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108화
길고 뜨거운 밤을 보내고, 정혜와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메뉴는 콩나물 해장국이었는데, 맛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맛이었다.
그러나 맛보다는 정혜의 해장을 위해서 정한 메뉴였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민준 씨 콩나물 해장국 정도는 진짜 제가 내면 안 될까요? 그래도 이 정도는 저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요!”
식사 도중에, 정혜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어제부터 모든 비용을 내가 내고 있다는 사실에 정혜는 꾸준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성의의 문제라면서 작은 거 하나라도 자신이 사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올바르게 교육받고 자란 훌륭한 모습이었지만, 솔직히 그것도 상대가 어느 정도 급이 맞을 때의 아기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통틀어도 나보다 돈을 더 잘 버는 개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 상대가 되려면 최소 건실한 중견 기업 정도는 데려와야 했다.
“저는 정혜 씨가 맛있게 먹어주면 충분해요.”
“아니이-. 그래도 염치가 있잖아요. 돈 많다고 민준 씨한테 모든 걸 다 얻어먹으면 제가 뭐가 되는데요.”
“뭐긴요. 제 여자친구가 되는 거죠.”
“……아으-, 진짜.”
정혜는 대화를 하다말고 콩나물 해장국을 한 숟갈 떠서 후후 불어먹었다.
빨개진 볼을 숨기고 싶은 거 같은데, 나는 이미 봐버렸지만, 이 시대의 젠틀맨답게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그 대신 정혜가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김치통에서 김치를 꺼내 잘라주고 있었는데, 정혜가 갑자기 내 눈치를 보더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그……민준 씨 있잖아요.”
“왜요? 김치 말고 깍두기 드릴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제 있던 일 있잖아요. 인호 선배가 무례하게 군 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그 선배가 나쁜 선배는 아닌데 가끔 꼰대 같을 때가 있어서…………”
툭-.
나는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툭 내려놓고, 정혜를 바라봤다. 갑자기 싸늘해진 나의 눈빛에 정혜가 움찔거렸다.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정혜 씨가 그 사람 얘기하는 건 정말 듣기 싫네요. 제가 봤을 때는 그 사람 정혜 씨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네……? 그럴 리가요. 여태 저한테 그런 적 없는데……”
“그럼 다행이고요. 그 사람이 겁쟁이라서 제가 정혜 씨를 먼저 채갈 수 있었네요.”
“제, 제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그, 그리고 저 아직 완전히 민준 씨 꺼는 아니거든요?!”
“왜 아닌데요. 어제 할 것도 다 했는데. 정혜 씨 좋아서 기절해버렸잖아요. 처음이라면서 되게 섹시한 목소리로 신음도 내고……”
“그, 그만!!”
정혜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주변을 살폈다.
어차피 다른 테이블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들릴 리가 없는데, 이래서 초심자들은 곤란했다.
뭐,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놀린 거긴 하지만.
“다, 다 드셨어요? 민준 씨?”
“네. 저는 다 먹었어요.”
“그, 그럼 빨리 나가요. 은, 은혜한테 의심받으니까 빨리 집에 가야 해요.”
“아까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상관없다면서요.”
“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어서요. 자, 일어나죠. 민준 씨.”
음담패설 조금 한 것 가지고 대단히 부끄러웠는지,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정혜는 내 손목을 질질 끌고 가계를 빠져나왔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차에 타 정혜를 집으로 데려다주는데, 보조석에서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뻔히 쳐다보던 정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는요. 민준 씨가 군대 가도 기다릴 거예요.”
“……조금 갑작스럽긴 하네요.”
“그냥요. 어제 그런 얘기가 나왔었잖아요. 그거 힘든 일이라고……사실 정말 힘들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저는 몇 년이라도 민준 씨 기다릴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였어요.”
“정혜 씨 마음은 대단히 감사하지만, 저는 군대 갈 생각 없는데요?”
“네?! 혹시 병역 비리 하시려고요?”
“큭큭. 네. 돈 벌어서 어디에다가 써먹겠어요.”
나는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는데,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옆에서 정혜가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건 아니죠, 민준 씨! 불법! 그건 불법이잖아요!”
“안 걸리면 불법은 아니죠. 뭐, 그냥 받아들이세요. 정혜 씨. 원래 돈 많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와…………”
부르주아 계층의 민낯을 보고 크게 충격받았는지 프롤레타리아 이정혜는 한동안 빠진 턱을 다물지 못했다.
장난도 좋지만, 이대로는 복종도가 깎일 것 같아서 나는 정혜에게 진짜 사실을 털어놓았다.
“장난이고, 저 사실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거든요. 태어나길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아빠가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셨거든요.”
