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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쓰는 밤의 황제-37화 (37/270)

〈 37화 〉 37화

전쟁터에 파진 참호 바닥 기듯 처절하게 침대 끄트머리까지 질질 기어간 누나는, 뒤를 돌아서 사방을 경계하며 몸을 잔뜩 움츠리더니, 이불을 잔뜩 끌어당겨서 자신의 몸을 가렸다.

“…”

“으흑…흐흑…으아…으흐흑…”

나는 한동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제대로 와버린 듯한 누나의 반응에, 일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 못 됐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누나는 꼼짝없이 몸을 움츠린 채 목 놓아서 울었다.

몸을 가리고 있는 이불 밖으로, 누나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단지 서글프고 서러운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누나의 울음소리에선 짙은 공포와 절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누나는 항문에 관한 끔찍한 트라우마가 있는 듯했는데, 나는 뭣도 모르고 그런 누나의 항문 처녀를 먹겠다고 덤벼들었다가, 완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 버렸다.

나는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누나가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울음 따위는 섹스의 감칠맛을 위한 조미료 정도로만 생각하는 씹변태인 나조차 누나가 안쓰러웠다.

“…괜찮아요? 내가 미안해요.”

“흐윽…아흑…흐흐흑…히힉…흐학…”

“누나…”

“으으아!!! 으으!!! 으으아아악!!!!!!”

꽁꽁 싸매고 있는 이불을 살짝 들어 올리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누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눈을 뒤집고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휘저어댔다.

나는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대로 놔둬야 하는지 아니면 옆에서 조용히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 하는지.

하지만 괴로워하는 누나를 보고만 있을 순 없었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뭐라도 해야 했다.

“으으아!!! 으그이잇!!!! 저리 가아아!!!! 저리 가라고!!!!!”

나는 거칠게 이불을 잡아 내렸다.

누나가 이불 끝단을 잡고 저항했지만, 아무리 필사적이라고 해도 남자인 내가 힘을 쓰는데 누나가 막아낼 순 없었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이불을 끌어 내렸더니, 누나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내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누나는 악을 쓰면서 허공에다가 주먹질과 발차기를 해댔다.

처절하게 팔다리를 휘두르는 그 모습을 보니, 누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요.”

“으으으…!! 오…오지마…으으으으오지마…으하으…죄…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내가 조금씩 다가가자 누나는 거의 미쳐갔다.

그런 누나를 보고 있는 게 내가 다 고통스러워서, 나는 슬금슬금 움직이던 몸을 그냥 누나에게 던져버렸다.

“으아읏!! 저리 가아아아!!!!!”

나는 누나를 품에 안았다. 로맨틱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내가 껴안자 누나는 더 심하게 경기를 일으켰고, 내 품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누나의 팔다리에 나는 퍽퍽 처맞고 있었다.

탱커 타입이 아니라서 맞은 곳이 많이 아프긴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혔다.

한바탕 격렬한 섹스 후에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서 만져보는 누나의 대자연 같은 포근한 가슴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신의 손을 사용하니, 손안에 마음이 잔잔해지고 포근해지는 따듯한 기운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누나를 끌어안은 채, 그 따듯한 손으로 누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진정해요. 괜찮아요. 아무 짓도 안 할게요.”

“으으읏…저리가아…저리 가라고!!!”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누나, 진정해요.”

“흐윽…흐읏…싫어…싫다고…저리 가…저리 가버리라고…”

“누나 괜찮아지면 갈게요. 누나 괜찮아지면…”

끈질긴 밀고 당기기 끝에 결국 누나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뻣뻣해졌던 누나의 몸이 조금씩 풀려갔다.

나는 누나의 몸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천천히, 여유롭게 누나를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한테 어울리는 짓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할 때는 해야 했다.

“흐윽…흐으윽…”

“울어도 돼요…내 어깨에 기대요.”

“흐으윽…흐윽…흐아아앙…”

나는 등을 두드려주던 손으로 조심스럽게 누나의 머리를 감싸 안아서, 내 어깨에다가 기대어줬다.

분위기에 취해서 신의 손을 끄지도 못했기에 시은 누나 때처럼 부작용이 일어날까 싶었지만, 설령 부작용이 터져 나와도 이런 따듯한 감정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직접 감정을 끌어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혀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확인 아닌 확신이 들었다.

“흐으윽…왜에…왜애…흐윽…”

“미안해요.”

“헤윽…너무 아팠단 말이야…아팠다고…흐으…죽을 뻔했다고…”

아무리 그래도 중지 하나 넣었다고 죽는다는 소리까지 나올 리 없었다.

