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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79화 (79/270)

〈 79화 〉 79화

뭘 해도 되는 날이 있었다. 다영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노래할 때는 발성에 신경 쓰지 않아도 제대로 된 발성으로 음이 나왔고, 춤을 출 때는 비트에 따라 관절이 알아서 움직였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마치 평생 노래만 부르고, 춤을 추며 살아온 사람처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서다영!! 뭐야 오늘 컨디션 왜 이렇게 좋은데?”

“감, 감사합니닷!”

“이야~ 진짜 잘했다. 내일도 이렇게만 해 다영아. 너 그럼 무조건 데뷔다.”

“네엣!”

개인 보컬 트레이닝 시간이었다. 무섭기로 유명한 호랑이 선생님께 극찬을 받은 다영은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힘차게 대답했다.

댄스 트레이닝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시간 내내 트레이닝 선생님한테서는 다영에 대한 칭찬이 흘러나왔다.

다영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묵묵히 쌓였던 노력들이 드디어 빛을 발하며, 자신의 실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충분한 재능이 있었는데, 이제야 발견하게 된 건 아닐까.

노래랑 춤이란 게 원래 이렇게 쉽고 재밌는 거였구나. 그래, 나는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

다영은 자신감이 넘쳤다. 시도 하는 모든 게 성공적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딱 오후까지만.

‘어라…?’

오후 마지막 일정인 개인 연습 시간이었다. 다영은 작은 연습실에서 MR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르면 부르는 대로 나오던 높은음들이, 갑자기 버겁게 느껴졌다. 아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버거웠다.

호흡이 부족했다. 음정이 흔들리고 음색이 갈라졌다.

되는 날이라고 생각해서 너무 안일했던 게 아닌가 싶어서, 다영은 심기일전하여 다시 불러봤다.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해서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여전히 버거웠다.

‘뭐지? 될 것 같은데 왜 안 되는 거지…?’

어떻게 하면 이 높은음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 오늘 내내 충분히 경험했었다. 분명 깨달음을 얻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 깨달음이 희미해져 버렸다. 선명하게 손에 잡히던 한순간에 어딘가로 달아나서, 지금은 향기만이 아련하게 남아있었다.

‘답답해.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깨달음이 사라져버리자 다영은 초조해졌다. 당장 내일이 월말평가였다. 그것도 데뷔가 달려있는.

행운처럼 찾아온 깨달음 덕분에 이번엔 정말로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겠다고 제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우습지만 자신 이외의 어떤 연습생들이 데뷔조에 들면 좋을지 꾸려보기도 했었다. 모든 게 다 망상이었다.

한참 동안 같은 노래를 부르다 다영은 갑작스레 흘러나오던 MR를 정지시켰다.

이미 과도하게 목을 쓴 상태였다. 이 이상 부르면 목이 상할 수도 있었다.

“…”

다영은 녹음 파일을 재생시켜서, 자신이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 들어봤다.

‘엉망이야. 완전히…’

심지어는 평소보다 더 별로였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도저히 노래에 집중할 수가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이러면 안 되는데…”

눈동자에 울컥 눈물이 차올라서 다영은 온 힘을 다해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

울면 목이 잠긴다. 내일까지 여파가 끼칠 수도 있었다. 살짝 흐느끼는 거야 상관없었지만, 지금 같은 기분에 눈물을 터트리면 무조건 펑펑 울 것 같았다.

다영은 고개를 수그리고 연습실 구석으로 가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스스로가 너무 하찮았다. 자신 같은 머저리에게는 이런 연습실마저 과분했다. 그래서 구석에 박혀서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이럴 거면 희망이나 주지 말지-. 왜, 갑자기 그런 게 찾아와서는…’

높이 날았으면 그만큼 가파르게 추락하는 법이었다. 한순간 보였던 높은 곳에서의 경치는,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아예 보지 못했다면 더 나았을 정도로.

“하아, 흐윽-.”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연습생 생활 연차가 쌓여갈수록 다영은 우는 날이 많아졌다.

많은 날을 연습생으로 보낸다는 건, 그만큼 아이돌로서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의미였다.

자신은 이제 20살, 어엿한 성인이었다. 사회 전체로 따지면 파릇파릇한 나이였지만, 연예계에서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앞으로 길어야 1년이었다. 그 안에 데뷔하지 못하면 사실상 자신의 꿈은 끝이었다.

죽을 만큼 애를 써왔던 몇 년의 시간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질까 봐 무서워서, 다영은 성인 된 이후로 가끔 이렇게, 연습실 구석에 처박혀서 울었다.

그래,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서러웠다.

“흐으윽, 하윽-. 왜, 왜 안 되는 건데…! 아까는 그렇게 잘 됐으면서…!!”

