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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111화 (111/270)

〈 111화 〉 111화

“혹시, 김민준 대표님?”

수호와 함께 11층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11층에는 대형 회의실과 임원급들의 사무실, 그리고 본부장실이 있었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뒤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회사에서 내가 대표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유나 본부장님!”

나와 같이 뒤를 돌아본 수호가 유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슬쩍 바라본 수호의 얼굴은 굉장히 상기되어 있었는데, 나에게 털어놓은 바에 의하면 수호는 유나를 열렬히 동경하고 있었으니 그럴만했다.

하지만 동경은 자칫 이성적인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었기에, 얼굴을 붉히는 수호를 보고 있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저러다가 조금의 기회라도 보이면 곧장 유나에게 고백하겠지. 이 도둑놈의 새끼.

“대표님! 전화라도 한 통 주셨다면 제가 모시러 갔을 텐데…”

“크흠. 평범한 회사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이미 여기 있는 한수호 씨와 재밌게 둘러봤고요.”

“아…네. 그러셨군요. 잘하셨네요. 수호 씨.”

“네? 네, 넷!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수호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지 연신 나와 유나를 번갈아 살피며 눈치를 살폈다.

나는 수호에게 자신이 얼마나 좆 박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유나를 보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본부장님.”

“네, 대표님.”

“여기 있는 ‘수호 씨’ 의견을 들어보니까 돈을 많이 주는 건 좋지만, 그만큼 쪽! 쪽! 빨아 먹어서 MJ인베스트먼트에서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네요.”

“아-…네에.”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좀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던대요? 수호 씨가 지적한 개선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허허.”

“…추후에 한수오 씨와 면담 진행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반.드.시.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나는 매사에 유능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보이고 싶어 했다. 유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나에게 칭찬과 상을 받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유나에게, 내가 처음 회사에 와서 한다는 말이 이런 식이었으니, 유나의 눈동자가 싸늘해지는 건 당연했다.

다만 예상할 수 없었던 건, 그 눈빛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싸늘하다는 것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올 지경이었다.

“저, 저, 저어-. 하하하하. 민준 씨. 대, 대체 무, 무슨 말씀을…장, 장난이었는데요. 장난!! 조크! 조크!”

그 무시무시한 유나의 눈빛을 모조리 받아내고 있는 수호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져서 나에게 SOS를 보냈다.

나와 유나가 나눴던 대화의 맥락을 잘 살펴보면, 내가 MJ인베스트먼트의 대표라는 것쯤이야 쉽게 알아챌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수호는 좋은 인상을 가졌지만, 적절한 눈치는 갖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위급 상황에서의 평정심이 매우 허접하거나.

뭐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가지겠느냐마는 그래도 눈치는 챙겼어야 했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유나에게 연정을 품는 상상을 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었다.

상상은 자유라지만, 나는 상상도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런 게 대표라는 자리였다.

“그, 그렇죠…? 민준 씨! 어서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하하핫! 본, 본부장님이 오, 오해하신다니까요…?

“…수호 씨. 혹시 MJ인베스트먼트가 왜 ‘MJ’인지 생각해 봤어요?”

“하하하. 글쎄요? 마이클 잭슨? 마이클 조던? 하하-. 근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민준이에요. 단순하게 김민준이라서 ‘MJ’라고 지었어요. 제가 촌스럽다고 했는데 여기 있는 본부장님이 그래도 이게 좋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셔서…하하하.”

툭툭-.

나는 수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 인자하게 말했다. 하지만 수호의 반응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망치로 후려친 듯 수호의 몸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허억-. 헙-.”

수호는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깨달았는지, 떡 벌어지는 자신의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전형적으로 도둑이 제발 저리는 형세였다. 아무리 몰카였다고 해도 평범하게 회사 견학만 시켜줬다면 이런 반응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수호의 반응을 보니 몰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반동분자들은 조기에 발견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돈 많이 줬으면 당연히 그만큼 열심히 해야지, 감히 그걸 가지고 투덜댄 것.

무엇보다 유나에게 연정을 품은 것.

이 두 가지만으로도 한수호는 나의 블랙 리스트에 오르기 충분했다.

비록 심성이 나빠 보이지 않았기에 곧바로 짜를 생각은 없었지만, 정신을 단단히 차리도록 빡세게 굴려줄 생각이었다.

