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69화
나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여기서 웃어버리면 다영이의 복종도가 확 떨어질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라면을 그렇게 좋아해? 아무리 그래도 10년 동안 라면만 먹을 수가 있나?”
“아…그…요즘은 워낙 종류가 많고, 또 끊이는 방법에 따라서 맛이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라면이라도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는 물의 양과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미묘한 차이가 라면의 세계에서는 큰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라면을 끓일 때는 방심하지 않아야 한달까? 나비효과 처럼, 라비효과가 있는 거죠.”
웃음은 참았지만 한 번 더 놀려주는 건 참지 못했는데, 다영이가 생각보다 잘 받아쳤다.
얼마든지 논파하고 더 놀려줄 수 있었지만, 필사적인 다영이의 노력을 높게 사서 그만두었다.
참교육 중독자였지만, 교인들에게만은 자비롭고 싶었다.
“다영아, 집은 가까워?”
“아, 여기서 얼마 안 걸려요.”
카페를 마감하고 나오면서 다영이가 내게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쳐보니까 고작 15분 거리라서 얼마든지 데려다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는 사이 좋은 연인처럼 끊임없이 대화하며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사실 대화의 지분을 자세히 따져 보면 다영이가 9고, 내가 1이었다.
내가 내뱉는 말은 ‘아~’ 또는 ‘그렇구나~’ 뿐이었는데도, 토크 머신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최대로 잡아도 10분이 채 안 걸리는 그 짧은 시간 만에, 인간 서다영의 일대기를 전부 엿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아이돌이 꿈이라, 고등학교 그만두고 혼자 서울에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는데, 영 신통치 않아서 아직까지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말이지? 저녁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네에. 와. 오빠 어떻게 그렇게 요약을 잘하세요? 저는 말을 하려고 하면 막 다른 얘기들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라서 계속 늘어지던데. 이런 것 때문에 같이 연습하는 친구들이 저한테 막 투머치토커라고 놀리는데, 솔직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LA…”
이어졌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빈 내용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듣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가 없었다.
‘피곤하네…’
기가 빨렸다. 옆에서 앵알앵알 대는데 귀여워서 혼낼 수도 없으니까 은근히 더 짜증 났다.
다영이가 교인이 되면 세뇌를 시켜서 말을 반의반만 하도록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어어억~!!!! 이거 오빠 차에요? 대박~! 이거 그거잖아요! 그거! 람보루기니! 황소! 막 비싼 거! 헐! 오빠 수표 꺼낼 때부터 알아봤는데 진짜 짱 부자였구나…대박!! 완전 멋져요.”
“어-. 어, 그렇지 뭐…”
“저 사진 찍어도 돼요? 이거 연습생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요. 네? 오빠? 찍어도 돼요? 저 이런 차 본 적도 없는데 이걸 제가 진짜 탈 수 있는 거 맞죠? 꺄~! 저 완전 부자 된 거 같아요. 완전 설레요.”
“어…찍어도 돼.”
“대박대박. 진짜 감사합니다. 오빠 최고! 완전 멋져요. 원래도 멋진데 부자라니까 더 멋져요. 사진 좀 찍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찰칵. 찰칵.
사진을 찍게 해줘서 다행이었다. 다영이도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입을 닫았다.
“밖에서만 외관만 찍지 말고, 안에 타서 셀카 좀 찍어. 뚜껑도 열어 줄게.”
“허어어얼!! 진짜요?! 뚜껑이요?!”
“응. 진짜로.”
다영이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는 뚜껑 따위야 얼마든지 열어 줄 수 있었다.
나는 보조석의 문을 열어서 다영이를 에스코트해주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다영이는 번쩍거리는 버튼이 족히 수십 개는 달려있는 차량 내부에 극도로 흥분해서 감탄사를 줄줄 내뱉더니, 잠시 숨을 고르고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다영아. 뚜껑 열어줄까?”
“네. 오빠. 아, 잠시만요.”
“응? 왜?”
“그…같이 셀카 찍으실래요. 오빠? 오빠랑 찍으면 더 좋…더 멋있을 것 같아요.”
“그래. 찍자.”
“그…그…그…그럼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오빠는 핸드폰 보고 포즈만 취해주세요.”
“알겠어.”
다영이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더니, 손을 쭉 뻗어서 자동차 센터페시아 쪽에 핸드폰을 고정시키고 몸을 서서히 기울여서 나에게 붙기 시작했다.
‘향 좋네…’
카페 알바를 하고 와서 그런지, 다영이가 다가오자 기분 좋은 커피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좀 더 붙어, 다영아. 사진 너무 어색하게 나온다.”
“그…그럴까요.”
다영이는 잘 다가오다 말고 갑자기 몸을 멈춰서, 내게서 한참이나 떨어져서 셀카를 찍으려고 했다.
