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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149화 (149/270)

〈 149화 〉 149화

최근 들어, 연주의 일과는 무척이나 규칙적이고 또 빡빡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민준과의 모닝 키스 또는 섹스. 민준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라면 곧바로 샤워.

그리고 집에 오는 미현을 반겨주며 같이 아침을 차려 먹고 사이좋게 정원을 걷다가, 안방으로 가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때부터 늦은 점심때까지 게임을 하다가, 미현이 차려주는 간식을 먹고는 거실에서 미현과 홈트레이닝을 함께한다.

그 뒤로는 다시 쭉 게임을 돌리다가 저녁이 되면 오늘 돌린 게임 중 가장 못 한 판을 뽑아 관전 및 복기를 하며 실수한 점을 체크하고, 메신저를 통해 민준에게 내용을 전달한다. 그렇게 오늘의 워스트 플레이에 대해 민준에게 피드백을 받은 다음, 다시 상위 0.001% 챌린저 플레이어들의 게임을 관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다 출근했던 민준이 집에 돌아오면, 민준과 함께 저녁을 먹고 게임을 하고 섹스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남들이 볼 때는 섹스와 게임밖에 없는 미치도록 퇴폐한 시간표로 보이겠지만 적어도 연주는, 최근 인생에서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뇌가 온통 쾌락으로 절여지는 민준과의 달콤한 섹스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미현과 함께 하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포근한 모성애도 잔뜩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민준이 알려준 ‘레오레’라는 게임 역시 너무나 재밌었다.

연주의 아빠는 연주가 뭐만 하면 위험하다며 말리기 바빴고, 설영은 뭐를 해도 연주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래서 연주는 온실 속 화초처럼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민준을 만나고 레오레를 시작하면서 온실 속에서 정체되어 있던 연주의 삶은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도 쑥스러워했던 연주에게, 10명의 사람이 모여 협력하고 경쟁하는 레오레를 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민준이 아니었다면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게임 속에 빠져들자, 그 앞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매판이 도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도전에 익숙했다.

패배 쓴맛도 알게 되었고 승리의 달콤함도 배웠다. 그래서 겨우 쓴맛이 무서워서 포기하기엔, 달콤한 맛은 너무나 달콤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달콤한 승리를 향해 전진하니 매일매일 성장하고 성취해나갈 수 있었다. 연주는 민준이 강조한 대로 매판에 진심을 다해 치열하게 임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했다. 실수한 건 다시 돌려보며 오답 노트를 써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실력이 수직으로 상승했고, 이제 연주는 레오레에 있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보다 월등히 티어가 높았다.

연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서 부딪히고, 거대한 성취를 이루어 내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 느낌은 정말정말 짜릿해서, 민준이 곁에 없는 절망적인 시간들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여전히 힘들긴 했지만, 레오레가 아니었다면 더욱더 힘들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여하튼, 그런 일과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연주는, 최근 다시 한번 인생의 특이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드디어, 연주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특급 소심쟁이에다가, 설영 때문에 단 한 번도 제대로 사귈 수 없던 ‘친구’라는 존재를, 게임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

“후아……하우으……”

-뭐야. 우리 연듀,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지혜야. 아, 아무 일도 없어.”

최근 들어 마스터 구간을 압살하고 다니는 바텀 듀오 때문에 롤(레.오.레)판은 시끄러웠다.

다름이 아니라 듀오 플레이어들의 성별이 여성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전직 프로게이머들이나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이 득실대는 마스터 구간을 여성 듀오가 압살하는 사건은 10년이 다 되어가는 롤의 역사상 이번이 최초였다. 그야말로 대형 사건이었다.

플레이어들의 이름은 각각 ‘연듀공듀’와 ‘BJ 지혜’였는데, BJ 지혜의 경우 롤판의 네임드라고 할 수 있었다.

BJ 지혜는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너튜버이자, 여자 BJ 중 유일하게 한 서버에 300명밖에 없는 챌린저 티어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로, 귀여운 목소리와 티어에 걸맞은 화려한 플레이, 그리고 자신의 신상을 철저히 가리고 방송하는 얼굴 없는 BJ로도 유명했다.

또 롤판에서 유일한 챌린저 여자 BJ답게 그녀가 방송만 켰다 하면 온갖 어그로 꾼들과 안티팬들이 모여들어 그녀의 방송을 쓰레기판으로 만들기 일쑤였는데, 지혜는 그럼에도 언제나 꿋꿋한 모습으로 방송을 진행하며, 인터넷 방송 팬들이 꼽은 극성 페미니스트가 되어도 손발들도 인정해야 하는 여자 BJ 1위에 늘 랭크되곤 했다.

사건의 발단은 얼마 전 지혜와 연주가 우연히 바텀 듀오에 서게 된 순간부터였다.

