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플쓰는 밤의 황제-22화 (22/270)

〈 22화 〉 22화

누나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너 이 쉐끼…”

“…왜 이러세요…이거 놔주세요.”

“누나 발바닥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아보니까 어땠어? 좋아 죽겠지, 아주?”

누나는 내 손목을 꽉 잡은 채 인상을 팍 쓰고는 위협적인 기운을 뿜어댔다.

참고로 나는 살면서 그 흔한 맞짱 한 번 떠본 적이 없었다. 공부는 안 했지만 눈치가 빨라 선생님들한테 맞아본 적도 없었다.

내 맷집은 그야말로 제로에 수렴했으며, 내 신체는 폭력에 너무나도 무방비했다.

그렇게 무방비한 신체라서 그런지 누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폭력의 기운이 더욱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며 화난 누나를 달래보려 노력했다.

“선생님. 이러시지 마시고 말로 해결을…”

“내가 왜? 너도 나 괴롭혔잖아. 말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그건 선생님께서 먼저 자극을 하신 거라 저도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는데…”

“닥치고 이리와.”

“잠깐…잠깐만. 누님. 누나. 선생…끄으윽.”

누나는 내 목에다가 팔을 걸더니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당기고는 곧바로 헤드락을 걸었다.

“끄윽…”

머리에 피가 안 통하는 느낌은 최악이었는데, 반면 머리통을 스펀지처럼 푸욱 감싸오는 통통한 누나 젖가슴의 촉감은 최고라서 기분이 아주 오묘했다.

연주를 만나며 나는 내가 영락없는 사디스트인 줄 알았는데, 시은 누나를 만나고는 어쩌면 나에게 마조끼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 꼬추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아. 아. 진짜 아픈데요. 누나. 제가 잘못했으니까 좀 풀어주세요.”

“뭐래. 힘도 거의 안 주고 있는데…”

`이런 미친…`

발기 중인 내 자지가 잠시 시무룩해질 만큼 시은 누나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머리에 전해지는 이 강력한 압박감이 심지어 힘을 거의 안 주고 있는 상태라니.

이래서 나 같은 연약남은 피지컬 괴물들과 상종하는 게 아닌데….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나는 누나에게 비굴하게 빌었다. 무척이나 굴욕적이었지만 나는 훗날을 도모하며 지금의 굴욕을 참아냈다. 하늘에 맹세코, 이 굴욕을 갚아줄 날이 머지않아 찾아오리니.

“너 반성하고 있는 거 맞아? 눈빛이 수상한데?”

“그럼요. 다시는 누나의 발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겠습니다.”

“사실 그건 나쁘지 않았어.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기분 좋더라. 너무 좋아서 문제일 정도로…”

“그럼 대체 왜…”

“애액 냄새 어쩌고 할 때 기분이 확 나쁘더라고. 내가 몸 관리를 얼마나 하는데 애액 냄새가 안 좋을 리 없잖아.”

“…”

대체 애액 냄새랑 몸 관리랑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점점 화해 무드로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을 아꼈다. 약자의 지혜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민준아…”

“네. 누나.”

“진짜 반성하고 있는 거 맞지?”

“아. 맞다니까요.”

“그럼 이따가 누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무리 그래도 뽀르쉐는 못 줘요…아악!! 조크! 조크!”

장난 좀 쳤다고 누나의 헤드락이 사뭇 강력해졌다. 이런 야만적인 행위를 당해본 적이 없어서 정신이 다 혼미했다.

“누나 부탁 들어줄 거지?”

“크윽.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드릴게요.”

굳은 약속을 받아낸 다음에야 누나는 굳게 걸어 잠가놨던 헤드락을 풀어주었다. 나는 고개를 몇 번 흔들어서 고통에 짓눌려버린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옷 망가지니까 그런 건 가슴에서 좀 떨어져서 해줄래?”

“크흠…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그만.”

“아오~ 저 입을 진짜.”

또 폭력의 냄새가 슬쩍 풍겨오자, 나는 잽싸게 누나의 옆자리에서 일어나 원래 내가 앉아있던 누나의 맞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의 작은 몸싸움이 어떤 참사를 불러왔는지 깨달았다.

“누나…어디서 탄내 안나요?”

“왜. 네 마음이 타고 있니?”

“아니요. 고기가 다 탔네요.”

장난을 치는 줄 알고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누나에게 나는 정색을 빨며 불판을 가리켰다. 내 말에 화들짝 불판을 확인한 시은 누나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헐…어떻게 아까워…나 엄청 배고팠는데…”

“버려달라고 하고 또 시켜야죠. 뭐.”

“와~ 금수저 마인드 미쳤다.”

“뭘 이 정도로.”

띵동-.

나는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러서 타버린 고기를 버려달라고 부탁하고는 또다시 고기를 주문했다.

잠시 기다리니 새로운 불판과 새 고기가 들어왔고, 전과는 다르게 고기가 다 꿔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 우리 둘은 종업원이 나가자마자, 식사부터 하기 시작했다.

먹는 걸 좋아한다더니, 시은 누나는 정말 복스럽게 먹었다.

