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173화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부동산까지 모두 저희 쪽에서 매입하는 거로…네네-. 조만간 미국 일정 한번 잡아주시고요.”
“…으음-.”
예지는 귓가에 들려오는 민준의 목소리에 잠에 깨어났다.
자고 있는 예지를 배려해서 민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조곤조곤했지만, 민준의 정액을 흡수하여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예지의 몸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으응-. 뭐지…술을 마셨는데…머리가…하나도 안 아프네……아-. 민준 씨 목소리 듣기 좋다.’
예지는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민준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고는, 머릿속에서 단발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시간순으로 맞춰보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마시고 깨어난 사람들이 으레 하는 작업이었다.
‘음-. 일단 호텔에 와서……민준 씨를 호텔로 부르고……민준 씨를 기다리는 동안 와인을 마시고……엄청 마시고…’
하지만 작업이 계속될수록 화사했던 예지의 표정은 영 좋지 못하게 바뀌어갔다.
기억이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숙취는 이미 싹 사라진 뒤였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민준 씨한테……몸을 줄 테니까…돈을 빌려 달라고…아으, 진짜 미쳤어! 신예지…! 말을 해도 어떻게 그런 천박한…!!’
예지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지만, 한 번 더 질끈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머리를 콩콩 쥐어박고 싶었다. 이 방에 민준이 없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으리라.
‘망했다. 이제 민준 씨 얼굴을 어떻게 보지……아니, 잠깐만! 그보다…나 왜 기절해버린 거지……?’
잡힐 듯 말듯 기억이 아른거렸다. 예지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곧, 모든 걸 떠올린 예지의 몸이 작살에 맞은 물고기처럼 크게 경련했다.
“……네. 빅토리아 스페셜 인수 건은 이 정도면 되겠네요. 이만 전화 끊을게요.”
한편, 유나와 통화를 하고 있던 민준은 침대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예지의 모습을 보고는 전화를 끊고, 앉아있던 테이블에서 일어나 예지에게 걸어갔다.
‘흐읏…! 안, 안 돼! 자는 척! 자는 척!’
뚜벅뚜벅 걸어오는 민준의 발소리를 들은 예지는, 다급하게 이불을 걷어차던 걸 멈추고 곧장 자는 척에 들어갔다.
예지는 눈을 꼭 감은 채 제발 민준이 속아 주기를 바랬다. 민준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조여와서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번처럼 과음하고 망가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남자 앞에서 토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어쩜 그리 민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만 콕콕 집어서 보여줬는지, 마음 같아서는 호텔 방의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일어났어요?”
“…”
예지는 아예 숨을 죽여버렸다. 민준이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발…! 제발 가세요! 민준 씨! 저는 도저히 제가 부렸던 추태를 감당할 수 없다고요…! 제발요! 하느님! 부처님! 제발! 제발…!’
예지는 하늘에다가도 간절하게 빌어봤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민준은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죽이고 있는 예지를 조용히 내려보다가, 아예 예지의 옆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예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숨을 불어넣듯이 야릇하게 귓속말을 건넸다.
“일허나효~ 예지 씨히이-.”
“읏…!! 민, 민준 씨! 간, 간지러운데…!”
“계속 자는 척하니까 그렇죠. 왜요. 술 먹고 주정 부린 게 부끄러워서 그래요?”
“아으…! 아, 아으…! 아, 아, 아…아닌데요…! 기억 하나도 안나요. 저는 필름이 잘 끊기는 타입이라, 네…필름이 완전히 끊겨버려서…”
“괜찮아요. 취한 모습도 귀여웠어요.”
“그게 뭐가 귀여워요…! 민준 씨는, 토하는 게 귀여워요?!”
“…전부 다 기억하는 거 같은데요?”
“아…!! 아으…!!”
예지의 얼굴이 잘 익은 석류의 빛깔처럼 붉어졌다. 너무 당혹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생각도 전부 멈춰버렸다.
상태 이상에 제대로 걸려버려서, 지능이 평소보다 10분지 1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렉에 걸린 것처럼 버벅대고 있는 예지를 보며 작게 웃은 민준은, 예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아우으-.”
“너무 걱정 마요. 진짜 귀여웠으니까.”
“……제, 제가 민준 씨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데…귀, 귀엽다니…”
쓰윽-. 쓰윽-.
예지는 소심하게 말을 얼버무리며 민준의 말에 반발했지만, 민준이 계속해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결국은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민준의 품에 쏙 안겼다.
향기로운 민준의 냄새가 가득 느껴지자, 예지는 혼란스럽던 머리가 빠르게 진정되어감을 느꼈다.
