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144화
시원한 콩나물국과 매콤달달한 제육볶음.
간단하지만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들이었다.
이혼하자고 말을 꺼내는 자리에서 이런 음식들을 낸다는 게 조금 웃기긴 했지만, 미현은 그래도 마지막 식사 정도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싶었다.
보글보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놨던 음식들이 끓기 시작하자,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미현은 간을 살짝 보고는 예쁜 그릇에다가 음식을 정성스레 담으며 상을 차렸다. 음식 냄새를 맡았을 테니, 남편이 곧 깨어나겠지.
“여보. 화장대 위에 올려둔 서류 뭐야…?”
“…일어났어요?”
미현의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은 주방을 향해 걸어왔다.
떡 진 머리와 눈곱이 붙어있는 부스스한 상태였지만, 남편의 눈빛에는 독기가 바짝 올라 있었다. 미현은 남편의 눈빛 속에서 섬뜩한 기세를 읽을 수 있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식사를 차렸다.
마지막으로 밥공기 위에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을 채워 식탁에 올려놓은 미현은, 말없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남편을 마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침 챙겨 먹어요. 나는 일하러 가야 하니까.”
“지금 아침이 문제야…? 당신 화장대 위에 있는 거 뭐냐고 물었어…”
남편은 마치 사나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목소리와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미현은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그나마도 남아있던 오만가지 정이 전부 다 떨어져 나가는 걸 느꼈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고,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이혼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줄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지켜주겠다고 말하던 남편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세월에 변질된 건 자신만이 아니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면서 느껴야 했던 죄책감마저 사라졌다.
미현은 당장 이 못난 사람에게서 벗어나 민준을 보러 가고 싶었다. 아무리 짓궂게 놀리고 괴롭혀도, 결국에는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꽉 안아주는 민준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미현은 여전히 담담하게, 그러나 조금은 싸늘하게 말했다.
“이혼 서류야. 나는 이미 해놨으니까 당신만 사인하면 돼.”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 이혼을 하는데?”
“…목소리 낮춰줘. 나 당신 빚 갚으려고 몸까지 팔았었어. 나한테 그런 모습 보이는 거…말이 된다고 생각해?”
“누가 팔래?! 나한테는 말도 없이 너 혼자서…너 혼자서 가서 팔아놓고…!!”
“…안 그랬으면? 당신 죽으려고 했던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
미현의 말에 분노를 토해내던 남편의 입술이 꾹 닫혔다. 평생동안 일해도 이자도 못 갚을 정도로 큰 빚이었다. 도움을 받으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헛수고였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고, 실제로 포기하려고 했었다.
미현의 말대로, 미현마저 떠나갔다면 자신은 분명 죽었을 것이다.
돈을 가져오면서 같이 힘내보자고 예전처럼 살아보자고, 울면서 웃던 미현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맞아. 나 당신 없으면 죽어.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이러지 마. 제발.”
미현의 부탁에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미현은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라 당장에라도 이 집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남편이 정말로 죽어버릴까 봐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제발 나 한 번만 살려주라 미현아.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 아니, 나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이러지 말라고 했어. 당장 일어나서 아침이나 먹으라고. 서류 못 봤어? 내가 남은 빚도 다 갚아줄 테니까 이제 당신도 새로운 인생 살면…”
“안 돼. 새로운 인생 같은 거 원하지 않아. 나한테는 당신이 전부야. 응? 당신도 알고 있잖아. 나 당신 없으면 정말로 죽을 거야. 돈이고 명예고 다 필요 없어. 나는 당신만…당신만 있으면 돼.”
“그런 사람이 매일 술을 그렇게 마시고, 나한테 몸이나 파는 더러운 여자라고 술주정을 부렸어? 내가 몸을 왜 팔았는데…? 누구 때문에 팔게 됐는데!!”
찌질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모습에 마침내 미현의 입에서도 분노가 터져 나왔다. 지금도, 그리고 몸을 팔기 시작했을 때도, 언제나 남편을 위해서 살았었다. 사랑하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남편에게 받은 건 언제나 상처뿐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진절머리가 났다.
