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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57화 (57/270)

〈 57화 〉 57화

은행에서 전화가 올 이유는 뻔했다. 어제 섹스만 열 번을 했다. 그리고 그중 다섯 번은 차시은을 이용한 섹스 노가다였다.

하루 만에 못해도 백억 정도는 계좌에 박혔을 테니, 은행에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행에 협조적으로 행동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일단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상황이 더 악화돼서 탈세나 소득 증명 때문에 국세청에서 수사를 받더라도 강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내 돈은 저 위에서 내려왔다.

인간계에서는 닿을 수 없는 신성하고 아득한 곳이었다.

‘그것도 그냥 위가 아니거든. 내가 모시는 신이 돈과 여자의 신이에요. 돈과 여자.’

돈의 신이 이런 일에 미스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유능한 신이었다. 하물며 ‘돈’이라면 돈자갓의 주특기 분야였다.

여기서는 나의 신을 믿고 강하게 지르는 게 맞았다.

“네. 무슨 일이 신데요? 그리고 세한 은행 어디 부서의 누구시죠? 이름하고 소속부터 밝히는 게 기본 아닌가요?”

무례하지 않되 충분히 압박감을 줄 수 있는 말투로 몰아붙였다. 목소리는 절대 떨리지 않게끔 신경 썼다.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는 PB 파트 VVIP 전담 뱅커 이유나라고 합니다.

PB 파트가 뭔지는 몰랐다.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내 자산 수준에 걸맞아야 했다. 백억이 걸린 연극이었으니 결코 대충할 수는 없었다.

‘PB가 뭔진 모르겠지만, VVIP라. 오히려 좋은 느낌인데?’

VVIP 어쩌구 하는 걸 보니 우선 돈이 많아져서 전화가 온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태도를 보니 그저 돈의 출처를 캐물으려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말을 받았다. 확실히 알아보려면 대화를 더 진행시켜야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용건만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시간 되실 때 근처에 있는 세한 은행 VVIP 전용 영업점이나, 제가 근무하고 있는 세한 은행 본사 PB 부서에 들러주시겠습니까? 고객님의 자산 운용에 관해서 얘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아. 자산 운용이요? 네, 뭐. 그러죠. 오늘 오전 중에 가겠습니다.”

강하게 나간다고 마음을 먹고도 두근거렸던 심장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돈의 출처를 물으려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긴…출처가 명확하게 처리 되어 있으면 물을 필요도 없겠지. 괜히 쫄았네.’

돈자갓을 믿긴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돈이 생겨서 나에게 내려오는 건지 전혀 몰랐으니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놔도, 불법 재산으로 압류당하면 바로 땅거지였으니까. 걸리기 전에 비자금을 만들어놓을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오히려 은행에서 내 돈의 출처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면 의심을 하더라도 돈이 너무 많으니까, 일단 VVIP로 모시고 보던가.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 혹시 어느 곳으로 몇 시 쯤 가실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약을 해놓으시면 한결 편안하게 상담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세한 은행 본사가…숭례문 바로 옆에 있죠? 그쪽으로 두 시까지 가겠습니다.”

-네.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두 시에 방문 예약 잡아 놓겠습니다.

“네. 그때 뵙죠.

뚝-.

나는 전화를 끊고 연주를 깨웠다.

어젯밤 기절할 정도로 섹스를 격하게 했던 연주는 무척이나 일어나기 힘들어했지만, 일어나면 뽀뽀해주겠다고 하니까 곧장 일어났다. 연주의 볼에다가 뽀뽀를 해주고는 연주와 함께 씻었다.

체크 아웃을 마친 우리는 호텔 지하에 있는 한식당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고 나와서 주차장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연주 씨. 집에 데려다줄게요. 주소 찍어요.”

“감…감사해요. 민준 씨.”

나는 연주를 태우고 평창동으로 향했다. 연주의 집이 부촌으로 유명한 평창동에 있다는 건 별로 놀랍지 않았다.

씀씀이부터 옷차림까지 심상치 않은 연주가 금수저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훨씬 잘 벌지 않을까? 마음 잡고 노가다 뛰면 하루에 백억도 땡길 수 있는데.’

