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16화
300대의 쾌감이 뜨는 순간 연주의 허리를 활처럼 펴지고 고개가 뒤로 확 제껴져서, 나는 엉망진창이 된 연주의 얼굴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눈에는 흰자밖에 보이지 않았고 멍청하게 헤~ 하고 벌려진 입에서는 타액이 질질 새어 나왔다.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표정이 완전히 풀려버린 상태였는데, 반대로 연주의 질은 강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지를 꾹꾹 쥐어 짜내는 질의 움직임에, 사정은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됐다.
하지만 나의 길었던 사정이 끝나고 자지가 쪼그라들 때까지도 연주의 오르가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보다는 훨씬 덜했지만, 간간이 몸을 떨어대며 신음을 뱉는 게 잔잔한 오르가즘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흐으…힛…하우으…”
“…일단 나가요. 연주 씨. 이러다 기절하겠네.”
“헤으…으으…”
처음에는 그냥 아헤가오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눈깔에 흰자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뭔가 무서웠다.
하긴 뜨끈한 욕조에서 미치도록 격렬한 첫 섹스를 했으니, 연주같이 연약한 체력 조루라면 머리가 핑 도는 게 당연했다.
연주가 도저히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공주님 안기 자세로 연주를 욕조에서 꺼내들었다.
솔직히 좀 무거웠는데, 연주가 무겁다기보다는 오랫동안 게임만 해서 퇴화된 내 근육들 탓이었다.
다시 한 번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며 욕조에서 나와 부들부들 걸어서 샤워부스로 향했다.
샤워 부스 안에다가 조심스럽게 연주를 내려놓고 미지근한 물로 씻겨 주니 다행히도 연주가 반쯤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반쯤 정신을 차렸다는 건 아헤가오는 풀렸지만, 여전히 연주의 상태가 영 메롱이라는 걸 뜻했다.
극한의 오르가즘을 겪고 난 후유증 때문인지 연주는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내가 직접 연주를 씻겨주고 심지어는 닦아주기까지 해야 했다. 노예치고는 참 손이 많이 갔지만 귀여운 몸을 합법적으로 감상하고 만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그리 귀찮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래서 귀여운 게 무섭지. 뭐든 다 해주고 싶으니까…’
나는 연주의 몸을 구석구석 씻기고 닦아준 다음 다시 공주님 안기로 들어서, 존나 힘겹게 연주를 침대 위에 눕혔다.
연주가 맛이 간 상태라 부들부들 거리는 내 미약한 허벅지를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하아~ 뭐라도 입혀야 하는데…안 되겠네…”
연주는 눕혀주자마자 잠들었는지 작고 귀여운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옷을 입히다가 괜히 깰 것 같아서 대신 이불만 잘 덮어주었다.
‘섹스에 만족한 여자는 곧바로 잠든다더니…진짜였네.’
나는 연주 옆에 털썩 누워서 잠든 연주를 바라보며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이내 핸드폰을 찾기 위해 일어났다.
핸드폰은 고급스러운 원목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나는 가운을 챙겨입고 와서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셀 수 없이 떠올라 있는 입금 메시지들을 다 없애고 바로 은행 계좌를 확인했다.
*계좌 : 129,841,945
‘일…십…백…천…일억?!’
연주의 공사가 워낙 훌륭하게 마무리돼서 어느 정도 큰돈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막상 계좌를 까보니까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계좌 잔고 확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에,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은행 앱을 닫고 ‘세상은 돈과 여자’ 어플을 실행시켰다.
-[튜토리얼 퀘스트 -3] 완료!
-완료 보상.
-300,000,000원 지급!
-[외모 강화]가 [신체 강화]로 강화됩니다.
‘이런 미친…’
연주가 듣고 깰까 봐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나는 까무러치게 놀라고 있었다. 진즉에 이 어플이 개꿀 어플인 건 알고 있었지만 1억을 모으라고 해놓곤 완료보상으로는 3억을 주는 미친 혜자스러움까지 보유하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외모 강화가 신체 강화로 바뀌었다는 내용도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 당장 눈에 확 들어오는 건 3억이 지급됐다는 메시지였다.
3억은 정말 큰돈이었다. 이 어플을 만나기 전 내 능력이라면 10년 내내 쉬지 않고 뼈 빠지게 일하면서 식대까지 아껴가며 미친 듯이 빠듯하게 모아도 못 모을 만한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환산해보자면 나는 단 하루 만에 고달프고 억척스러웠을 앞으로의 10년을 벌어들인 셈이었다.
‘씨발…나는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눈물이 나려 하네…’
문득 생각나는 물류센터 알바의 추억 때문에 잠시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 비록 고생해서 번 돈은 아니었지만, 돈을 벌려면 얼마나 고생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런 게 꽃길…아니 돈과 여자의 길인가…돈자갓(돈과 여자의 신)…그는 대체…’
나는 돈자갓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잠시 기도를 드리고는 다시 어플에 집중했다.