“그, 그건…그냥 술김에…진심이 아니야…! 내 진심은 그런 게 아니야…! 너를 너무 사랑해서! 화가 나서 그랬던 거야…!”
“됐어. 당신이랑 더 이상 말하기 싫어. 당신 같은 사람 정말 최악이야. 나는 당신이랑 살면서 상처만 늘었어. 이제 이렇게는 못 살아.”
“제발…! 제발 미현아!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내가 병신이라서 당신 행복하게 못 해준 거 미안해!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씨발!! 나는 당신 절대 포기 못 하겠다고!!”
“하-…”
미현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사람이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자신처럼 새로운 인생 잘 살라고 빌어주진 못 해도, 적어도 이렇게 추하게 붙잡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착각이었다.
“어, 어디가…!! 당신 어디 가는데!!”
“…”
미현은 앞치마를 벗고 말없이 안방으로 향해서 지갑과 핸드폰만 챙겨 나왔다. 다른 짐도 꽤 있었지만, 미련은 없었다. 어차피 민준의 집에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
미현은 어정쩡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남편을 지나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 단 일 초라도 빨리, 이 혐오스러운 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모든 게 환멸스러웠지만, 이런 사람과 결혼을 선택한 바보 같은 자기 자신이 가장 짜증 나고 비참했다.
겨우 이런 사람 때문에 몸을 팔게 돼서, 자신이 미치도록 사랑하는 민준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없다는 게, 지독히도 원망스러웠다.
타다다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던 미현은 남편이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무시하고 신발을 신고 일어섰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려는데, 한순간 손목에서 강한 저항력이 느껴졌다.
“…이거 놔. 정말 신고하기 전에.”
“못 놔. 절대 못 놔. 그런 차림으로 어딜 가는데? 또 그 젊은 놈 집이야? 나 버리고 돈 많고 젊은 새끼한테 가는 거야?”
“새끼니 뭐니 하지 마. 당신 같은 사람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사람이니까.”
“닥쳐, 김미현!! 너야말로 내 앞에서 다른 새끼 칭찬하지 마. 나 진짜 제대로 빡도는 꼴 보기 싫으면…!”
“…하.”
이제 아예 대놓고 험한 말을 쏟아내는 남편을 보며 미현은 바닥에 있던 기분이 지하 밑까지 푹 꺼지는 걸 느꼈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하게 차올라서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 민준을 보러 가고 싶었다.
미현은 할 수 있는 최대한 힘을 줘서 남편에게 잡혀있는 손목을 빼내려고 노력했지만, 엄청난 힘 차이 때문에 도저히 손목을 빼낼 수가 없었다.
턱-. 턱-.
“읏…이거 놔. 아파. 당신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어디까지 추해지고 싶은 건데?”
“닥쳐. 이건 다 네 탓이야! 네가 내 허락도 없이 다른 새끼한테 가려고 하는데 내가 이러는 거잖아! 다 네 잘못이라고…!!”
“…미친놈.”
“…뭐?”
추태란 추태는 다 보이다가 결국 미현에게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자, 분노로 얼룩졌던 남편의 얼굴이 한순간에 딱딱해졌다. 미현이 얼마나 사려 깊고 따듯한 마음씨를 가졌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웬만한 사이코패스 범죄자들도 미현에게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기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해봐.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제정신이야…?”
“제정신 아닌 거 당신이야. 지금 당장 이거 풀어. 아니면 정말로 경찰에 신고할 거니까.”
“신고? 씨발, 신고해봐. 손이 다 잡혀있는데 신고는 어떻게 할 건데?! 내가 너 안 풀어줄 건데 신고를 어떻게 할 거냐고…!!”
턱-.
남편은 미현에게 바짝 다가와서 아예 미현의 양 손목을 모두 묶어버렸다. 미현은 죽도록 무서웠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저항했다.
앞뒤 생각을 못 할 정도로 회까닥 돌아버린 남편이, 자신에게 어떤 짓을 할지는 상상도 못 한 채.
