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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153화 (153/270)

〈 153화 〉 153화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혜는 민준만 생각하면 어쩐지 머리가 알쏭달쏭하고 가슴이 이상하게 답답했다.

처음에는 호랑이처럼 무서웠는데, 막상 자신을 챙겨줄 때는 엄청나게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곤란하지 않도록 세세한 것까지 하나하나 배려해서 민준이 행동했다는 걸, 지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가 어떻든 자신이 오줌을 싸서 방을 더럽혔는데도 불구하고, 민준은 화 한번 내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사람한테 충분히 시킬 수 있었을 텐데도, 오줌처럼 더러운 것을 직접 닦아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줌 싼 걸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도록, 나를 지켜준 거겠지…?’

두근-.

지혜는 소심한 만큼이나 사람의 행동에 민감했다. 그래서 민준이 보여준 깊은 배려들이 지혜의 가슴을 더욱 따듯하게 적셔왔다.

이렇게 배려에 능숙하고 따듯한 사람이 왜 처음에는 그렇게 거칠게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민준에 대해 더욱 궁금했다.

왜 그랬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머릿속에는 온통 민준의 생각뿐이었다.

‘정, 정신 차려! 민지혜! 저, 저 사람은 연주의 남자친구라고!’

지혜는 머리를 강하게 휘저으며 억지로라도 민준에 관한 생각을 털어냈다.

민준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은 무진장 따듯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도 되는 생각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었다.

끼익-. 툭툭-.

지혜는 장장 십오 분에 걸쳐 하반신을 꼼꼼하게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다음, 민준이 마련해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몸을 비누로 닦아야 해서 피부가 약간 꺼끌꺼끌하긴 했지만,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쾌적한 느낌에 지혜의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걸렸다.

“아-…”

마지막으로 뒷정리까지 하고 그대로 화장실을 나서려던 지혜는, 돌연 멈춰 서서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키고는 엄청난 타자 속도로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민준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민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메모장에다가 몽땅 적은 지혜는 든든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서서 대표실로 들어갔다.

환기 때문인지 대표실의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었고, 민준은 대표실 책상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민준의 머리칼이 고왔다. 얼굴도 목소리도 너무 멋있었다. 지혜는 홀린 듯 민준을 쳐다보다가, 민준이 자신을 의식해서 힐끔거리자 깜짝 놀라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허둥지둥 움직여 소파에 앉았다.

수치심도 정도가 넘어가면 친밀감이 된다고, 지혜는 이미 민준에게 오줌싸는 모습까지 보여줬기에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볼 것 못 볼 것 다 보여줬는데 아무렴 어때. 오히려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지혜는 민준을 보자마자 이상하게 쿵쿵대는 심장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연주의 남자친구. 연주의 남자친구. 주문을 걸어봐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한편, 전화를 끝마친 민준은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아있는 지혜의 건너편에 착석했다.

지혜의 병을 고쳐주어서 단번에 교인으로 만든 다음에, 당장 오늘부터 지혜를 연주랑 함께하게 시킬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

“…뭐죠?”

그래서 일단은 지혜의 사정을 천천히 캐물어 보는 절차를 밟으려고 했는데, 민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지혜가 자신의 핸드폰을 넙죽 내밀었다.

민준은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은 지혜에게서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화면을 확인했더니, 잠겨있었다.

“…?”

“아, 아으…!”

민준의 표정을 보고 실수를 깨달은 지혜는 민준의 손에서 핸드폰을 쏙 빼가서 얼른 잠금을 풀고는 다시 민준에게 돌려주었다. 민준은 대체 지혜가 뭐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러는지 궁금했기에, 지혜의 핸드폰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안녕하세요! 우선은…인사부터 드릴게요. 저는 민지혜고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 병 때문에 사람과 마주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민준은 지혜의 메시지를 꼼꼼히 읽어갔다. 너무 길어서 세줄 요약 좀 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지혜가 또 울먹거려서 의사소통이 안 될 게 분명했다.

‘…그래, 그래. 이런 사연이 있었구먼. 어이구 딱한 것. 내가 얼른 고쳐 줘야지.’

민준은 메시지를 다 읽고 다시 지혜에게 핸드폰을 넘겨줬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지혜 씨 사정은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까 지혜 씨 사정도 잘 모르면서 다그치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좀 바빠서 예민했나 봅니다. 그리고 제가 워낙 연주를 아껴서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

민준이 살짝 일어서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지혜는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휘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지혜 씨. 혹시 제가 지혜 씨에게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

“말로 설명하기는 좀 힘들고……잠시만 손목 좀 줘보시겠어요?”