“아……”
“그래서 군대 안 가려면 한국 국적 포기하고 미국 사람 하면 돼요. 어차피 사업체가 있으니까 비자 받는 건 일도 아니라서, 그렇게 해도 아무런 상관도 없거든요. 서류상 한국 사람이 아니라 미국 사람이 되는 건 조금 가슴 아프지만, 뭐 그래도 군대 가서 정혜 씨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렇구나……”
정혜는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내가 정혜에게 말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고, 뭣하면 미국 사람으로 살아갈 마음이 있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신체 강화를 계속하면, 굳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막말로 몇조씩 들이부어서 신체를 슈퍼히어로급으로 만든 다음에, 미친듯한 피지컬로 월드컵 우승이라도 시키면 곧바로 군 면제였다. 그렇게 하면 합법적으로 군대도 안 갈 수 있었고, 무한금욕교의 교주이자 사업체의 대표로서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도 챙길 수 있었다.
일석이조라는 소리였는데, 아직 입 밖으로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서 정혜에게는 대충 둘러댄 것이었다.
여하튼, 군 문제에 관해서는 나름의 대책들이 있었기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 맞아요?”
“네. 맞아요. 민준 씨.”
정혜네 집은 이태원 골목에 있는 작은 빌라였다. 우리 집하고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기에 데려다주는데 부담감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굿바이 키스까지 모두 해준 다음에 집에 들어가는 정혜를 지켜보고는 다시 차에 타서 한남동으로 향했다.
‘집에 들러서 연주 상태 좀 보고. 옷도 정장으로 갈아입고.’
이후에는, 유나와 사무실에서 만나 스타 엔터 인수 건에 대한 디테일들을 마무리 짓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유나가 구한 MJ인베스트먼트의 사무실 역시 용산역 근처에 있었기에 한남동 집과 무척이나 가까웠다. 그러니 집에 들러서 연주가 잘 있나 살펴보고 제대로 된 정장을 차려입은 뒤 사무실로 향할 생각이었다.
‘혼자서도 잘 있겠지?’
차고에 차를 대놓고 집으로 올라가면서 연주가 과연 혼자서도 얌전히 잘 있었을지 궁금했다.
기껏 레오레까지 가르쳐놨으니, 단지 연주가 우울해하고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끼익-.
나는 괜스레 안방 문을 살살 열고 들어가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침대를 살펴봤는데 연주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컴퓨터 책상을 확인했다.
밤새 게임을 하다가 그대로 기절을 한 건지, 키보드에 머리를 박고 졸고 있는 연주가 보였다.
“음냐야-. 민준 씨이-.”
“큭-.”
연주의 모습을 보자 혼자서 외로워 할까 봐 걱정했던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레오레 가르쳐주길 진짜 잘했네.’
연주가 나를 기다리는 건 좋았지만, 그 기다림이 굳이 우울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연인을 기다리는 사무치는 마음 역시 기다림이겠지만, 식당에 갔을 때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놀이방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것 또한 기다림이 아니겠는가.
연주가 나를 기다려야 한다면 후자의 모습이었으면 해서 레오레를 가르쳐 줬는데, 제대로 들어먹힌 것 같아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이기긴 또 이겼네.”
다가가서 화면을 바라보니, 결과 창에는 ‘승리’라고 적혀있었다.
더 자세히 뜯어보니 연주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챔피언인 루루를 플레이를 했고, 준수한 KDA(킬, 데스, 어시)를 기록하며 게임을 케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잠깐만!! 골드 3?! 벌써 이렇게 올라왔다고?’
나는 화면을 보다가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적 기록 사이트에 ‘연듀공듀’를 검색해봤다.
“와……진짜 이 악물고 했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연주는 아무래도 내가 나가고 난 뒤, 밥만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돌린 것 같았다. 쌓여있는 판수가 장난 아니었다.
게다가 승률도 굉장히 좋았는데, 총 7승 3패를 하고 실버 2로 첫 배치를 받은 뒤에, 6할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하며 파죽지세로 티어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물론, 골드에 들어와서는 승률이 5할에 가까워졌지만, 몇 년 동안 게임을 하면서도 브론즈 실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걸 생각하면 며칠 만에 골드를 찍은 연주의 재능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음냐앙-. 안, 안 돼요. 민준 씨이-.”
뭐가 안된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졸고 있는 연주를 번쩍 들어서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는 연주를 최대한 바르게 눕혀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연주가 비몽사몽 한 상태로 자꾸만 나에게 안겨 와서 영 쉽지가 않았다.
“연주 씨. 똑바로 자야죠.”
“헤헤. 민준 씨 목소리다아-. 히히. 민준 씨이-.”
“네, 저 맞아요. 그러니까 이거 놓고……”
“민준 씨이-. 민준 씨이-.”
아무리 떼어놓아도 연주는 나무늘보처럼 끈질기게 매달려왔다.
나는 몇 번 시도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연주에게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연주 씨. 자꾸 이러면 확 덮칠게요.”
“으냐아-. 안 돼요오. 덮치면 안 돼요오-. 민준 씨는 변태에-.”