3억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큰돈이었지만, 억 단위에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튜토리얼이었으니 이 어플의 가능성이 겨우 이 정도일 리 없었다.
배달비 3천 원에도 벌벌 떨던 나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바닥에서 억까지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어플이 하라는 대로 잘 따라 하기만 하면 머지않아 3천억을 3천 원같이 쓰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튜토리얼 퀘스트 -final]
-튜토리얼 동안 모은 돈과 여자를 마음껏 자랑해보세요.
-길거리에서, SNS를 통해, 어쩌면 Vlog를 찍어도 좋습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부러워하도록, 당신의 돈과 여자를 욕망하도록 만드세요.
-당신을 향한 부러움과 욕망은 FLEX 포인트로 측정됩니다.
-1 FLEX 포인트는 1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앱을 통해 돈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목표 FLEX 포인트 : 1,000,000,000.
*현재 FLEX 포인트 : 0.
*누적 FLEX 포인트 : 0.
*(포인트 교환)
**잠자리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쾌감 수치 1당10,000원이 지급됩니다.
‘파이널 퀘스트답게 화끈하네…’
1포인트가 1원의 가치라고 했으니, 쉽게 이해하자면 사람들에게 10억 원 어치 자랑을 하라는 소리였다.
‘명품 좀 사 입고…외제차 사서 끌고 다니면 되려나?’
1월 1일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놔서 차를 끌고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도로 주행 몇 번 해본 게 전부인 완전 초보 운전자라 외제차는커녕 운전 연수부터 받아야 할 판이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주행의 목적 자체가 ‘과시’였으니 굳이 쌩쌩 달릴 필요도 없었다. 여유롭게 동네나 한 바퀴씩 돌면서 천천히 운전을 배워가면 충분했다. 고속도로를 빠르게 쏘는 것보다 동네를 느긋하게 도는 게 어그로도 강력하게 끌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그로는 곧 부러움과 욕망으로 바뀌어서 FLEX 포인트로 바뀌게 되겠지.
‘옆에 연주나 미희 누나를 태우고 다녀도 좋겠고…아, 진짜 SNS나 Vlog도 한 번 찍어볼까? 플렉스하고 다닐 명품들로 언박싱만 해도 콘텐츠는 확실하니까…’
꽤 귀찮기야 하겠지만, 돈을 벌 수 있다면 그 정도 귀찮음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돈만 좀 들인다면 귀찮은 일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나는 출연만 하고 영상 촬영부터 편집과 업로드는 외주를 맡겨버리면 장땡이니까. 전부 다 외주를 맡기면 처음에야 본전도 안 나올 확률이 높지만, 초기 투자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 돈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잠자리 퀘스트의 갱신으로 인해서 나는 지금 연주 꽁알만 슬쩍 만져줘도 돈을 왕창 벌어들일 수 있었다.
‘쾌락 수치 1당 1만 원이라고 했으니…와~ 진짜 말도 안 되네…’
오늘 연주와의 섹스에서 적어도 천단위 이상의 쾌락 수치를 찍어냈으니, 섹스 한판에 몇천만 원은 일단 보장이었다. 돈을 어떻게 모을 지보다, 모은 돈을 어떻게 자랑하고 사치를 부릴지가 더 큰 고민거리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삶이 바뀌어도 너무 단단히 바뀌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진짜 존나 감사합니다. 전지전능하신 돈과 여자의 신의 첫 사도로써 최선을 다해 플렉스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앞으로 돈 자랑을 어떻게 해갈지 조금 구상하다가, 돈과 여자의 신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드리며 연주의 옆으로 가서 누웠다.
계좌 잔고와 퀘스트를 보고 흥분해서 잠이 잘 안 올 줄 알았는데 연주와 나눴던 질펀한 섹스 덕분인지, 나는 생각보다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
연주와 내가 일어난 건 오전 11시쯤이었다. 커튼도 안 처져 있는데 이렇게까지 늦게까지 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격렬했던 정사의 여운 때문이었다.
슬쩍슬쩍 눈을 비비던 찰나에 하반신에서 발기감이 느껴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서 옆에서 꾸물대고 있는 연주의 상태를 체크했다.
귀염둥이 연주와 햇볕이 촤악 들어오는 도심부의 5성급 호텔에서 모닝 섹스를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
"아으…"
‘이런…’
하지만 골반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상반신도 제대로 일으키지 못하고 끙끙대는 연주의 모습을 보면서 모닝 섹스는 물 건너갔다는 걸 곧바로 직감할 수 있었고, 그 실망감에 내 꼬추 역시 축 처져 버렸다.