얼마 전까지는 금수저라는 게 부러웠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가진 게 많아지니 생각이나 태도가 자연스레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원래도 큰 욕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 연주 씨. 저 집 맞아요?”

“네. 맞아요.”

“앞에 누가 서 계시는데요?”

“…네?”

연주의 집은 으리으리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평창동 대저택의 느낌 그대로였다.

무척 높은 담장에 전용 차고도 보였고, 대문 또한 크고 고풍스러웠다. 누가 봐도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내 눈을 잡아끈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런 집이야 하루만 고생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설마…연주 씨 새어머니 세요?”

“…네에. 맞…맞아요. 엄마예요…”

“저렇게 젊은데…?”

“아…아직 마흔도 안되셨어요.”

마흔도 안됐다는 연주의 말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넓고 높은 정문 앞에, 얇은 슬립에 회색 가디건을 걸친 채 서 있는 사람.

연주의 새엄마는 엄청나게 젊었다. 그리고 우아했다.

말 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단지 약간 차가운 무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고고하게 서 있었을 뿐인데, 그 혼자만의 존재감으로 주변 풍경을 고급지게 만들고 있었다.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것 같은데, 저 사람에게는 그게 당연해 보였다.

마른 체형에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손을 길고 가늘었다.

눈동자는 짙은 검은색. 앞머리 없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는 무척이나 찰랑거렸다. 소담한 입술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것 같은데, 쥐를 잡아먹은 것처럼 붉었다.

불끈-.

‘아…이런…’

과연 자지로 깔아뭉개주면, 저 고고한 장모님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하니까 심장이 조여올 정도로 흥분됐다.

처음에는 미간을 찌푸리겠지.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내 뺨을 때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깔아뭉갠다. 그녀가 좆맛에 길들여질 때까지.

거칠게 반항하던 그녀가, 노예처럼 무릎 꿇고 내 자지에 공손하게 입 맞출 때까지.

‘큰일이네. 진짜 못 참겠는데?’

연주가 해바라기라면 그녀는 장미였다. 차가운 파란 장미.

서로 명백히 달랐지만, 두 꽃 모두 내 취향에 딱 맞았다.

이미 해바라기를 들고 있었지만, 파란 장미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끼이익-.

나는 연주의 집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대문 앞에서 차를 유심히 보던 젊은 장모님의 시선이, 운전석에 있는 나를 향해 박히는 게 느껴졌다.

“연주 씨. 잠시만 기다려요.”

“네…? 아으…민…민준 씨!”

덜컥-.

연주가 날 불러 세웠지만, 무시하고 내려섰다.

그리고 보조석으로 걸어가면서 젊은 장모님과 잠깐동안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는 의문과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무심하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그대로 걸어갔다.

‘저렇게 차분해 보여도…장모님은 질투와 애정 결핍의 화신이란 말이지.’

세상 도도하고 고고한 척은 자기가 다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 모습이 엄청나게 잘 어울렸지만, 속을 까보면 그녀는 그저 욕망을 주체 못 하는 망나니일 뿐이었다.

그녀는 새엄마가 되어서 고작 남편의 사랑을 뺏어간다는 이유로, 연주를 미친 듯이 질투했고 음해했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면 참을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장모님과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머리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질투에 눈이 멀게 해줘야겠어.’

나는 장모님의 앞에서 연주의 완벽한 남자친구를 연기할 생각이었다.

지금도 완벽했지만, 달콤함과 매너를 더 추가해서 장모님의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계획이었다.

아빠의 사랑도 모자라서 잘난 남자 친구의 사랑까지 듬뿍 받고 있는 연주를 보고 그녀의 질투가 폭발할 때, 그때 비로소 장모님과 나와의 연결고리가 이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장모님이 먼저 다가올 수도 있겠군.’

단지 연주를 괴롭히기 위해서, 정혜를 완전히 갖고 노는 치밀한 설계력과 과감한 추진력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나와 함께하면서 둘도 없이 행복해하는 연주를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 일을 벌일 게 분명했다.

그때를 노려서 치고 들어가면 이번 사냥도 수월할 것 같았다.

덜컥-.

나는 보조석의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는 연주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었다.

