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22화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시은 누나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심지어는 내가 물건 치우듯이 옆으로 차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나를 붙잡고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다.
“하. 이것 좀 놔. 진짜. 누나도 봤잖아. 나 누나 말고도 여자 많아. 누나가 그렇게 걸레같이 행동하고 다니는데, 내가 나만 바라보는 다른 여자애들 놔두고 왜 누나를 상대해 줘야 하는데?”
“아, 아니야…! 절대 안 그럴게! 이제부터 다른 남자랑은 연락도 안 할게. 민준이 너만! 너만 바라볼게! 응?”
“이미 늦었다니까? 누나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걸레인 데다가 말도 안 듣고.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빨리 집에나 가.”
나에게 매도를 당하면 당할수록 시은 누나의 얼굴이 거무죽죽해져 갔다. 내가 단순히 뻥카를 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을 손절하려고 하고 있다는 걸 느낀 것 같았다. 시은 누나는 더더욱 비굴해져서 갔고, 나는 압박에 압박을 거듭해서 결국 누나의 입에서 절대복종의 맹세가 나오도록 만들 수 있었다. 내가 누나에게 원하는 포지션으로, 누나가 스스로 기어들어 가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뭐든지 할게! 육변기고 성노예고 다 괜찮아. 할게. 하게 해줘…! 원할 때면 언제든지 나를 장난감처럼 써도 돼. 제발, 제발 나를 물건처럼 다뤄서 망가트려도 괜찮아…! 버리지만 말아줘, 민준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어떻게 물건처럼 다뤄. 그건 아니지, 누나.”
“아, 아니야!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민준아! 나, 나는 그냥 네 장난감이야…! 나는 민준이 전용 육변기야. 형편없지만 제발 사용해줘! 나는, 나는…!”
“됐어. 말이야 누가 못해. 뭐, 그렇게 원하면 엎드려서 내 발이나 빨아보던가.”
시은 누나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엎드려서 내 발을 쪽쪽 빨았다. 누나의 혀 놀림에선 내게서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누나의 절박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쯥-. 마음대로 써. 누나는 민준이 성욕 풀이 도구야. 다른 애들은 못 받아 주는 것들 누나가 전부 받아 줄게. 받아 줄 수 있어…! 민준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누나는 알고 있으니까…응?”
“아~. 그렇게 나를 잘 알아서 그딴 영상으로 나를 도발했던 거야?”
“그, 그건 미안해…! 나는 그냥 민준이 네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그래. 알고 있어. 근데 내가 화날 거라는 걸 알고도 고작 관심받으려고 그딴 짓을 한 누나가 너무 괘씸하다니까?”
“미안해. 내가 미안해…! 네 화가 풀릴 수 있다면, 정말 뭐든지 할게. 응? 나를 얼마든지 때리고 짓밟고 고문해도 괜찮아. 제발 버리지만 말아줘 민준아.”
“참, 나-. 내가 뭐 사람 괴롭히고 싶어서 환장한 사디스트야…? 뭐, 그래도 누나가 원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화가 풀리는지 확인해 줄 수 있긴 하지.”
“응, 응…! 확인해줘…! 나한테도 기회 한 번만 주라. 민준아. 응? 뭐든지, 뭐든지 괜찮아. 네가 시키는 거면 누나 다 할 수 있어.”
“좋아. 기회는 한 번 줄게. 근데 누나…나한테 자꾸 뭐든지라는 말은 하지 마. 사실 누나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화나 있어서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잘 모르겠거든.”
“괜, 괜찮아…! 누나가, 누나가 다 받아 줄 수 있어. 누나 몸 튼튼한 거 민준이 너도 알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나와 누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한 온갖 엽기적인 플레이를 하며 놀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내 안에 봉인되어 있던 흑염룡과 누나가 그렇게 놀았다. 쓰리썸을 할 때부터 잔뜩 흥분해서 튀어나오려고 발악을 하던 염룡이는,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쐰 것에 무척이나 기뻐하며 시은 누나를 정말 처참하게도 망가트렸다. 뭐든지 괜찮다고 호언장담하던 시은 누나는 염룡이가 튀어나온 지 10초 만에 죽는소리해댔다. 그리고 그런 격한 플레이가 몇 시간이고 이어졌다.
전에 나왔을 때보다도 훨씬 더 강도가 심했는데, 아마 염룡이는 내 안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을수록 더욱 잔인해지고 포악해지는 것 같았다. 만약 이런 것도 모르고 어느 날 컨트롤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몹시 흥분해서 시은 누나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염룡이를 잠깐이라도 상대시켰다면, 그대로 상대 여자는 아작이 났겠지. 이 미친 사디스트 흑염룡 새끼.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시은 누나의 존재는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는 염룡이 전용 성욕처리 도구로 시은 누나를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쌓여있으면 포악해진다는 말은 주기적으로 풀어주면 그나마 온순해진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이 컨디션 관리를 몸 튼튼한 시은 누나에게 시키면 딱 알맞을 것 같았다.
