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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92화 (92/270)

〈 92화 〉 92화

음식을 기다리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유나가 핸드백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 들어서 나에게 건넸다.

나는 유나가 건네준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의 제목은 ‘민준 씨를 위한 인수할만한 엔터 기업 리스트!!’였다.

“제목이 상당히 귀엽네요?”

“그, 그런 거 말고…! 내용을 좀 확인해 주세요!”

“아, 네.”

나는 유나가 만들어온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서류에는 대략 1000억 언저리쯤 되는 엔터들의 기업 가치 분석 자료 및 인수 가능성과 그에 대한 근거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거라고는 개뿔도 모르는 나 역시 서류를 보며 기업이 멀쩡한지, 성장 가능성은 있는지, 인수했을 때 장점은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로 감탄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능하다. 유능해. 이유나. 너는 진짜 내꺼다.’

나야 어차피 다영이라는 연결 고리를 이미 만들어 놨기에 스타 엔터를 인수할 생각이었다. 다른 엔터에 또 다른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게 귀찮았으니까.

하지만 유나에게는 엔터에 관심이 있다고 했을 뿐, 이미 찍어놓은 엔터 기업이 있다고는 알려주지 않았었다. 유나가 나의 교인이 되고, 내 사람이 되었을 때 말해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빛나는 유능함을 자랑하는 유나는 내가 엔터에 관심 있다고 말하자마자 몇 발 앞서 행동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서류였다.

물론, 이 서류 때문에 나의 결정이 달라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유나의 능력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내가 찜해놓은 스타 엔터 역시 리스트에 들어가 있어서, 스타 엔터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수월했다.

“안 그래도 바빴을 텐데, 저 때문에 이런 것까지 만들어주신 거예요? 이러면 제가 유나 씨한테 너무 고마운데…”

“아니-.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민준 씨가 제 고객님이기도 하니까…벼, 별로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나는 집중해서 서류를 보다가, 감동받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오랜만에 멜로 눈깔을 장착한 채 유나를 바라봤다.

지독한 로맨틱함에 유나는 대단히 수줍어하며 손사래를 쳤다.

이런 능력에 저런 겸손함이라니.

따님을 말도 안 되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세한 그룹 회장님. 제가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음식 서빙해 드리겠습니다.”

웨이터가 때마침 음식을 가져왔다.

그러나 한입에 삼켜도 비리지 않을 이유나를 먹을 생각뿐이던 나는 화려하게 플레이팅 되어 나온 고급 음식들을 보고도 영 식욕이 돌지 않았다.

지금 내 침샘을 자극하는 건 오로지 유나뿐이었다.

“아-. 그으…민준 씨이-.”

“네? 왜요?”

“눈빛이 너무 뜨거워서…밥을 못 먹겠어요. 너무 부끄러워요…”

“아차차.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너무 뻔히 드러내 버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역대급으로 탐스러운 인재에 침을 질질 흘리는 구단주의 마음이 지금 내 맘과 같겠지.

10억, 100억을 줘서라도 유나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뭐, 몇백조의 돈보다 훨씬 중독적인 내 자지 맛을 보여주면 유나도 금방 넘어오겠지만.

“눈빛 관리할게요. 식사해요. 유나 씨.”

“네. 조심해 주세요.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저 녹아버리는 줄 알았어요.”

“원래 사랑하는 여자를 보는 남자 눈빛은 다 이런 거예요.”

“정말요? 민준 씨는 엄청 젊으신데도 사랑을 많이 해보셨나 봐요?”

“…식사부터 합시다.”

“…민준 씨?”

조금의 위기가 있었지만, 식사는 좋은 분위기 속에서 계속되었다.

좋은 경치, 좋은 음식, 그리고 탐나는 인재.

모든 게 완벽한 식사였으니,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쓰읍-.

후식으로 나온 무슨 무슨 원두로 만든 더럽게 쓴 커피를,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는다는 듯 자연스럽게 홀짝이며, 유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데이트 코스는 어디죠. 유나 씨?”

“네? 그, 그건 아직 안 정해 놨는데…”

“그럼 한강이라도 걸을까요? 오늘 날씨도 좋은데.”

“아! 좋아요! 저 꼭 애인이랑 한강 걸어보고 싶었어요.”

뭐 별거라고 내 말에 유나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나이를 초월해 사랑스러운 반응이었다.

“음…다시 생각해 보니까 별로네요. 미안하지만 한강은 날씨 안 좋을 때 가도록 하죠.”

“네?! 왜요?”

“다른 남자들이 유나 씨 얼굴 훔쳐보잖아요. 지금도 봐봐요. 옆자리, 옆 옆자리, 맞은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들 다 유나 씨만 쳐다보고 있잖아요.”