“…당신 정말 미쳤어? 이렇게 폭력적으로 나오면 내가 당신 불쌍하게라도 생각할 것 같아? 됐어. 나도 이제 당신 빚 안 갚아 줄 거야. 그냥 빚에 허덕이다가 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그렇지. 씨발. 세상 착한 척은 지 혼자 다하더니 이제야 본성 나오네.”
“…뭐?”
“어차피 몸이나 팔던 년이 뭘 그렇게 고귀하다고. 너 같은 창녀가 나 버리고 얼마나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꿈 깨. 미친년아.”
“…이 손 놔. 놓으라고 했어.”
“하. 아직도 상황파악 못 해? 나 이제 보이는 거 없어. 씨발, 어차피 너 없으면 죽을 건데 무서울 거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이리 와.”
“이익…!! 읏…!! 아, 아파! 이거 놔! 놓으라고…!!”
쿠당탕탕-!
남편은 미현의 양손을 잡은 채, 안방으로 미현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미현은 팔다리를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강한 저항에도 결국에는 바닥에 쓰러져 머리채를 잡힌 채 남편에게 질질 끌려갔다.
“흐윽…! 흐윽, 흐앙…!!”
“울지 마. 울지 마…!! 씨발, 울지 말라고…!!”
미현은 갑작스럽게 펼쳐진 폭력 사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고, 자신을 바닥에 쓰러트리고 질질 끌고 가는 남편에게 저항하면서 생긴 멍과 상처들 때문에 지독하게 아팠다.
“흐윽, 하아…! 민준아…흐윽, 후으…민준아…”
“민준이…? 씨발, 그 새끼 이름이 민준이야…? 지금 내 앞에서 그 새끼 이름 부른 거야, 이 개 같은 년아?!”
“아윽…!! 그, 그만….! 저리 가…!! 저리 가앗…!!”
침대에다가 미현을 던지고 몸을 덮쳐서 강제로 미현을 못 일어나게 막은 남편이, 미현에게 윽박질렀다.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로 다급한 상황에 미현은 정말로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마구 휘둘러서 남편에게 저항했다.
몸이 남아나질 않을 정도로 격하게 저항하니, 남편도 당황해서 살짝 몸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고, 미현은 그 틈에 몸을 굴려서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쿵-.
대비도 못 하고 바닥에 떨어져 버려서 조금 아프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현은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서 안방 문을 열고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사이에 침대에서 일어난 남편이 다시 한번 미현의 머리채를 확 잡아채 버렸다.
“아악…!!”
“이 씨발년이!!”
남편은 미현의 머리채를 잡고 다시 침대 위로 미현을 던져버렸다. 그리고도 도망가려 하는 미현 위에 올라탄 남편은, 팔을 힘껏 치켜들었다가 미현의 뺨을 전력으로 내리쳤다.
짜악——!!
“꺄악!!! 흐윽!!”
“가만. 가만히 있어. 씨발, 가만히 있으라고…!”
“싫어!! 싫다고 이 미친놈아!!”
짜악—! 짜악—!!
뺨을 맞고도 저항하는 미현에게 남편은 사정없이 뺨을 후려쳤다. 그렇게 몇 번이고 뺨을 맞았을까. 뺨에 피멍이 들다 못해 아예 퉁퉁 불어 터버린 다음에야 미현의 저항이 멈췄다.
미현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입에서는 민준이라는 이름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씨발. 그만하라고! 그 새끼 이름 그만 부르라고!!”
“흐윽…민준아…민준아-…”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엉망이 된 미현의 얼굴을 보면서 아차 싶었던 남편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찾는 미현의 모습에 다시 한번 눈깔이 뒤집혔고, 탈진한 상태로 침대에서 정신없이 울고 있는 미현을 놔두고 거실로 가서 이사할 때나 쓰는 청테이프와 가위를 챙겨 들었다.
그리고 안방으로 돌아온 남편은 미현의 손발을 청테이프로 칭칭 감기 시작했다.
“흐윽-…하으, 후으…민준아…민준아아-…하으…”
“…씨발년. 개 같은 창년. 너만 고생했어? 너만 힘들었냐고.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좆같았는데…씨발, 씨발, 진짜…!!”