인간이 드래곤의 분노를 감당해 내는 게 쉽지야 않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누나가 자초한 길인 것을.
그래도 영 희망이 없는 건 아닌 게, 쉽지는 않겠지만 정말 만약에 시은 누나보다 더한 트롤을 치는 여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때까지 시은 누나가 사지 멀쩡히 살아있다면, 나는 시은 누나를 진급시켜 줄 의향이 있었다.
누나의 여왕 성형을 한껏 살려서 트롤년들 전용 관리인으로 임명해도 될 테고, 아니면 그냥 내 전용 안마사 같은 걸 시켜도 되겠지.
그래. 그러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딱 그때까지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달게 벌을 받자고, 차시은.
****
똑똑-.
“김진주 부대표님. 접니다요~”
“네. 들어오세요.”
업무용 테이블에 앉아 한창 모니터를 바라보던 진주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이톤의 톡톡 튀는 목소리가 특징인 언론 홍보부 임 팀장이 벌컥 문을 열고 부대표실로 들어왔다. 진주는 신나서 부대표실의 문을 열어젖히는 임 팀장을 보며, 그녀가 느닷없이 쳐들어온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모유 수유실? 아니면 오락실? 이번엔 뭐가 생겼으려나?’
최근 MJ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에 매각된 스타 엔터는 매일매일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그래도 몇 가지 꼽아보자면, 회사를 상징하는 로고가 새롭게 바뀌었고, 사옥 복도와 로비에는 매일 같이 예술작품이 몇 개씩이나 들어오고 있었으며, 뭐가 그렇게 할 게 많은지 공사를 안 하는 부실이 없었다. 그리고 대체 얼마나 인력을 갈아 넣는 건지 순식간에 공사가 끝나고 나면, 칙칙했던 사무실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나 볼법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구조와 인테리어의 감각적인 사무실로 바뀌어 있었다.
또, 쓸데없는 공간을 재활용해서 수면실과 헬스장 같은 복지 시설을 만들었는데, 그 퀄리티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호화로워도 너무 호화로워서 이게 특급호텔인지 회사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이럴 거면 사옥을 새로 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바로 그날, 진주는 MJ인베스트먼트에서 스타 엔터 인근 부지와 건물들을 모조리 사들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대체 새로운 대표가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 감히 잡히지 않았다.
‘진짜 k-pop을 좋아하는 중국 부자의 짓일까? 오늘 오후에 대표 취임식이 있으니 어차피 곧 알게 되겠지만…’
임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돌고 있는 소문 중 하나였다. 중동 쪽이냐 아니면 중국 쪽이냐 의견은 분분했지만, 어쨌든 하릴없는 부자가 k-pop에 꽂혀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거라는 사실에는 다들 동의하는 중이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근 몇 년 동안 적자만 내고 있는 엔터 기업에 이런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감행할 이유가 없었다.
“진주야. 진주야. 저기 3층에 안마실 생겼데.”
“아, 정말요…? 요즘 대기업들이 많이 한다고 듣긴 했는데…”
“아니, 그런 건 그냥 안마 의자만 갖다 놓는 거고. 우리는 진짜 안마샵이 생겼다니까?!”
“네…?”
“오늘 점심시간부터 된다길래, 내가 네 이름까지 예약명단에 적어놨어. 같이 가자.”
“아-. 정말 고마워요. 언니. 근데…”
한때는 탑 아이돌로서 대한민국의 여신으로 군림하던 진주였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안마라는 얘기를 들으니, 귀신처럼 승모근이 불쑥 솟아올랐다. 마치 빨리 풀어달라며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주는 영 내키지 않았다. 몸은 원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껄끄러웠다.
이준호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 회사가 넘어가고, 다른 사람의 색깔로 회사 사람들이 점점 물들어가고 있는 게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빠르게 바뀌다가는, 며칠 뒤면 이 회사에서 그 사람의 흔적은 단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게 무서웠다.
훌훌 털고 떠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게 워낙 미련한 짓이라 다른 사람에게 강요는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만은 이준호의 스타 엔터를 지키고 있었다. 지키고 싶었다.
“진주야! 됐어, 야! 어제 아웃스타 못 봤어? 그 사람 부인한테 명품 가방 사주고 난리 났더라. 하, 참나. 10년을 넘게 구질구질하게 일하면서 먹여 살려놨더니 자기는 속 편하게 회사 팔고 떠나버리고…그런 사람 언제까지 기리고 있을 건데?”
“…”
“네가 평생을 그 못생긴 유부남만 짝사랑하면서 살아온 건 익히 알고 있는데…”
“언, 언니…!!