내가 더 다가오라고 신호를 준 뒤에야, 다영이는 커피 향을 품은 생머리가 내 팔뚝에 스칠 정도로 몸을 붙여왔다.
하늘하늘거리며 팔뚝을 간지럽히는 머리칼의 느낌이 좋았다.
“오…오빠 저 머리에서 커피 냄새 나죠? 죄송해요. 차에도 다 베면 어떡하죠?”
“괜찮아. 맡으니까 좋기만 한데 뭘.”
“맡…맡…맡으셨어요? 제 머리카락 냄새?”
“아니 그야, 이렇게 가까이 불어 있으니까…”
“아-. 아아……가까이, 붙어 있으니까…”
말을 마치고, 다영이의 몸이 순식간에 굳었다.
긴장해서 호흡마저 멈춰있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호들갑 떨던 애가 이러니까 나도 좀 어색하네…’
다영이의 페이스에 휘말려버린 나도 갑자기 어색해져 버렸다. 여태껏 상황을 주도 하던 다영이가 방송사고라도 난 것처럼 딱 멈춰버리니까, 나까지 긴장되고 심장이 쿵쿵 뛰어왔다.
“크흠. 사진…안 찍어?”
“아아아~~ 사진. 사진 찍어야죠. 찍을게요. 자, 하나~!”
“아니, 잠깐만. 다영아 우리 아직도 너무 어색하게 나오는 것 같아.”
“그…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지? 제…제가 조금 더 붙을까요? 그래도 될까요?”
“음. 내가 좀 더 붙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괜찮을까?”
“오. 오. 오. 오.”
다영이는 버그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차마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입에서는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반복됐다.
“…?”
“오. 오. 오…오빠가요? 안되는데요. 저 심장 터질 것 같은데요. 사망할지도 모르는데요.”
“…심장이 터져?”
“심. 심. 심. 심부전! 심부전증이 있거든요!! 심장이 막 팔짝팔짝 뛰어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쳐오면 막 쿵쿵쿵쿵. 쿵쿵쿵쿵!”
“지금은 미리 말하고 하는 거니까 괜찮은 거 아니야? 예상치 못한 상황이 아니라, 예상되는 상황이잖아.”
“그, 그러네요?”
스윽-.
나는 팔을 천천히 뻗어서 다영이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았다. 연인처럼 꽉 잡는 게 아니라, 시상식 포토존에서 기자들에게 어깨동무해달라고 부탁받은 연예인들처럼 살짝만.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나와 다영이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고, 정말 심부전이 있는 건지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심하게 쿵쿵거리는 다영이의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윽…”
“괜찮아? 심부전 온 거야?”
“하아…아…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사…사진 찍을게요. 오빠.”
“어, 그래.”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다영이는 쉬지 않고 셔터를 빠르게 눌렀다. 백 장 찍어서 한 장을 건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깨동무할 때부터 얘가 고장이 나버린 것 같았다.
‘다영이가 말이 너무 많을 때도, 이런 식으로 고장 내면 되겠는데?’
셀카를 찍으며 얻은 깨달음을 이었는데, 이 깨달음이 다영이한테 잘 먹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것마저 안 먹히면 정말 세뇌를 해서라도 말수를 줄여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하아…하아…후우우우…”
셀카를 다 찍은 다영이는, 전력질주라도 한 사람처럼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자기 자리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보물이라도 건진 사람처럼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와 함께 찍은 셀카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사진 잘 나왔어?”
“네, 네. 보여드릴까요? 아, 아니다!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제가 오빠 핸드폰으로 보내드릴게요!! 어때요? 너무 괜찮은 방법이죠?!”
“어, 그래.”
붙어있던 서로의 몸이 떨어지자마자 텐션이 쫙 오른 다영이의 말투에서, 내 번호를 받고 싶어하는 강력한 욕망이 느껴졌다.
나는 다영이에게 순순히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차를 출발시켰다.
‘기분 좋네, 이거.’
맨날 여자들 번호를 따기만 했는데, 번호를 따여보니까 기분이 상당히 상큼했다.
물론, 성격 급한 내가 먼저 따버려서, 번호를 따일 틈이 없었던 거지 따이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러나 저라나 번호를 따이니까 내가 진짜 괜찮은 수컷이 되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꽈아아앙-.
퇴근 시간이 자니 있어서 도로는 그리 막히지 않았다.
나는 운전을 열심히 했고, 다영이는 나와 찍은 사진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핸드폰을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빠,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메신저 프로필을 오빠랑 찍을 셀카로 바꿔도 될까요? 오빠 얼굴은 이모티콘으로 가릴게요!”
“그래. 상관없어. 그런데 그런 건 애인이랑 찍은 사진으로 하는 거 아닌가?”
“그렇죠. 애인…! 애인! 애인이랑 하는 건데! 저는 애인이 없으니까 아쉬운 마음에 오빠라도…아니!! 오빠가 아쉽다는 게 아니라…!! 오빠가 제 애인이 아닌 게 아쉽달까?!”
