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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138화 (138/270)

〈 138화 〉 138화

먹기 좋게 잘라 놓은 여러 과일과 카나페, 그리고 올리브까지. 식탁에는 각종 와인 안주들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진주와 식탁에 앉으며 놀랐다는 눈으로 진주를 바라봤다.

“요리 잘하네? 누나?”

“차리기 쉬운 것들뿐인데 뭘. 그것보다 계속 반말할 거니?”

“응. 누나.”

“누나라고 한다고 해서 딱히 심장이 쿵쿵하거나, 절대 그러지 않아. 민준아.”

“그래도 누나라고 할게. 정감 있잖아.”

“으휴~ 정말. 마음대로 해라. 그래.”

진주는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는, 와인을 까기 시작했다.

선물용으로 받은 것인지 예쁜 포장 박스에 와인과 함께 와인오프너까지 들어가 있었는데, 진주는 자신 있게 와인을 들고 마개를 깐 다음 오프너를 살살 돌려가며 코르크에 집어넣었다.

“으응-…”

하지만 진주는 오프너를 잘 집어넣고도 힘이 부족해서 따기 힘들어했는데, 나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진주에게 손을 쓱 내밀었다.

“줘 봐. 누나.”

“…와인 따 본 적 있어?”

“아니. 그래도 줘 봐.”

“이거 힘으로 되는 거 아니야. 너무 힘으로 하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진주는 못 미덥고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조심스레 와인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진주에게 와인을 받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마개를 따버렸다. 나의 압도적인 피지컬 앞에서 코르크 마개쯤이야 앙상한 나뭇가지 수준이었다.

뿅-.

“어머! 어떻게 그렇게 쉽게 따?”

“왜. 반했어?”

“진짜. 너는 입만 닫으면 완벽남인데…입이 마이너스야. 입이.”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손을 뻗어 진주의 잔에 와인을 적당히 채우고, 나의 잔에도 와인을 따랐다. 주방에 진한 포도 향이 가득 차올랐다.

‘슬슬 농담도 던지고. 이제 내가 많이 편해졌나 보네.’

진주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오늘 아침에 비하면 우리의 관계는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침의 친밀도가 10 정도라면 지금은 60~70까지는 올라온 상태랄까.

애초에 진주의 입에서 저 정도 수준의 농담이 나오는 것 자체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진주를 오래 알았던 건 아니었지만, 진주같이 선을 잘 긋는 사람들은 저런 말을 절대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람 사귀는 걸 무서워하는 겁쟁이 진주가 스스럼없이 농담을 던질 정도로 나를 친밀하게 여긴다는 게 무척이나 뿌듯했다.

“왜 그렇게 웃어…”

“아, 그런 게 있어.”

“…뭐야. 또 느끼한 멘트나 던질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둘러대네?”

“원래 밀당이란 게 이렇게 하는 거라. 누나가 기대할 때는 절대 안 해주지.”

“딱히 아무것도 기대 안 했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가 봐도 기대한 티가 역력했다. 누나의 말투나 행동,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느끼하니 어쩌니 해도 결국에 진주 역시 내 화술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았다.

짠-.

진주와 내가 잔을 부딪치고, 와인을 조금씩 들이켰다. 처음에는 안주에도 손이 갔지만, 나중에는 둘이서 수다를 떨면서 와인만 홀짝였다. 애초에 레스토랑에서 워낙 든든하게 먹고 온 우리에게 식탁에 놓인 안주의 양은 너무 과도했다. 심지어 누나가 하나하나 예쁘게 만들어놔서 나중에 버려질 게 뻔해서 아깝긴 했지만, 그래도 술맛을 돋구는 데코레이션 정도로 생각하면 쓸모는 있었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예쁜 안주들과 불그스름해진 진주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취하지도 않았는데 취한 기분이었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딱 그 말이 어울렸다.

“으응-. 왜 이렇게 맛있지이-. 그만 마셔야 하는데에-…”

“그럼 그만 마셔.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렇게 마셔대?”

“하기만 해봐! 아줌마가 너 진짜 가만히 안 둘 거야!”

“누나라니까 왜 자꾸 아줌마래. 진짜 아줌마라고 불러줘?”

“그…그건 싫어. 그, 그래도 네가 누나라고 할 때마다 자꾸 심장이…”

“심장이…”

“…몰라. 술이나 마시자.”

짠-.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진주의 목으로 넘어가는 와인의 양이 늘어갈 때마다, 진주는 조금씩 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개인적으로는 옷을 벗길 때보다 이렇게 마음을 벗길 때가 더 흥분되곤 했는데, 마음을 벗기는 게 훨씬 더 어렵고 가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진주처럼 자신을 마음의 빗장 속에 꼭꼭 숨기는 사람의 속마음을 들춰 볼 때는 훨씬 더 짜릿했다.