누나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다른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흐윽…왜 그랬어…왜에…하으…흐으윽…”

나는 한동안 말없이 누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누나의 울음소리보다, 토닥토닥 거리는 소리가 더 커질 때까지 충분히, 부드럽게.

****

“일한 지…한 세 달쯤 됐을 때였어…”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누워있었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어 준 게 큰 도움이 됐는지, 누나는 빠르게 심신의 안정을 찾아갔다.

누나를 눕히고 껴안은 채 조용히 있었더니, 많이 힘들어서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어느새 누나는 어미 품을 찾는 아이처럼 나를 마주 껴안아 왔다.

그리고 나서야 마음이 전부 진정 됐는지, 누나는 내가 아직 묻지 못한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았다.

“딱 봤을 때도 진상이다 싶었지…그래도 상냥하게 대하면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나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지 몸을 잔잔히 떨어댔다.

나는 그런 누나의 몸을 더 꼭 안아줬고, 떨리던 몸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힘들면 얘기 안 해줘도 돼요. 누나.”

“아냐…너무 무서워서…다른 데서는 얘기할 생각도 못 했어…남편한테도…근데 지금은…네가 있어서 괜찮은 것 같아…신기해…”

나는 말없이 누나의 이마에다가 살며시 뽀뽀를 해줬다.

이마에 한 뽀뽀가 신호라도 되는 양 누나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그놈이…다짜고짜 다가와서 입을 막더니 나를 침대로 끌고 갔어. 그리고…그리고…계속 몸부림치니까 칼을 꺼내 들더라고.”

“…작정하고 왔네요. 미친 새끼.”

“응…원래 실장님이 간단하게 몸 만져서 확인하는데…안 걸리려고 작은 과도 같은 걸 테이프로 둘둘 감아서 가져 왔더라고.”

“헐…”

“그래서 뭐 어쩌겠어. 칼까지 들고 있는데…너무 무서워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지. 살려달라고도 해보고…그랬더니 조용히 하라면서 목에다가 칼을 들이대고는…나를 강간했어. 강간당했어. 그때…”

“…”

“그래도 꾹 참았지. 일이 그 지경까지 되니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섹스만 하면 가버릴 거라고 생각했거든…근데 아니었어.”

누나의 목소리가 어두워질 때마다, 나는 누나에게 편안하고 따듯한 기운을 불어넣어 줬다.

이번 기회에 누나의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했다.

아무리 마음속에서 엉키고 응어리진 얘기라도 입 밖으로 쭉 한 번 털고 나면, 신기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미현 누나에게, 지금이 바로 그때 이길 바랬다.

“…섹스 다 끝나고 갑자기 손가락을 집어넣더라.”

“…항문에요…?”

“응. 항문에. 그것도 찢어져서 피가 흘러나오는데도 멈추지 않고…너무 아파서…진짜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대가리에 총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트라우마를 건드려도 정도가 있지 이건 뭐 사건 재현 수준이었다.

‘아오, 씨발 병신 새끼 진짜.’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큰일 난다더니, 성적 취향 좀 바꿨다가 졸지에 칼 든 강간범과 동급이 되어버렸다. 나는 칼을 든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돈을 왕창 줬는데 이런 식으로 일이 꼬여버릴 줄이야.

확실히 돈만 많다고 세상이 호락호락하게 돌아가진 않았다.

토닥. 토닥.

나는 항문 트라우마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미리미리 누나의 등을 두드리며 편안한 기운을 넣어줬다.

혹여나 칼 든 강간범과 내가 겹쳐 보이지 않도록, 내 손길이 얼마나 따듯한지 누나에게 알려주었다.

“으음…좋다…치. 진작에 이렇게 해주지…그럼 너한테 실망하지도 않았을 텐데…멍청이.”

누나는 찐한 마사지를 받는 사람처럼 황홀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가볍게 투덜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누나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렇게 따듯하게, 누나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쭉 관계를 이어 나갔다고 해도, 누나와 내가 '진심'으로 섞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누나와 친하게 지내겠지만, 여전히 누나의 가슴 속에서 빛나고 있는 남편이란 별의, 그 바깥을 겉도는 위성으로 남았겠지.

그만큼 누나의 사랑은 무겁고 단단했으니까.

설령 누나와 내가 섞인다고 해도 아주 오래, 어쩌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누나를 몰아치고, 매도하고, 그 끝에 멋대로 항문까지 건드렸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진심으로 섞일 수 있었다.

아직 누나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그 사랑하는 남편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나에게 털어놓는다는 건, 심지어는 몸을 섞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금단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내가 한바탕 폭풍처럼 몰아쳐서 누나에게 스며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렇게 되면 누나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든 상관없었다.

비밀은 때때로 사랑보다 더 무겁고 특별했다.