남편은 자기 자신조차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 안에 이런 악마가 숨어 있었을 줄은 정말로 몰랐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친 미현에게 못 할 짓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남편은 모든 탓을 미현에게로 돌려버렸다.
이 모든 게 젊고 돈 많은 남자에게 홀려서 자신을 버리려 한, 창녀 같은 김미현의 탓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고, 미현에 대한 애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아아-…아으…하으…”
“가만히 있어. 다치기 싫으면.”
미현의 손발을 둘둘 묶어서 포박한 남편은, 가위로 미현이 입고 있던 실크 슬립을 자르기 시작했다. 서걱서걱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몸에 닿자 미현은 비참한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벌벌 떠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제야 말을 듣네."
그런 힘이 대체 어디서 나는지 오랫동안 격하게 저항하던 미현이 극단적인 폭력 앞에서 비로소 얌전해지자, 남편은 폭력에 더욱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미현을 잡을 방법이라고는, 이런 폭력밖에 없었다.
예전에야 미현의 모든 게 자신의 것이었지만, 오피를 그만두고 미현이 자신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미현의 모든 것을 민준이라는 젊은 놈에게 뺏겼다는 것쯤이야 눈치채고 있었다.
“씨발년…이 거대한 젖탱이로 그 어린놈을 홀린 건가? 그 좆같은 어린놈이랑 잘살아 보려고 나 버리려는 거잖아. 이 창년. 더러운 년.”
“흐윽…하윽…민준아…제발…제발…”
“몸이나 팔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그래, 내가 멍청했어. 너 같은 창년은 그냥 이렇게 다루는 게 맞아. 존나게 발정 나서 좆이나 박아주면 앙앙거리기 바쁜 년인데…”
푸욱-.
남편은 추악한 말을 끊임없이 뱉어대며, 미현의 팬티를 젖히고는 전혀 젖지 않아서 뻑뻑한 상태인 미현의 보지에 손가락 두 개를 무자비하게 찔러넣었다.
“아악…! 빼…! 빼…! 빼라고…!!!”
“닥쳐. 너도 좋잖아. 이 창년아.”
미현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지만, 그 고통보다 혐오스러운 감정이 더욱더 컸다. 마치 수십, 수백 마리의 벌레와 구더기가 자신의 비부 안으로 들어와서 질벽을 갉아 먹는 기분이었다.
민준이 만져줄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고, 그럴수록 더 간절하게 민준이 보고 싶었다. 이렇게 사는 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민준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은 게 천추의 한처럼 느껴졌다.
‘민준아…! 제발 구해줘…! 민준아…!! 흐윽, 민준아. 민준아…!!’
민준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떠오르는 사람이 민준밖에 없었다. 미현은 민준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진즉에 민준이 해줬던 말을 들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집에 돌아가지 말고 같이 있자고 했을 때 거절해서 미안해…! 빨리 이혼하라는 했을 때 망설여서 미안해…! 그래도…그래도 제발…!!’
미현은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 민준에게 기도하며 남편의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손길을 견뎌냈고, 미현이 자신을 혐오스러워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던 남편은 손가락을 빼내고 다급하게 바지를 벗어 자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지를 미현의 보지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엇…!! 민준아…!! 민준아앗…!!”
“닥쳐! 자지만 넣으면…어차피 자지만 물면 만족하는 년이…! 씨발…!”
“으읏…! 싫어…! 싫다고…!!”
팔다리가 묶여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미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허리를 뒤틀고 허벅지를 붙여서 남편이 자신을 범할 수 없게끔 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버텨봤자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저항 끝에 결국 남편의 힘에 의해서 허벅지가 벌려지고 서서히 남편의 물건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미현은 눈을 꼭 감아버렸다.
이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와장창—!!
“씨발…! 뭐야…?!”
하지만 그때, 거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미현은 끼익-. 하고 소리를 내며 열리는 방문을 쳐다봤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를 보고, 곧 죽을 것 같던 미현의 얼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해졌다.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은 절망 속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이, 정말로 기적처럼, 자신에게 찾아와 주었다.
“민준아…! 민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