나는 여유롭게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키고는, 누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장식장 구경할 때 봤는데, 누나 아역 배우도 했더라? 상도 많이 탔던데?”

“아, 응. 근데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아.”

“그래? 왜?”

“진짜 부자인 너한테 이런 얘기 하는 게 좀 웃기지만…어렸을 때부터 돈을 꽤 많이 벌었거든. 부모님이 1년 맞벌이하시는 돈보다 내가 cf 몇 편 찍으면 버는 돈이 훨씬 많았으니까.”

“음…”

“처음에는 무척이나 좋아해 주셨는데, 갈수록 나를 좋아하는건지 내가 벌어오는 돈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그때부터…좀 외로웠어. 부모님한테도 마음을 못 주니까 누구한테 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녀서 친구도 없었고…그러다가 이 대표님이 좀 친절하게 챙겨주시니까 바보같이 훌러덩 넘어가 버린 거지 뭐.”

“믿을만한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었구나?”

“그치. 그래서 그냥 쭉 믿었어. 결국, 그 사람 여자가 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계속 같이할 수 있었으니까. 아마 스타 엔터가 너한테 넘어가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그대로, 그 사람만 바라보면서 살았을지도 몰라. 그 사람한테 준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거든. 그 사람이 받아주지 않아도 버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사실…지금도 네가 조금 원망스러워.”

“내가 그 사람이랑 누나를 떼어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맞아. 너만 아니면 지금도 그대로, 그 사람하고 같이 일하면서 지냈을 텐데…”

진주의 덤덤한 말투에서는 한 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속이 조금 답답해져서 와인을 홀짝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로는 안 되겠냐며 매달리는 건 하수.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건 중수였다. 진정한 고수라면, 전 짝사랑 남을 그리워하는 상황에서도 썸녀의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했다.

“…진짜 멍청하다. 누나.”

“뭐? 너…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는 누나의 짝사랑이 되게 고귀하고 순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거 그냥 미련한 거야. 멍청한 거고.”

“…”

“한 사람만 바라봐? 아니지. 다른 사람을 보는 게 무서웠던 거겠지. 누나는 겁쟁이니까, 또 상처를 받을까 봐 다른 사람을 좋아할 자신도 없던 거잖아. 그러니까 누나한테 다가오는 사람들 싹 다 쳐내면서 평생을 혼자서 살았겠지. 그러면서 또 혼자 외로워하고…누나 완전 바보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나 진심으로 그 사람 좋아했어. 다른 사람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래? 그럼 지금 당장 그 사람 집 앞으로 달려가서 매달리지그래?”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야. 그건 그냥 민폐일 뿐이고, 사랑하는 사람한테도 지켜야 할 매너가 있는 거야.”

“그건 적당히 사랑할 때 얘기고. 정말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했어야지. 어차피 이제 보지도 못할 사인데, 지금 와서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건데? 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누나 마음이 소중해서, 버리기 아까워서 아직도 미련 붙잡고 있는 것뿐이잖아. 지금 그 사람은 누나 같은 거 생각도 안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텐데, 미련하게 누나만 마음고생 하고 있잖아.”

“…”

“진짜 어린 건 누나야. 진심으로 부딪혀보고 안되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도 능력이고, 그게 어른이야. 상처받기 싫다고 다 썩어가는 마음 꽁꽁 쥐고 있어 봤자 그 사람은 누나 절대 돌아보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내가 누나한테 좋은 일 한 거지. 썩어가는 마음 깔끔하게 도려내 준거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징징거려. 그리고…”

“흐윽-…흐응, 쓰읍-. 흐윽-. 흐앙!!”

“…”

그리고 지금 누나 앞에서 같이 술 마셔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똑바로 보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 전에 진주가 눈물을 터트려 버렸다. 이런,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건데.

여하튼,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건네 편에 있는 진주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감정이 진정되도록 잠시 울게 내버려 둔 둔 다음에, 진주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테이블에 있는 티슈를 몇 장 뽑아서 진주의 얼굴에 매달려 있는 눈물방울들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흐윽-. 흐아, 흐으-. 사, 사실 네 말이 맞아…흐윽-. 나는 겁쟁이고, 멍청이야. 흐응, 하우-.”

“…”

“흐아아- 쓰읍, 흐으-. 그,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평생 이렇게 바보처럼 살아와서…흐윽-. 그 사람이…완전히 떠나가 버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저히 모르겠다구…흐윽, 흡-.”

“…”

나는 진주가 알아서 응어리진 감정을 쏟아낼 수 있도록 말없이 등을 두들기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여자 앞에서는 어떤 첨언을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는 것보다는 그저 묵묵히 위로를 해주는 게 훨씬 더 잘 먹혔다.