“아…아으…”

지혜는 망설였지만 이내 손목을 내밀었다. 대체 어떤 도움을 주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심 한점 보이지 않는 깨끗하고 맑은 민준의 눈을 보니 손목 정도는 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물론, 민준의 눈이 맑고 깨끗하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지혜의 생각일 뿐이었다.

‘캬. 손목 얇은 거 봐라. 이렇게 여리여리 한데, 이거 잡으면 막 부러지는 거 아니야?’

민준은 교주의 오오라를 키고, 슬쩍 내밀어 오는 지혜의 손목을 진맥하듯이 잡아챘다. 지혜가 아직 교인이 아니라 될까 말까 알 수 없었지만, 일반인에게도 효과를 끼치는 성역 버프를 믿고 일단은 저지르자는 생각이었다. 안되면 ‘아, 이런. 이건 좀 힘들겠는데요…?’ 하고 발을 슬쩍 빼면 되니까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다.

꽈악-.

“흣-.”

“어때요. 지혜 씨. 혹시 제 손에서 어떤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나요?”

“아-…”

민준이 손목을 잡자 정말 손목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져서, 지혜는 깜짝 놀라면서도 민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민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지혜의 손목을 마구 주무르기 시작했다.

지혜가 설명한 대로 긴장이 돼서 신경에 이상이 온 거라면, 이런 식으로 오오라를 넣어줘서 긴장을 풀어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교주의 오오라는 적당히만 쓰면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켜주고 마음을 절로 성스럽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넣어준다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아-…아우…”

“괜찮아요. 지혜 씨. 마음을 편하게 먹고 느껴지는 기운을 받아들이세요. 이건 기치료라는 겁니다. 아무래도 지혜 씨의 목 부분에 기가 꽉 막혀 있어서 병이 생기는 것 같은데, 제 기를 통해서 뚫어주면 차도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마음을 차분히 먹고…제가 드리는 기운을 편안하게 느껴보세요.”

민준은 선지자의 목소리까지 키고 본격 약팔이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 없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치료인진 뭔지는 전혀 몰랐고, 그냥 나오는 대로 지혜의 귓가에 속삭였을 뿐이지만, 적어도 오오라는 진짜였다. 심지어 여러 가지 버프가 중첩되어 있기에 지금 뿜어내는 오오라의 위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했다.

“아으-…아, 아아-…”

한편, 민준에게서 오오라를 주입 당하고 있는 지혜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어딘가 야릇하면서도 따듯한 알 수 없는 기운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앞에 민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흘러나오는 미약한 신음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 손은 이 정도면 됐고. 다음은 목에 직접 넣어드릴게요.”

“하으…”

민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일어나서 지헤의 옆으로 가 지혜의 가녀린 목을 마구 주물렀다. 치료야 어차피 오오라로 하는 거였으니 어딜 잡든 상관없었다. 그러니 이왕 치료하는 거 여기저기 주물럭대면서 사심이나 잔뜩 채우자는 생각이었다.

‘치료비도 안 받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그럼.’

여하튼 민준은 상당히 공을 들여서 지혜의 목 부근을 주물렀고, 지혜의 동공이 슬슬 풀려갈 때쯤 손을 떼어냈다. 더 진도를 나가서 당장 섹스를 하는 것보단, 집에서 쓸쓸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연주에게 지혜를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둘이 짝짜꿍하고 있으면 어련히 퇴근하고 놀아줄 테니 급할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아-…아아-.”

“기분이 어때요? 목은 좀 괜찮아요?”

“아-…네. 뭔가 정신이 몽롱해…헉?! 말, 말을…!! 지금 제가 말을…!!”

안구가 튀어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지혜가 말을 하다말고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고개를 휙 돌려서 귀신을 쳐다보듯이 민준을 쳐다봤다.

지혜는 당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는데, 날벼락을 맞고 나니 자신의 병이 싹 사라져 있었다.

정말로 자신의 성대에서 제대로 된 단어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혼자 편하게 있을 때처럼 말하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말, 말도 안 돼요…! 불, 불치병이라고 했는데…!!”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들을 고치기 위해 기치료가 있는 겁니다. 하하.”

