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3화
“연주 씨. 대포 미니언은 꼭 챙겨야 해요. 서포터는 안 그래도 돈을 못 버는데 저 맛있는 걸 못 먹어서 되겠어요? 뭐, 라마단이에요? 단식 투쟁 하시냐고요. 그리고 연주 씨 믿고 대포 안 쳤다가 저도 놓쳐버렸잖아요. 이건 100 골드 넘는 손해라고요. 아시겠어요?”
“아으…아으…죄송해요. 민준 씨이-.”
내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싸늘해진 감정이 느껴졌는지 연주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일반 게임이라 솔직히 연주가 30데스를 박아서 10연패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대포를 놓치는 꼴은 절대 그냥 둘 수 없었다. 저런 실수들을 바로바로 고치지 않아서 결국 습관이 되면 아이언 브론즈 티어로 직행하는 법이었다. 그러니 엄하게 다뤄서라도 초장부터 버릇을 잘 들여놔야 했다. 안되면 세뇌까지 걸 의향도 있었다.
대포 미니언을, 대포를 목숨처럼 여겨라. 얍!
“고개 숙이지 말고요. 다음부터는 잘 먹으면 되죠. 자. 연주 씨. 저한테는 힐을 넣고, 상대한테는 침묵을 거는 거에요. 저기 얍샵하게 구르고 있는 캐릭터를 저를 호시탐탐 잡아먹으려는 도둑고양이라고 생각하시라고요. 생긴 것도 비슷하잖아요. 도둑고양이처럼 시커먼 게. 아시겠어요?”
“네, 네에! 알겠어요. 민준 씨! 도둑고양이…베윈은 도둑고양이…!”
도둑고양이라는 키워드가 나오자 연주의 눈빛이 확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도 연주가 재능은 엄청나. 제대로만 가르치면 금방 실력이 늘겠어.’
원래 게임에 재능이 있는 건지, 아니면 교주 스킬 덕분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연주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폼은 결코 ‘레오레’를 배운지 며칠밖에 안 된 초보자의 수준이 아니었다.
어플이 생기기 전에, 나는 생계유지를 위해서 레오레 대리 작을 하며 돈을 벌었었다. 남의 티어를 대신 올려주고 돈을 받는 작업이었는데, 게임 생태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짓이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돈이 궁핍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여하튼 대리기사 짬밥 좀 먹어본 업계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연주의 실력은 딱 브론즈 급이었다. 하지만 도둑고양이라는 소리가 나올 때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줬는데, 그럴 때면 실버급의 플레이를 보여주곤 했다.
물론, 브론즈 실버가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학교 성적으로 치자면 5~7등급 정도일 뿐이었지만, ‘레오레’를 배운지 단 며칠 만에 이런 그런 성적을 거두었다는 건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야, 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그래도 대단한 재능은 맞아.’
나의 최종 목표는 연주와 바텀 듀오로 랭크 게임을 돌리는 것이었다. 바텀은 원거리 딜러(원딜)와 서포터가 함께 갈 수 있는 2인용 라인이었는데, 이 바텀 듀오를 여자친구와 가보는 게 나의 소싯적 소원이었다. 일명 ‘협곡 데이트’라고 불리는 그 짓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연주를 빡세게 가르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주 라인은 원딜이 아니었지만, 원딜로도 다이아 상위 티어 까지는 무난하게 학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연주가 나의 서포터가 되려면 최소한 다이아급, 학교 성적으로 치면 무난하게 1~2등급을 받을 정도의 실력은 갖추어야 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생 게임을 하면서 다이아를 못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측정하기에 이 기세로만 성장하면 연주는 무조건 몇 달 안에 다이아를 달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연주의 성장은 눈부셨다.
“민준 씨! 저기! 도둑 고양이가 하나 더 와요!!! 카트리나아앗…! 으앗…!!! 안 돼!! 민, 민준 씨가 죽어요!! 안 돼, 안 돼에!!”
“연주 씨 침착하게 침묵 걸어야 해요! 침묵!”
“아! 에잇-! 침묵…!! 민, 민준 씨! 침묵, 침묵 걸었어요! 침묵이에요!!”
상대 미드인 카트리나가 봇 라인으로 갱을 온 상황이었다. 정글과 함께 미드를 완전히 터트리고, 봇 라인까지 영향을 끼치기 위해 갱을 온 카트리나는 점멸에 순보까지 써서 순식간에 내 뒤로 넘어와 궁극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내 캐릭터 이주리얼을 진짜 나라고 생각하며 온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던 연주가 기적 같은 반응속도로 카트리나에게 침묵을 넣어버렸고, 그대로 카트리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궁극기가 끊겨버렸다.
한바탕 칼춤을 벌일 생각에 잔뜩 흥분해 있던 카트리나는 갑작스레 걸린 침묵에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사이에 내가 풀딜을 박아넣어 카트리나를 순식간에 폭사시켜 버렸다. 그렇게 카트리나를 제압하고 얻은 게 무려 1000 골드였고, 내게 1000 골드가 들어 온 이상 게임은 이미 끝난 것과 다름 없었다.
