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40화
꽈아아아아앙-.
나는 차를 몰아서 강남 경찰서를 향해 달렸다.
뽀르쉐도 깡패였지만 지금은 거의 우주 병기 수준이었다. 내가 지나가면 주변 차량이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고, 덕분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나는 뚜껑을 열어 놓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천천히 강남 경찰서로 들어갔다. 플렉스 포인트가 쌓여오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어제 잠깐 확인했을 때 9억 점이 넘게 찍혀있었으니까, 경찰서에 들렀다가 나와서 집까지 드라이브만 살짝 하면, 마지막 튜토리얼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기대되네. 얼굴만 보고 빨리 집에 가야지. 어차피 합의는 안 해줄 거니까.`
나는 전화를 해서 유인영 변호사에게 도착 사실을 알렸다.
잠시 기다리니 경찰서 안에서 오피스룩을 차려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묶은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평소 안경을 좆경이라 부르며 극혐하던 나조차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안경을 다시 생각해보게 될 만큼, 그녀는 안경과 잘 어울렸다.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유인영 변호사라는 걸 확신했다.
길고도 짙은 눈썹에, 남긴 없이 단추를 잠근 오피스 정장만큼이나 단아한 이목구비, 그리고 현기가 엿보이는 깊은 눈동자까지.
그녀의 지적인 목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은 화가가 인물화를 그려낸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와 딱 어울리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타악-.
나는 차에서 내려서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미녀와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기에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유인영 변호사님?”
“…김민준 의뢰인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변호사 유인영입니다.”
그녀는 인사는 무척이나 사무적이었다. 호감도 불호도 느껴지지 않는, 딱 비즈니스만을 위한 목소리였다.
백미터 뒤에서 봐도 눈에 띄는 람보를 타고 왔음에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는 도도한 그녀가, 나는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원래 도도할수록 부러트려 보고 싶은 법이었다.
“안내해 주시겠어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얼굴 한번 보고 싶네요.”
“네, 이쪽으로.”
나는 그녀를 따라 경찰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경찰서와 다를 게 없었다. 하도 많이 화면에서 보다 보니 실제로는 처음 와보는 것이었지만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따라 걷다 보니, 네모 반듯한 회색 버티칼로 구분되어서, 책상마다 똑같은 컴퓨터가 한 대씩 달려있는 전형적인 공무원 사무실에 도착했다.
딱 봐도 형사로 보이는 기세 좋은 아저씨들이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몇몇은 조사를 받는 건지 그 형사들 앞에 앉아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딱딱한 대화 소리와 분명 사무실 구석에 가습기를 틀어 놨는데도 어딘가 삭막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혀왔다.
그나마 이렇게 와서 다행이지 용의자로 잡혀 왔다면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손발이 벌벌 떨릴 것 같았다.
'응?'
삭막한 사무실의 가장 구석 자리에는 경찰서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복을 차려입은 세 명의 여학생 나란히 앉아서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짧게 줄인 똥꼬 치마와 딱 붙는 스키니 핏의 블라우스로 봐서는 흔히 말하는 '일진'인 것 같은데, 의자에 앉아서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 그냥 불쌍한 학생들로만 보였다. 뭐, 그래 봤자 나랑 한두 살 차이겠지만.
‘아이고, 나이도 어린 것들이 뭔 일로 이런 삭막한 곳에 왔냐. 나처럼 재수하기 전에 공부나 좀 하지. 쯧쯧.’
여고생들이 경찰서에 앉아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꼰대들이 왜 꼰대같은 발언을 내뱉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애석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해서 자꾸만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졌다.
‘…어? 이런…씨발년들이?’
하지만 유인영 변호사가 나를 자꾸만 여고생들이 앉아있는 구석 자리로 안내할수록, 꼰대 마인드가 희미해져 가고 내 안에 있던 악마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저 불쌍한 여고생인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저 간나년들이 바로 내 소중한 붕붕이를 무참히 짓밟은 범인인 것 같았다.
“아, 김민준 씨?”
“네. 접니다.”
