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124화
딱히 티는 내지 않았지만, 유나는 이미 나의 신비로움에 대해서 어렴풋이 눈치챈 상태였다. 내 정액에 엘릭서와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가끔 던지는 ‘그 사람은 몸에서 빛이 난다.’ 같은 말들도 근거 없는 장난이 아니라 나만의 특별한 기준에 따라 나오는 말들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유나가 반문을 한 것은 그런 부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귀엽다는 말 때문이겠지.
“…벌써 김진주 부대표랑 따로 만나보기라도 하신 거예요?”
“네. 어쩌다 만났는데 사람 괜찮더라고요.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그, 그야 아이돌이었으니 예쁘긴 하겠지만…”
“혹시 유나 씨도 누군지 알아요?”
“아마 제 나이 또래에서는 모르는 사람 없을 거예요. 굉장히 유명했거든요.”
“아~. 어쨌든 그 사람은 부대표에 그대로 두는 거로 하죠. 제가 스타 엔터 쭉 돌아다니면서 겨우 찾는 보석이거든요.”
“네…민준 씨.”
유나가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고는 테이블에 앉은 채 노트북을 틱틱 두드렸다. 의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유나답지 않은 시무룩한 모습이었지만, 그게 너무 귀여워서 나는 유나의 옆에 앉아서 유나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했다.
“그…민준 씨의 선택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유명한 연예인을 부대표 자리에 계속 두면 안 좋은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에…리스크가 너무 심하다고 할까요.”
“괜찮다니까요. 그런 사람으로는 안 보였어요.”
“민, 민준 씨는 모르시겠지만, 소, 소문이 안 좋았던 적이 있거든요. 김진주 부대표. 전 대표였던 이준호 씨와 스캔들 의혹도 몇 번 터졌었고…”
“…그래요?”
“네. 이준호 씨가 결혼할 당시 자살소동이 일어났다는 소문도 있었고…가정환경도 불우한 거로 유명하고…그, 그러니까 너무 믿음을 주셨다가는 민준 씨가 실망하실 수도 있으니까…”
나는 열심히 진주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는 유나의 머리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그러자 노트북에 고정되어 있던 유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삐진 애완동물을 달래듯이 아주 사랑스럽게 유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읏-. 민, 민준 씨…!”
“툴툴대는 거 귀엽네요. 유나 씨.”
“아, 아, 아니…! 툴툴대다니…!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래도 제가 선택한 사람이니 너무 배척하지는 말아주세요.”
“흐응-…제가 잘, 잘못했어요. 민준 씨.”
당황하던 유나가 결국 자신이 잘못했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런 유나를 꼭 끌어안았고, 내가 다가가자 순식간에 가팔라진 유나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민, 민준 씨…”
“그 사람이 아무리 보물이라고 해봤자 유나 씨만 하겠어요? 제가 가진 최고의 보물은 유나 씨에요. 알고 있죠?”
나는 유나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이며, 은근슬쩍 손을 움직여서 유나의 정장 후크를 풀고 이어서 브래지어까지 툭 하고 벗겨버렸다.
“민, 민준 씨-. 잠시만요…! 누, 누가 올지도 모르는데…!”
“그래서요? 제가 이 회사 대표인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요?”
“오, 오후에…! 대표 취임식이 있으니까 잠, 잠시만 참았다가…!”
“싫은데요. 정장 입은 유나 씨가 너무 섹시해서 못 참겠어요. 그러게 누가 이렇게 딱 붙는 치마에 하이힐까지 신고 오래요?”
“민, 민준 씨가 이렇게 입으라고 했으면서…! 읏, 으읍…!!”
대표 취임식까지는 약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이미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유나가 열심히 작성해 온 대본도 이미 다 외운 상태였고, 무엇보다 이 건물 자체가 대단히 수월하게 성역화가 되고 있었다.
끝없는 복지로 이미 직원들의 민심을 사로잡은 상태였고, 복도 중간에 있는 예술 작품들은 하나같이 내가 직접 오오라를 주입한 성물들이었으며, 무엇보다 교주인 내가 직접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버프였다. 덕분에 오늘만 해도 새로운 신도들이 수십 명가량 늘어난 상태였다.
심지어는 아직 얼굴 공개도 안 했는데 이 정도라면 상황은 끝난 셈이었다. 스타 엔터는 이미 무한금욕교의 훌륭한 교인 양성소로 변질된 상태였다.
그러니 취임식이라고 긴장할 것도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충성스러운 교인들 앞에서 가볍게 좋은 말 몇 마디 해주고, 복종도만 쌓으면 그만이었다.
