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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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잉-. 위이잉-.
어머니를 책임져 주겠다는 소리에 감동하여 펑펑 울고 있는 새롬이를 달래주고 있는데, 느닷없이 전화가 울렸다.
점심에는 집에 들어올 건지, 들어오면 식사는 어떤 메뉴로 하고 싶은지 물어보기 위해서 미현 누나가 전화한 줄 알았더니, 핸드폰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은 ‘연쥬공쥬’였다.
“새롬 양. 잠시만 앞에 있는 비서실에서 대기하고 있을래요? 전화 좀 하고 갈게요.”
“흑…네, 네. 대표님.”
새롬이를 잘 달래서 보낸 뒤에 나는 냉큼 전화를 받아들었다. 내가 보고 싶다며 언제 오느냐고 귀엽게 칭얼거릴 거라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연주의 목소리는 내가 예상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심상치 않은 다급함이 느껴져서 듣자마자 등골이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민, 민준 씨…!
“무슨 일이에요. 연주 씨?
-미, 미현 언니가 아직 집에 안 와서요. 어제 좀 늦을 수도 있다고 하긴 했는데…!
“…”
-전, 전화도 안 받고…이상하게 계속 걱정돼서…아,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누가 자꾸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서…근데 왜인지 미현 언니 목소리랑 비슷하게 느껴져요. 흐윽…민준 씨…민준 씨…저 너무 무서워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언, 언니가 너무 걱정돼요…!
쾅-!
하고 가슴 속에 거대한 비석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 성녀로 지정했던 연주가 해주는 말이라 더욱 그랬다.
성녀의 랭크에 따라 교주 스킬이 강화된다는 말 이외에는 스킬 설명에 별다른 묘사가 없었지만, 원래도 묘사에 없는 다양한 능력들이 스킬에 숨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나, 예지력이나 신탁은 성녀가 가지는 흔한 능력이었다.
아직 확신할 순 없었지만, 연주의 기우가 단지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연주 씨. 일단 진정하세요. 제가 지금 누나 집으로 가볼 테니까. 뭔가 다른 게 들리거나 하면 또 전화해주시고요. 아시겠죠?”
-네, 네. 민준 씨. 알겠어요. 진, 진정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요.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미현 누나 데리고 집으로 갈 테니까. 아시겠죠?”
-네, 네. 민준 씨…!
연주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말을 최대한 침착하게 하고 있었지만, 연주보다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 나였다.
나는 연주와 통화를 하면서 이미 차 키를 챙겨 회사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직원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지만 전부 무시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뛰었다. 내가 지금 얼마나 빠르게 뛰고 있는지, 내 표정이 대체 어떤 꼴인지 신경 쓸 정신조차 없었다.
대표실에서부터 지하 주차장까지, 순식간에 뛰어 내려와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연주와의 전화가 언제 끊겼는지, 안전 벨트는 매어졌는지, 주변 차들이 왜 이렇게 빵빵거리는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미현 누나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저번에 세뇌를 걸면서 혹시 몰라 주소를 알아놓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혼 얘기를 꺼내다가 잘못된 건가…? 젠장.’
시은 누나의 사태 이후로, 나는 미현 누나에게 여러 가지 세뇌를 걸어놨었다.
남편의 사소한 단점에도 더 강한 혐오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서, 자꾸만 이혼을 미루는 미현 누나가 조금 더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혹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집 주소를 알아놓고, 위급한 상황이 터지면 무조건 나를 제일 먼저 떠올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에게 연락을 취하라고 안전 대책까지 세워놨었건만, 지금까지 미현 누나에게서 온 연락은 한 통도 없었다.
‘그렇다면 상황은 둘 중 하나라는 건데…’
연주의 촉이 완전히 빗나갔거나, 미현 누나가 나에게 연락할 수도 없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다시 말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미현 누나가 무사할 가능성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연주가 들었다는 미현 누나의 비명이 아까부터 내 귓가에도 맴도는 기분이었다.
부우우웅——.
나는 너무 밟아서 이미 빡빡해진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갔다. 차가 아니라 무슨 전차를 타고 있는 느낌이었고, 워낙 빠르게 달려서 위급한 상황도 몇 번 있었지만 피지컬로 꾸역꾸역 극복해냈다. 최근에 신체 강화를 충분히 해놔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밟고 또 밟아서 미현 누나의 집에 도착했다. 빨간 벽돌로 담벼락을 이루고 있는 평범한 주택이었다.
