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97화
“음…다른 사람들이 다 이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 그런가요?”
“그럼요. 유나 씨랑 저랑 워낙 궁합이 잘 맞아서 그래요. 평생 진정한 오르가즘 한번 못 느끼고 죽는 여자들도 많다잖아요.”
“그렇구나. 와…저 정말로 좋아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거든요. 어쩌면-. 정말로 잠시 미쳐버렸던 것 같아요. 중간부터는 기억이 엄청 흐릿해요. 정신이 하늘 위로 날아가서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랬는데…귓가에서는 민준 씨 목소리가 들리고…”
“음음.”
생에 처음으로 디주니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바로 그 통로에서 방방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이러할까.
말로만 듣던 동탄소년단을 처음 본 해외 팬의 마음이 이러할까.
유나는 인생 처음 경험해보는 섹스에 대해 리뷰해 보며 잔뜩 흥분해서 자신의 감상을 풀어놓고 있었다.
도도하고 세련된 평소의 유나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이런 통통 튀는 모습 역시 매력적이었다. 유나를 이렇게 만든 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이기에 그렇겠지.
“그런데요, 유나 씨.”
“네? 왜요, 민준 씨이-?”
나는 유나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몽롱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던 유나가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를 바라보는 유나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말투에는 유독 애교가 넘쳤다. 가득 사랑받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유나 씨는 충분히 만족한 거에요? 후회하거나 그러지는 않죠?”
“당연하죠! 민준 씨랑 첫 경험을 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요. 저 지금 엄청나게 행복해요. 그리고 섹스가 이런 건지도 모르고 지레 겁먹고 민준 씨를 밀어냈던 제가 바보같이 느껴져요.”
“다행이네요. 그럼 또 해도 괜찮겠네요?”
“네…? 지금…바로요?”
나는 유나에게 담담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유나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유나가 자신의 몸 위로 이불을 살짝 끌어올렸다. 생각하고 행동한다기보다는 본능적인 방어태세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사자 앞에 놓인 톰슨 가젤 같았다.
“행복했다면서요. 저는 유나 씨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거든요.”
“민, 민준 씨. 잠시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제가 지금 완전 행복하거든요. 온몸이 행복으로 꽉 차서 여기서 더 행복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에이-. 행복은 과유불급이 아니라 다다익선이죠. 제가 유나 씨 기절할 때까지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한번 더 하면…정말로 기절할 것 같은데-. 이미 과분한데…더 하면 이상해질 것 같아서-. 잠, 잠시만요…! 다, 다가오지 말아 주세요. 민준 씨!”
머리가 비상한 유나라 그런지, 이 이상의 파멸적인 쾌락은 자신의 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유나가 도망갈 구멍은 없었다. 다른 구멍이면 몰라도.
“넣을게요. 유나 씨.”
“잠시만…! 잠시만요!!”
나는 유나의 앙탈을 가볍게 제압하고 두 번째 섹스를 조져버렸다.
연주와의 만남을 위해서는 인식 개변 수준의 세뇌가 필요했으니 꽤 많은 복종 도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한번의 섹스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나는 최대한의 복종도를 뽑아내기 위해서 유나를 심하게 행복하게 해주었다.
단순히 사정을 위한 섹스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허리를 흔들면서도 유나에게 수도 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자지 못지않게 손과 입도 쉬지 않고 유나의 온몸을 애무했다.
쾌락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유나에게서 쾌락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정성 들여 행복하게 해줬고, 그 결과 섹스가 끝나고 난 뒤에 유나는 완전히 탈진해버렸다.
“흐에, 헤으응-.”
“후우…”
나는 아트에 가까운 격렬 섹스를 마치고 한숨을 내쉰 뒤, 유나의 복종도를 확인했다.
[253]
복종도는 꽤나 쌓여있었다. 나는 바로 세뇌 작업에 들어갔다.
많은 복종도를 소모하겠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유나는 아름답고 유능했지만 그렇다고 나는 유나만을 위해서 살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비범한 삶의 방식을 유나가 받아들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유나를 온전히 가지기 위해서는, 유나에게 내 삶을 그대로 보고도 충격을 받지 않게끔 세뇌를 걸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 설령 몇백억이 소모될지 몰라도, 어차피 돈이야 또 벌면 그만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돈이 넘쳐나서 주체하기 힘들 정도였다. 남아도는 돈으로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었다. 게다가 유나는 무조건 밥값 그 이상을 해줄 수 있는 초특급 인재.