좀 심각해 보여서 나는 잘 잤느냐는 인사도 건너뛰고 바로 연주에게 상태를 물었다.
“연주 씨…괜찮아요? 걸을 수는 있겠어요?”
“아…그…어떻게든…”
내 말에 연주는 끙끙 대면서도 침대에서 빠져나와 일어서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근육이 저려오는지 잠시 일어섰다가도 표정을 잔뜩 찡그리더니 침대에 털썩하고 주저앉기 일쑤였다.
‘하긴…첫 경험을 그렇게 하드하게 해버렸으니…’
나는 미련하게 계속 일어서려 하는 연주를 다시 얌전히 침대에 눕히고, 미니바에 있는 물과 커피를 꺼내서 침대 사이드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물 마시고 좀 누워 있어요.”
“그…민…민준 씨.”
내가 마실 것만 갖다 놓고 곧장 돌아서려고 하자, 연주가 내 새끼손가락을 슬그머니 잡아챘다.
내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자 연주가 연주답게 심히 부끄러워하며 낑낑대었다.
“가지 말고…조금만…조금만 더 같이 있어 주시면…안될까요오…”
걱정하면서 안절부절 대는 연주의 모습은 확실히 귀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주가 나를 걷지도 못하는 여자를 호텔 방에 놔두고 빤스런이나 치는 파렴치한 놈으로 보고 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야말로 먹버(먹고 버리기)충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건데….
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아니었다.
“안 되는데요. 지금 나가야 해요.”
“그…그…바쁘시면…어쩔 수는 없는데에…”
“나가서 진통제 사와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집에는 걸어서 들어가야 할 거 아니에요.”
“아…”
연주가 연주답게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면서, 꼬옥 잡고 있던 내 새끼손가락을 풀어주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적당히 챙겨입고 지갑과 핸드폰을 챙겼다.
“금방 다녀올게요. 아, 연주 씨 혹시 싸이즈가 어떻게 돼요?”
“아우…우으…b…b컵이긴 한데…”
“…그거 말고요. 팬티 싸이즈. 다 젖은 거 또 입고갈 순 없잖아요.”
“팬…팬티…아…팬티구나…그렇죠…또 입고 갈 수는 없겠죠…”
연주는 횡설수설하더니 사이즈를 불러주긴 불러주었다. 하지만 이미 토마토 상태인 데다가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으니 말을 제대로 할 리가 없었고, 나는 그냥 알아듣기를 포기하고 대충 알겠다고 한 다음 호텔을 나섰다.
도시의 1층은 호텔에서 내려다볼 때만큼 아름답진 않았다.
봄이라 그런지 미세먼지도 좀 있는 것 같고 차도에서 매연이 마구 뿜어져 나와서 뚜벅이로 걸어 다니기에는 확실히 별로였다.
‘이래서 차가 있어야 하는 건가?’
평생을 뚜벅이로 살아왔으면서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한 번 박히니까 뚜벅이의 단점이 유난히 뚜렷하게 느껴졌다. 인간은 확실히 웃긴 동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약국에 들러서 진통제를 사고 마침 근처에 속옷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다.
좀 둘러보다가 무난한 발목 양말을 챙기고, 연주의 팬티를 고르고 있었는데 고민하는 게 티가 났는지 여성 점원이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여자친구분 선물 하시게요?”
“아, 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음…제일 잘 나가는 건 이런 스타일이거든요.”
점원이 밴딩 스타일의 검은 팬티를 하나 짚어주었다. 무난무난해 보여서 연주가 입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좋네요. 그걸로 주세요.”
“네. 혹시 싸이즈는 어떻게…”
“아…싸이즈는…”
연주의 체형을 설명해보려는 찰나에 굳이 그래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 플렉스에 대해서 고뇌한 게 무용지물은 아니었는지, 전형적인 졸부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지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냥 있는 싸이즈 전부 하나씩 주세요. 물어보기도 좀 그래서…”
“아…네. 고객님!”
여자 점원의 표정과 대답이 상당히 오묘하다는 걸 감지했지만, 그런 걸 굳이 신경 쓰지 않아야 진정한 플렉스의 완성이었다.
나는 무심하게 카드를 내밀고는 싸이즈만 다른 팬티가 여러 개 들어가 있는 쇼핑백을 받아 들고는 속옷 가게에서 나왔다.
‘카드도 좀 간지나는 걸로 바꿔야 되겠는데…’
속옷 가게를 나오면서 든 생각이었다. 신용도 아니고 체크카드를 쓰고 있으니 간지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블랙 카드 같은 거 한 장 있으면 재력 과시하기 딱 좋을 텐데…한 번 알아봐야겠네.’
나는 머릿속에 `카드 바꾸기`라는 과제를 집어 넣어두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