다영은 울분은 토해냈다.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잘했던 것도 자신이고 못한 것도 결국은 자신이었다.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으흐으-. 하악, 흐윽…… 하으…?”

분명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몸에서 갑자기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감각이 느껴졌다.

의아함에 다영은 자신의 하복부를 살살 문질렀다. 왜 갑자기 하복부가 쓰려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으음…하으…쯥…”

하복부만이 아니었다. 서서히 목이 마르더니, 순식간에 며칠 동안 물을 못 마신 것처럼 목이 텁텁해지고 가슴이 쓰려 왔다.

당혹감을 느낀 다영은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병에 담겨 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심한 갈증과 함께 하복부가 욱신욱신거렸다. 대체 왜 이럴까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어제 만났던 도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째서 도영이 떠올랐는지는 다영 스스로도 몰랐다. 그러나 도영의 얼굴과 정액을 생각하자 몸 상태가 거짓말처럼 잠시 가라앉았다.

“어라…?”

단순히 가라앉기만 한 게 아니었다.

무언가 변화를 감지한 다영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MR를 다시 틀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다영이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는 노래는, 아이돌 출신 솔로 가수 이태연의 ‘I’라는 곡이었다.

상당한 수준의 보컬 컨트롤과 고음이 요구되는 난이도 있는 곡이었고, 내일 월말평가에서 다영이 선보일 곡이기도 하였다.

‘…!’

다영은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노래를 부르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처음 느끼는 기분은 아니었다. 분명 오늘 아침에도 이런 상태였었다.

민준을 떠올렸더니, 떠나갔던 깨달음이 어느새 다시 다가와 있었다.

흐읍-.

다영은 호흡을 깊게 내리고 고음 파트를 준비했다.

3옥타브 파를 강한 발성으로 내지르는 이 파트가, 이 곡의 하이라이트였다.

꾸역꾸역 올리는 것 만으로도 어려운 음역대 였지만, 시원하면서도 살짝 긁는 듯한 음색까지 넣어서 모든 걸 뻥 뚫는듯한 느낌을 줘야만 했다.

눈을 꼭 감은 다영은, 흘러가는 멜로디에 맞춰서 자신의 모든 걸 내뱉었다.

-찬란하게 날아가아아——!! 이야—!!!

‘됐다-!’

어려운 고음 파트까지 완벽하게 처리해낸 다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벅찬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핸드폰을 쥐어 들어서 전화를 걸었다.

이게 정말 맞을까 하는 의심일랑 일절 없었다.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몸이 알고 있었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무척이나 강력한 직감이, 그녀의 행동을 강제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오, 오빠. 통화 괜찮으세요? 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전화 드려서 놀라셨죠?”

겨우 민준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다영의 그곳이 왈칵 젖어들었다.

다영은 욱씬 거리는 하복부 때문에 허벅지를 연신 비비적대며 겨우겨우 통화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이런 행동 때문에 민준이 실망할까 봐 걱정됐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였다.

이대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다영은 마음을 굳게 먹고 속에 담겨있던 말을 내뱉었다.

“…실례가 안된다면…오빠…저저-, 정, 정액-. 좀 주시면 안될까요!!”

****

집에서 나와 운전을 하면서 다영이와 통화를 계속했다.

느닷없이 정액을 달라며 애원하던 다영이는 그 뒤에 차근차근 자신의 사연을 풀어 놓았다.

덕분에 나는 관심도 없는 기획사의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일 걸그룹 데뷔가 달려있는 중요한 평가가 있다는 거지.”

-네, 오빠.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내 정액을 떠올리면 실력이 쭉쭉 는다는 거고.

-와~ 어떻게 그렇게 찰떡같이 알아들어요? 오빠 진짜 대단하다.

전혀 대단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교주 스킬의 효과였으니까.

-저는 이런 소리 하면 오빠가 저를 미, 미친년으로 취급할까 봐 좀 무서웠는데…

“아니야, 다영아. 당연히 그럴 수 있어. 오빠한테 사연이 좀 많거든.

-사연이요? 무슨 사연인데요?

“가서 얘기해줄게.”

얘기라기보다는 세뇌에 가깝겠지만, 뭐 어쨌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외적인 교주 활동을 좀 해야 하니까…’

아직 다영이에게 나를 교주라고 소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걸 직접 입으로 말하는 순간, 교주의 품격이 떡락하는 법이었다.

단지 다영이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내 정액이 가진 효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를 시켜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연예계의 무한금욕교 프락치 느낌으로 다영이를 박아둘 생각이었다.

‘다영이가 열심히 활동하는 동안 많은 여자 연예인들을 만날 테니까.’

연예인들은 누구보다 빛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어둠도 짙게 드리우는 법.