자리로 다가가니 담당 형사가 아는 척을 해왔다. 그와 동시에 바닥을 향해있던 여고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혔다.
하지만 나는 가볍게 그 시선들을 무시했다.
“이쪽에 앉으면 될까요?”
“예, 앉으시죠.”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서 여고생들과 조금 간격을 두고 앉았고, 내 옆에 유인영 변호사도 앉았다.
“김민준 씨. 변호사님한테 합의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통보하셨던데 맞나요?”
내가 자리에 앉자 담당 형사가 다짜고짜 합의에 대해 물어왔다. 그 속이 뻔히 보여서 대답하기도 귀찮았지만, 그래도 담당 형사였으니 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네.”
내 음색이 굉장히 서늘해져 있는 게 느껴졌는지, 형사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음…보시다시피 어차피 청소년들이라 형사처벌까진 안 될 겁니다…그냥 원만하게 합의하고 끝내시는 게 서로 편하실 텐데…”
형사와 합의에 관한 대화를 나누니까, 옆에서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고 있던 개노답 삼 자매의 몸에 일제히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내 소중한 붕붕이 보닛 위에서 신나게 뛰어놀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겁이 나긴 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변호사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텐데 저야 불편할 건 없죠. 그리고 꼭 형사처벌만 처벌은 아니잖아요. 저지른 죄에 맞는 처벌을 받겠죠.”
“뭐…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학생들이기도 하고 하니…”
“형사님. 저 여기 합의하러 온 거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왔어요. 범인이 어떤 놈들인지 얼굴 좀 한번 보고 싶더라고요.”
“아…예.”
형사가 내 말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나는 형사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서,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곁눈질하던 여고생들을 바라봤다.
내 시선을 받은 개노답 삼자매의 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나는 한명 한명의 얼굴을 자세히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학생들, 돈이 그렇게 많아요?”
“…아…아니요.”
내 물음에 가장 가운데에 앉아있던, 도도한 고양이 상 얼굴을 가진 여고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쁘장하니 딱 내 이상형에 알맞게 생기긴 했지만, 아쉽게도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신부감 리스트에는 넣어줄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여학생은 분위기로 보나 비주얼로 보나 무리의 리더 같았는데, 가장 먼저 입을 연 걸 보면 확실히 리더쉽은 있는 친구였다.
뭐, 아무리 그래도 합의해줄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런데 어쩌다 그랬어요?”
“그…지나가는데…차가 너무 멋져서 사진 찍으려다가…정말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꾸벅-.
개노답 삼 자매의 리더이자 장녀가 나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누가 봐도 싹싹하고 예의 바른 태도였지만 나는 겉모습에 속는 호구가 아니었다.
정말 예의 바른 년이었다면 애초에 사진 찍는다고 자동차 위에 올라가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아야 했다.
저건 단지 상황을 모면하려는 영악함일 뿐이었고, 나는 영악한 족속들이 제일 싫었다.
차라리 연주처럼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펑펑 울었다면,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맨정신에 차 위에 올라가지는 않았을 테니까…술 마시고 그랬죠?”
“…네에. 술만 안 마셨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텐데…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있잖아요. 술은 사람에게 없던 용기를 주는 게 아니에요. 개한테 걸려있던 목줄을 풀어줄 뿐이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정신 차려서 앞으로는 목줄 제대로 하고 다니시는 게 좋겠네요.”
끼이익-.
나는 할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이 끝난 자리에 남아 있는 건 딱 질색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변호사님.”
“네, 알겠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유인영 변호사에게 고개를 끄덕 숙여서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서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느닷없이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진짜!!! 남자가 쪼잔하게!!! 아, 잘못했다고! 어제 내 생일이라서 술 좀 먹고 기분 좋아서 실수한 거라고!!! 너는 술 마시고 실수도 안 하냐!!!”
싸아아악-.
