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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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얼큰한 김치찌개 냄새였다. 냄새만 맡아도 맛있었다.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잠들어 있던 정신이 빠르게 깨어났다.
“으하악~”
나는 습관적으로 기지개를 켰다. 몸은 전혀 찌뿌드드하지 않았다. 아마 신체 강화 덕분이겠지.
“으음…”
조금 멍을 때리다가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래. 나 어제 소파에서 잠들었구나.
‘왜였지…? 아, 연주.’
안방은 연주의 차지였다. 침대야 4명은 거뜬히 잘 정도로 넓었지만, 정액을 발라 놓은 연주 옆에서 자기가 꺼림칙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연주의 몸으로 흔적도 없이 흡수된다지만, 그전에 자면서 뒤척이던 내 어깨에 묻을지 알게 뭔가.
그래서 나는 소파에서 잤다. 전혀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 소파마저 고급스러웠다. 충분히 침대로 써도 될 정도로.
“…미현 누나겠지?”
분명 아무것도 덮지 않고 잤는데, 내 몸 위에 이불이 하나 덮여 있었다.
아마 미현 누나가 덮어 준 것 같았다. 섹스를 하면서 3번이나 기절했던 연주가 벌써 일어날 리가 없으니까.
‘어제는 참…많은 걸 배웠네.’
정말로 그랬다. 어제 연주와의 섹스에서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SSS급은 뭐가 달라도 한참이나 달랐다.
-아으아으아으아아그으아그그아
간질 발작이라도 온 듯한 높고 기괴한 소리. 놀랍게도 이게 연주의 신음 소리였다.
신비 체험을 시작하고 연주는 정말 접신이라도 한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쭉쭉 뽑아냈다.
복종도가 쑥쑥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런지 연주의 다이나믹한 반응을 보고 있는 게 좀 어색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섹스를 하는 기분이 아니라, 진짜로 교주가 되어서 교인에게 은총을 내려주는, 그런 기분이었다.
어쨌든 SSS급 교인 연주는 나와 섹스를 하면서 신비 체험을 극한으로 경험했다.
중간에 2번이나 기절했는데, 나는 그 뒤에야 교주의 은총 스킬 역시 마음만 먹으면 끌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3번째로 기절할 때까지는 그나마 만족스러운 섹스를 할 수 있었다.
“…누나.”
부엌으로 걸어가니 누나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누나의 이름을 불렀다.
홧김에 흑염룡을 날뛰게 놔두었다가, 누나를 정말로 육변기처럼 다뤄버렸다. 심지어는 채찍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아무리 누나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조금은 삐지지 않았을까. 뭐, 육체적으로는 둘도 없을 정도로 느꼈겠지만, 인간이란 육체와 정신의 기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분한 복잡한 생물이었다.
“아! 어, 어! 민준아. 일, 일어났어…?”
“…?”
국자로 김치찌개를 떠서 맛을 보던 누나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런데 누나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인사만 했을 뿐인데 당황하는 수준이 거의 연주급이었다.
“누나 뭐 나한테 잘못한 거 있어요? 뭘 그렇게 당황해요?”
“아, 아니. 이렇게 일찍 일어날 줄 몰라서… 김, 김치찌개만 끓여놓고 가려고 했거든.”
“아침에 일어나서 장 봐온 거에요?”
“요…요즘에는 많이 시키면 배달해주니까. 그냥 배, 배달시켰지.”
“…”
아무리 봐도 누나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나는 교주의 세뇌를 키고 누나를 추궁했다.
찜찜한 부분을 놔두고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늘 일어나서 무슨 짓 했는지 전부 다 말해봐요.”
그리고 줄줄 쏟아져 나온 누나의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일어나서 씻고, 거실로 나와서 너한테 이불 덮어주려다가 성기가 서 있는 걸 보고 펠라치오 하면서 자위했어. 기분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가버렸어. 민준이 너도 한 번 사정했고. 정액은 내가 전부 받아 마셨어. 정액 마실 때 황홀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 지금도 정액 마시고 싶어서 안달 나 있는 상태야.”
“…”
“핸드폰으로 식재료들을 조금 주문한 다음에, 옷이 잔뜩 와 있어서 장롱에다가 정리해두고, 도착한 식재료들로 밥하고 김치찌개 끓이는 중이었어. 계란말이는 이미 만들어서 식탁에 올려놨고.”
“음.”
내가 자는 사이 누나는 꽤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자고 있는 사이 누나가 내 자지를 빨면서 자위를 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내가 누나를 육변기, 육변기하면서 하도 매도했다지만, 누나가 정말 육변기 같은 일을 저질렀을 줄이야.
‘아, 그거 때문인가? 내 정액에 갈증을 느낀다는 그거?’
‘정자의 치유’ 스킬에 붙어있는 설명이었다. 정자로 치유를 받을수록 심각한 수준으로 정자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는데, 이제야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조금 감이 잡혔다.
누나가 왜 저렇게 비치스러워졌나 했는데, 아무래도 스킬 효과 때문인 것 같았다.
“에…?”