“으휴. 기왕 여신처럼 예쁘게 태어났는데 어쩌다 남자 보는 눈깔만 잔뜩 삐어가지곤. 진주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너였으면 우리나라 잘생긴 남자 배우들은 다 따먹고 다녔겠다. 너한테 대쉬한 톱스타들만 한 트럭이 넘는데 그걸 다 차버리고-. 와, 진짜 내가 다 아까워서 정말…! 이준호 그놈 때문에 너만 이게 뭔데? 아직도 처녀인 데다가, 그 나이 먹도록 키스도 못 해보고…! 아, 키스씬은 해봤으니 해보긴 한 건가? 뭐, 어쨌든 네가…”
“갈, 갈게요…! 안마받으러 갈 테니까 잔소리 그만! 그마안!!”
“오케이, 약속한 거다? 점심 먹고 바로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도록!”
털썩-.
폭풍처럼 모든 걸 휩쓸고 난 뒤 문을 닫고 나가는 임 팀장의 모습을 확인하고,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진주는 털썩 주저앉아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주었다.
“하아-.”
임 팀장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가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팩트폭격을 날리곤 했다. 그게 다 정신 차리라고 해주는 약이 되는 말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팩폭을 맞고 나면 가슴이 쓰라리게 아픈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나만 이게 뭐야. 결국은 혼자 남아서…주위엔 아무도 없고…바보 같네, 진짜.”
같이 연예계를 누비고 다녔던 멤버 언니들은 옛적에 다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잘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서 믿고 따르던 대표는 회사를 팔고 도망쳐 버렸다.
물론, 회사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걸 보면 의심할 여지 없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 선택안에 자신에 대한 감정은 한 톨도 들어있지 않다는 게 진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같이…같이 잘 해보자고 했으면서…”
진주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바보 같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부대표 자리를 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주던 준호의 손길이 아직도 그리웠다.
****
“으읏-. 으응, 흣…!”
“괜찮으신가요? 부대표님?”
“네, 네에-. 그…딱 좋네요.”
진주는 어쩐지 부끄러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준호가 그립니 어쩌니 해놓고, 마사지를 받으니까 그런 생각 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뭉친 근육을 섬세하고 부드럽게 풀어오는 전문적인 손길에 그저 신음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지는 느낌이었지만, 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마사지의 마력은 대단했다.
“옆 방에서 신음 엄청 들리더라, 진주야. 아주 섹시하던데?”
“네, 네? 그, 그럴 리가요. 저 말고 다른 사람 아닐까요…?”
마사지를 다 받고 탈의실에서 같이 옷을 갈아입는데, 임 팀장이 다시 진주를 놀리기 시작했다. 진주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언론팀에서 험하게 구르며 살아온 임 팀장의 재간을 버틸 수는 없었다.
“그럴 리가. 딱 네 목소리였는데. 근데 신음 소리는 또 어찌나 좋은지. 나까지 약간 흥분할 뻔했다니까?”
“잠, 잠시만요. 언니…!”
“이거, 이거. 김진주 너…그렇게 안 봤는데. 혹시 몰래 연습하고 그랬던 건 아니지…? 은근하게 섹시한 신음을 내면서 누구누구 씨를 꼬셔보려고 했다던가…”
“화, 화장실…! 화장실 다녀올게요!”
진주는 옷을 후다닥 걸쳐 입고 화장실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그리고 그런 진주의 뒷모습을 보며 임 팀장은 음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아…후우…”
진주는 화장실로 뛰어와 변기에 앉아서 호흡을 진정시켰다. 임 팀장은 그저 던져본 말이겠지만, 준호가 아직 결혼하기 전에는 실제로 그런 방법을 써보기도 했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귓가에 들려온 대화 소리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볼을 붉히던 연주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와~ 오늘 레슨 대박.”
“진짜 인정. 확실히 유명한 선생님은 다른가 봐.”
“회사 매각된다고 해서 좀 걱정했는데, 이제 보니 훨씬 낫다 진짜. 솔직히 이준호 대표님 있을 때는 연습 시스템 같은 거 존나 올드했는데. 시설이나 복지도 그렇고. 지금은 그냥 천국 같아.”
“그건 맞지. 인수한다는 소리 나올 때는 직원분들 얼굴도 완전 칙칙했는데, 이제는 다들 엄청 밝은 분위기잖아.”
“맞아. 나 여기 와서 이런 분위기 처음 느낀다니까? 완전 다른 회사 같아. 전에는 그냥 그저 그런 기획사 같았는데, 이제는 여기 있으면 진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달까.”
“아, 너도…? 신기하다. 나도 약간 그런 느낌 들었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여기에만 오면 막 기운이 난다고 해야 하나? 최근 들어서는 연습도 다 잘되고, 컨디션이 항상 좋아.”
“그니까. 존나 신기하다니까? 사실 대표 한 명만 바뀐 건데 회사가 이렇게까지 바뀔 수가 있나?”
“그니까. 대표 차이 지림.”
“큭큿. 대표 차이래. 존나 웃겨.”
꾸욱-.
진주는 변기에 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에는 진주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