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8화
트리니티 라운지 내부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봤던 모든 장소 중에서 가장 럭셔리 했다. 럭셔리로만 따지자면 5성급 호텔도 세한은행 본사도 상대가 되질 않았다.
벽면에 걸려있는 장식품들과 그림, 의자와 테이블은 물론, 쇼핑하면서 배고프면 먹으라고 준비된 간단한 간식들조차 고급졌다.
대단히 강력한 사치의 향기가 풀풀 풍기고 있어서, 내부에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이건 좀 배워야겠지?’
나는 정신을 꽉 붙잡고 내부를 구경했다. 신기해서가 아니라 배우고 싶어서였다.
엄청난 사치의 감각이 돋보이는 실내였다. 교단을 세울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다.
“손님. 자리로 모셔 드려도 될까요?”
“네.”
중년 남성이 떠나가고, 여직원 한 명이 내게 전담으로 붙었다.
여직원이 안내해준 테이블에 앉아서 건네준 차를 마시면서 잠시 기다리니, 여직원이 다시 찾아와서 쇼핑 준비가 끝났으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여직원을 따라서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독립된 쇼핑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으니, 앞에 서 있던 퍼스널 쇼퍼가 내 취향을 자세히 묻고는 옷을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인터넷 쇼핑을 빨았던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아예 고민할 필요가 없네? 움직일 필요도 없고.’
아무리 인터넷 쇼핑이 편하다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내가 인터넷을 뒤져가며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야 했고, 사이즈를 골라야 했으며,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집 주소를 쳐서 주문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오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말만 하면 마음에 드는 옷을 갖다 주고, 원하면 모델이 들어와서 직접 피팅도 해주었다.
무엇보다, 퍼스널 쇼퍼의 존재가 컸다. 심플하고 깔끔한 옷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어떻게 그렇게 잘 저격하는지, 골라오는 옷마다 마음에 들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상태로 옷만 2억이 넘게 질러버렸다.
어차피 옛날 입던 스파 브랜드의 옷들은 다 버릴 생각이었으니, 이참에 새집에 있는 옷장을 명품으로 꽉꽉 채운다고 생각하고 쇼퍼가 골라주면 골라주는 대로 구매해버렸다.
내 시원시원한 소비에 감격한 쇼퍼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쥐어짰으며, 직원들은 내가 주문한 옷들을 갖고 오느라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나 혼자만 소파에 앉아서 여유롭게 쇼핑을 하는 셈이었는데, 미안하면서도 재밌었다. 왕이 된 기분이었다.
‘캬. 쇼핑할 맛 나네.’
한 시간도 안 돼서 2억을 지른 뒤, 트리니티 라운지를 벗어났다.
몇 개는 내가 입고, 남은 몇백 개의 옷은 전부 집으로 보냈다. 알아서 배달까지 척척 해주니까 확실히 편했다. 내 양손에는 그 흔한 쇼핑백 하나 들려있지 않았다.
‘앞으로는 무조건 백화점. 그것도 퍼스널 쇼핑만 해야겠다.’
처음 겪는 퍼스널 쇼핑의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투명한 벽면에 비추는 내 모습을 쳐다봤다.
사실 로우렉스 빼고는 밋밋한 느낌을 주던 내 착장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옷이 날개는 날갠데, 존나 고급진 날개였다. 무늬나 디자인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사치의 향기가 풀풀 나는 원단과 색감이 모든 걸 압도했다.
차분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졌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만했다.
시계 빼고, 지금 입고 있는 것만 다 합쳐도 3천만 원이었다.
겨우 옷 쪼가리에 웬만한 차 한 대 값을 박아 넣었으니, 설령 노숙자라도 이 대로만 입으면 곧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고위급 귀족 같은 느낌을 풍기는 게 가능했다.
슬쩍. 슬쩍. 지이잉.
안 그래도 강화를 조져서 외모 컨디션이 상타치였다. 그런데 옷까지 차려입으니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여자들은 어쩌다 눈만 마주쳐도 볼을 붉혔다. 아마 보지도 젖어있을 것 같았다.
존잘남만 가능하다는 ‘시선 애무’였다.
‘자존감 존나 상승하네. 미친. 이런 게 존잘남의 삶인가?’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 공간은 분명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내오는 선망과 흥분의 시선에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잘났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하. 좋으면서도 좆같네.’
분명 존잘남 대열에 합류했지만, 나는 순정 존잘남은 아니었다.