어차피 감정이 해소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하면, 자신이 절절하게 쏟아낸 감정을 받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법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금방이라도 키스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는 것도.

“…흐우. 흐아-.”

“옳지. 뚝 그치고 진정해봐. 누나. 열두 살 어린 꼬맹이한테 이런 모습 계속 보여줄 거야?”

“흐응-…너,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에…너 때문에…자꾸 밀어내는데도 네가 계속 나한테 다가오니까…나도 마음이 이상해서…”

“그래? 마음이 어떻게 이상한데? 어떤…기분이야?”

쓰윽-.

나는 촉촉한 분위기에 적합한 약간은 느끼한 목소리로 물어보며, 서서히 고개를 움직여서 진주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으읏-. 아, 아으-. 흣…”

갑작스러운 나의 육탄 공세에 진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황해서 신음 소리를 내더니,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하지만 진주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입술이 거의 맞닿을 때쯤 몸을 멈춰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입술에서 자그마한 감촉조차 느껴지지 않는 게 이상했는지, 진주가 감아놨던 눈꺼풀을 슬그머니 올렸다.

“왜-…”

“왜긴. 아무리 취해도 건드리지 말라며. 나는 누나 계속 보고 싶은데, 키스해버리면 누나가 나 안 볼 거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답답하면 누나가 해줘.”

“뭐…”

“누나가 키스해달라고. 그러면 내가 건드리는 게 아니라, 누나가 날 건드리는 거잖아.”

“말, 말도 안 돼…”

진주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려버렸다. 하지만 나는 진주의 거절이, 그리 완강하지 않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접근을 허용했다는 것 자체가, 진주도 나와 키스할 마음이 있다는 걸 시사했다. 다만, 먼저 키스를 한다는 것이 서른 살 처녀에게는 부끄러울 뿐이었고, 나는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쓰윽-. 스윽-.

나는 손에다가 교주의 오오라를 집어넣고 진주의 머리를 대단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으응-. 너, 너어-.”

“어서, 누나. 누나가 키스해줘. 어렵지 않아. 그냥 나한테 입술만 주면 되는 거야.”

“그, 그게 어려운 거야! 부, 부끄럽다구!”

“괜찮아. 누나가 먼저 키스해주면, 나는 더 부끄러운 것도 얼마든지 해줄게.”

“읏… 정, 정말. 어린 게 발랑 까졌어…”

“…그래서 싫어?”

“싫…싫다고는 안 했잖아. 바, 바보야.”

말로는 계속 부정하고 있지만, 진주의 눈빛은 매초마다 촉촉해지고 있었다. 나에 대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30년 이상 묵힌 진득진득한 성욕에 서서히 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기에, 나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진주를 달랬다.

“자, 어서. 눈 딱 감고 입술만 부딪히는 거야. 그것만 하면, 나머지는 전부 내가 해줄 테니까.”

“흐응-…자, 자꾸 야한 말 하지 마…기, 기분이 이상하다구-. 하으…정, 정말…그냥 뽀뽀만…뽀뽀까지만 할 거니까…”

“그래, 뽀뽀만. 딱 뽀뽀만 해줘.”

“으응-. 흐아…이,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 봤는데에-…츕, 츄읍-.”

누나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드디어 누나의 입술과 나의 입술이 도킹에 성공했다.

평균으로 따져봤을 때,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뽀뽀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무척이나 긴 편이었지만, 그만큼 누나와의 뽀뽀는 맛있었다.

물론 뽀뽀만 하고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일단은 누나를 안심시켜서 뽀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나는 아주 부드럽게 누나의 입술을 훔쳤다.

“츕-. 츄윱-.”

“츄읍-. 츄-.”

분위기만 보면 곧장 서로의 혀를 넣어서 믹서기처럼 돌려야 할 정도로 끈적끈적했지만, 우리는 약속대로 정확히 베이비 키스만을 나누고는 얼굴을 떼어냈다. 아무리 처녀라도 베이비 키스만으로는 조금 아쉬웠는지, 진주 누나의 입에서 자그마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흐응-.”

“왜, 아쉬워?”

“으응-…딱…딱히 그런 건…”

“그럼 한 번만 더 할까? 뽀뽀?”

“그, 그럴까? 기분이 나, 나쁘진 않으니까…”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는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 이번 베이비 키스를 끝내고 입을 떼어냈을 때, 진주의 초롱초롱한 눈은 이미 게슴츠레 풀려서 끈적한 색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으응. 한, 한 번 더 할까? 너, 너무 짧은 것 같기는 한데…”

“그럼 이번에는 더 길게…?”

“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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