잡아야 할 이유는 수백 개였지만, 쳐내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한번 가볼까.’
나는 머릿속으로 어떤 식으로 유나의 인식을 변경시켜줄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나의 시선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유나 씨. 저는 신비한 사람이에요.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죠.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이에요.”
“…”
“저랑 섹스하면 여자들은 극락을 경험할 수 있고, 불로장생할 수 있어요. 제 정액을 받으면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어떠한 병이라도 고칠 수 있죠.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유나 씨도 저와 몸을 섞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에요.”
나는 일단 여기서 한 템포 끊었다. 말이 너무 길어지면 혹시라도 세뇌의 내용이 이상하게 변질될 수 있었다.
“네. 알 것 같아요. 민준 씨.”
유나의 복종도가 깎이고 세뇌가 적용됐다. 아직까지 큰 복종도를 소모하지 않을 걸 보면, 유나 역시 내가 가진 비범함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은 복종도가 소모됐으리라.
“그러므로 저한테는 제가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구원할 의무가 있어요. 신께서 괜히 이런 능력에 저에게 주신 건 아닐 테니까요.”
“…”
“저는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으며, 여자들을 구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유나 씨가 아닌 다른 수많은 여자와 몸을 섞게 될 거에요. 하지만 이건 유나 씨를 배신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에요. 저는 선택받은 사람이니까 수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거라고요.”
“…”
“하지만 저도 사람이니까 모든 여자를 공평하게 사랑할 수는 없겠죠. 유나 씨가 저에게 복종하고 좋은 능력을 보여줄수록 더 많은 사랑을 주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유나 씨에게 애정을 드릴 수 없을 거예요.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었나요?”
“…네. 민준 씨.”
200이 훌쩍 넘던 유나의 복종도가 60까지 까였지만 어쨌건 세뇌를 완료할 수 있었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 크게 고민하고 말한 게 아니라 나오는 대로 지껄였는데, 끝나고 돌이켜 보니 세뇌의 내용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좋아.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여자들을 세뇌해야겠다.’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사이비다운 워딩으로 비이성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커버치고,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내 탓이 아니라 네 능력이 부족하고 네가 나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다.
굳이 이렇게 세뇌를 걸어두지 않아도 어차피 복종도가 차면 나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겠지만, 그 노력의 방향이 자신의 능력을 향해있다는 게 중요했다.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혹여나 영 이상한 방향으로 나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할 수도 있었다. 자해를 한다든지, 자살소동을 벌인다든지, 나 말고 다른 년들을 모두 죽이겠다며 한바탕 칼춤을 춘다든지.
‘음-. 충분히 가능성 있지.’
죄다 극단적인 가정들이었지만, 애초에 복종도 100을 넘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극단적으로 복종한다는 걸 의미했다.
나를 위해서 목숨마저 버린다는데, 내가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미리미리 안전장치들을 만들어 놔야 했다. 특히, 유나 같은 중요한 인재들에게는.
“으음-.”
“왜요? 너무 무리해서 그래요. 유나 씨?”
나는 세뇌가 끝나고 어질어질 거리는 유나에게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내 음성에 흐릿하던 유나의 초점이 점점 잡혀갔다.
“아, 아니에요. 잠시 머리가 아파서…”
“이런. 제가 유나 씨를 너무 무리하게 다뤘나 봐요. 죄송해요.”
“죄송은요…! 제발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민준 씨. 제가 민준 씨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는데요!”
“그래도 쉬고 계세요. 오늘 유나 씨 무리한 거 맞으니까…저는 이제 다른 여자랑 관계를 맺으러 가봐야겠네요.”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내뱉으면서도 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섹스를 끝내고 힘들어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다른 여자랑 섹스하러 갈 테니까 쉬고 있으라고 말하다니.
평범한 상황이라면 정신 나갔느냐는 일갈과 함께 뺨을 맞기 딱 좋은 멘트였다.
“…”
하지만 유나는 아무런 화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내 눈치를 살살 살폈다.
이불을 꾹 부여잡고 머뭇거리다가, 어렵사리 입을 떼어냈다.
“저도 아직…더 할 수 있는데…”
‘캬-. 이거 진짜 실화인가?’
첩을 만나러 간다는 남편을 달래는 정실 부인 같은 유나의 모습에 내 가슴이 오싹오싹 거렸다. 일부다처였던 조선 시대에서나 볼법한 모습을 세뇌를 통해 현시대에 구현해낸 스스로가 뿌듯했다.
나는 흡족한 마음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유나를 품에 안고 달래주었다.