“아-…”

오그라드는 말이라는 건 확실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구역 퀸카는 나야! 하고.

압도적인 비주얼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쳐대고 있는 유나 때문에, 주변 남자들의 시선은 유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의 소중한 인재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확 눈깔을 파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공권력을 무시할 정도로 힘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에 참았다. 이럴 때만큼 나의 무능함이 아쉬운 경우가 없었다.

“하아-. 민준 씨. 남자들 시선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그 맞은편에서 보내는 시선에는 왜 무감각 한 거예요?”

“네? 무슨 말이에요?”

“여자들이요. 남자들 말고 여자들이 누구를 흘끗거리고 있는지 한번 봐보세요. 대신 눈은 마주치지 말고.”

“아-…”

유나의 말대로였다. 딱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나에게 언질을 받고 나니까, 남자들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들이,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 느껴졌다.

아, 맞다. 나 이제 잘생겼었지.

“저야말로 걱정되거든요. 잘생겼지, 돈 많지, 매너 좋지, 여자 다루는 것도 능숙하지…심지어는 민준 씨가 저보다 훨씬 연하잖아요. 제 친구들한테 민준 씨랑 사귄다고 말하면 분명히 도둑년 소리 들을걸요. 그리고 부러워서 기절해버릴지도 몰라요.”

“허허…”

무안해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여자들 칭찬은 많이 해 줘봤지만, 여자에게 이렇게 진하게 칭찬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내가 탐내는 인재인 유나에게 들으니까 기분이 훨씬 더 좋달까.

안 되겠다. 명목상으로도 한 코스쯤은 더 돌고 본론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도저히 그때까지 못 참을 것 같았다.

그래. 커플끼리 저녁 한 끼 했으면 됐지. 코스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모로 가나 도롯가나 우리 모두 서울로만 가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선지자의 목소리와 교주의 오오라를 키고,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럼…우리 둘 다 서로 남들의 시선을 걱정하고 있으니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공간에 가는 게 맞겠네요.”

“단, 단둘이요?”

“네. 단둘이요. 둘이서 놀아도 충분히 재밌을 거예요.”

“뭐, 뭐 하고 놀건대요?”

“글쎄요. 유나 씨는 뭐 하고 놀고 싶어요?”

“저, 저요? 저, 저는 딱히 아무것도…”

“그럼 이대로 데이트 끝?”

“아닛…! 그런 뜻이 아니라…!”

역시, 정숙한 연상녀를 놀리는 건 언제나 즐거웠다. 그것도 은근한 섹드립까지 섞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유나 씨는 저랑 둘이 있기 싫어요?”

“아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왜 그러는데요?”

“그게-… 너무 빠르잖아요. 우리 이제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친구들이 그러는데 너무 빨리 사랑하면 그만큼 빨리 식는데요. 그러니까 우리, 진도를 조금만 천천히 나가면 안 될까요…”

“아니, 유니 씨 지금 무슨 소리 하세요? 저는 그냥 같이 한강 둔치 드라이브나 하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네?! 아, 아까는 분명 단둘이 있자면서요!”

“그러니까요. 차에서 단둘이 있을 거잖아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거야…그런 식으로 말하면 당연히……”

말을 하다 말고 심하게 쪽팔렸는지 유나는 얼굴을 강하게 붉혔다.

좋은 광경이었지만, 유나가 내게 해줬던 말들은 좋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빨리 사랑하면 빨리 식는다니. 그거야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교인과 교주 그리고 복종도라는 단단한 연결 고리로 묶여있는 우리 사이에 평범한 방식이 맞아떨어질 리 없었다. 빨리 사랑하면, 더 깊이 사랑할 뿐이었다.

“흥……맨날 놀리기만 하고…”

“다 먹었으면 이제 일어나죠. 유나 씨.”

“알겠어요. 민준 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나는 궁시렁궁시렁 거리다가도, 내 손을 잡고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

오오라를 잔뜩 넣어둔 손을 맞잡은 탓에 색다른 감각을 느꼈는지, 유나는 마치 정전기가 온 듯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요? 어디 아파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정말이죠? 그거참 다행이네요.”

유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오오라에 직접 맞닿고 있는 이상 아마 곧 있으면 기분이 해롱해롱해질게 분명했다.

친구들의 조언이고 나발이고, 잔뜩 흥분해서 나에게 매달려올 유나를 생각하니까 벌써 등골이 저릿저릿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약속한 대로 유나가 카드를 꺼내 저녁값을 계산하고, 우리는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식당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유나가 잡고 있는 손을 자꾸만 꼼지락거렸다.

“왜요. 불편해요? 손 놓을까요?”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민준 씨 손을 잡고 있으니까…기분이……”

“네? 기분이 왜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음. 유나 씨가 불편해하실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유나 씨.”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주 잡고 있던 유나의 손을 놓아버렸다.

