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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151화 (151/270)

〈 151화 〉 151화

한편, 다니엘만큼이나 진주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가고 밤을 새워가며 작업하니까 귀가 멍멍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민준만 생각하면 도저히 적당히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물 쓰듯이 돈을 펑펑 쓰는 민준처럼은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부대표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래야지 자신을 믿고 있는 민준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으니까.

똑똑-.

-부대표님. 안에 있어요?

“아, 네! 제가 나갈게요. 대표님!

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진주는 깜짝 놀라 크게 대답했다.

슬슬 출근 시간이라 내심 민준이 한 번쯤은 자신을 보러 올 거라고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들릴 줄이야.

아마 출근하자마자 스튜디오부터 들린 것 같았다. 회사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자신을 보러….

‘정말…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진주는 민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언제 피곤을 호소했느냐는 듯 활기가 넘치는 몸과 마음이 조금은 주책맞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넘처나는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런데도 입에 걸리는 진한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결국, 진주는 환히 웃는 얼굴로 문고리를 잡았다.

굳이 나가지 않고 스튜디오 안으로 민준을 들여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다니엘이 신경 쓰여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덜컥-.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나온 진주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민준을 보며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있다는 걸 알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어쩔 수 없었다. 보고 또 봐도 자꾸만 심장이 멎을 만큼, 민준의 비주얼은 정말 살벌했다.

“…밤새워서 작업한 거야? 누나?”

“…쉬, 쉿! 누나라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뭐, 어때. 아무도 없는데. 그나저나 엄청 수고하네. 우리 누나.”

스윽-. 스윽-.

민준은 그렇게 말을 하곤, 손을 들어서 진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전형적인 스킨쉽이었지만, 그런데도 진주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민준의 크고 따듯한 손은, 뇌가 전부 사르륵 녹아내릴 만큼 달콤했다.

“작, 작업할 때 밤새우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니까…”

“그래도. 누나는 나이가 있는데 쉬엄쉬엄해야지.”

“여, 여기서 나이 얘기가 왜 나와!”

“와~. 그냥 해본 말인데 예민한 것 좀 봐. 엄청 피곤했나 본데?”

“네가 놀리니까 그렇지…! 나, 나쁜 놈!”

“어? 안아주려고 했는데 자꾸 이렇게 반항적으로 나오면 그냥 간다?”

“흥. 누구 마음대로 안는다 만다…딱, 딱히 안아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래서. 안지 마?”

“……나, 나쁜 놈.”

진주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살며시 팔을 벌렸고, 진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 숙인 그 상태 그대로 슬금슬금 다가와서 민준의 품에 꼭 안겼다.

단단하고 뜨거운 민준의 몸을 끌어안자, 진주는 향긋한 민준의 체향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그리웠던 민준의 냄새를 잔뜩 맡고 있으니 먹지 않아도 배불렀고, 가만히만 있어도 행복했다.

민준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떨어진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러는지.

진주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는 것만은 너무나 명백했다.

“누나, 강아지야? 무슨 냄새를 그렇게 맡아.”

“몰라……그냥 너무 좋아.”

“…”

츤츤거리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반칙이라고.

민준은 진주를 보며 생각했다. 진주는 밤새 곡 작업을 하면서 무척이나 지쳤는지, 자신의 가슴팍에 꼭 안겨 강아지처럼 얼굴을 부벼대며 냄새를 맡기 위해 킁킁거렸다.

살짝 갈라져서 허스키한 음성도, 몸을 밀착시키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물컹하고 부드러운 촉감도, 출근하기 바로 직전까지 시은을 격렬하게 따먹고 온 민준의 가슴을 또다시 쿵쿵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민준을 끌어안고 지친 심신을 힐링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진주는 몰랐지만, 진주를 바라보는 민준의 눈빛은 이미 맹수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나, 혹시 양치했어?”

“응…? 당연히 했지…?”

“그래? 잘됐네.”

“읍…!! 으웁…!!”