“유나 씨가 부족한 게 아니에요. 유나 씨는 이미 충분히 잘해줬어요. 그리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민준 씨가 원한다면 회사 같은 건 아무래도…”
“네? 유나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민준 씨랑 있고 싶어요. 회사에 다니면 너무 바빠서 이렇게 민준 씨랑 만나는 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차라리 민준 씨랑 같이 일하면…”
“그건 아니죠. 유나 씨.”
나는 안고 있던 유나의 양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유나와 마주 봤다. 나는 강한 눈빛으로 유나를 설득했다.
“저 때문에 유나 씨가 뭔가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이렇게 성급하게요. 점심때만 해도 유나 씨 분명 제 제안을 거절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요?”
“그건…! 제가 잘못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민준 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저 민준 씨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떨어져 있으면 민준 씨 보고 싶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꼭 제 능력을 민준 씨한테 보여드리고 싶어요. 민준 씨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고요. 그러니까 민준 씨랑 함께 일할래요. 네?”
“허어…유나 씨-.”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괜히 고심하는 척을 했다. 이미지 관리이자 갑을 관계를 단단히 다져놓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능력을 보여주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세뇌의 영향 때문인지, 유나는 나의 밑으로 들어와 일하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매달릴 정도로 원하던 인재였으니 당연히 받아줄 생각이었지만, 냉큼 받아주기보다는 속을 태우다가 받아주면 유나에게 더 많은 복종도를 긁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유나의 근로 의욕까지 고취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라면 이직 제의를 받아서 들어간 회사보다는, 자신이 너무나도 간절히 원해서 이직한 회사에서 훨씬 더 정열적으로 일하지 않겠는가.
“민준 씨한테 부담드리고 싶지는 않지만…그래도 부탁드릴게요. 떼라도 써서 꼭 민준 씨랑 같이, 민준 씨 곁에서 일하고 싶어요.”
“으음…”
“민준 씨. 제발요. 저 절대 성급하게 생각한 거 아니에요. 민준 씨를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 있고, 잘할 자신도 있어요.”
“저도 유나 씨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다만, 이제는 교제를 하는 입장에서 유나 씨를 성공이 보장된 직장에서 빼 오는 게 맞는 건지 싶어서요.”
“민준 씨…”
“흐음…”
내가 깊이 고민하는 척을 하자 유나도 더 이상은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나의 결정을 기다렸다.
나는 침묵을 유지하며 유나의 긴장이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 살며시 입을 열었다. 내 입술에 꽂혀있는 유나의 시선이 따끔할 정도로 뜨거웠다.
“알겠어요. 유나 씨. 한 번 같이 해보죠.”
“네? 정말요?”
“뭐, 사업이 손 대는 족족 망해도 제가 유나 씨는 얼마든지 책임질 수 있으니까요.”
“민, 민준 씨-!”
유나는 신이 잔뜩 나서 나에게 안겨왔다.
나에게는 아직 사무실이고 인맥이고 비지니스 경험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사업을 위해 가진 거라고는 멀쩡한 허우대와 돈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쭉 엘리트 코스만 밟고 올라와 대한민국 1등 은행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유나가 내 밑으로 들어오다니. 누가 봐도 유나가 손해였지만 오히려 유나는 나에게 감사하다며 안겨오고 있었다. 모두 사기적인 스킬들 덕분이었다.
‘이런 게 스킬빨이지. 이렇게 쉽게 유나를 얻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유나 같은 전문가가 있어 준다면 내가 계획했던 플랜들을 순식간에 이뤄나갈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해요. 민준 씨! 내일 부장님에게 바로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릴게요!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유나는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흥분해서, 내 몸을 껴안고 마구 비벼왔다.
둘 다 나체 상태였기에 유나의 살갗이 그대로 느껴져서, 나는 또다시 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빠르면 당장 내일이라도-. 앗…! 민준 씨! 성기가 또…”
“크흠. 그래요. 어찌 됐든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 그렇긴 하죠. 사표도 내야 하니까…”
“그럼 쉬어요. 유나 씨…이건 제가 다른 여성분이랑 알아서 해결할게요.”
“이 시간에…어떻게 하시려고요…”
“집에 있어요. 아마 자고 있긴 할 건데.”
“네? 지금 이 집에요?!”
“네. 안방에서 자고 있을 거에요.”
“안방-. 안방…이요…?”
‘안방’이라는 말을 들은 유나의 얼굴이 크게 경직되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내가 정실 부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첩이었다고?!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