“…미안해요. 민준 씨.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오늘 너무 충격적인 일들이 많아서……”
예지는 민준의 체온을 더 느끼고 싶어서 단단하고 넓은 민준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어가며 중얼거렸다. 민준은 카운셀링을 하는 심리상담사처럼 인자한 목소리로 예지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은행 쪽에서 더는 우리 신화 그룹한테는 대출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나 봐요. 아마 이세아가 손을 쓴 것 같은데……사실 그것보다는 아버지가 그 말을 전하면서, 저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셔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한 번도 그런 적 없거든요. 우리 아버지는……늘 당당하고 강인한 사람이었는데…”
“예지 씨가 아버지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
“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혼자서 저를 지극정성으로 키우셨거든요. 아무리 바쁘셔도 피곤한 티 한번 내신 적이 없어요. 늘 저랑 함께 놀아주시고, 저를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래서……아버지 호강시켜 드리는 게……오랜 꿈이었는데……이제는 완전히 망해버려서……”
“왜 망해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예지 씨.”
민준의 말에 예지는 가슴에 파묻어 놨던 고개를 들어 올려 민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민준 역시 시선을 내려 예지와 마주 봤고, 민준의 시야에는 감동받아 붉어지고 있는 예지의 크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보였다.
예지는 한동안 민준과 감미로운 눈 맞춤을 하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으으응-. 이제 괜찮아요. 민준 씨가 도와주신다면 회사를 조금 더 운영할 수 있겠지만……일성에서 계속 이렇게 압박하면 어차피 부도가 나게 되어 있으니까……그러니까 여기서 그만할래요…말씀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워요. 민준 씨-.”
“음-…잠시만요. 예지 씨-.”
“네…?”
민준은 예지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휴대폰을 가져왔다.
그리고 인터넷 뱅킹 어플을 켜서, 계좌에 남아있는 잔고를 예지에게 보여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어쩌고저쩌고 입을 계속 터는 것보다, 얼마나 부자인지 보여주는 게 더 확실할 것 같았다.
“…응? 이, 이게 뭐예요. 민준 씨?”
“봐봐요. 예지 씨. 제 통잔 잔고에요.”
“네…? 아, 네.”
예지는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은 핸드폰의 화면을 들여다봤다. 곧 예지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이 커졌다.
‘일, 십, 백……에? 합성인가…?’
현실성 없는 숫자 단위에 예지가 멍하니 손가락을 뻗어 화면을 위아래로 움직여봤다. 화면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인터페이스 역시 문제가 없었다. 예지 역시 쓰고 있는 어플이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다만, 단위가 너무 커서 화면을 뚫고 나가고 있는 민준의 통잔 잔고가 너무나 비현실적일 뿐이었다.
“지금은 3천억 좀 넘게 있는데, 회사에서 관리하는 것까지 하면 이것보다 몇 배는 많아요. 회삿돈 같은 거 아니고 제 개인 자산만 따져도요.”
“……”
“부도 걱정하지 말고, 이세아 같은 건 신경도 쓰지 말고, 마음껏 회사 키워서 아버지 호강시켜 드리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예지 씨.”
“아-…아으-. 민, 민준 씨…!”
예지가 감동에 못 이겨서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앉아있는 민준에게 덥석 안겼다.
민준은 감격하고 있는 예지의 등을 조금 두드려주다가 핸드폰을 침대 한쪽에 던져버리고, 예지의 몸을 덮쳐서 침대에 눕혀버렸다.
골치 아픈 일들을 털어냈으니 이제부터는 즐길 시간이었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았나?
“…그런데요. 예지 씨.”
“네, 네?”
민준은 입고 있던 가운을 천천히 벗으면서 차갑고 엄중한 눈빛으로 예지를 쏘아봤다.
자연스레 잡힌 섹스 무드에 부끄러워하며 민준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예지는, 민준과 마주 보고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치켜떴다.
곧 민준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사나운 기색을 읽은 예지의 몸이, 호랑이 앞의 새끼 사슴처럼 덜덜 떨렸다.
평소의 부드럽던 민준의 눈빛과는 전혀 달라서, 금방이라도 잡아 먹힐 것만 같았다.
“돈은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어요. 근데 예지 씨가 했던 행동은 교정이 조금 필요해 보이더군요.”
“네…? 민준 씨…그, 그게 무슨…”
“몸을 주고 돈을 빌리겠다는 생각은……왜 한 거예요? 제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상처 받은 줄 아세요? 제가 좋아하는 예지 씨가 이렇게 헤픈 여자일 줄이야……”
“아, 아니에요…! 오해에요, 민준 씨! 너무 급하고, 술에 취해서…실, 실수한 거예요…!”
“실수요? 그럼 호텔에는 왜 불렀는데요? 그것도 실수예요?”
“아, 아…그, 그건…”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네요. 예지 씨. 정말 실망이에요.”
“아읏-. 민, 민준 씨…! 이, 이건…!”
민준은 가운을 고정시키기 위한 순백의 허리끈을 완전히 풀어서, 예지의 양손을 잡아챈 뒤 머리 위로 만세를 하게 하고는 단단히 묶어버렸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묶인 팔을 풀려고 하는 몸부림치는 예지의 몸을 깔아뭉개서 제압한 뒤, 예지의 귀에 속삭였다.
“예지 씨의 몸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건 창녀나 하는 짓이라고요. 예지 씨는 창녀예요?”
