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플쓰는 밤의 황제-85화 (85/270)

〈 85화 〉 85화

****

쏴아아악——.

설영은 온몸을 꼼꼼히 씻었다. 곧 기다려왔던 시간이었다. 민준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오늘 만남에서 어떤 식으로든 일을 벌일 생각이었기에, 한치의 소홀함 없이 준비를 마쳐야 했다.

“하아…”

샤워를 하고 있는 설영의 입에서는 연신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단지 물이 뜨겁기 때문은 아니었다.

설영의 머릿속에서는 민준이 차 안에서 울고 있던 자신의 등을 두드려 줬었던, 그때 그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었다.

민준을 만난 뒤로, 설영의 머릿속에는 온통 민준의 생각뿐이었다. 특히나, 등을 어루만지던 그 따듯한 손길은 잊을 수가 없었다.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지만, 민준의 따스한 손길만은 달랐다.

스윽-.

설영은 자신의 손가락을 비부로 가져갔다. 민준이 떠오를 때면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몇 번이나 자위를 했건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흐응…하악-.”

설영은 푹 젖어 있는 자신의 고간을 부드럽게 쓸었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고 질구를 만지며 손장난을 쳐댔다.

덕분에 씻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툭툭-.

샤워를 마친 설영은 긴 타월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가운을 입은 채 은은한 향을 뿜어내는 각종 스킨과 로션을 온몸에 펴 발랐다.

드라이어로 머리에 남은 물기마저 털어내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서 모양을 잡아 주었다.

“응. 괜찮네.”

설영은 막 샤워를 마치고 뽀송뽀송해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런 평을 내렸다.

삼십 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거울 안에 비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에는 주름 한 줄 없었다.

다른 돈 많은 아줌마들처럼 피부과에 가서 관리를 받거나 약물을 맞은 게 아니었다.

식단조절과 적절한 운동, 그리고 생활습관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며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음란해 보이지만…이것도 괜찮겠지.”

설영은 거울을 보며 민준을 만났을 때 지을 표정들을 미리 연습해 보았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사람들을 갖고 노는 건 그녀에게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이만한 가치가 있었다. 모든 걸 다 쏟아부어서라도 갖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였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

설영은 말없이 거울을 계속 쳐다봤다.

아름다운 얼굴, 하지만 눈동자에는 지독한 색기가 베여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야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음란하고 음습한 눈빛이었다.

설영은 자신이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극도로 농축된 색기를 뿜어낼 수 있는 건 오직 이 정도 나잇대에 여자들뿐이었다.

안 그래도 욕구가 쌓여가던 시기였다. 설영조차 몰랐지만, 민준을 만나고부터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하던 속에 쌓여가던 정체불명의 불쾌한 감정 찌꺼기들. 속에서 기분 나쁘게 스멀스멀 차올라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답답함의 원인.

모든 게 욕구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설령은 오직 민준을 생각하며 자위를 할 때만, 이런 불쾌한 욕구의 찌꺼기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흐응-.”

설영의 코에서 또다시 달큼한 소리가 삐져나왔다.

또다시 민준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설영이, 매번 자위를 하다 말고 절정 직전에 멈췄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으응…”

설영은 민준을 떠올리며 손장난을 치다가도, 항상 절정을 맞기 전에 손을 떼어 버렸다.

어차피 아무리 자위를 해도 이 끈적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하다가 멈춰버렸다.

덕분에 지금 설영에 온몸에는 색기가 가득했다. 작은 행동 하나, 심지어는 내뿜는 숨결에마저 30대의 농익은 색감이 엿보였다. 오로지 민준을 유혹하기 위해서였다.

“하응…”

설영은 겨우겨우 차오르는 정욕을 눌러 내렸다. 고간이 근질거려서 당장에라도 만지지 않고는 미칠 것 같았지만, 곧 있으면 민준이 집으로 올 시간이었다.

자위를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 민준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는 욕망이 훨씬 강했다. 기껏 꼼꼼히 씻고 준비까지 다 해놨는데 다시 손장난을 쳐서 보지를 더럽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제 곧이니까…조금만 더 참아야지.”

설영은 욕실에서 나와 안방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걸쳐놨던 가운을 벗고 미리 골라놨던 섹시한 슬립으로 갈아입고, 그 위에 실크로 된 가운을 걸쳤다.

