와, 차를 타고 오면서 봤던 명품 매장이 유독 많았던 거리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민준은 아직 몰랐지만, 그 거리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거리인 뉴욕 5번가였고, 그곳에는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와 명품 매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센치한 기분에 취해 걷다 보니 금방 5번가에 도착한 민준은 명품 매장을 돌면서 미국에서 입고 다닐만한 옷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비단 자기 옷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입을만한 옷까지 같이 구매했다.

대충 보고 예쁘다 싶으면 다 사버려서, 양손이 금방 가득 찼지만, 힘이 워낙 좋아서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면 쇼핑을 도와줄 쇼퍼를 구해서 편하게 다닐 수도 있겠지만, 센치하게 혼자서 뉴욕 거리를 걷는 기분에 취한 민준에게 쇼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심상치 않은 된장남 보듯 자신을 쳐다보는 오리지널 뉴욕커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기면서, 민준은 화려한 명품 쇼핑백들을 한 아름 든 채 마지막 매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들른 매장의 분위기는, 정적이고 여유로웠던 지금까지의 매장과는 전혀 달랐다.

“다시 말해봐!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지금 그게 말이 돼?!!”

“하지만 손님. 저희 매장 원칙상 외상은 금지되어 있어서…”

“하. 진짜 어이없네. 내가 여기서 쓴 돈만 얼만데……해고당하고 싶어!!”

카운터 쪽에서 엄청난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몸을 명품으로 도배한 여자가 직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아마 외상을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건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뉴욕까지 와서 막무가내로 떼쓰는 외상 빌런을 구경하게 될 줄이야.

‘음. 빌런은 만국 공통이구먼.’

어쩐지 식견이 늘어난 느낌이라 민준은 피식 웃고는, 카운터 쪽에서 일어나는 소란은 일체 신경 쓰지 않은 채 진상 여자의 고성을 배경 음악 삼아서 여유롭게 쇼핑을 계속했다.

그렇게 민준은 점차 카운터 근처에 있는 상품을 보기 위해 걸어갔고, 올리비아 메이어는 그제야 매장 안으로 들어온 민준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매니저 불러오라는 소리 안들…!”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자에게는 선천적으로 잘생기고 우월한 이성을 알아보는 센서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메이어 가문의 상속녀이자 할리우드의 악동이라고 불리며 온갖 잘생긴 남자들을 섭렵하고 다녔던 올리비아의 센서는, 유독 예민하고 정확했다.

민준을 보자마자 올리비아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문 것 역시,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센서가 강력하게 울려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게 정말…동양인이라고…? 말, 말도 안 돼.’

올리비아는 민준의 실루엣을 보자마자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곧장 얼굴을 확인했는데, 영락없이 백인인 줄 알았던 남자는 놀랍게도 동양인이었다. 올리비아는 놀라움과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백인보다 더 훨씬 더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였는데, 하필이면 냄새나는 동양인이라니.

‘…그래도 저 정도면 갖고 놀 맛은 나겠네. 입고 있는 옷도 꽤 비싼 것들이고, 쇼핑백을 잔뜩 들고 있는 걸 보니……돈은 좀 있나 보네? 그래도 쇼퍼를 달고 다닐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소문난 명품 중독녀답게 옷차림과 행동거지를 보고 한눈에 민준의 경제 사정을 파악한 올리비아는, 민준을 향해 몸을 틀고는 두어 발짝 걸어가서 민준의 앞에 섰다.

옷을 보고 있던 민준이 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올리비아는 자신만만하게 눈을 빛내며 대뜸 민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그쪽, 저 알죠?”

“…네?”

“올리비아 메이어. 못 들어 봤어요? 아시아에서도 꽤 유명한데.”

“…뭐야. 이 미친년은.”

민준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순간, 한국말로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걸 영어를 잘 못 하는 거로 이해한 올리비아는, 다시 한번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민준에게 말해 주었다.

“올.리.비.아-. 메.이.어-. 메이어 가문의 상속녀. 몰라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뭐야. 영어 잘만 하네…아무튼 돈 좀 빌려주세요. 나중에 두 배로 갚을 테니까.”

“…”

“저기요, 못 들었어요? 그쪽이 저한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행운을 주겠다니까요? 이런 행운은 쉽게 잡을 수 없는 거예요. 아시안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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