누구보다 화려하게 살면서도 그 속은 썩어 문드러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괜히 연예인들이 툭하면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속이 썩어 있는 연예인들을 다영이가 나한테 데려오는 거지. 나는 그 사람들을 정액으로 치료해주고.’

다시 생각해봐도 좋은 계획이었다.

다영이야 워낙 인싸력이 강하니까 프락치 역할에 매우 적격이었고, 그렇게 해서 한두 명만 깔끔하게 치료를 해주면 입소문을 타고 연예계에서 먼저 무한금욕교에 대한 반응이 올지도 몰랐다.

그렇게 연예계를 먹어 놓으면 교세를 늘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홍보하는 데 연예인들을 이용하는 것만큼 유용한 수단은 없으니까.

‘하다못해 목에다가 무한금욕교 초커만 하나씩 걸어줘도 그 파급력은 상당할 테지. 흐음…근데 그러면 다영이가 데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건 좀 별로인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계획이 세워졌다가 수정되었다.

그렇게 기나긴 숙고 끝에 나온 내 결론은 이거였다.

‘그래. 차라리 다영이네 기획사를 인수해 버리자-!’

개인이 회사를 인수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영이네 기획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돈이야 넘쳐났다. 지금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 넘쳐날 예정이었다.

그리고 회사를 사두면 효과적이고 조직적으로 교세를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뇌를 통해 회사 사람들을 내 수족으로 만들면 원하는 일을 바로바로 시킬 수 있었다. 말이 좋아 손발이지 사실 노예처럼 부려도 상관 없었다.

‘그리고 스무살에 기획사 대표. 이건 못 참잖아.’

심지어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이점도 있었다.

허례허식과 과도한 명예욕에 휩쓸린 성급한 결정 따위가 절대 아니었다.

‘교주(20살. 재수생.)’보다는 ‘교주(20살. 스타 엔터 대표)’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게 훨씬 더 무게감 있었다.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표라는 타이틀을 얻으면 20살이라는 나이조차 약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할 게 뻔했다.

-헤엑! 그렇게 젊은 나이에 대표란 말이야?!

대표 자리에 앉으면 어떤 사람에게서든 이런 식의 긍정적인 반응을 뽑아낼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직위만으로 복종도가 더 쉽게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빠! 뒷골목으로 오신 거 맞죠?

‘응.’ 또는 ‘그렇구나~’ 정도의 리액션만 기계적으로 답습하며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핸드폰 스피커 속에서 들려온 유난히 활기찬 다영이의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나는 ‘스타 엔터 인수 계획’을 고이 머릿속에 넣어놓고, 다영이와의 통화에 집중했다.

“어, 어. 다영아. 네가 보내준 주소로 왔어.”

-지금 나갈게요. 아, 오빠 혹시 친한 동생 한 명 데려가도 돼요?

“그-. 레이첼이라는 애?”

-네. 레이첼이요.

“괜찮아. 상관없어.”

다영이는 레이첼이라는 친한 동생에게 나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털어놓았다는 걸 이미 자백한 상태였다.

뭐, 성인 남녀가 섹스를 했다는 게 숨길만 한 내용도 아니었고, 쁘락치로서 벌써부터 착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다영이에게 그깟 일로 지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금방 갈게요. 오빠!

“천천히 와. 기다리고 있을게.

-네엣!!

회사 뒷골목에 차를 대놓고 다영이를 기다렸다.

사실 뒷골목이 아니라, 떡하니 회사 앞에다가 차를 세워놓고 싶었다.

플렉스 포인트도 빨면서, 나의 교인이 된 다영이의 기까지 확실하게 살려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혹시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할 수 있었기에, 회사 뒷골목쯤에서 대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오빠아아아----!!”

“킄.”

자기가 눈에 띄면 안된다고 해서 일부러 뒷골목으로 왔거늘, 다영이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큰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뛰어왔다.

다영이의 옆에는 척 봐도 한 미모 할 것 같은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아마 저 친구가 레이첼이겠지.

뭐, 레이첼이든 프레첼이든, 나는 일단 무시하고 차에서 내려 껑충껑충 달려오는 다영이를 감싸 안았다.

체온이 무척이나 따듯한 다영이를 안는 기분은 언제나 훌륭했다. 아니, 여름에는 좀 그러려나.

“오빠, 대박-!! 저 오빠 완전 보고 싶었던 거 있죠!!”

“우리 헤어진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그러니까요! 저 완전 오빠한테 미쳤나 봐요. 그-. 그, 그것도 그렇고…”

“그거? 그게 뭔데?”

“아-. 아, 아까 말씀드린 거 있잖아요. 오빠 그거…”

“아~~ 내 정ㅇ…으브.”

내가 정액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려 하자, 다영이는 황급히 자신의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은 다음 뒤에 있는 레이첼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쉬…쉬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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