세뇌가 풀렸는지 누나가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아무 일어 없었다는 듯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해놓고 가려고 하는데요? 그냥 아침 같이 먹어요.”
“아… 그, 그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뭐, 남편이요?”
“으, 응…”
내 목소리가 가라앉았다는 걸 느꼈는지, 누나의 반응이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누나의 생각처럼 나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즐거웠다.
누나가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편보다 나에게 마음이 기울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나는 누나가 나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더 보고 싶어서, 일부러 안색을 더 굳혔다.
“그…그 사람은 나 없으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어. 그, 그러니까…”
“누가 뭐래요? 알겠으니까 식탁에다가 2인분 차려 놓으세요.”
“민준아. 누나, 집에 가봐야 한다니까? 응?”
“누나랑 먹을 거 아니고 안방에 사람 한 명 더 있어서 그래요.”
“…뭐? 여…여자야? 집에 여자를 데리고 온 거야? 내가, 내가…있는데?”
“그럼 남자겠어요? 그리고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요. 누나는 누나 남편이나 신경 쓰면 되잖아요.”
“…”
“공과 사는 구분하자고요. 누나 지금 여기에 가정부로 있는 거예요. 내가 그러니까 돈 주는 거고. 알고 있죠?”
“아…”
“가정부답게 구세요. 선 넘으려고 하지 말고. 누나가 아직도 남편 버릴 생각이 없는데, 제가 이것보다 뭘 더 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죠?”
“…”
누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살짝 떨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누나는 끝끝내 나에게 매달리지 못했다.
마음은 이미 나에게 기울었지만, 누나는 남편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뭐, 그럴만했다. 마음이야 어떻든 몇년을 진심으로 사랑한 남편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특히, 미현 누나처럼 지독한 순애보적 성향을 지닌 인간에게라면 그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누나를 꼬드기고, 부추겨야 했다. 때로는 거칠게 대하고, 때로는 달콤한 말로 속삭여서 누나를 미치게 만들어야 했다.
누나가 그 머저리를 버려버릴 수 있도록. 마음속에서 남편을 완전히 비워내고, 오로지 나에게만 순종할 수 있도록.
세뇌를 걸면 쉬웠지만, 이런 일까지 세뇌로 해결하기는 싫었다. 게다가 소모되는 복종도도 아까웠고.
“김치찌개 다 된 거 맞죠?”
“아…응.”
“식탁에 식사 차려 놓으세요.”
나는 감정 없이 말하고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뒤에서 누나가 울든 말든, 그건 아직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서러우면 남편하고 이혼하고 내 품 안으로 들어오면 될 뿐이었다.
“연주 씨. 연주 씨.”
“으웅…민준 씨이…”
안방으로 가서 어깨를 살살 흔들며 연주를 깨웠다.
연주는 무척이나 피곤한지 내 품에 안겨들며 일어나기 싫다고 칭얼대었다.
귀여웠다. 자다 일어났는데도 연주의 생기 가득한 얼굴에는 흠결 하나 없었다.
연주를 보니까 미현 누나를 보면서 답답해졌던 마음이 한순간에 녹아들었다. 역시 나의 힐링 버튼다웠다.
“일어나서 밥만 먹고 다시 자요. 네?”
“우으응…너무 피곤해요오…못, 못 일어나겠어요오…어, 어제에…민준 씨가…격렬하게 해서어…너무 피곤해요오…으응…그러니까아…”
처음에는 진심으로 피곤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가면 갈수록 연주의 속마음이 바뀌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연주는 지금 협상을 하고 있었다.
네가 날 피곤하게 만들었으니 확실하게 책임지라는 소리였는데, 아마 협상의 결과로 모닝 키스 정도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아, 잠 많은 여자는 별론데…’라고 한 마디만 던져주면 연주는 기상나팔을 들은 훈련병처럼 빠릿빠릿하게 기상하겠지만, 어제 연주가 수고한 건 분명했으니 이 정도 협상은 충분히 타결해줄 만한 여지가 있었다.
‘…은근히 앙큼한 구석이 있어. 그래서 더 귀엽지만.’
나는 눈에 뻔히 보이는 연주의 장난에 넘어가 주었다.
쪽-.
가볍게 입술을 맞춰주니, 연주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는 아침부터 볼을 확 붉혔다.
“일어나요. 연주 씨. 어서요.”
“아아아아, 아직 졸려요. 민준 씨이…으음…졸리다아…흐아아암…”
“큭.”
나는 계속 연주에게 져주었다. 연주의 부드러운 입술을 몇 번이고 훔쳤다.
다섯 번인가 여섯 번째 키스를 해줬을 때부터 연주는 달아올랐는지 암캐 같은 눈빛을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모닝 섹스를 조질 시간은 없었다.
말하자면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 중 두 명이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는 기념비적인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행사에 늦을 수야 없겠지.
“읏차.”
“아우…민준 씨이…”
내가 거의 안아 들듯이 연주를 일으켜 세웠다.
입술을 그렇게 실컷 맞대어 놓고 뭐가 그렇게 또 부끄러운지, 연주는 연신 온몸을 베베 꼬았다.
“내려가요. 연주 씨. 가정부 아주머니가 밥 차려 놓으셨을 거에요.”