거기에 더해 누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대표실에서 정장 차림이 유독 섹시한 유나까지 따먹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읏…! 하아! 으응-. 민, 민준 씨…!”
“회사 사람들한테 유나 씨 신음 전부 들려줄 생각이에요? 잘 좀 참아봐요.”
“아응, 흣…! 저, 저 못 참겠어요오. 민준 씨, 민준 씨이…! 흐앗, 하읏…!”
****
그날 오후, 스타 엔터 사원들과 연습생들은 대표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나둘씩 대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사실상 참석이 필수인 사원들과 달리 연습생들은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지금까지 대표에 관해 쌓였던 수많은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연습생들까지 대표 취임식에 참석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거대한 규모의 대강당은 사람들로 붐볐고, 임직원들을 주로 앞줄에 앉아 있었으며, 연습생들은 뒤쪽에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그 연습생들 중에는 다영과 레이첼을 비롯한 데뷔조 연습생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진짜 누굴지 너무 궁금하다. 정말 중국인일까? 아니면 아랍 왕자? 아-. 이첼아 나 정말 궁금해 죽겠어. 미천한 연습생들한테도 월급 따박따박 하사해 주시고 식당도 싹 바꿔주시고, 거기에 내로라하는 트레이너 쌤들까지. 지렸다 진짜. 세상에 이런 대표님이 어딨겠어…!”
“…딱히? 그냥 다 자기 돈 벌려고 투자하는 거 아니야?”
“떽! 이첼아,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고 다니면 안 돼. 라떼는 말이야! 이런 건 정말 상상조차…”
다영의 말에 이첼은 냉담하게 반응했지만, 연습생들의 민심은 대부분 다영과 비슷했다. 다른 거 다 떼고 품위 유지비 명목으로 연습생들에게 이만한 규모의 월급을 지급하는 기획사는 우리나라에서 스타 엔터가 유일했다.
원래 연습생은 무급이 기본이었기에 집안에서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알바를 병행하면서 아주 고되게 연습생 기간을 버틸 수밖에 없었는데, 기획사에서 월급을 넉넉하게 주니 더 이상 알바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일매일 춤과 노래만 연습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니 자연스레 연습생들의 사기와 트레이닝 효율은 미친 듯이 좋아졌고, 그 효과를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연습생들 본인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대표에 대한 민심이 떡상할 수밖에 없었고 그 떡상한 민심은 그대로 민준에 대한 복종도로 이어졌다. 그 결과, 현재 대부분 연습생들은 이미 무한금욕교의 교인이 된 상태였다.
어리고 순수하며, 기본적으로 절박한 마음가짐을 지닌 연습생들만큼 대단히 열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진주를 빼면 대부분의 임직원 역시 새로운 대표에게 우호적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진주 역시 준호를 향한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회사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리라.
“안녕하십니까. 부대표님!”
“아…네, 안녕하세요.”
근처에 있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정해진 자리에 착석한 진주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아…뭐였지, 정말. 아까 그 아이…’
원래라면 어딘가에 앉아 있을 준호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느라 바빴겠지만, 지금 진주의 머릿속에는 점심에 만났던 민준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모태 솔로에다가 연애 바보라고 해도 민준이 자신을 갖고 놀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코앞까지 다가왔던 민준의 얼굴과 눈빛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진짜…’
단 한 번뿐이었지만 그래도 인생을 다 바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모해본 진주이기에, 자신 안에 맴도는 이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고작 말 몇 번 섞은 남자, 그것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에게 설레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잘생겨서…? 정말 고작 그런 거로 내가 이렇게 돼버린 건가?’
민주에게 사랑이란 고작 외모 같은 거로 생성되고 움직이는 가벼운 감정이 아니었다. 외모를 고려했다면 자신이 준호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자신이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진주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순간의 혼란 때문에 찾아온 오류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래. 김진주. 그냥 너무 오랫동안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몸과 마음이 고장 나버린 거야. 설마 그런 발랑 까진 얘한테 첫눈에 반했다거나…절대 그런 건 아닐 거야. 응. 절대.’
속에서 어마어마한 고민과 생각들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진주는 영 행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따라치고 가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계속 자신의 감정과 민준에 대해서 생각할 뿐이었다.
‘어라…? 뭐지?’
하지만 그런 진주 역시 시끌벅적하던 대강당이 한순간에 도서관 마냥 조용해지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진주는 초점을 제대로 잡고 강단 위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진주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김, 김민준! 네…네가 왜 그곳에…!’