뭐, 지금 기세로 봐서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유나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 같았지만.

“대, 대, 대에-. 대…표님?”

“속여서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 만든 회사가 잘 굴러가나 보고 싶었는데, 수호 씨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부족했네요.”

“아윽-. 아. 아니, 저, 저-. 그러니까 그게…그러니까 대표님…! 제 말은 그러니까…!”

사고 회로가 고장이 났는지 수호가 자꾸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내뱉었다.

나는 고장 난 수호를 두고, 유나를 보며 말했다.

“12층이 대표실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대표님.”

“한번 보고 싶은데…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좋네요.”

나는 마지막으로 수호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유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뒤쪽에서 울먹이는 수호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했지만, 나는 여자는 몰라도 남자의 눈물에는 좆도 관심이 없었다.

띵-.

“12층은 저와 대표님, 그리고 추후에 꾸려질 비서팀 분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아, 네.”

“…”

나는 누가 봐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티 내며 딱딱하게 굴었다. 유나가 심히 안절부절못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정신교육을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집무실에 들어간 가구들은 모두 최상급 원목들로만…”

유나는 나와 함께 걸으며, 자신이 야심 차게 꾸민 대표실을 열심히 설명했다.

한 층을 통째로 대표실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유나는 사실상 12층 전체를 나만을 위한 최고급 호텔로 만들어 버렸다.

거대한 집무실에서는 축구를 해도 충분할 것 같았고, 집무실 이외에도 탕비실과 샤워실, 화장실 그리고 탈의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탕비실에는 겨우 탕비실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었고, 각종 샤워 시설 역시 호텔급 그 이상이었다.

압권인 건 건물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비밀의 방이었는데, 개인 금고가 있는 금고실 책장을 옆으로 밀면 방이 나오는 구조였다. 그 안에는 커다란 침대와 샤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유나가 왜 이런 곳을 철저하게 준비해 놨는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좋네. 여기서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아무도 모르겠어.’

내 뇌는 순식간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의 약점에 관한 것이었다.

‘일단 따먹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전에는 뭘 하기가 힘들어.’

교주의 능력이란 대단했지만 분명 약점이 있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자빠트려서 따먹기만 하면 마음대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타인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미남계를 사용하여 여자들을 따먹어왔지만, 세상 모든 여자가 내 미남계에 넘어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최악에 최악을 가정하는 거지만, 그런 여자들 중에 혹여나 나에게 악감정을 품거나 피해를 끼치는 여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가령, 미친년한테 지독한 스토킹을 당한다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면 꽃뱀들에게 저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니, 내 뇌피셜이긴 하지만 무조건 한 번쯤을 당할 것 같았다. 꽃뱀들도 여자인데, 이왕 작업 치는 거 돈 많으면서도 젊고 잘생긴 남자를 찾지 않겠는가.

그러니 만약 그런 불순한 여자가 있다면, 바로 이 방에서 나의 순종적인 교인으로 만드는 세뇌작업을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잃을 것도 많고 성욕에 굶주린 것도 아닌 내가 먼저 위험한 방식으로 좆을 휘두르지는 않겠지만, 만약 나에게 먼저 위해를 가해 온다면 나는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수준으로 참을 생각이 없었다. 무조건 내가 직접 참교육을 시켜서 교단의 최하층민으로 살게 하며 교단을 위해 평생 봉사하게끔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저…민준 씨.”

“…네?”

한창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는데, 유나가 말을 걸어와서 깨져버렸다.

사실 딱히 상관없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표정을 조금 찡그리고 유나에게 까칠하게 답했다.

내 표정이 안 좋아지자 유나의 몸이 움찔거리더니,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어, 어떠신가요. 그…대표실이 마음에 드시는지…”

“당연히 마음에 들죠. 유나 씨야 언제나 유능하시니까요.”

“아-…”

긍정적인 대답에 가슴을 졸이던 유나의 얼굴 확 펴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내가 유나에게 해줄 말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런데요. 유나 씨.”

“네! 민준 씨!”

“직원들은 왜 꼬시고 다니는 거에요?”

“…에?”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유나가 고장 나버린 사람처럼 반응했다.