너무나 노골적인 복장이었지만 괜찮았다. 준비된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쪼르르륵-.

안방에서 주방으로 걸어간 설영은, 와인잔 거치대에서 잔을 하나 꺼내 준비해놨던 와인을 가득 따라냈다.

그녀는 대리석 식탁에 앉아 잔 안에 담긴 와인을 몇 번 돌리다가 이내 와인을 한 모금 마셔봤다.

강한 포도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설영은 와인의 향을 적당히 음미하다가 목구멍 안으로 조금씩 액체를 흘려 넣었다.

슬슬 넘어가는 씁쓸하고도 달콤한 와인에 따라서, 설영의 볼도 점점 붉은 빛깔로 달짝지근하게 물들었다.

띠리리링-.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설영은 핸드폰에 뜬 ‘민준’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확히 약속 시간에 연락이 온 걸 보면 이미 집 앞에 도착해서 전화를 건 것 같았다.

설영은 전화를 받지 않을 채, 대신 와인을 한 모금 더 들이마셨다.

설영은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술에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단 두 모금일 뿐이었지만, 알딸딸한 알콜이 그녀의 뇌를 기분 좋게 적셨다.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을 만큼, 딱 좋은 기분이었다.

띵동-. 삐이이익-.

전화가 끊기더니 곧 대문에서 벨이 울렸다.

신발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체크하며, 걸쳐놓은 실크 가운 한쪽을 더 과감하게 젖힌 설영은, 가죽으로 된 고급 슬리퍼를 신고 대문으로 향했다.

“하아…”

대문으로 향하며, 설영은 민준을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대는 걸 느꼈다.

주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나이에, 첫사랑을 만난 소녀처럼 깊은 사랑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자신도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몰랐다.

얼굴 좀 잘생기고, 손길이 따듯하다고 해서 처음 보는 남자에게 반해버리는. 자신은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분명 아니었는데, 민준만은 어딘가 달랐다.

어쩌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연주의 남자라 이러는 걸지도 몰랐다.

여하튼 가지고 싶다는 것만은 무척이나 확실했고, 그녀는 가지고 싶은 건 무슨 짓을 해서든 손에 넣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이번에도 그럴 속셈이었다.

끼이이잉-.

그녀는 조금은 힘겹게 대문을 열었다. 연기는 아니었다.

운동을 즐기는 그녀였지만, 주로는 요가나 가벼운 조깅이 전부였다. 더군다나 어릴 때부터 무거운 거라곤 들어본 적이 없으니 팔에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원래는 이 문을 여는 건 가정부의 일이었지만, 민준과의 좋은 시간을 위해서 가정부는 이미 퇴근시켜 놓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설영은 이런 가녀린 모습이, 남자들에게는 지켜주고 싶은 매력 포인트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실제로 힘든 것보다 조금 더 힘든 척을 하며 문을 열고, 문앞에 어색하게 서 있는 민준을 맞이했다.

“…저 왔습니다. 어머니.”

민준은 눈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하며, 어색하게 설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섹시한 슬립에 실크 가운만을 대충 걸친 설영의 복장은 무척이나 관능적이었다.

누가 봐도 남자를 꼬시려고 나온 사람의 복장이라고 생각할 만큼 노골적이었지만, 설영은 그런 노골적인 복장을 노골적이지 않게 입기 위해서 와인을 미리 마셔놓은 상태였다. 취한 사람이 복장까지 신경 쓸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설영은 붉어진 볼로 민준을 흘기며 차갑게 말했다.

“들어와요.”

“네, 어머니.”

설영은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서 집 안으로 향했다.

민준은 문을 닫고 설영을 뒤따라 갔는데, 아무리 봐도 설영의 걸음걸이가 영 이상했다. 비틀비틀하는 게 금방이라도 발을 헛디딜 것 같았다.

민준은 혹여나 설영이 넘어질까 봐 바로 뒤에 붙어서 유심히 주의를 기울이며 걸음을 옮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서 설영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터억-.

“조심하세요.”

“…”

휘청이던 설영의 몸을, 민준이 커다랗고 따듯한 손으로 단단히 잡아 주었다. 여기까지는 설영의 계산대로였고, 원래는 여기서 한 마디 톡 쏘아줄 계획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딸의 동거 소식 때문에 상처받은 엄마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따듯한 민준의 손과 순식간에 들어온 민준의 남자 향기 때문에 설영은 고작 입을 닫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이 상태에서 입을 열어버리면 멍청한 하연주처럼 말을 더듬어 버릴 것 같았다.