민준의 뜬금없는 물음에 진주는 민준의 품에 묻어놓은 고개를 들어서 민준을 바라봤고, 민준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살짝 벌어진 진주의 입술에 곧바로 입술 박치기를 갈겨버렸다. 두 사람의 혀가 음란하게 얽혀들었다.

스튜디오 안에 다니엘도 신경 쓰였고 누가 언제 찾아올지 몰랐기 때문에, 진주는 이러면 안 된다는 듯이 민준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지만, 진주가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솔직히 민준의 냄새만 맡아도 미치겠는데, 키스까지 해버리니 체면이고 뭐고 너무 황홀하고 짜릿했다.

오로지 민준과 키스를 태어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흐브으, 하우으-…민, 민준아…”

황홀하고 또 황홀한 민준과의 키스를 끝내고, 진주는 여성이 아니라 암컷 같은 눈빛을 하고 색기 가득한 신음을 흘리며 민준의 이름을 야릇하게 불러봤다. 진주는 마치 또 다른 자신이 튀어나온 것 같다고 느꼈다. 이렇게 야한 모습을 할 수 있는 여자였는지, 여태껏 진주 스스로도 알지 못했었다.

“…그렇게 야한 눈으로 유혹해도 안 돼. 지금 해버리면 누나 해롱거려서 작업 못 할거잖아.”

“아, 아니야-…민준아. 누나, 할 수 있어-. 열심히 할게. 응? 열심히 일할 테니까…응?”

“조그만 참아. 나 해야 할 게 많아. 이따가 옆에 있는 호텔로 부를게. 아니면 설마…몇 시간도 못 참을 정도로 발정 난 건 아니겠지? 누나 그런 음란한 사람 아니잖아? 그치?”

“흐윽…알, 알겠어. 참, 참아볼게. 누나 음, 음란하고 그런 여자 아니니까…”

“옳지. 착하다.”

민준은 다시 한번 강아지를 칭찬해 주듯이, 진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주는 지금 이렇게 또 민준의 손길을 받아버리면, 민준이 호텔로 부를 때까지 훨씬 괴로운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민준의 손길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떤 마약도 이렇게 달콤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누나. 조금만 더 열심히 해. 열심히 일한 만큼 내가 이따가 상 줄 테니까.”

“으, 응! 열심히, 열심히 할게…!”

툭툭-.

민준은 마지막으로 진주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고 걸음을 옮겨 대표실로 향했다. 사실 지금 당장 진주를 따먹어도 큰 상관은 없었지만, 충분히 애를 태워놓고 섹스를 해야 복종도를 수월하게 쌓을 수 있었다.

얼마나 애를 태우느냐에 따라서 몇 배 이상의 차이가 나기도 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레깅스를 마구 찍어내서 문화 승리에 다가서고 싶은 민준으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음…오늘 해야 할 일이…’

민준은 대표실 책상에 앉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봤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꽤나 많이 있었다.

‘지윤이랑 만나서 버프 주고…아, 오늘 혜나랑도 만나기로 했지. 그리고…호텔로 가서 진주 누나랑 다영이까지 챙겨주고…그리고 복종도 높은 연습생 애들도 슬슬 잡아먹을 때가 됐어. 아, 저녁에는 새롬이 어머니한테도 들려봐야겠네.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그랬으니까.’

생각만으로도 과로사해버릴 만큼 할 게 너무나도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정은 따로 있었다.

당분간은 집에도 잘 못 들어갈 만큼 바쁠 것 같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지혜-. 연주 친구 BJ 지혜는 언제 오려나…?’

***

‘여기가 연주 남자친구 회사라고…? 헐, 미친…!’

여름이 다되어가는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후줄근한 츄리닝 바지와 쥐색 후드집업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지혜가 스타 엔터 사옥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 이런 회사 대표면 바쁜 게 당연하지. 이런 씨방방…!!’

지혜는 회사 앞에서 10분이 넘도록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런 지혜의 모습을 사옥 정문에 배치된 보안 요원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학창시절 내내 왕따로 지내, 사람의 시선에 워낙 민감한 지혜는 당연히 보안 요원이 자신을 의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 그래도 들어가야 해! 연주…! 연주랑 친구를 하려면…! 연주를 지키려면…!’