유능하다는 말을 듣고 활짝 펴져 있던 유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다시 굳어졌다.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유나가 몹시 귀여웠지만,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이 억지로 삼키고 짐짓 엄중하게 유나를 추궁했다.

“한수호 씨가 그러던데요? 유나 씨는 직원들한테 언제나 상냥하고 웃으면서 대해주신다고.”

“네? 그, 그거야…”

일반적으로 봤을 때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게 책잡힐 만한 짓을 아니었다. 오히려 관리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고 있으니 유나가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기분 나쁘다면 그게 뭐든 유나는 시정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대표로서의 갑질이자 연인 사이의 가스라이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앞으로 많은 남성 직원들을 거느리게 될 유나의 정신 상태를 단단히 무장시켜 놓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수호 씨를 비롯한 많은 남자 직원들이 유나 씨를 좋아한대요. 남자 직원들한테 인기 많아서 참 좋겠어요. 유나 씨?”

나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물었고, 유나의 아름다운 얼굴에 순식간에 거무죽죽한 그늘이 끼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민준 씨!! 저, 저는 민준 씨 말고는 아무한테도…!”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이거 영 믿을 수가 있어야죠. 유나 씨처럼 똑똑한 사람이 남자들한테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도 없고…하아~ 솔직히 지금 제 안에서 유나 씨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어요. 유나 씨가 이렇게 헤픈 여자인지 몰랐거든요.”

“제, 제발요…!! 민준 씨! 민준 씨! 헤프다니…! 그런 소리 하지 말아 주세요! 저 민준 씨 아니면…! 헤프지 않아요! 제발…! 싫어요! 저는 민준 씨한테 뭐든지 해드릴 수 있어요! 뭐든지 다 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민, 민준 씨!!”

꽈악-.

내 이름을 목놓아 부른 유나는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서 가슴팍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내 가슴에 얼굴을 깊게 묻은 채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여서 나를 설득하려 했는데,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서 유나가 얼마나 다급해 하고 있는지 그대로 느껴졌다.

“오해에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그냥 친절하게 대한 건데 그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흑, 억울해요! 저 너무 억울해요, 민준 씨! 제발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제발, 제발 한 번만요! 네? 제발요! 제발요…! 흐윽, 민, 민준 씨. 제가,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정말 그런 의도 아니었어요?”

“네!! 정말이에요! 저는 민준 씨 말고 다른 남자한테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요! 민준 씨가 제 전부인데, 왜 다른 남자한테 관심이 있겠어요! 저는, 저는 민준 씨만 좋아해요. 오로지 민준 씨만 좋아해요!”

“음…”

유나는 간절하게 나에게 매달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몰아붙였으니 슬슬 당근을 줄 차례였다.

채찍이 가혹했던 만큼이나, 유나에게는 달콤한 당근이 되겠지. 평생토록 내가 주는 당근만을 원하며 살 정도로.

쓰윽-. 쓰윽-.

“아-…민준 씨-.”

내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유나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 굳히고는, 이내 나를 올려다보았다.

툭하면 흐를 정도로 눈물이 가득 차올라 있는 유나의 영롱한 눈망울에, 위에서 내리쬐는 샹들리에 조명이 은은하게 비췄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저도 유나 씨를 좋아해요. 그건 알고 있죠?”

“네에! 그럼요!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유나 씨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아-, 아으. 민, 민준 씨-.”

“유나 씨는 단지 매너 좋게 행동하는 거겠지만, 다른 남자들은 그걸 보고 오해하잖아요. 안 그래도 예쁜 사람이 친절하기까지 하니까.”

“잘,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래요. 괜히 다른 남자들 홀리고 다니지 말고 딱딱하게 구는 거에요. 그게 그 사람들을 위한 길이기도 해요. 안 그러면 오해해 버리니까…어차피 유나 씨는 저만 사랑할 거잖아요? 그쵸?”

“네! 맞아요! 민준 씨만 사랑해요! 딱딱하게! 다른 남자들한테는 딱딱하게 굴게요! 약속할 수 있어요!”

“정말요?”

“네, 정말요!”

“옳지. 착하다.”

츕-.

나는 칭찬과 함께 유나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달달한 이마 키스와 동시에 유나의 눈동자는 물에 젖은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버렸다.

“민, 민준 씨-. 흐응-. 민준 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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