“제 손잡고 조심히 내려요. 연주 씨.”

“아…아으…감…감사해요. 민준 씨.”

평소보다 스윗함이 더 강해졌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손만 잡아줬는데 연주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나는 연주가 내리는 걸 도와주고, 차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앞을 돌아보니, 장모님의 눈썹이 아까보다 5도 정도 기울어 있는 게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장모님의 심사가 뒤틀리고 있었다.

“…연주 남자 친구?”

“아, 네. 맞습니다.”

나를 힐끗 바라보며 말을 걸어오는 그녀는, 목소리마저 우아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심사가 뒤틀려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우아한 목소리 사이에 미세하게 섞인 불쾌한 감정의 불순물들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 데려다준 건 고마워요. 하지만 벌써부터 외박을 하는 건…용납하기 힘드네요. 두 사람 어제 어디에 있었죠?”

그녀는 엄격한 선생님처럼 물어왔다. 연주는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고 벌써부터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면서, 등 뒤에 연주를 살짝 숨기고 차분하게 말했다.

“먼저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저 연주 남자 친구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그래요…연주 엄마 한설영이라고 해요. 민준 군, 연주랑 어제 어디에 있었는지 말해줄래요?”

“어제 연주랑 저랑 내내 데이트했습니다. 무슨 일 없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데이트만 하는데 외박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 같은데…벌써 잠자리를 갖는 건 아니겠죠?”

꿈틀꿈틀.

설영이 말을 할 때면, 가느다랗게 쭉 뻗어 있는 눈썹이 반월을 그리며 꿈틀거렸다.

그녀는 무척이나 화가 난 것 같았다.

‘뭐, 그렇겠지. 자기는 남편한테 사랑도 못 받고 보지에 거미줄이나 치고 있는 동안, 연주는 신나게 즐겼으니까.’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내 눈에는 워낙 잘 보였다.

그녀는 전형적인 욕구 불만이었다. 가엾고도, 가지고 싶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니까 점점 더 탐이 났다.

유부녀 딱지를 달고 뒷방으로 들어가기에는, 그녀는 아직도 너무 어여뻤다.

“죄송합니다만…연주 씨도 저도 성인인데 그런 부분까지 어머니께서 간섭하시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 성인? 맞긴 맞지. 근데 연주 이제 21살이에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만나는 건 좋지만 절제할 줄도 알아야죠. 그러다 덜컥 애라도 생기면 민준 군이 책임질 건가요?”

“죄송하지만 어머님…요즘은 중학생들도 알 거 다 압니다. 저도 이제 갓 스무 살이지만 알아야 할 것들은 알고 있고, 단순히 호감이 아니라 연주 씨와는 진지한 감정을 가지고 교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제가 전적으로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이 있나 보죠? 아이를 책임진다는 말을 그렇게 덜컥 내뱉을 정도로?”

“이 차, 제 돈으로 산 겁니다. 차 말고 가지고 있는 자산도 꽤 되고요.”

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이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것도 진심이었고, 자산이 꽤 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통장에 백억 넘게 찍혀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게 쳐줘도 만 명 이하였다. 설령 만 명 이상이라도 상관은 없었다.

오백억도 천억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하루면 백억을 벌 수 있는 섹스 노가다남이었다.

금수저고 대기업이고 꿀릴 게 하나도 없었다.

젊은 놈의 스웩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하셨는지, 설영의 얇고 가는 입술 끝이 조금 비틀렸다.

“그러니까 어리다는 거예요. 우리 집이 돈이 부족해서 아이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여요? 괜히 사고 쳐서 연주 인생, 연주 앞길 막지 말라는 소리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듣지?”

“어머니. 연주 씨랑 저는 사랑해서 사귀는 겁니다. 사고 치려는 게 아니라. 그리고 연주 씨 앞길을 막고 있는 건 제가 아니라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 같은데요.”

꿈틀꿈틀.

설영의 얇고 가느다란 눈썹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하…어이없어. 계속 말해봐요.”

“저는 연주 씨와 같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리고 연주 씨도….”

나는 말을 하다말고 내 뒤에 숨어있는 연주의 허리를 붙잡아서 강하게 끌어안았다.

“흐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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