오래도록 고민했지만, 결국 지혜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더 망설이다간 보안 요원이 먼저 다가올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도망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무서운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뚜벅-. 뚜벅-.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지혜는 무척이나 어색한 발걸음으로 사옥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보안 요원의 시선에 오금이 저려왔지만, 후드를 푹 눌러쓰고 땅을 보며 걸으니 어떻게든 견딜 만했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따로 있었다.

‘흐아, 후아. 어, 어떻게…! 어떻게…!!’

지혜는 겨우겨우 사옥 출입증을 발부해주는 안내 데스크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해서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이 상태로 억지로 입을 열면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안녕하세요.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시나요?”

“…”

“저, 손님…?”

“대, 대, 대…대, 대-. 대에에에에-. 에에에에에-…”

“…네?”

자신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데스크 직원을 보며, 지혜는 하는 수 없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메모장에 글자를 쳐서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김민준 대표님 보러 왔어요. 이름은 민지혜입니다.

“아~ 네. 확인되셨습니다. 신분증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끄덕끄덕-.

지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직원에게 신분증을 넘겨줬다. 잠시 기다리니 데스크 직원이 신분증과 함께 출입증을 건네주며 대표실의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저쪽에서 출입증 찍고 들어가셔서, 엘리베이터 타고 8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꾸벅—.

지혜는 대답 대신 공손하게 직원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는, 직원이 알려준 대로 출입증을 찍고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오니까, 그제야 지혜의 입에서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아-……진짜……그냥 죽어버릴까.”

연축성 발성장애. 지혜가 가진 병의 이름이었다.

긴장을 하면 뇌 신경이 성대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병이었는데, 지혜는 어릴 때부터 이 병을 앓아왔다. 그래서 사람과 마주 본 상태에서는 대화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당했던 것도 전부 이 병 때문이었고, 얼굴 없는 BJ로 활동하는 것도 지혜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지혜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백 번도 넘게 고민했다. 연주의 남자친구가 이런 큰 회사의 대표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평소보다 더 긴장되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래도 단어를 짧게 끊어서 말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너무 긴장돼서 그것마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띵-.

하지만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속절없이 대표실에 도착했고, 지혜는 마치 누군가 등을 떠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떨떨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몸과 정신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분리돼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지혜 님.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아으…”

끄덕끄덕-.

멍하니 서 있던 지혜는 옆에서 들려온 비서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혜는 황급히 입을 닫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서가 안내해 준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으…어쩌지! 어쩌지…!’

오줌을 지려버릴 정도로 긴장되는 상황에 지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대표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서웠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이 쏠릴 거라는 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끼익-.

지혜는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바닥에 박고는 대표실의 문을 열었다. 자신의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이 정도로 긴장되는 상황은, 힘들어도 이겨내야 한다며 선생님이 억지로 발표를 시켰던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읏…! 그, 그치만 연주…연주랑 친구를 하려면…!’

하지만 그런데도, 지혜가 자신의 모든 걸 짜내서 미치도록 긴장되는 상황에 맞서는 것은, 순전히 연주 때문이었다.

게임 속에서 우연히 만난 연주였지만, 지혜는 연주와 친구가 되면서 엄청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연주에게는, 연주에게 말할 때만은, 아무런 긴장조차 되지 않았다. 대체 왜인지는 정말로 몰랐다.

하지만 지혜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연주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착한 연주라면, 직접 만나서 대화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을 왕따로 살았던 자신에게도 마침내 친구가,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가 생길 거라는 희망을, 지혜는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지혜는 오금이 저리고 속이 메스꺼워 토끼가 올라와도 꾸역꾸역 참으며 여기까지 올라왔고, 마침내 대표실에 당도할 수 있었다.

“지혜 씨…?”

“…”

“지혜 씨 맞으시죠?”

“아, 아우우우-. 후에, 후에에에.”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