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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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에이스 오피녀, 김미현. 그녀의 비결은 별 게 없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거. 그게 미현의 영업 기밀이었다.
단순히 몸만 섞을 때도 돈은 많이 벌었다. 하지만 후유증이 심했다.
자신이 정말로, 뼛속까지 성욕처리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여자가 된 것 같아서 우울했다.
그러나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서 미현은 진창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그럴듯한 변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손님의 얘기를 듣고, 이해한다. 동정하거나 같이 기뻐하고 슬퍼한다. 그리고 몸을 섞는다.
그런 과정을 거친 섹스는 단순히 성욕 해소만을 위한 발버둥이 아니었다.
몸으로 하는 수다였고, 위로였고, 상담이었다. 또한, 마약이자 독한 진통제였다.
한두 번 오는 손님들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미현에게는 확실히 마약이고 진통제였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부여해봤자 불법적인 일, 비윤리적인 일이었다. 몸을 파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해야 했다.
그러니까 진통제가 없이는 버틸 수 없었다.
손님들을 이해한다며 스스로를 속이고, 손님들을 동정하는 척 자신을 동정했다.
그러다 보니 견딜 수 있었다. 어디 가서 풀어놓지도 털어놓지도 못하는 신세를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진통제를 맞을수록 내성이 생겨서 약발이 떨어져 갔지만, 동시에 마음도 점점 죽어가서 괜찮았다.
몸을 판다는 게 예전만큼 더럽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김미현이라는 사람이 워낙 더러워서, 더 이상 무언가를 더러워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요? 그냥 이혼하면 안 돼요?
-개뿔. 두 번 사랑하다가는 몸이 남아나질 않겠네요.
-맞아요. 누나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 해보려고 이러는 거. 그래서 더 못 참겠어요. 대체 왜 그렇게 살아요? 그럴 바에는 그냥 내 섹스 파트너나 하세요. 나한테 몸이나 바치라고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김민준이라는, 젊은 남자였다. 그리고 포장마차였다.
포장마차에서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던 그 남자가, 문득 화를 내주었다.
김미현을 대신해서 김미현의 인생을 더러워 해주었다. 더러워서 못 참겠다며 돈을 줄 테니까 차라리 자신에게 몸을 바치라고 명령했다.
미현은 그 순간, 죽은 마음을 자꾸 살려내는 남자가 너무나 미웠다. 돈 좀 있다고 사람의 인생을 마음대로 구원하려는 그 남자가 싫었다.
자신은 이미 진창 속에 있는 게 익숙했다. 그 밖으로 나가기엔 자신도 없고 염치도 없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인생이었다.
-몸 함부로 굴리는 창녀치고는 보지가 깨끗하네요.
-누나 더러운 걸레년 맞잖아요? 돈만 주면 아무한테나 보지 벌리는 걸레년이잖아요.
-남편 사랑한다는 사람이 이래도 돼요? 씹질 몇 번에 대체 언제까지 가버릴 건데요? 왜 이렇게 잘 느끼냐구요. 사실은 남편보다 제가 더 좋은 거죠?
그런데 그 남자가, 자신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그 남자가, 내뱉는 말들이 너무나 아팠다.
고작 말이었다. 매도하는 말을 좀 들었을 뿐인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다 망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망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조금씩,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민준만 생각하면 변해가는 자신이 너무 무서웠다.
“뭔데…그렇게 웃어?”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랜만에 같이 하는 남편과의 식사 자리였다. 미현은 민준과 문자를 나누던 핸드폰을 급히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미현은 자신을 뻔히 쳐다보는 남편의 시선을 의식해서, 올라갔던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새 올라가 있었는지는 미현 자신도 잘 몰랐다.
“…여보, 나 술 좀 갖다 줘.”
“네…알겠어요.”
미현은 식탁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향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던 남편이 밥을 먹을 때마다 술을 찾기 시작한 건, 자신이 오피에 다닌다고 고백했을 때부터였다.
그래서 미현은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술을 먹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끼리릭. 꼴꼴꼴꼴-.
미현은 잔과 함께 소주를 꺼내와서, 남편의 앞에 소주를 따랐다.
“자기는 안 마셔?”
“아…응. 조금 있다 어디 나가야 할지도 몰라서…”
“어디? 오늘 일 쉰다며.”
“그냥…아는 사람…”
“…남자?”