매일매일 챌린저 경기를 관전하는 연주는 픽창에서부터 ‘지혜’의 아이디를 알아볼 수 있었고, 모든 플레이어의 채팅을 차단하고 오로지 게임에만 집중하는 평소와는 달리 지혜에게만 채팅 차단을 걸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신이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과 만나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고, 지혜는 여자였으니 서로 소통을 한다고 해도 민준에게만 향해있는 자신의 순수를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게임은 시작됐고, 지혜는 게임을 하면서 연주의 플레이에 매번 감탄을 터트렸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숙련도가 쌓이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분이었고, 기가 막힌 스킬 타이밍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모든 단점을 가릴 만큼 대단했다.

이미 게임으로 일가를 이룬 초고수 지혜는, 연주의 플레이를 보며 연주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집중해서 게임에 임하는지 단번에 간파할 수 있었고, 게임이 끝난 뒤 연주에게 같이 봇듀오를 돌리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남자에게 이라면 시청자들에게 여우 짓을 한다며 꼬투리 잡힐 위험도 있었지만, 연주의 아이디인 ‘연듀공듀’는 대놓고 여성스러워서 그런 걱정도 필요 없었다.

연주 역시 지혜의 플레이에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냉큼 듀오 제의를 수락했고, 그렇게 같이 게임을 하며 서서히 친해져 간 두 사람은 최근 들어서는 서로 보이스 채팅까지 하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는 서로에게 더더욱 큰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는 당당하고 유쾌한 지혜가 마음에 들었고, 지혜 역시 사회의 어두운 면에 완전히 찌들어버린 자신과는 전혀 다른 순수하고도 귀여운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들은 마치 N극과 S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겼고, 결국은 친구가 되었다. 그냥 친구도 아니고 완전히 영혼의 단짝 수준이었다.

민준밖에 모르는 연주나, 어릴 때부터 게임만 하며 자라 커서는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방송만 하는 지혜나, 친구가 한 명도 없었기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직 서로 얼굴도 몰랐지만, 그런 것쯤이야 두 사람의 사이를 조금도 갈라놓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봐 또 남자친구 때문이야?

“…으, 응. 오늘도 집에 못 들어온다고 해서어. 흑…너무 보고 싶은 데에-.”

-…연주야. 그 사람 혹시 너한테 마음 식은 거 아니야?

“아, 아니야…! 그런 건 절대 아니야…! 바, 바빠서 그래. 민준 씨가 요즘 너무 바빠서어…

-에이. 아무리 바빠도 집에를 안 들어온다고?

“……”

지혜의 뼈아픈 팩트 폭행에 연주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민준이 자신에게 마음이 식을 리 없다고는 굳게 믿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민준이 워낙 바빠져서 좀처럼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연주는 요근래 심란해진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은 민준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게임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민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주가 게임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것도, 민준과 함께 즐겁게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실력이 쭉쭉 향상돼서 언젠가 민준과 비슷해지면, 민준이 예전처럼 집에 오래오래 있어 줄 것 같았다.

자신과 같이 게임을 하는 게 재밌어서, 민준이 예전처럼 오래오래 이 집에서 머물러 주기만을, 연주는 빌고 또 빌었다.

“하우으-……”

하지만 요즘 들어 민준은 게임에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하루걸러 하루꼴로 외박을 하고 있었다.

집에 있어도 민준을 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미현마저 집에 가버리는 이런 쓸쓸한 밤이 될 때면 마음이 엄청나게 공허했다.

그렇다고 민준에게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투정 부리기엔 너무 미안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민준에게 방해되거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어린아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래, 어린아이나 그렇게 투정 부리는 것이었다.

터억-.

연주는 잠시 집어 들었던 휴대폰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만 지혜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고 자라 가야 할 것 같았다.

민준이 없는 밤을 견디려면, 그저 민준의 셔츠에 얼굴 파묻고, 민준의 냄새라도 맡으며 빠르게 잠에 드는 수밖에 없었다.

“지혜야아-. 나, 나 자러 가야 할 것 같아서어-…”

-그래. 근데 연주 너 목소리가 너무 안 좋다. 혹시 우는 건 아니지?

“울, 울긴 누가 울어어-. 괜, 괜찮아……아무렇지도 않아……”

-아으, 쫌! 무슨 남자친구가 연주 네 인생 전부야?

“응. 전, 전부야아-…”

-허. 그럼 그 사람도 네가 전부여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너만 기다리고 너만 마음 아파해?

“아, 아니야아-. 민준 씨는 워낙 바쁘니까…어쩔 수 없는 거야…”

-참나. 이 답답아. 네가 그렇게 자꾸 이해해주니까 그 민준이라는 사람이 널 놔두고 막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

-아으, 짜증나! 야, 연주야! 너 그냥 내일 우리 집 와라. 우리 집 와서 신나게 놀고 자고 가!