“…………”
정말 잠결이 맞기는 한 것인지 능숙하게 몸을 비벼오며 심지어는 내 낭심을 무릎으로 툭툭 자극하는 연주가, 이제는 진심으로 괘씸했다.
나는 심신미약 상태고 뭐고, 연주의 약점인 쇄골에다가 고개를 묻고 냅다 빨아버렸다.
“쓰으으읍-.”
“읏…… 으냐앙……! 민, 민준 씨!! 어, 언제 오셨어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연주 씨 사실 아까부터 깨어 있었죠?”
“네…… 꿈, 꿈에서 민준 씨가 나오기는 했는데……잠, 잠시만요…… 흐앗……!”
그래도 내가 언제 올지 모르니 꾸준히 씻기는 한 것인지, 연주의 몸에서는 바디워시 향이 진하게 풍겼다.
솔직히 말하면 씻지 않아서 끈적하고 시큼 짭조름한 맛이 나는 연주가 더 맛있을 것 같았지만, 공산품의 향기 역시 영 못 쓸 것은 아니라 나는 연주의 온몸을 실컷 빨아먹으며 음미했다.
“으앙, 하응-! 거, 거기 안 돼요. 민, 민준 씨잇! 흐앙! 하응!”
“쯥, 쓰읍-.”
정자의 축복을 꾸준히 받고 있어서 그런지 연주의 살결은 나날이 부드러워져 갔고, 애액에서는 톡톡 튀는 청량감이 일품인 복숭아 에이드의 맛이 났다. 하지만 일반 복숭아 에이드와는 달리 마시고 마셔도 갈증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각해지는 큰 부작용이 있었다.
“으음-. 쯔읍, 츄르릅-. 쯥.”
“그, 그마안! 안 돼요오! 가버려요! 가버려요, 민준 씨! 너무…… 너무 기분 좋아서엇! 아앙-. 흐냐앗……!”
촤아아아악-. 촤악-.
계속된 보빨에 절정에 달한 연주의 몸이 활처럼 꺾이더니, 연주의 그곳에서 복숭아 에이드가 터져 나왔다.
마치 무심코 땅을 팠는데 석유가 터져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연주의 애액을 기쁘게 받아마시고는 허벅지와 사타구니에 묻어 있는 애액까지 게걸스럽게 핥아먹고 나서야 연주의 Y 존에서 고개를 떼어냈다.
“흐앙-. 변태에. 민준 씨는……흐윽……변태야아……”
“제가 변태라고요? 연주 씨가 아니라? 허, 이거 안 되겠네요. 레오레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그 동안 제가 교육해 드렸던 건 전부 까먹었나 봐요?”
“우으으-. 아, 아니에요. 죄,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잘, 잘 못 했어요!”
“괜찮아요. 잘못 할 수도 있죠. 잘 못 한 만큼 벌을 받으면 되는 거예요. 알겠죠?”
“아응-. 주, 주인니임-.”
오랜만에 듣는 연주의 주인님 소리가 내 귀에 착 감겨와서, 나는 좀처럼 흥분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연주를 격하게 따먹어 버렸다.
연주는 밤새며 게임을 해서 이미 피로가 잔뜩 쌓여있는 상태라 툭하면 정신을 잃으려 했지만, 나는 귀신같은 컨트롤로 연주가 간신히 정신을 잃지 않는 선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을 선물했다.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무진장 범해진 연주는 결국 3번째 사정에 맞춰서 정신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이 정도면 아무리 성역 버프가 적용된다고 해도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이 상태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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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렇게 입으면 되려나? 영 간지가 안 나네.”
고생한 연주가 편히 잘 수 있도록 해준 뒤 욕실에서 씻고 나와서 옷을 입는데, 오리지널 정장 스타일은 입어 본 적이 없어서 옷을 고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미현 누나가 집에 도착했다.
연주의 점심을 챙겨주려고 왔다는데 어차피 연주야 기절해 있는 상태였으니, 나는 곧바로 미현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음……이거에다가 이걸 걸쳐 입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시계랑 넥타이는……”
역시 유부녀라고 해야 할지, 미현 누나는 능숙하게 내게 어울릴만한 정장을 골라주었다.
내가 골랐을 때는 뭔가 밋밋했는데, 미현 누나가 골라준 대로 입으니까 확실히 슈트빨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누나, 이거 넥타이 좀 매주라.”
“설마, 민준이 너. 넥타이도 혼자서 못 매?”
“넥타이 맬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우리 집 하녀가 있는데 내가 이런 걸 왜 해.”
“……일부러 그렇게 약오르게 말해도 이제는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거든?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줄래?”
스으윽-.
내가 무릎을 살짝 굽혀 키 높이를 맞춰주자, 미현 누나가 넥타이를 손수 내 목에 둘러주면서 새침하게 쏘아댔다.
도발하듯 눈을 살짝 치켜뜬 채 나를 올려다보는 미현 누나는 악마적으로 요염했는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