고성이 터져 나오자 경찰서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경찰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단숨에 모이더니, 한 3초 정도 지나니까 다시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냥 걸었다. 삼 자매 중 장녀인 그 친구는, 내가 예상한 대로 정말 썩은내 나는 정신머리를 갖고 있었다. 타고난 미모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으면 저러는지, 저 가정의 스페셜한 교육법이 참 궁금했다. 나도 그리 높은 수준으로 가정 교육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저건 진짜였다.
“합의해 달라고!!! 미안하다잖아!!! 미안하다고!!!”
‘아, 귀야. 목청은 존나 좋네. 미친년.’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걸었다.
그런데 무심하게 걸어가던 내 시야에, 여기서 나올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정말로 상상도 못 한,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어디서 급히 뛰어왔는지 숨을 다급하게 고르며, 척 봐도 아주 개빡친 표정으로 걸어오는 그녀의 이름은 분명.
“…정혜 씨?”
내 바로 앞에서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누군가를 찾던 정혜의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혔다.
정혜는 나를 보자 깜짝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떴는데, 아직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얼마나 됐다고 자기를 울린 사람을 잊을까.
“그…카페에서?”
“…아, 예. 그때 뵀었죠.”
상상치도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마치 길을 걷다가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사는 정도는 나눴던 동창을 만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긴 불렀는데 막상 대면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혜와 나는 이렇게 마주쳤다고 인사를 나누고 그럴 사이가 아니었다.
나야 연주를 호로록 잡아먹을 수 있게 도와준 정혜가 반가웠지만,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단지 한 번 지나쳤을 뿐인 개 같은 진상 고객일 뿐이었다.
“그…제가 좀 바빠서…”
“아, 네. 지나가세요.”
우리는 서로 머뭇거리다가 겨우겨우 교통정리를 해냈다.
몇 초 되지도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경찰서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몇백 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미친 듯이 어색한 분위기에 전신에서 마구 소름이 돋아났다.
‘어우…시바.’
나는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급히 걸음을 옮겼다. 이 장소를 벗어나야 했다.
들어올 때부터 기운이 별로더라니, 아무래도 나랑 경찰서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야, 이은혜!!!”
“언…언니…!!”
우뚝-.
하지만 정혜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 그 즉시,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분명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은혜…? 정혜…? 설마?!’
스팀팩을 맞은 듯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가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경찰서로 뛰어온 정혜.
정혜가 고함을 지르니까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언니’라는 대사를 내뱉은 개노답 장녀.
그리고 ‘정혜’와 ‘은혜’라는 비슷한 이름까지.
‘게다가 둘 다 고양이 상이고…이거이거. 둘이 자매구먼?’
사건의 전말이 밝혀 졌지만, 나의 머리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나는 탐정이 아니라 먹이를 잡아먹는 사냥꾼이었다.
결코, 상황을 밝혀내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의 뇌에서는 이 상황을 유리하게 써먹을 여러 가지 방법이 떠올랐고, 나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정혜가 동생한테 자초지종을 들을 시간은 정도는 줘야겠지?`
나는 우선 걷는 속도를 아주 많이 줄였다. 거북이 걸어가듯 느릿느릿 걸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의 여동생이 방방 뛰면서 망가트려 놓은 뽀르쉐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 정혜에게도 조금의 텀이 필요했다.
“저…저기요!!”
“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잔뜩 당황한 정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기뻤지만 나는 표정관리를 하며 뒤를 돌아봤다.
갑자기 왜 불렀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뉘앙스를 잔뜩 풍기며 정혜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던 정혜의 입술이 열렸다.
마치 자기가 대역죄를 지기라도 한 듯 어두운 정혜의 표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갑자기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한데요…”
“네, 말씀하세요.”
“차…차 망가트린 거, 제 동생이거든요. 저기…저기 가운데 앉아있는 여자애요.”
정혜가 개노답 장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잠시 정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아까 그렇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놓고 이제 와서 대체 뭘 원하는 것인지, 개노답 장녀는 나와 아이컨택을 하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정혜 동생 은혜를 바라봐 주다가 다시 정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네. 그런데요?”
“저도 정말 염치없다는 거 아는데…한 번만…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발 합의해 주세요.”
“어쩌죠? 싫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