“에…?”

연주는 갑작스러운 지혜의 제안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벙벙한 상태로 몇 초간 더 생각을 해보던 연주는, 이내 깜짝 놀라며 지혜에게 되물었다.

“정말…?! 정말 지혜네 집에 가도 돼?!”

-어. 당연하지. 너 한남동에 산다며. 그럼 우리 집까지 금방이야.

“나, 나 친구네 집 가는 거 살면서 처, 처음이야…!!”

-잘됐네. 나도 다른 사람한테 집 공개하는 거 처음이야. 우리 엄마 아빠도 몰라.

“정, 정말? 우, 우와…!! 근데…민준 씨한테 허락받아야 하는데…허, 허락해주실지는 모르겠어.”

-아, 진짜!! 네가 무슨 그 사람 노예야? 그냥 친구 집 가서 하루 놀겠다는데 허락은 무슨 허락!

“그, 그래도. 허락받아야 해. 응, 안 그러면 민준 씨가 싫어할 거야.”

-후우…정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봐, 연주야. 이걸로 그 민준이란 사람의 관심을 끄는 거야.

“민, 민준 씨의 관심…?”

민준이 싫어할 만한 짓은 절대로 하기 싫은 연주였지만, 민준의 관심을 끌자는 지혜의 속삭임에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에게 민준의 관심이란, 받아도 받아도 또 받고 싶은 것이었고, 없으면 차라리 죽는 게 백배 천배 나을 정도로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 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그냥 친구랑 약속 있다고 하고 시크하게 집에서 나와. 아, 여자친구라고 알려주지 말고 꼭 그냥 친구라고 해야 해. 그래야 질투를 유발할 수 있으니까.

“질, 질투…? 민준 씨의 질투…?”

연주는 지혜와 대화를 하면서, 잠시 민준이 자신에게 질투하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곧은 미간을 터프하게 찌푸리며, 자신의 손목을 꽉 휘어잡고는 거칠게 자신을 다뤄주는 민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황홀해서, 금세 숨이 가빠왔다.

질투를 유발하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달콤해서 도저히 지혜의 제안을 단호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연주는 결국, 뱀이 주는 사과를 덥석. 물어버렸다.

“아, 흐으-. 질, 질투하는 민준 씨…! 너, 너무 보고 싶어! 그리고 지혜네 집에도 꼭 가보고 싶어!”

-그치? 그럼 나 방송해야 하니까 내일 늦은 저녁쯤에 만나자. 우리 집에 와서 같이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응, 응…!”

-연주야. 나도 이거 네가 진짜 마음에 들어서, 엄청 용기 내서 제안하는 거니까 웬만하면 파토내지 말고 꼭 와야 해…?

“알, 알겠어…! 지혜야!”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응! 응!”

****

짝-!

“흐앗…!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민준 씨!”

“그래서……아무리 여자라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 집에 그렇게 쉽게 가기로 한 거예요? 그 사람 집에서 어떤 짓을 당할 줄 알고? 연주 씨는 길에서 갑자기 만난 사람이 친구 하자고 하면서 자기 집에 따라오라고 하면 좋아서 따라가겠네요. 그쵸?”

“아, 아니에요…! 흐, 흐앙…! 흐읏, 잘못했어요오-! 잘못했어요, 민준 씨! 흐응…! 하읏…!!”

짝-! 짝-!

연주에게 모든 전말을 전해 들으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 무릎 위에 연주를 엎드리게 한 다음, 연주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연주에게 하는 것치고는 엉덩이 매질을 꽤나 터프하게 하고 있었는데, 이는 연주에게 화가 나고 괘씸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연주에게 미안해서였다.

게임을 하도 재밌게 열심히 하길래 하루 이틀쯤은 집을 비워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연주의 얘기를 듣다 보니 전혀 아니었다. 연주는 여전히 연주였다.

그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자, 요즘 신경 쓸 게 하도 많아서 오직 나만을 기다리는 연주에게 관심을 제대로 못 준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연주가 좋아할 법한 멘트를 던져주었다. 그나마 이런 거로라도, 연주가 그동안 부족했던 나에 대한 결핍을 채웠으면 싶었다.

“연주 씨 대답해봐요. 연주 씨는 누구 거에요?”

“흐응, 하우으-. 민준 씨 거예요. 연주는 민준 씨 거예요…!!”

“근데 왜 제 허락도 없이 친구랑 약속을 잡아요? 제가 화내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

“죄, 죄송해요…! 흐윽,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연주 씨, 오늘 잠잘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마세요. 친구네 집 갈 생각 같은 것도 버리시고요.”

“아으, 아우으-. 하으, 하아-…민, 민준 씨이-. 용, 용서해 주세요오-. 흐아, 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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