나는 누나의 얘기를 경청하면서 최대한 누나에게 공감하고 위로해 주려 노력했지만,

속에서, 내 속에 깊이 묻어둔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이 기막힌 상황에 대한 희열이 끓어오르는 것만은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짜증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어떻게 안 괴롭히겠어요.”

“뭐가 그렇게 짜증 나서 누나한테 막…걸레라고 하고 그런 건데? 나 사실은…너무 상처받고, 너무 무서웠어.”

“미안해요. 그래도 아직도 화가 나요. 누나가 남편 사랑한다고 할 때마다.”

“…뭐?”

“아니에요.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으응.”

뻔히 보이는 밀고 당기기였지만, 그래도 미현 누나에게는 잘 먹혀 들었다.

부끄러운지 조금 숙여진 고개와 어딘가 어색하고 딱딱해진 누나의 대답에서, 내 말에 누나가 당황하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조금은 의도적으로 말을 돌렸다.

“그래서, 그 뒤는 어떻게 됐어요? 아까 그 강간범이요. 누나한테 칼 휘두른 건 아니죠?”

“아…그거…그 뒤는…그냥 별거 없어. 손가락 막 집어넣다가 잘 안 들어가니까 젤이라도 바르려는 건지 잠깐 침대에서 일어나더라고, 그래서 그냥 죽어라고 도망쳤지.”

“그게 돼요? 누나 달리기도 엄청 느릴 것 같은데…”

“내가 달리기가 왜 느려? 음…그래도 항상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었는데?”

“…네? 진짜요?”

누나의 허풍 같은 얘기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가슴에 수박을 두 개씩이나 달고 반에서 다섯 손가락이라니.

아마 가슴만 없었어도 육상계를 씹어먹을 괴물이 되지 않았을까.

“응. 그래서 알몸으로 뛰쳐나갔는데, 마침 시간이 다 됐는지 실장님이 올라오더라고. 날 보고 표정을 팍 찡그리더니 자기 자켓 나한테 벗어주고는…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어. 안에서 쾅쾅거리더니 실장님이 그 강간범을 곤죽으로 만들어서 금방 끌고 나오더라. 나한테는 악마 같던 그 사람이 그렇게 쉽고 어이없게 제압당하는 걸 보니까 속이 시원하면서도 뭔가 답답하더라고.”

“음…누나가 말하는 실장이 지금 그 실장 맞아요? 살집 엄청난 그 사람.”

“응. 그 사람 맞아. 나 일하는 반년 동안 쭉 그 분이 실장님이었어.”

전형적인 문신 돼지 충처럼 생겼던 그 실장이, 칼 든 사내를 단번에 제압하는 실력자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계 덩이인 줄 알았던 그것들이 전부 전투를 위한 비상 에너지원일 줄이야.

혹시 나중에라도 깝치지 말아야지.

“근데…민준아…있잖아…”

“네? 왜요?”

“…진짜 1억 줄 거야?”

뭘 그렇게 머뭇거리나 했는데, 누나는 또다시 돈 얘기를 시작했다.

돈이라면 나도 누구 못지않게 좋아했지만, 누나가 돈 얘기를 꺼낼 때는 뭔가 나까지 구질구질해지는 느낌이라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물기가 가득 남아있는 눈으로 초롱초롱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누나에게 도저히 화는 낼 수 없었다.

“어휴~ 그렇게 못 믿을 거면 애초에 왜 따라왔어요.”

“…그러게. 나도 진짜 미쳤다. 아무리 돈을 준다지만 이런 놈이나 따라오고.”

“와…제가 뭐가 어때서요?”

“변태에다가…완전 사디스트같아.”

누나의 말은 반박할 수 없는 팩트였지만, 그런 변태 사디스트에게 행복한 표정으로 안겨있는 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건, 누나는 모르고 있었다.

“하~ 참. 어이없네. 그런 변태 사디스트한테 조교당하고 좋아서 기절한 사람은 훨씬 더 심한 변태이지 않을까요?”

“…좋아서 기절한 거…아니야…그건 그냥…음…아파서…그래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야.”

“그래요? 그럼 부드럽게 하면 기절 안 하겠네요? 오케이. 접수.”

“잠시만…민준…으음…!!”

나는 누나에게 키스를 갈겼다.

하지만 원래 내 스타일처럼 쾌락 격정 키스는 아니었다. 로맨스 드라마에 나올법한 부드럽고 달달한 키스였다.

나는 누나의 입이 벌려질 때까지 허락을 구하듯, 누나와 입술을 맞추고 가만히 기다리다가, 조금씩 벌어지는 누나의 입술을 베어 물고 살살 빨았다.

-쭉. 쭈욱. 춥.

“으음…하으…이러면…안되는데에…으읍…하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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