“응…돈 많이 준다고 해서…”
미현의 대답을 들은 남편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미현은 그런 남편을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따져보면 특별히 이제 와서 미안해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몸을 파는 건 오래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유독 남편에게 더욱 미안한 것인지, 미현은 알지 못했다. 아니, 남편을 위해서 알아도 모른 척을 해야만 했다.
띠리링-.
“잠깐…통화 좀 하고 올게.”
“…그래.”
미현은 화장실로 가서 민준과 통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미현은 표정관리를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남편으로서 미현의 표정을 너무나 잘 읽을 수 있었다.
재밌어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풋풋해 보였다. 가세가 기운 뒤에 쭉 죽어있던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아주 오래전, 자신에게 보여주던 김미현의 모습이었다.
남편은 식탁에 앉아, 그 빛나는 미현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여보, 나 잠깐 나갔다 올게요.”
“…알겠어.”
미현은 남편에게 허락을 맡고 방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하아…뭘 입지."
명품 하나 없는 수수한 옷장이었다.
옛날에는 비싼 옷도 꽤 있었지만, 돈 될만한 옷은 진즉 다 팔아버려서, 남은 거라곤 차마 팔 수도 없는 낡은 옷들과 야시시한 오피용 복장뿐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늘따라 자신의 옷장이 초라해 보였다.
미현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베이지 톤에 딱 달라붙는 미니 원피스에, 긴 가디건을 챙겨 입었다.
야한 원피스에다가 펑퍼짐한 가디건을 걸쳐 입는 게, 언제부턴가 미현에게 익숙한 옷차림이 되어 있었다.
“너무…과한가?”
미현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평소에는 잘 꾸미지 않았다. 어차피 남자들과 몸을 섞다 보면 지워지니까. 가벼운 화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은 입술도 빨간색으로 진하게 바르고, 눈썹도 그렸다. 왠지 한껏 꾸미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미현은 거울을 보다가, 이왕 꾸민 거 향수까지 칙칙 뿌리고 방을 나섰다.
‘아…물 주는 거 깜빡했네.’
미현은 거실을 지나쳐 걸어가다가, 다시 거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장식장으로 향했다.
장식장에는 거꾸로 걸려진 드라이 플라워들이 한가득 있었다.
‘말라도 너무 말랐다…버릴 때가 됐나?’
한때는 다 생화였다.
꽃을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남편은 퇴근할 때마다 꽃을 한 송이씩 들고왔었다.
잘 키우고 있던 그 꽃들을 장식장 속에 거꾸로 걸어서 말릴 수밖에 없었던 건, 오피에 나가면서 집에서 꽃을 관리할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스으윽-. 스으윽-.
미현은 장식장 바닥에 말라 비틀어져서 떨어져 버린 꽃잎을, 손바닥으로 쓸어모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분무기를 잡고 물을 주려다가 그만두었다.
‘…바보 같아.’
드라이 플라워에는 물을 줄 필요가 없었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틈만 나면 꽃에다가 물을 뿌려왔다.
벽에 거꾸로 매달려 메마르고 바스러진 꽃이, 어쩌면 다시 생화처럼 피어날까 봐.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모든 게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턱.
미현은 손에 쥐고 있던 분무기를 다시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옮겨 신발장으로 향했다.
“여보, 나가지 마.”
“…응?”
느닷없이 들려온 남편의 목소리에, 그녀는 신발을 신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남편의 표정은 유독 어두워 보였다. 미현은 일부러 더 가벼운 말투로 남편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왜 그래. 여보? 나 이거 엄청 중요한 약속이에요. 돈 많이 벌어올게. 우리 빚 빨리 갚아야지.”
“어떻게 많이 벌어올 건데…”
“…네?”
“돈 많은 새끼한테 몸 팔아서? 누군데? 젊어?”
“…”
미현은 멍한 눈으로 남편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힐을 고쳐 신었다.
‘취해서 그렇겠지…취해서…’
능력 없는 남편이었다. 자신이 없으면 빚에 눌려서 사회에서 도태됐을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좋아서, 미워 보이지는 않았다. 않았었다.
또각-.
미현은 힐을 신고 일어나서 남편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쉬고 있어요. 당신 취한 것 같아요.”
말을 마친 미현이 걸음을 옮겼다. 남편은 질투심에 불타는 눈으로 미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참을 수 없었는지, 나가려는 미현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아악!!”
“어디 가는지 말해!! 누구한테 가는데?!”
“이…이거 놔요. 아…아파!”