“아아-. 민, 민준 씨!”

손을 놓으면서 순간적으로 굉장한 상실감을 느꼈는지, 유나가 대단히 날렵한 움직임으로 다시 내 손깍지를 낚아챘다.

“저 진짜 괜찮아요! 민준 씨 손 계속 잡고 있고 싶어요! 정말로요!”

“네. 뭐…”

“아. 그, 그…고마워요. 민준 씨.”

엘리베이터 안에는 순식간에 뜨거운 공기가 몰아쳤다.

내 손을 얼마나 갈구하는지, 적나라하게 나에게 들어내 버린 유나는 엄청나게 부끄러워했다.

하긴, 빠르게 사랑하면 어쩌구 하던 사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왔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오오라라는 반칙을 쓴 나 때문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어색하게 볼을 상기시킨 채, 그럼에도 내 손까지를 꽉 잡고 놓지 않는 유나를 보고 있는 건 무척이나 유쾌했다.

하지만 나는 본심을 숨긴 채, 유나와 호흡을 맞춰 적잖이 당황한 몸짓을 보여주며 입을 꾹 닫았다.

침묵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야릇한 분위기. 그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아…”

보조석에 앉아 습관적으로 벨트를 매려 하던 유나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벨트를 매다 말고 급히 손을 무릎 위로 올렸다.

나는 그런 유나를 보며 살짝 웃음을 지은 채, 몸을 잔뜩 숙여서 유나에게 다가갔다.

“흐읍-.”

내가 다가가자 유나의 호흡이 멈추고, 몸이 잔뜩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흔들리는 동공과 시트 양옆을 꾹 잡은 채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손을 보니 유나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긴장한 유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일부러 더 느긋하게 움직여서 유나의 안전 벨트를 매어주었다.

철컥-.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중에 눈을 꼭 감아버렸던 유나가, 철컥 소리에 맞춰서 감았던 눈을 떠올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제자리로 돌아가다 말고, 유나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앗…!!”

유나의 반응은 몹시도 이상적이고 정석적이었다. 앗-. 이라는 귀여운 소리를 내더니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모든 남자들이 원할법한 바람직한 리액션이었다. 유나는 심지어는 이런 부분까지 우수한 거구나.

“…민, 민준 씨-.”

“네. 왜요?”

나를 뻔히 바라보는 유나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상대가 애타고 있을 때, 같은 반응을 보여주기보다는 무던하게 나가야 오히려 상대방을 더 애태울 수 있었다.

“우리-. 어디로 갈 거예요? 한강으로 드라이브?”

“네. 왜요? 별로예요?”

“아뇨. 별로는 아닌데……”

“네, 그런데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운지 유나는 몹시도 망설였다.

나는 괜히 나서서 유나의 템포를 무너트리지 않고, 스스로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가 내뿜는 강력한 교주의 오오라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스킨쉽까지 받은 이상 아무리 정숙한 유나라고 해도 발정이 나지 않고 배길 수는 없었다.

“제가 조금 피곤해서 그런데-. 혹, 혹시 민준 씨네 집에서 쉬다 가면…안 될까요…?”

“…우리 집에서요?”

“민준 씨가 좀…곤란하려나요?”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곤란한 게 맞았다.

집에는 내 동거녀인 연주가 거주하고 있었다.

아침에 파워 섹스를 통해 기절시켜놨지만 지금쯤이면 깨어나 있을지도 몰랐다.

집을 성역으로 선포한 뒤에, 성역의 버프 덕분인지 연주는 기절 상태에서 금방 회복하곤 했다.

그러나 집에 동거녀가 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유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변명을 둘러대고 호텔로 가면 그만이긴 하는데…’

그래, 분명 그렇게 대처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직감에 따르면, 유나를 집으로 초대했을 때 무척이나 재밌는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다.

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착각해서 느슨해진 연주에게 긴장감을 준다던가.

유나와 연주가 나를 두고 흥미진진한 캣 파이트를 벌인다던가.

‘그러려면 유나에게 세뇌를 좀 걸어야 하긴 하는데…’

복종도가 얼마나 여유로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

게다가 어차피 언젠가는 맞닥트릴 일이었으니 미리미리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세뇌로 인식을 변화시킨다고 해도 질투심은 남아있을 테니, 그게 어느 정도로 나타날지 확인을 해봐야 했다.

만약 크게 문제가 있다면 보수 작업도 해줘야 할 테고.

‘음. 좋아.’

모든 지표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큰 모험이 되겠지만, 그만큼 설렜다.

“가죠. 집으로.”

“저, 정말요?”

“네. 정말요.”

부우우우웅-.

나는 한남동에 있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이만큼 가슴이 두근대는 귀갓길이 얼마 만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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