솔직히 카트리나를 제압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차피 한타 국면으로 가면 압도적인 교전 집중력 차이를 이용해서 상대 케릭터를 전부 다 때려잡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성장을 잘하면 게임을 훨씬 더 쉽게 이길 수 있는 게 사실이었다.
나는 연주에게 알려줘야 할 것들을 여유롭게 가르쳐 주면서, 쉽게 쉽게 게임을 터트려갔다.
결국, 상대방 넥서스가 터지며 ‘위이이잉~’하는 긴박한 소리가 들리더니, 연주와 내가 쓰고 있는 최신식 QLED 커브드 모니터 앞에 ‘승리’라는 글자가 뚜둥. 하고 떠올랐다.
“아, 아싸아~ 승, 승리했네요. 민준 씨!”
“그러게요. 또 승리를 해버렸네요.”
이번이 10연승째였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팀원이 두 명 이상 나가거나, 기나긴 게임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진 연주가 크게 트롤을 해서 10판쯤 돌리면 꼭 한판씩은 지곤 했는데 오늘은 연전연승이었다.
“그, 그러면…죄송하지만 부, 부탁드릴게요. 민준 씨.”
“뭐가 죄송한데요. 승리를 했으면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한 거에요. 알겠어요, 연주 씨?”
“네, 네에-. 보상, 보상 주세요.”
연주가 말과 동시에 입을 쭈욱 내밀었다. 나는 연주의 뒷목을 잡고 승리의 보상으로 약속했었던 입술 뽀뽀를 날려주었다.
쪼옥-.
“하음-. 민, 민준 씨.”
“10연승 했으니까 보너스도 드릴게요."
“네…? 으웁…! 으음…! 하응, 흐응-.”
인류와 함께 발전해온 게임. 게임이 그토록 많은 인간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확실하고 즉각적인 보상이었다. 공부나 노동은 노력해도 그 노력의 결과를 즉시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게임은 달랐다. 하는 즉시, 즉각적인 보상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즉각적인 보상이 달콤하고 중독적일수록, 인간은 게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쯔읍. 쯔압, 쯥-.”
“흐아아-. 하응, 하으…! 후에-.”
나는 게임의 특성을 그대로 벤치 마킹해서 연주를 혹독하게 단련시키고 있었다. 다그쳐서 게임을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은 곧 보상이라는 공식을 연주의 머리에 새겨서 스스로 중독되게끔 만들고 있었다.
연주는 단지 게임에서 승리만 하면, 그 즉시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에게서 뽀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강력한 보상이 있으니 연주는 레오레에 빠져들고, 레오레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이건 물리공식 같은 일이었다.
“하음-. 흐읍. 쯥-. 하아, 하우우-.”
연주는 이번 키스에 유독 열정적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어젯밤, 연주는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나와 섹스를 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게임 후반에 잘 큰 발파이트를 그랩으로 끌었다가 한타에서 대패하고 곧장 패배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초보자라도 그런 중대한 실수를 눈감아 줄 수 없던 나는, 체벌로서 연주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연주에게는 무간지옥급 고통을 선사해주는 일이었다.
심지어 끈질기게 들러 붙어오는 연주를 밀어내고, 열심히 일하고 온 유나에게 엄청난 칭찬을 쏟아내며 즐펀한 섹스판을 벌려버렸다.
연주는 그 광경을 보고 거의 미쳐버려서 꺼이꺼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댔다. 나 역시 가슴 아팠지만, 여하튼 잘못은 잘못이었기에 체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가슴 아픈 서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연주가 이렇게 레오레를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혹독하게 단련됐기 때문에, 현재 레오레를 대하는 연주의 마음가짐은 단지 흥미로운 유흥의 수준이 아니었다. 저기 저 소환사의 협곡에 연주의 삶의 목적, 아니 삶 그 자체가 달려있었다.
‘이게 사이버 검투사가 아니면 뭐겠어.’
유능하지만 혹독한 선생님. 그리고 빛나는 재능과 하루에 기본 15판씩 게임을 돌리는 미친듯한 노력. 거기에 더해 게임 한판에 목숨을 거는 사이버 검투사의 마음가짐까지.
이것이 레오레를 배운지 며칠째에 불과한 연주가 실버급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였다.
“으냐야…민준 씨이-.”
하루 동안 풀지 못해서 그런지 나를 부르는 연주의 목소리가 굉장히 음란했다. 색기가 가득 담겨 있어서 듣기만 했는데 꼬추가 발딱 서버렸다.
“크흠. 오늘은 10연승 했으니까 게임은 이만하죠.”
“그, 그럴까요오…? 그러면…그러면 이, 이제부터는 뭐를 해볼까요오…?”
“글쎄요? 연주 씨는 뭐 하고 싶은데요?”