“어떤 새끼냐고!!! 어떤 새끼한테 빠져서 이러는데!! 당신 지금 엄청 이상한 거 알아?!”
“으윽…!”
손목이 부서질 것 같아서 미현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아파하는 미현의 얼굴을 보고, 남편은 깜짝 놀라 붙잡았던 미현의 손목을 놔주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어려워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가정이었다. 그랬는데 방금 자신이 불화의 꽃을 피워버렸다.
오피에 다니면서부터 미현은, 폭력적인 남자가 제일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미…미안 여보. 내가 정신이 잠깐 나갔었나 봐…”
“됐어요. 근데, 나는…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어…”
끼익-.
미현은 집에서 나서서 택시를 타고 민준의 집으로 향했다.
‘아…울면 안 되는데…’
기껏 해놓은 화장이 지워지면 안 되니까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미현은 욱씬 거리는 팔목을 이리저리 주무르면서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왜 화장이 지워지면 안 되는지, 유부녀가 남편 말고 누구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건지. 또, 민준의 집에 가면서 속으로는 어떤 걸 기대하고 있는지, 왜 그 남자만 생각하면 그곳이 젖어드는지.
그녀는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도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와아~ 얘는 진짜…돈이 얼마나 많은 거지?”
미현은 택시에서 내려 민준의 집으로 들어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드라마, 영화에서도 이런 집은 본 적이 없었다.
집이 아니라 예술 작품 같았다.
이런 집은 얼마나 할까 하는 속물적인 생각과 이런 집에 사는 능력 있는 젊은 남자가 자신을 원한다는 발칙한 생각에 우울했던 기분이 잠시 붕 떠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처박혔다.
‘민준이한테는…어디까지나 장난일 테니까…’
사실 장난까지는 아닐 수도 있었다. 민준이 자신을 아낀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라면 겨우 하룻밤 상대해줬다고 1억이라는 큰돈을 줄 리는 없었다. 아무리 돈이 썩어 넘친다고 해도 말이다.
미현은 호텔에서도 가장 비싼 방에서 민준과 보냈던 그 밤을, 삶의 모든 고통을 잊고 오직 여자로서 행복하기만 했던 그 밤을, 집에 와서 몇 번이고 다시 떠올렸다.
단 하룻밤 만에 자신을 죽이고 살렸던 그 남자의 말을 몇 번이고 다시 곱씹어봤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민준의 마음이 장난이 아닐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지는 않았다. 사랑이 아니었다.
‘하…진짜 역겹다. 역겨워 김미현. 민준이같이 잘난 애가 나 같은 걸 사랑한다고? 나 같은 창녀를? 어떻게 그런 걸 바랄 수 있는데?’
사랑은 미로 같아서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앞뒤를 모르고 헤매고 있다는 그 느낌만은 분명했다. 자신은 명백히 민준에게 빠져서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민준은 아니었다. 자신을 좋아하고, 아껴주고, 괴롭히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배려해주었지만, 김미현이라는 미로에 빠져서 헤매고 있지는 않았다.
슬펐다. 하지만 그게 옳았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헤픈 여자였다.
그러니,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남자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바랄 걸 바래야지. 욕심쟁이…’
미현은 민준만 생각하면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이상야릇한 기운을 억지로 눌러 내렸다. 안 그러면 자기 주제도 모르고 덜컥 민준에게 매달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이미 많은 걸 주고 있는 사람에게 그 안에 있는 마음까지 달라고 떼를 쓸 것 같았다.
아무리 삶이 힘들다고 해도, 그래도 인간이라면 염치가 있어야 했다. 어린애한테 그만큼 추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후우…”
더 이상은 휘말릴 수 없었다. 그러면 정말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민준이 자신을 쥐고 흔들어도 절대 말려들지 않겠다고, 미현은 단단히 각오한 채 민준의 집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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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쇼파에 누워있던 민준은, 자신에게 다가온 미현에게 메이드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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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나를 보면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겨우 메이드복 좀 본 것 치고는 무척이나 과하게 혼란스러워했다.
흔들리는 눈동자 하며 파르르 떨리고 있는 입꼬리가, 마치 세상이 멸망하기 하루 전에 사과나무를 심을지 배나무를 심을지 고민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민준아…누나 진짜 이런 말 잘 안 쓰는데…”
“네. 뭔데요.”
“누나는 지금 네가 또라인지 아닌지 헷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