몸 관리 때문인지 채소나 양념도 찍지 않은 순수한 고기 위주로만 먹는 것 같긴 했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나까지 든든했다.

“근데 누나는…피트니스 클럽 안이랑 밖에서의 성격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우물우물. 꿀꺽.

쌈을 입 안에 넣고 열심히 씹고 있던 누나가 내 말을 듣곤 눈을 크게 뜨더니, 입안에 있던 음식을 급하게 삼켰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치였다.

“으구~ 당연하지 민준아. 평소에도 그렇게 요염하면 매일 섹스만 하고 살게?”

“…”

뜬금없이 들어온 정확한 지적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런 게 다 짬에서 나오는 영업 바이브지. 남자들이 환장할 만한 모습이야 뻔하니까~”

“저도 그럼 영업 당한 거네요?”

“히히. 왜에~ 영업 당한 거면 싫어?”

“뭐, 싫지는 않은데. 너무 비즈니스적인 것도 좀 그렇잖아요.”

“하이고오~ 민준이 너 이 쉐끼. 이럴 때는 또 모솔 맞는 거 같다? 여자의 마음을 전혀 모르네~”

“…”

입을 열면 부들부들 떨릴까 봐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누나는 그런 나를 세상 귀엽게 바라봤는데 그럴수록 내가 열 받아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영업은 딱 영업장에서만, 그리고 영업한다고 맘에 안 드는 남자랑 하루에 한 번 먹는 소중한 한 끼를 같이 먹진 않아.”

“누나는 저 마음에 들어요?”

“응. 처음 볼 때부터 딱 너구나 싶었지.”

“왜요?”

“그건……나중에 알려줄게.”

내내 당당하게 말하던 시은 누나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캐물으면 불편해할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

“그러는 민준이는 이 누나의 어디가 어떻게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들이대셨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겁도 없이 가슴도 막 훔쳐보고…”

누나는 특유의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어째서인지 보란 듯이 가슴을 잔뜩 내밀고 있는 모습이 웅장하면서도 짜증 났다. 자기 몸매가 뒤지게 좋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답정너를 시전하는 누나에게 반격하고 싶어서, 나는 일부러 말을 더 천박하게 꾸며냈다.

“누나 따먹고 싶어서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존나 꼴렸거든요.”

“헐 진짜? 좀 신기하네?”

“뭐가요?”

“나도 그랬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순간 야릇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은 누나의 표정에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은 색기가 담겨 있었다.

누나는 눈빛만으로 사람을 따먹는다는 게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사기적인 스킬빨 덕분에 아무리 실전 섹스에 강하다고 해도 압도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저런 농축된 분위기는 아직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경험 차이에 짓눌려 불가항력적으로 볼이 화끈해진 게 분해서 나는 누나에게 괜히 틱틱댔다.

“영업은…영업장에서만 하신다면서요.”

“얘는~ 이건 영업 아닌 데에~”

“털털하다가도…엄청 여우같아요. 누나는.”

“그래서 싫어~?”

“전혀요. 근데 누나한테 홀려 버릴까 봐 무섭네요.”

절대 진심은 아니었다. 이건 서비스 멘트이자 후일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일단 홀린 척 다가가서 나중에는 누나를 나에게 푹 빠지도록, 나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대단히 당당하고 털털하며 심지어는 여우 같은 시은 누나가, 내게 푹 빠져서 내 바짓가랑이에 비참하게 매달리는 모습을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흥분되었다.

‘역시…난 이쪽이지…’

시은 누나 때문에 흔들릴 뻔했던 정체성이 다시 확고해졌다. 당하는 쪽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지배하는 쪽이 훨씬 더 짜릿했다.

“으음…민준아, 누나한테 홀리는 건 좋은데 너무 집착하진 말아 주라. 누나는 그런 거 딱 질색.”

내가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며 누나를 멍하니 보고 있으니까,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누나는 여지껏 쭉쭉 당겨놨던 줄을 조금 풀어냈다.

‘어? 이것 봐라?’

머릿속에 벼락이 확 내리꽂히는 기분이었다.

충분히 더 당길만한 타이밍에 날 밀어내는 걸 보니 누나가 설계하는 그림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설마…집착하는 연인 말고 가벼운 섹스 파트너 하자는…뭐, 소리는 아니죠?”

나는 믿기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시은 누나와 섹파 관계를 맺을 수만 있다면 나야 좋았다. 오히려 내가 부탁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선 좋아도 싫은 척을 하는 것이 때때로 더 유리한 경우가 있었다.

“당연히 아니지! 파트너 같은 정 없는 관계 말고…우리 섹스 프렌드하자. 민준아. 응?”

“그게 그거잖아요! 말장난하지 마요. 진짜.”

나는 짐짓 정색을 하며 말했다.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누나를 보니 연기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왜 화를 내고 그래~ 민준아, 차분하게 생각해봐. 서로 꼴린다고 꼭 연인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야.”

그야말로 옳은 말씀이었다. 누나는 참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더 화나니까 멍청한 소리 좀 하지 마요. 누나는 어떻게 섹스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 있어요?”