“흐읏-. 아, 아니에요. 저는 창녀 같은 거 아니에요. 흐윽, 잘, 잘못했어요. 민준 씨. 이, 이거 풀어주세요. 네?”
“아니요. 말로는 누가 뭘 못하겠어요. 예지 씨한테는 교육이 필요해요.”
“…읏! 하응, 흐앗…! 민, 민준 씨…! 거, 거기…거기잇…!”
민준은 사슴같이 가늘고 기다란 예지의 목덜미를 끈적하게 핥으면서, 손으로는 예지의 매끈한 허벅다리 안쪽을 살살 쓰다듬었다.
예지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민준의 능숙한 손놀림에 당황 활 수밖에 없었다. 뱀처럼 자신을 감아오는 민준의 몸짓은, 절대 스무 살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비록 많은 경험을 해본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응-. 흣, 하으으…민, 민준 씨.”
“…그렇게 잘 느껴버리면 헤픈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최대한 참아보세요.”
“그, 그치만…민준 씨가…! 흐앙…! 안, 안돼에…! 읏, 흐응…!”
민준은 허벅다리를 타고 들어가서 예지의 대음순 주위를 빙빙 돌면서, 예지를 자극했다. 보지를 직접 만지지는 않았지만, 그 근처를 손으로 빙빙 자극하면서 때로는 꾹꾹 누르며 예지를 애태웠다.
“예지 씨는…섹스 몇 번이나 해봤어요? 아까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처녀는 아닌 것 같던데…”
“아읏-. 흐응, 흐아-. 많, 많이는 안 해봤어요. 열, 열 번도 안 해봤어요. 흐읏-. 학교 다니고 일하느라 바빠서-…”
“정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잘 느끼는 건데요? 또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정, 정말이에요! 남, 남자친구도 두 번밖에 사귄 적 없어요…! 저는 헤픈 여자 아니에요!”
민준이 계속 취조하듯이 묻자, 억울했던 예지가 살짝 울분을 터트렸다.
하지만 민준의 손가락이 예지의 클리토리스를 살짝 건드리자, 예지의 기세는 누그러지고 입에서는 다시 야릇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읏, 하읏-! 흐앙, 하으읏…! 민준 씨…! 거, 거기잇…! 읏, 하앙…!!”
“뭐, 좋아요. 제가 만져주는 거라서 예지 씨가 잘 느끼는 거라고 하죠. 그래도 예지 씨가 아까 했던 창녀 같은 발언은 용서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몸을 팔다뇨. 그럼 저 말고도 돈 많은 사람이면 얼마든지 예지 씨의 몸을 가질 수 있는 거네요?”
민준은 예지가 제대로 대답할 수 없도록, 흥분해서 발기된 예지의 클리토리스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좌우로 비비다가, 위아래로 꼬집어서 늘려보기도 했는데, 예지는 민준의 손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민준의 취조에 답변했다.
“읏, 흐앗-! 흐으, 하으……민, 민준 씨니까…민준 씨니까 그렇게 말한 거예요…! 민준 씨한테는 제 몸을 줘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한테니까 그렇게 말했다는 거죠…? 믿어도 될까요?”
“믿, 믿어주세요! 저, 저는 민준 씨밖에 없어요…! 파티에서 만난 그때부터, 쭉 민준 씨 생각밖에 없었어요…! 흐아, 하응…”
“음-. 그래요. 믿어드릴게요. 예지 씨-.”
민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애무를 멈추고 묶여 있던 예지의 손목을 풀어줬다.
예지는 손목이 풀리자마자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민준의 품에 꽉 안겨들었다. 예지의 몸은 두려움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만약 이 일로 민준이 실망해서 자신의 곁을 떠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흐윽-. 죄, 죄송해요. 민준 씨. 다시는 안 그럴게요.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요…!”
“…뚝. 울지 마요. 예지 씨.”
“흐윽-. 민, 민준 씨…!”
민준은 울지 말라며 예지의 등등 툭툭 두드리며 따듯한 목소리로 달래주었지만, 예지는 오히려 그런 민준의 태도에 더욱 크게 눈물을 터트렸다.
이제야 자신이 알던 민준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끄읍, 하우으…너, 너무 무서웠어요. 민, 민준 씨가 너무 무섭고 차가워서어-. 흐윽.”
“미안해요. 무섭게 해서. 예지 씨는…상냥한 게 좋은 거죠?”
“네. 상냥한 민준 씨가 좋아요…! 다정하고 상냥한 민준 씨가 좋아요…!”
“…그래요. 그렇게 해드릴게요.”
“아-……민준 씨-.”
서로를 잠시 마주 보던 민준과 예지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약속한 대로 평소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였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민준의 손이 예지의 은밀한 곳들을 살살 쓰다듬고 있다는 것이었다.
“으음, 흐으읍-. 하음, 흐우으-.”
예지의 입에서는 연신 야릇하고 달콤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민준의 입에 막혀 완벽하게 울려 퍼지진 않았다.
민준은 입속에서 퍼지는 기분 좋은 진동을 느끼며, 예지의 가슴을 애무하던 손을 서서히 내려서 그대로 예지의 비부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