나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초인종은 누르지도 않은 채 가볍게 벽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집 안에서 몸싸움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미현 누나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귓가에 맴도는 환청이 아니라, 진짜 미현 누나의 비명이었다.
-민준아……! 민준아……!
“이런, 씨발.”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비명만으로도 미현 누나가 얼마나 다급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와장창——!
재빨리 뛰어서 큰 창틀 쪽으로 몸을 던졌다. 창문이 꽤 두껍긴 했지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육탄공세로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인기척이 들려왔던 방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방문을 열자 손발이 묶인 채 침대에 누워있는 미현 누나와 미현 누나의 위에 올라타 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마도 남편 새끼겠지.
“민준아…! 민준아…!!”
“너 뭐야 이 새끼야!!”
두 사람 모두 나에게 뭐라 뭐라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미현 누나의 상태를 살폈다.
얼마나 저항하고 반항한 것인지 곱디고운 긴 생머리는 완전히 산발이었다. 온몸에는 멍 자국이 나 있었고, 특히 뺨이라도 맞았는지 내가 좋아하는 미현 누나의 예쁜 얼굴이 완전 엉망이었다. 볼 근처가 퉁퉁 불어 터져서 끈덕진 핏덩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는데, 그 꼴을 보니까 도저히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터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꼭지가 순식간에 돌아버렸다.
“뭐야…!! 씨발, 너 뭐냐고…!! 오, 오지 마…!! 씨발, 오지 마. 이 새끼야…!!”
내가 다가가자 미현 누나를 덮치고 있던 남편이 재빨리 일어나서 가위를 손에 들고 나를 위협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서 남편 새끼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버렸다. 맹세코 신체 강화가 되고 나서 이렇게까지 전력으로 힘을 써본 적은 처음이었다.
쉬이이익-. 쫘아아악—!!!
뺨을 치는 순간 손바닥에서 남편 새끼의 피부가 터져나가며 치열이 모조리 으스러지는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고, 쓰레기 새끼는 뺨을 맞고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바닥으로 날아가 버렸다.
“커헉…!!!”
“안 돼!! 민준아 안 돼!! 그러지 마!!”
나는 쓰러져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다. 언뜻 뒤에서 미현 누나가 날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미현 누나는 내 첫 여자였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이었다. 곁에만 있어도 따듯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저렇게 끔찍하게 만들어놓은 새끼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빨은 첫 타격부터 전부 날아가 버렸고, 몇 대 더 때리자마자 입에서 피가 철철 쏟아지는 게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어차피 미현 누나의 기억이야 지우면 그만이었고, 지금 내가 가진 힘을 이용하면 이 새끼를 죽이고도 충분히 뒤처리를 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이 새끼를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만!!! 그만해!!! 김민준!!! 정신 차려!!!”
미현 누나가 워낙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러서 이제는 듣지 않으려고 해도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지만, 그래도 무시했다. 이런 새끼는 미현 누나를 위해서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맞았다.
원래 한 번 하는 게 무섭지 두 번 세 번부터는 쉬운 법이었고, 가정 폭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새끼가 이혼한다고 순순히 미현 누나를 놔줄 리가 없었다. 어느 날 누나를 납치해서 폭행하고 강간할지 몰랐고, 나는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런 후환을 놔두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새끼는 그냥 죽어야 해.’
나는 방구석에 쓰러져있는 쓰레기 새끼의 복부를 걷어차기 위해서 발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어느새 침대에서 굴러떨어져서 바닥을 기어온 미현 누나가 내 발에 매달렸다.
“흐윽, 흐윽…!! 아, 아흐읏…! 제발!! 제발!! 민준아…!! 누나 너무 무서워…!! 그만해…!! 제발 그만…!!”
“이거 놔. 다쳐.”
“제발…!! 민준아…!! 제발…!! 차라리 나를 때려…!! 나를 때리라고…!”
“…그 꼴이 되도록 맞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누나 그 정도면 착한 게 아니라 그냥 호구인 거야. 알아들어?”
“그래…! 나 호구야…! 그래도 못 보겠어…!! 나 때문에 네가 다른 사람 죽도록 패는 거, 정말로 못 보겠다고!! 흐윽, 하으-. 흐아아앙!!!”
“후우-…”
무슨 삼류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청테이프로 어설프게 손발이 묶인 채 필사적으로 내 발에 매달려서 펑펑 우는 미현 누나의 모습은, 무척이나 애처로웠다. 마
음을 독하게 먹었었다가도, 미현 누나의 그런 모습을 보니까 도저히 폭력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내려놓고는 꺼이꺼이 울고 있는 미현 누나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팔다리가 묶인 미현 누나는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몸을 움직여서 내 품속을 파고들었다.