“그, 그야-. 저, 저는 민준 씨랑 하는 거면 뭐든지…너무 좋아서…”
“그래요? 그럼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게요?”
“네-. 아무거나…뭐든 좋아요. 민, 민준 씨가 해주시는 거면 뭐든지 다 좋아요. 행, 행복해요.”
너무 매달리는 사람은 매력이 떨어진다.
뭐, 이런 말도 있긴 있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고. 하지만 연주에게 해당되진 않았다.
연주가 나에게 착하고 예쁜 짓만 하면서 매달려오는 모습은 언제봐도 질리지를 않았다. 매일 새롭게 사랑스러웠다.
연주의 마음 안에, 가식이란 일절 없고 오로지 나에 대한 사랑만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가슴은 충격적으로 설레곤 했다. 나는 평생을 산다고 해도 절대로 갖지 못할 숭고한 마음이라서 더욱 그랬다.
“자, 이제부터 섹스를 할게요. 연주 씨.”
“세세세세…섹-. 섹-.”
“네. 섹스요. 그런데 연주 씨가 너무 격하게 사랑스러워서 평범하게는 못하겠고, 많이 격렬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괜찮겠어요?”
“아우-. 우으으, 우으-. 저저저저, 저느은-. 민, 민준 씨가 해주시는 뭐든지…다…뭐든지 다 좋아요오…”
“그래요. 그럼.”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테지만 연주에게 구태여 허락을 받은 건, 사실 쇼맨쉽같은 거였다. 레슬러들이 입장하면서 의자를 집어 던지고 로프 위를 날아다니고, 심지어는 관뚜껑을 박차고 나오는. 딱 그런 느낌.
섹스를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사실은, 모든 예술이 그렇듯, 이런 디테일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멘트를 던져놨기에, 실제로는 내가 1만큼 과격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오늘 밤의 연주는 그걸 거의 2에서 2.5처럼 느끼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나 역시 스스로 쇼맨쉽을 보여줌으로써 정신 무장을 새로이 할 수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 오늘 밤 연주를 한입에 꿀꺽 잡아먹겠다는 각오가 활활 타올랐다.
나는 그 각오를 재료 삼아, 용암보다 뜨겁고 돌쇠보다 단단하게 연주를 잘근잘근 잡아 먹어버렸다. 어제 처음으로 깡통을 차봐서 그런지, 나에게 매달려오는 연주의 태도 역시 필사적이었다. 내가 아무리 과격하게 짓눌려도, 연주는 버려진 아이가 부모를 찾듯 적극적인 몸짓으로 나를 갈구해왔다. 우리의 섹스는 끝도 없이 달아올랐고, 원래는 아무리 쥐어짜도 두 번이 최대였던 연주는 내 사정을 무려 네 번까지 버텨낸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두말할 것 없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섹스였다.
‘가끔 이렇게 굶겨야 하나…?’
섹스를 끝내고 샤워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섹스가 워낙 만족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가, 연주가 하루 동안 굶어 섹스에 고팠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음. 그래도 우는 건 보기 싫은데…그래. 일부러 꼬투리를 잡는 건 그렇고, 정말 잘못했을 때만 굶겨야겠다.’
예를 들면-.
대포를 놓쳤을 때라든지. 대포를 놓쳤을 때라든지.
끼이익-.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욕실에서 나왔다. 얼마나 격렬하게 놀았는지 웬만해서는 흐트러지지 않는 시트가 다 벗겨져 있는 침대 위에, 연주가 곤히(?) 기절해 있었다. 나는 연주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잠자리를 잘 정돈해주고 안방에서 나왔다.
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잔 마시려는데, 때마침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던 유나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민준 씨! 저 다녀왔어요!”
“어서 오세요. 유나 씨.”
우다다다-.
손에 든 핸드백도 내려놓지 않고, 나를 발견하자마자 유나는 앞뒤 재지 않고 나에게 안겨왔다. 연주를 생각나게 하는 유나의 행동에 나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유나는 똑똑한 여자였다. 연주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붙여놨더니, 유나는 연주를 분석해서 내가 좋아하는 연주의 포인트를 모조리 흡수하고 그대로 나에게 써먹었다. 얼마나 포인트만 쏙쏙 케치했는지, 연주의 특성을 살릴 때의 유나와 원래 유나와의 괴리감이 전혀 없었다. 완전히 연주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쿨뷰티 계열 미녀였던 유나에게 ‘큐트’마저 몇 스푼 정도 추가된 느낌이었다. 예쁘고 능력 있고 도도하면서, 이제는 귀엽기까지 한 여자로 진화했달까.
“민준 씨이-. 저 일 하고 오느라 엄청 힘들었어요오-.”
“그래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히힛-.”
나에게 안긴 유나는 말없이 사랑스럽게 웃더니, 쪽-. 하고 먼저 입을 맞춰왔다.
연주처럼 행동하면서도 챙길 건 전부 챙겨가는 모습이었다.
‘이러니 신뢰를 할 수밖에 없지. 이 얼마나 유능한 여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