“네, 민준 씨!”
역시 금수저인 연주다웠다. ‘가정부’라는 단어가 익숙한지, 내 말에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 정혜가 이런 소리를 들었으면, `집에서 가정부를 써요? 헐. 대박.` 이런 반응을 보여줬을텐데 조금 아쉬웠다.
뭐, 연주네 집 정도면 매일매일 가정부를 불러야 관리가 될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연주와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주방으로 걸어가니, 테이블에는 이미 식사가 전부 차려져 있었다.
밥에다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마트표 밑반찬 몇 개가 전부였지만 전혀 부족한 느낌은 없었다.
고급스러운 식기와 미현 누나의 눈부신 플레이팅 실력 덕분이었다. 계란말이가 접시 위에 무척이나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일식당에서 내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김치찌개 냄새만 해도 심상치 않더니, 미현 누나는 그냥 살림 자체를 잘하나 보네.’
단순히 섹스 메이드로 쓸려고 했더니, 의외의 부분에서 눈부신 재능을 보여주는 미현 누나였다.
그러니 내 속에서 미현 누나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올라가는 건 당연했다.
옛말에 부인의 미모는 3년을 가고 살림 솜씨는 평생을 간다는 말이 있었다. 다분히 가부장적인 말이었지만 틀린 소리는 아닌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 어라?”
식탁에 앉았는데, 맞은 편에 앉은 연주가 내 뒤를 보더니 의문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가볍게 화장까지 마친 미현 누나가, 겉옷을 팔에 걸어두고 꽤 도발스러운 복장으로 서 있었다.
‘오호라. 그렇게 나오시겠다?’
내가 일하는 아줌마 취급을 하겠다고 선을 그어 놓으니까, 누나는 자신의 타고난 외모로 그 선을 뛰어넘을 생각인 것 같았다.
누나의 발칙한 작전은 꽤 성공적이었다.
압도적인 몸매와 외모. 특히, 시공간을 끌어당기는 듯한 미현 누나의 초거유에서 연주의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아주머니. 퇴근하시게요?”
“아…아, 아주머니…?”
내가 자연스럽게 아주머니라고 지칭하자 미현 누나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연주는 미현 누나 같은 사람이 가정부 아주머니라는 게 믿기지 않는지, 연신 아주머니라는 말을 되뇌었다.
스윽-.
누나는 무심하게 연주를 바라보던 시선을 살짝 돌려서 나를 쳐다봤다. 감정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다만 화를 삭이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네. 냉장고에 반찬 몇 가지 더 있으니까 꺼내 드시면 될 거에요. 설거지는 그냥 물에다가 담가 놓으세요. 제가 나중에 다시 와서 할 테니까.”
“알겠어요. 어서 가보세요. 집에서 남편 기다리실 텐데.”
나는 일부러 누나가 유부녀라는 것을 언급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연주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 유부녀셨구나…후아…”
연주의 혼잣말이자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미현 누나의 귓가에도 들렸는지, 무심함을 가장하던 누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염장을 제대로 찌른 연주의 한마디의 미현 누나의 입꼬리가 부르르 떨려왔다.
스스로도 입꼬리가 떨리는 걸 의식하고 있는 건지, 미현 누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는데 립스틱을 짙게 발라놔서 그 행동이 유독 색정적으로 느껴졌다. 비련하고 가련한 게 누나의 처지에 딱 어울렸다.
나는 그런 누나를 보면서 살짝 웃었다. 약을 올리는 것이었다.
남편을 버리지 못하면, 아무리 용을 써 받자 누나가 받을 수 있는 취급은 이 정도뿐이라고. 누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 억울하면 이혼 서류 가져오라고.’
딱 그런 느낌이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았지만, 누나는 확실히 알아들었는지,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럼…가 볼게요.”
“네. 안녕히 가세요. 아주머니.”
“아, 안녕히 가세요. 아주머니!”
미현 누나가 유부녀라는 말을 듣고, 연주는 어쩐지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가 미현 누나에게 인사를 하니까, 연주는 뭣도 모르고 발랄한 목소리로 내 인사를 그대로 따라 했다. 유독 ‘아주머니’라는 단어에 강세를 집어넣어서.
바르르르.
이번에는 눈가였다. 돌아서는 누나의 눈가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무척이나 빠르고 강하게 흔들렸다.
나는 누나의 뒷모습을 적당히 지켜보다가, 연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밥 먹을까요. 연주 씨?”
“네! 밥 먹어요. 민준 씨!”
우리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미현 누나의 음식 솜씨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훌륭했다. 김치찌개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었다.
“아참. 연주 씨. 할 말 있어요.”
“네? 뭔데요? 민준 씨?”
밥을 거의 다 먹고 연주를 보며 말했다.
“연주 씨. 혹시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래요?”
“…에?”
“뭐라 그러더라…? 아, 동거. 동거하는 거 어때요. 우리?”
“에…………? 네, 네에…?”
나는 소리죽여 웃었다.
미현 누나의 음식 솜씨처럼, 엄청난 충격에 멍하니 놀라는 연주의 반응 역시,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