그 처절한 움직임에 미현 누나가 얼마나 힘들고 고되고 서글펐는지 느낄 수 있어서 다시 한번 살심이 끓어올랐지만, 이내 가라앉혔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상 서럽게 울고 있는 미현 누나를 달래주는 일이었다.
“흐윽-…민준아…민준아…!”
“누나. 나 여기 있어.”
“흐윽, 흐앙-. 고마워…! 구해줘서 고마워…! 나 너무 무서워서…민준이 네가 정말 보고 싶어서…흐윽…”
툭툭-.
나는 내 몸에 매달려 아이처럼 우는 미현 누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누나 손발에 감겨 있는 청테이프를 뜯어냈다. 그리고 여전히 미현 누나를 안은 채 한 손으로 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유나에게 이 개벌레 새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었고, 유나는 사정을 듣더니 크게 분개하며 자신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방안의 모습과 폭력을 당한 미현의 몸 상태를 사진으로 남겨 놓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는 엉망이 되어 있는 방과 범죄 도구들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울고 있는 미현 누나에게 정장 자켓을 벗어서 덮어준 뒤 공주님 안기 자세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흐응, 흐아…민, 민준아…”
“일단 여기서 나가자. 다친 곳도 치료해야 하니까.”
“하으. 저, 저 사람은…? 저러다 죽으면 어떡해…”
“됐어. 유나가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
“으, 응-…”
그렇게 처맞고도 남편을 챙기려 하는 누나가 답답해서 살짝 언성을 높였더니, 미현 누나가 의기소침하게 대답하며 내 목을 조심스레 꼬옥 감싸 안았다.
‘하아…이놈의 성질.’
나는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 미현 누나에게 언성 높인 것을 곧바로 후회했지만, 솔직히 억울한 면도 있었다. 호구도 적당히 호구 같아야지, 미현 누나만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평소에 유독 미현 누나를 짓궂게 괴롭히는 것도, 누나의 이런 면과 관련이 있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분명했지만, 동시에 한없이 착해 빠져서 온갖 사람들에게 자꾸만 연민과 동정심을 느끼는 미현 누나였고, 나는 미현 누나의 그런 따듯하고 포근한 마음을 미치도록 좋아하면서도 미현 누나의 관심이 오로지 나에게 향해 있기를 바랬다.
모두에게 따듯한 햇살을, 내 손에만 꼭 쥐고 가둬놓고 싶은 마음이랄까.
뭐, 여하튼. 미현 누나는 나에게 햇살이었다. 아침이었고, 봄날이었다. 나는 미현 누나를 차에 태워놓고, 다시 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현 누나를 건드린 새끼를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네, 민준 씨.
“유나 씨. 혹시 이 사람 몰래 납치해서 가둬둘 수 있을까요? 법적으로 말고 제가 직접 벌을 내리고 싶어서요. 죽이지는 않을 생각인데…”
-이번에 인수한 건설사에 그런 쪽에 커넥션 있는 간부들이 몇 있어서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만…민준 씨가 직접 그런 더러운 일을 하실 필요가…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폭력도 거의 안 쓸 생각이니까. 그냥 조용히 납치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민준 씨……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럼…저도 너무 슬프니까…
“알겠어요. 유나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야 괜찮으니까.”
-네, 민준 씨.
뚝-.
유나와의 통화를 끊은 나는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유능하고 사려 깊은 여자가 내 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하지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유나에게 겨우 이런 부탁이나 하게 만든, ‘그 새끼’를 생각하자 마음이 또 차갑게 식어갔다.
‘너는……내가 꼭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으로 만들어줄게.’
나는 굳게 다짐하며 운전석의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복수는 언제라도 할 수 있었으니, 지금 당장은 미현 누나를 달래주는 게 우선이었다.
“누나.”
“으, 응. 민준아…”
나는 차에 타서 누나를 불렀다. 그런데 누나는 머릿속을 맴도는 폭력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바짝 쫄아있는지,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잔뜩 겁에 질려 대답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누나에게 세뇌를 걸어 내가 깨울 때까지 잠들어 있으라고 명령한 뒤에 차를 몰아서 스타 엔터 옆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미현 누나가 연주와 유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은 엉망이 된 누나의 몸부터 치료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