“어머니. 혹시 술을 드신 건…”

“왜요? 나는 술 마시면 안 돼?”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이거 놔요. 혼자 걸을 수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날카로운 설영의 반응에 민준은 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떼어냈다.

도끼눈을 뜨고 잠시 민준을 흘기던 설영이 다시 앞장서서 집안을 향해 걸어갔고, 민준은 또 설영이 넘어질까 봐 뒤에 바짝 붙어서 설영을 따라갔다.

‘정말…하연주같은 멍청한 년한테는 너무 아까워.’

자신이 톡 쏘아 붙였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넘어질까 봐 뒤에 딱 붙어서 걸어오는 민준의 존재감을, 설영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잘 생기고 돈 많은 걸 넘어서 여자를 배려할 줄 아는 남자였다. 설영의 마음속에서는 민준을 향한 욕망이 더욱 커져만 갔다.

민준을 데리고 말없이 주방으로 걸어온 설영은, 민준이 오기 전 와인을 홀짝이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았고, 잠시 머뭇거리던 민준 역시 설영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와인 한잔할래요?”

“저는 괜찮습니다.”

저녁에 있는 유나와의 약속을 의식해서 민준은 술을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설영은 어떻게 해서든 민준에게 술을 마시게 할 속셈이었다.

잠들어 있는 욕망이라는 괴물을 꺼내는 데 술만큼 좋은 재료가 없었다.

“어른이 주는 술을 거절하는…그런 예의 없는 남자인 줄은 몰랐는데…”

“아, 그런 게 아니라…”

“됐어요. 나 혼자서 마실 테니까…”

설영은 그렇게 말하며 충분히 남아있던 자신의 와인 잔에, 또다시 와인을 가득히 따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럼 한 잔만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자신의 객기에 결국 승복하는 민준을 보면서 설영은 교태롭게 웃었다.

“진즉에 그랬어야지. 하나밖에 없는 딸까지 뺏어갔으면 술 상대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어머니 말씀이 옳은 것 같네요.”

체념하는 민준을 향해 웃어주던 설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와인잔을 가져온 뒤 민준에게 건넸다.

민준이 잔을 잡고 있는 사이 설영은 와인은 들고 민준의 잔을 채웠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건배를 하고는, 서로의 와인을 조금씩 들이켰다.

와인을 적당히 음미하고는 목구멍으로 넘긴 설영이, 건너편에 있는 민준을 뻔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해하지 마. 나 원래 술 잘 안 마시니까. 내가 왜 대낮부터 이러고 있는지…민준 군이 더 잘 알겠죠?”

“뭐라…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민준은 설영을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허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연주와의 동거를 선언한 것. 설영은 지금 그것에 대해서 민준을 질책하고 있었다.

“하아-.”

설영은 민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한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죄인처럼 식탁만을 바라보고 있던 민준의 시선이 조심스레 설영을 향해 올라갔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진짜 싫은데……나 지금 너무 화가 나. 그리고 외로워.”

“…”

“알고 있겠지만, 남편은 해외에서 사는 거나 다름없고, 가족이라고는 연주밖에 없는데 민준 군이 연주마저 데려가면…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죄송하다는 말 이외에는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와 함께 있을 때면 연주도 많이 행복해하고, 어머니께 몹쓸 짓을 할 리도 없으니까…”

“몹쓸 짓을 하든 말든 가족이에요. 내 딸이라고요. 이 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

“또 입을 다무는구나.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이겠지.”

설영은 그렇게 말하곤 한참이나 민준을 쳐다보다가, 가득 따라놓은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설영이 와인을 전부 마시길 잠시 기다리다가, 민준이 설영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머니. 술 잘 못 하시는 것 같은데 너무 과음하시는 건 아닌지…”

“하-.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아~”

아무리 말을 해봐도 뾰족하디뾰족한 설영의 태도에 답답하다는 듯, 민준 역시 자신의 잔에 있던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원샷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설영이 민준을 보며 짙은 눈웃음을 흘렸다.

술에 취해가고 있는 설영은 억눌러왔던 자신의 진득한 색욕을 점차 풀어내고 있었다. 설영의 관능적인 웃음을 보고있는 민준은 뇌가 하얗게 물들어 버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