민준은 대충 얼버무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엔터회사 대표가 왜 기치료를 하는지. 그리고 효과는 또 왜 이렇게 좋은 것인지.

같은 사소한 질문들은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현실의 사소한 문제들은 모두 덮어버리는 것이 바로 기적이었고, 민준은 자신이 지혜에게 기적을 일으켰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앉은뱅이도 일어서게 한 그분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기적이었다.

그러고 그런 기적을 경험한 지혜가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동에 못 이겨 와락 안겨 올 거라는 사실까지도, 민준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민, 민준 씨!!! 고, 고마워요!! 너무, 너무 고마워서!! 흐윽!! 저, 저 이렇게 갑자기…!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는데!!”

“괜찮습니다. 단지, 연주가 지혜 씨를 저한테 인도한 것뿐이에요.”

“정말…정말로 그런 가봐요…!! 저, 저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 네? 연주랑 민준 씨에게 이 은혜를 어떻게…!! 정말…정말 너무너무 고마워서…끕, 흐윽-. 흐아앙!!”

“음-.”

민준은 무작정 안겨 오는 지혜를 어색하게 안아 들고는, 지나친 감동으로 엉엉 울고 있는 지혜의 등을 적당히 두드려주었다. 아직 어플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폭발적인 지혜의 반응을 보니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교주의 기적을 몸소 체험한 지혜는 이미 교주와 교단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겠으니까 잠시만 진정해보세요. 지혜 씨.”

“그렇지만 어떻게…! 저한테 이런 기적을 베풀어 주셨는데…!!”

“기적이 아니라 기치료입니다. 너무 그럴 필요 없어요.”

“저, 저한테는 그게 기적이에요! 민준 씨가 저를…저를 구원해 주신 거라고요!!”

“아직 치료가 전부 끝난 게 아닙니다. 주기적으로 제가 지혜 씨에게 기를 넣어줘야만 완치가 가능할 거예요.”

“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병을 완전히 고친 줄 알고 환희에 젖어있던 지혜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 지혜는 민준과 눈을 마주치고 간절하게 빌기 시작했다.

“제, 제발 도와주세요. 저 꼭…! 꼭 이 병 고치고 싶어요! 제발! 이 빌어먹을 병 고치고 싶어요…!! 뭐든지…정말 뭐든지 시키셔도 돼요. 돈도…!! 저 돈도 많이 벌어요…! 원하신다면 몸, 몸이라도 전부 바칠 테니까 제발…!!”

“진정하세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도와드릴 거니까. 다만, 치료를 받으시려면 제가 시키는 대로 따라 주셔야 합니다.”

“그, 그럼요! 당연하죠! 얼마든지…! 얼마든지 따를 수 있어요!”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으시려면 아예 저희 집으로 들어오셔서 할 수도 있는데…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네, 네! 얼마든지요!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어요!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정말로 저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주소를 알려드릴 테니 마음의 준비가 되면 저희 집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 이미 다 되어 있어요! 실례가 안 된다면 오늘…오늘부터 들어가 있어도 될까요? 한시라도 빨리…조금이라도 빨리 치료를 받고 싶어서…”

“안될 건 없죠. 연주랑도 친분이 있으시니까 서로 어색할 일도 없겠고. 솔직히 제가 부탁드리고 싶네요. 제가 없는 동안 연주가 많이 쓸쓸해 하니까, 지혜 씨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아아! 그럴게요! 당연히 그럴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흐윽, 끄흡. 감사합니다…너무 감사합니다.”

지혜는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민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무리 전해도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록 순수한 의도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잇속까지 고려해서 지혜를 치료해준 것이었지만, 민준은 지혜에게 극진한 감사 인사를 받으며 마음이 따듯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장난으로도 나쁘다고 할만한 기분은 아니었다.

‘기분 좋네. 게다가 지혜는 대중적으로 영향력도 짱짱하니까, 나중에 써먹기도 좋겠어. 얼굴 공개 이벤트도 아직 남아 있으니까 잠재력도 충분하고. 음. 아주 월척이야.’

연주의 쓸쓸함을 채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에게 영향력이 강한 인터넷 방송 쪽으로 교단의 파이프도 꽂을 수 있는 데다가, 앞으로 아픈 사람들을 어떻게 다뤄나가야 할지 연습도 해볼 수 있었다.

지혜라는 한 마리의 월척으로 얻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감사하다며 울고 있는 지혜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민준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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