하늘 위에서 세상을 오시하듯 여유롭고 기품있는 걸음걸이로 강단 위로 향하는 청년이 있었다.
조각가가 정성스레 깎아낸 듯 완벽한 얼굴과 몸매는, 보고 있는 모두의 숨을 멎게 했다. 무표정으로 있으니 인상이 약간 차가웠지만, 그것이 당연해 보였다. 뿜어내는 기세가 오만했지만, 오만해도 될법한 사람이라는 듯 그 기세로 모두를 눌러 내리고 있었다.
또, 잘 쳐줘도 20대 초반이나 될법한 그 청년은, 딱 맞게 떨어지는 명품 정장과 명품 시계,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된 단정한 머리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연예인들도 쉽사리 소화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러운 착장과 스타일링에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태어났을 때부터 정장을 입고 블랙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을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사치의 아우라 덕분에 스타일이 더욱 살아나고 있었다.
턱-.
민준은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청중들을 바라봤다. 교주의 심안을 켜보니 앉아 있는 사람들의 과반수가 훨씬 넘는 사람들이 이미 교인이 되어 있었다.
흡족한 마음에 민준은 가볍게 웃었고, 그 웃음에 교인들은 심장이 멎는 충격을 느껴야 했다.
강력한 성역 버프로 인해, 교인들은 감히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로 민준에게서 신성하고도 경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의 미소를 보게 되자, 교인들은 영혼까지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영과 같은 신실한 교인 몇몇은 이미 말없이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스타 엔터의 새로운 대표,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민준은 교주의 아우라와 선지자의 목소리를 발동시킨 뒤, 여유롭게 마이크를 잡고 외워놨던 취임사를 담담히 내뱉기 시작했다.
유나가 정성 들여 써놨던 취임사긴 했지만, 내용이 대단히 특별한 건 아니었다. 유나의 업무 스타일대로 짧고 간결하게 핵심만 콕콕 집고 있었다. 취임사만 들어도 이 대표가 얼마나 효율을 중요시하고 유능한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취임사를 들으며 교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민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리고 가슴을 깊숙이 후벼 팠다. 목소리만 들어도 왠지 울컥해서 솔직히 내용이 어떤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여하튼 인생에 다시는 없을 대단히 감동적인 취임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유독 복종도가 높은 연습생들의 경우, 민준의 목소리를 듣고 영혼 깊이 감동해서 성스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흐윽-. 나, 나 왜 이러지…”
“모, 모르겠어. 나도 갑자기 눈물이…아-. 대표님…!”
“흐윽-. 대표님…대표님…!”
느닷없이 관중석 여기저기서 대표님을 부르짖으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민준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와…뭐야. 이런 게 진짜 사이비 교주의 기분인가?’
민준은 말을 내뱉으면 내뱉을수록 알 수 없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기묘한 열기가 자신의 가슴을 간질이는 기분이었다.
이미 청중들의 반응은 정상적인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단지 지지의 수준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할 수 있다면 목숨과 영혼까지 모조리 다 바칠 기세였다.
‘이거 이러다 일 나는 거 아니야…?’
취임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민준은 그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감동에 겨워 광광 울면서 희미하게 대표님을 부르짖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딴에는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목소리가 동시에 수십 개씩 겹치니 강당에 있는 민준의 귀에는 거의 처녀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교인들이 자신을 영접하며 영혼 충만하게 감동하고 있는 건 좋았지만, 조금만 더 감동했다가는 여성 교인들이 좀비 떼처럼 달려와 집단 난교를 펼쳐버릴 정도의 분위기였기에 민준은 빠르게 마무리 인사를 날렸다.
집단 난교야 솔직히 바라는 바였지만, 아직 교인이 안 된 사원들도 분명히 있었기에 자칫하다간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이제 막 교주로서의 제대로 된 행보를 시작했는데, 곧장 교도소에 들어가서 콩밥 맛을 즐길 수는 없었다.
“이상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민준은 마무리 인사를 마친 뒤 마이크를 입에서 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관중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떤 슈퍼스타의 공연장에 가도 이 정도의 박수와 함성은 들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반응이었다.
-꺄아아악!!! 대표님!!! 대표님!!!!
-여기 좀 봐주세요!! 대표님!!!
-으아아아악!!! 신이야!!! 저분은 신이라고!!
-대표님!! 대표님!! 우리 대표님!!!
-날 가져요!!! 가져 주세요!! 제발!! 제바아아알!!!!
-으아아아아아아악!!!! 끼요오오옷!!!
‘저건 무슨 익룡이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