원래 나의 본판은 저기 나락 끝에 있었다. 몇백억을 박고 돈자갓의 도움을 받아서 꾸역꾸역 절벽을 기어 올라왔더니 바로 여기였다. 윗공기는 확실히 맑았다.
하지만 굳이 나처럼 고생하지 않고도, 이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던 순정 존잘남들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이제야 이런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그네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왔겠지.
‘다시 생각해도 좆같네. 존잘남은 우리 교단에 못 들어오게 해야겠다.’
나는 교단 운영 지침 제1호를 속으로 정해놓고 아까 갔던 카페에 들렀다. VVIP 전용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굳이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도 다 카페에 들리기 위해서였다.
“어?! 손님!!”
나를 보더니, 매장 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던 토끼닮은 상큼한 알바생의 얼굴에 꽃이 활짝 피어났다.
‘상큼해서 좋네. 네가 바로 6번째 교인이다. 토끼야.’
아까 보안팀과 플로어 매니저가 들이닥쳤을 때, 당당하게 나서서 나를 옹호해주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당연한 일을 나서서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설령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알고 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나서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고,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서면 어떤 식으로든 귀찮아졌으니까. 아까 나만 해도 진상 손님을 참교육시켰을 뿐이었지만, 진술이다 뭐다 상당히 귀찮았다.
그러니 나는, 나를 위해 범상한 용기를 내어준 저 알바생를 영광스러운 여섯 번째 교인으로 맞이할 생각이었다.
‘역시…재능도 훌륭하군.’
혹시 몰라 교주의 심안을 키고 알바생을 바라봤는데, 알바생의 몸에서는 신성한 빛이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교인으로서 아주 적합하다는 소리였다.
나는 부드럽게 풀린 목소리로 알바생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주문 했던 거 받으러 왔는데, 너무 늦었나요?”
“아아-. 아니요! 해드릴게요. 히히. 잠시만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빵긋빵긋 웃던 알바생이 매대 안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 퇴근하시는 거 아니에요?”
“네? 네. 퇴근 시간이긴 한데…그래도 괜찮아요. 아까 고맙단 말도 못 드려서 너무 죄송했어요. 평일 저녁에는 알바가 저 혼자밖에 없어서 카페를 못 비우거든요. 정말 죄송해요. 혹시 다음에도 오시면 음료수 백 잔도 만들어 드릴게요. 흐흫.”
“…네. 고맙네요. 오늘은 한 잔만 주세요.”
새 교인을 받는다는 기대감 때문에 달아올랐던 기분이 가라앉고, 살짝 머리가 아파져 왔다.
‘어우…’
알바생은 상큼은 상큼인데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상큼했다. 굉장히 수다스러웠다. 한 마디를 받으면 열 마디를 해주는 스타일이었다.
토끼같은 외모와 잘 어울려서 보기 싫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젊은 여인의 짐승처럼 활발한 에너지가, 잠잠한 나의 텐션까지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 기분이랄까.
“옷 쇼핑하고 오신 거에요? 와. 진짜 잘 어울린다. 패션 감각 엄청 좋으시네요. 부러워요, 음…손님? 고객님?”
“김민준이에요. 제 이름.”
“아~~ 민준 씨구나. 아, 제 이름은 서다영이에요. 나이는 스무 살인데…민준 씨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혹시 저보다 많으시면, 편하게 오빠-. 라고 불러도 될까요? 존댓말을 쓰면 뭔가 손님하고 대화하는 것 같아서 딱딱한 느낌이에요.”
다영이는 나와 무척이나 친해지고 싶은 것 같았다. 태도부터 말투까지 굉장히 하이텐션이었는데, 그 높은 텐션이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살짝 버거웠지만, 앞으로 여러 교인을 만나게 될 텐데 벌써 지치면 안 되겠다는, 자애로운 교주 마인드로 버텨냈다.
“그래. 그러자. 다영아.”
“앗. 고마워요. 오빠.”
오빠고 자시고 사실 다영이와 나는 동갑이었지만, 동갑이라고 하면 다영이가 더 미쳐 날뛸까 봐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친구 먹으면 작업 걸기 어려웠다.
다영이와 친구나 되려고 시간을 쪼개서 카페에 온 게 아니었다.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 한잔이요. 민준 오…오빠. 히히…부끄럽다.”
“잘 마실게, 다영아.”
다영이가 양손으로 공손하게 음료를 내밀면서 말했다. 손을 뻗어서 다영이가 주는 음료를 받아들고는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쪼로로록-.