“…정말?”
“아, 아니요!!! 농담인데요!! 조크! 조크!”
“아쉽네.”
다영이는 타고난 만담꾼이었다. 말이 엄청 많은데 실수도 많았다.
심지어는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서 변명을 막 내뱉다가 더 큰 실수를 불러오는 스타일이었는데, 말 하나도 계산적으로 내뱉는 나와는 전혀 달랐다.
마음껏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것도 능력이었다. 나는 그런 능력을 지닌 다영이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여기야?”
“네. 오빠.”
다영이를 태우고 도착한 곳을 대학가 근처 원룸촌이었다. 동네가 좀 허름하긴 했지만, 다영이가 사는 건물은 신식 원룸이라 그런지 그나마 깔끔해 보였다.
“너무 초라하죠? 저 혼자 사는 원룸이라…좀 부끄럽네요.”
“깔끔하기만 한데 뭐. 신식 아니야?”
“네. 소속사 사장님 지인이 이 건물 주인이시라 운 좋게 계약했어요. 원래는 좀 비싼 덴데 월세도 깎아주시고. 히히.”
“그래. 다행이다.”
“네에…다행이죠.”
“…”
뚝-.
매끄럽게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가 갑자기 뚝 끊겼다. 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만이 흘렀다.
다영이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힐끔거리며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오…오빠. 있잖아요.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저 원래 이런 말 절대 안 하거든요. 해보는 것도 처음이고요.”
“뭔데 그래?”
“그게…그…그러니까…으으으…!! 아니다! 저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덜컥-.
다영이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보조석의 문을 열고 내려버렸다.
갑작스러운 다영이의 행동에 벙쪄있는데,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보조석의 문이 다시 열렸다.
다영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에 올라타서는, 기계처럼 뻣뻣하게 정면만 보고 입을 열었다.
“오빠…”
“응. 다영아.”
“저희 집에서 라면…먹고 가실래요?”
“아…”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다. 대한민국에서는 언젠가 ‘라면 먹고 갈래?’라는 대사가 가장 흔히 쓰이는 섹스 어필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이미 일상용어 비슷하게 쓰일 정도로 자리 잡아서, 특별히 대단한 대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들어보니까, 심장에 심부전을 오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대단히 강력한 섹스어필이었다.
어색한 공기. 어색한 말투. 어색한 몸짓.
그랬던 분위기가 단번에 라면 국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음. 그래. 같이 올라갈까?”
“…네에. 오빠.”
“잠깐만 주차 좀 할게.”
애써 차분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 심장은 이미 터지기 직전이었다.
바지 안에 잠들어 있던 꼬추가, 괴물 자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원룸 주차장에다가 람보를 대충 주차시켰다. 다른 차주들이야 난감하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터억-.
나는 차를 주차하고 재빨리 내려서 보조석의 문을 열어준 뒤 다영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조심히 내려, 다영아.”
“하으…네에. 오빠. 고마워요.”
마주 잡은 다영이의 손은 뜨거웠다.
원래 체온이 굉장히 높은 것 같았는데, 손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까지 뜨겁지 않을까 싶었다.
10년 동안 라면만 먹은 거 치고는 너무 말라서, 일자로 쭉 뻗어있는 쇄골부터.
몇 센티인지 궁금할 정도로 얇은 개미허리와 치마 아래로 보이는 체격에 비해 무척이나 긴 다리, 무엇보다 조금 있으면 내 자지를 품어줄 다영이의 그곳까지.
다영이의 손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마주 잡고 있는 이 손보다 더 뜨겁겠지.
“저어…오빠.”
“…응?”
“그렇게 보시면…저 너무…못 참을 것 같아서…몸이…뜨거워요…”
“…”
몸만 뜨거운 게 아니었다. 살짝씩 느껴지는 다영이 달큰한 숨결까지 무척이나 뜨거웠다.
“올라가자. 다영아.”
“네. 오빠…”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원룸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다영이의 집으로 들어간다면, 당장 격정적인 키스를 박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누가 더 흥분했나 우열을 가리는 대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화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띡-. 띡-. 띡-.
다영이가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그 순간마저 아까웠다.
빨리, 빨리, 더 빨리. 저 문이 열리고 이 열기가 그대로 우리를 녹여버릴 수 있기를.
끼이이익-.
“악!!!! 오빠!!! 잠시만요!!!”
“…?”
“들어오지 마세요!! 거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다…다영아?”
끼이익-. 쾅!!!
당장에라도 나에게 매달려 올 것 같던 다영이가 문을 살짝 열더니 갑자기 경악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나를 남겨두고 냉큼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든 흥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내 자지도 푹 죽어버렸다.
‘집이 아주 더럽나…?’
처음 가보는 여자 집에 대한 환상이 내 안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