“민준이 네가 아직 경험을 많이 안 해봐서 그래. 살다 보면 그 섹스가 그 섹스고 그놈이 다 그놈이야. 안 그래도 지루한데 한 사람 하고만 연인이 되고, 한 사람 하고만 섹스를 하면 얼~마나 지루하겠니?”

시은 누나는 열변을 토했다. 마음 같아서는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훌륭한 연설이었지만 상황 상 아직은 더 튕겨야 했다.

“…그럼 나랑은 왜 섹스하고 싶은 건데요. 어차피 그 섹스가 그 섹스라면서…”

“그래도 조금은 다르거든. 이왕 먹을 바에 취향에 맞는 사람을 먹는 게 좋지. 음…후라이드보단 양념이랄까?”

“하…이거 사람 갖고 노는 양아치 짓이라는 건 알죠?”

“헐~ 섹프하자는 걸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인생 그렇게 살면 피곤하다. 민준아~ 내가 진짜 쓰레기 같은 년이면 너한테 이런 얘기를 했겠니? 홀라당 따먹고 버렸겠지.”

당당한 누나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그렇게 따져보면 사실 진짜 쓰레기는 나였다.

홀라당 따먹고 버리지야 않겠지만, 나는 누나처럼 내 모든 걸 당당하게 까 보일 수는 없었다.

누나를 나에게 매달리게 하겠다는 음흉한 속셈은 아직 비밀이었다.

“아니…하아~…”

“섹프하자 섹프~ 섹프하자 섹프~ 섹프~~~!”

내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서인지 그냥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건지, 누나는 유명한 cm 송의 멜로디에다가 괴랄하게 개사한 가사를 넣어 부르며 맥락 없는 애교를 부렸다.

섹스 프렌드가 되자는 어찌보면 심각한 요구를, 저렇게 가볍고 황당하게 어필해 버리는 누나를 보며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큭…하아~…진짜…”

“어? 웃었다! 그럼 민준이 이제 나랑 섹프 하는 거지?”

“아직…고민 좀 해보고요.”

“에이~ 남자가 너무 튕겨도 맛이 없어요. 이럴 때는 그냥 화끈하게 그러자고 하면 되는 거야.”

“…누나 저 말고도 섹프 많죠?”

“아니. 한 명도 없는데?”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섹프타령을 이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걸 보면 최소 다섯 명 정도는 있을 줄 알았더니…

“너 말고 나머지는 다 섹파야. 가벼운 섹스 파트너. 지금은…한 다섯 정도?”

“얼씨구…”

가소롭다는 듯 도도한 표정 짓더니 손가락까지 쫙 펴가며 다섯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 누나의 모습에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구수한 리액션이 튀어나왔다.

어째서인지 철없는 딸내미를 보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 얼씨구는 너무 하잖아!!”

“됐고. 섹프와 섹파의 차이점이나 좀 알려주세요. 여섯 번째 섹파였으면 거절하려고 했는데, 첫 번째 섹프라면 관심이 좀 있네요.”

“음…섹파는 말 그대로 파트너지. 그냥 살아있는 딜도 같은 거야. 반면에 섹프는 친구야. 민준이랑 나랑은 섹스 친구. 마음과 정액을 나누는…뭐, 그런 거지.”

“참나. 아직 섹스도 안 했는데 무슨 섹스 친구에요.”

“조금 있으면 할 건데 뭐.”

“크흠…”

민망할 때 왜 헛기침을 하나 했더니, 목이 턱 막히고 기도가 확 잠기는 게 확실히 헛기침을 할만했다.

“음…근데 민준아…혹시 섹스 처음이야?”

“글쎄요. 해보면 알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누나에게 나는 잔뜩 허세를 부리며 답했다. 누나에 비하면 경험은 심히 부족하겠지만, 사기적인 스킬을 두 개나 보유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허세를 부릴 만 했다.

“어이구. 꼴에 남자 아니랄까 봐. 여자친구도 없었다면서 해봤자 운 좋게 한 두 번 이겠지 뭐. 그래 가지고 좆질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시은 누나의 도발은 굉장히 저질스러웠다. 그런데 그 저질스러운 도발에 누나의 업신여기는듯한 표정이 합쳐지니 꽤 열 받았다.

“누나는 천재를 믿어요?”

“갑자기?”

“누나, 섹스에도 천재가 있어요.”

“그게 너라고?”

“뭐, 해보면 알겠죠.”

“음…오늘은 안 되는데…”

“…네? 섹스 안 돼요…?”

갑작스러운 누나의 폭탄 발언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아까는 곧 섹스할 거라면서, 이제 와서 뭐가 안된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섹스를 못 한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쭉쭉 빠지고 손발이 달달 떨려왔다. 세상을 잃어버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왜 안되는데요? 섹프하자면서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네가 테크닉이 아무리 좋아도 오늘은 안된다고. 내가 해줄 거니까. 응…오늘은 내가 해줄게. 대신 너도 해줘야 할 게 있어.”

“…네? 뭔데요? 뭘 해줄 건데요? 저는 또 뭘 해야 하는 거고?”

정말로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물었다. 대체 이 누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