“어때요? 맛있죠? 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었어요. 다른 손님들 것보다 더 맛있게 만들었어요.”
“응, 맛있네. 근데 왜 특별히 신경 쓴 건데?”
“그야 민준 오빠 줄…”
의표를 찌르는 질문에, 토크 머신 서다영의 모든 동작이 한순간 정지되어 버렸다. 어렸을 적에 했던 얼음 땡 놀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얼음………땡-.
“고…고…고…고마워서요. 오빠한테는 완전 고마워요. 아까 그 아저씨 완전 무서웠거든요. 저 솔직히 울뻔했어요.”
“그래도 안 울더라? 씩씩하던데?”
“아…”
푸욱.
칭찬을 들은 게 부끄러운지 다영이의 고개가 푹 숙였다. 텐션 높은 애가 저러니까 더 사랑스러웠다.
‘음…이미 호감은 충분하고, 다영이 복종도도 높힐 겸 스킬 효과 좀 실험해 볼까?’
교주의 스킬은 대부분 교인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선지자의 목소리’ 스킬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
* [스킬 : 선지자의 목소리]
설명 : 목소리에 힘이 실립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말에 쉽게 현혹됩니다. 신체 강화 수치에 비례하여 스킬 성능이 강력해집니다.
——
‘특별한 설명도 없으니 기존 스킬처럼 발동하면 되겠지?’
나는 속으로 선지자의 목소리의 사용을 유념하며,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쉽게 현혹된다는데, 얼마나 어떻게 현혹될런지 궁금했다.
“다영아, 너 엄청 잘해줬어.”
“…네?”
“백화점 사람들 몰려왔을 때, 네가 나서서 나 옹호해 줬잖아. 무서웠을 텐데. 나는 오히려 너한테 고마워.”
“아아…”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해주니까, 나를 바라보던 다영이의 눈빛이 약이라도 한 것처럼 점점 멍해져 갔다.
속으로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지 초점이 흐릿해지고 홍조가 심해져 갔다. 호흡이 불안정해졌고, 자꾸만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
“다영아, 괜찮아?”
“…네? 네. 네네네네. 괜찮아요. 저 괜찮아요. 아…아…아…아무런 생각도 안 했어요. 오빠!”
“그래? 볼이 빨간데? 감기 걸렸나…?”
스윽.
나는 걱정이 된다는 듯 손을 뻗어서 다영이의 이마에다가 갖다 대었다.
비록 교주 스킬은 아니었지만, 남자들이 자주 써먹는 작업 스킬이었다.
“하으…하악…”
“안 되겠다. 너무 뜨거워. 호흡도 거칠고. 병원 갈까?”
“아니요!!! 진짜로 괜찮아요! 이거 그냥…힘들어서 그래요. 제가 카페 알바 말고도 다른 일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몸이 좀 피곤해서 그래요,. 병원 안 가봐도 돼요. 진짜예요, 오빠!!”
다영이는 격렬하게 병원행을 거부했다. 병원에 가면 죽는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음…다영아, 그럼 오빠가 데려다줄게.”
“아니, 아니. 저 정말로 완전 괜찮다니까요? 오빠랑 더……아니 이게 아니라…! 어쨌든 병원에 안 가도 괜찮아요! 믿어주세요, 오빠. 네?”
“아니, 병원 말고, 집에 데려다줄게.”
“…네?”
“퇴근 시간이잖아. 몸도 피곤하다며. 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
“아으……”
집에 데려다준다는 소리에 다영이는 초점이 다시 흐릿해졌다.
참고로 나는 아직도 선지자의 목소리 스킬 사용을 멈추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사실 끄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섹스카우터도 그렇고 섹륜안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스킬은 온/오프 형식이었다.
켜두면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적용된다는 말인데, 섹스카우터나 섹륜안의 경우 시야에 보이는 거라 키고 끄는 걸 까먹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선지자의 목소리는 목소리다 보니까, 이게 적용되어 있는 건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애매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나쁜 쪽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다영이를 쳐다봤다. 다영이는 완벽히 ‘현혹’된 상태였다. 나에게 홀려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아아…아학…”
“다영아,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파? 집 말고 병원 갈까?”
“아…아아…!! 아니요!! 병원 말고 집에 가요! 집으로 가고 싶어요! 라면도 먹고!”
“…라면?”
“라…라…라면이 저녁이거든요. 제…제가 좀 가난해서. 저녁은 항상 라면만 먹었어요. 한 10년 정도는…!!”
“아~~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