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화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아, 음식왔네요. 연주 씨.”
“네? 아아, 네에.”
다행히 연주의 통통한 애교살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눈물 방울이 쏟아지기 전에, 룸 안으로 음식이 들어왔다.
연주가 감동에 못 이겨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을 때 음식이 들어왔으면 분위기가 영 이상해 질 뻔했기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문한 것들을 모두 서빙해 준 뒤 종업원이 공손한 인사와 함께 방에서 나갔고, 나는 두 개의 술잔에다가 사케를 따라서 하나를 연주에게 건넸다.
“사케 마셔본 적 있으세요?”
“에…네. 네에.”
방금 뱉었던 느끼한 멘트들은 전혀 기억도 못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에게 말을 걸었다. 감동도 좋지만, 술도 나왔겠다 이제는 슬슬 섹스각을 잡을 시간이었다.
꽤 오랫동안 해롱해롱 거리던 연주가 무던한 나의 음성을 듣고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내가 건네 술잔을 간신히 받아들었다.
“후루룩…”
‘…어?’
연주는 목이 말라서 뭐라도 마시고 싶었는지, 내게서 멍하니 받아든 술잔을, 그대로 멍하니 입가로 가져가서 단번에 마셔버렸다.
실수로 좀 많이 따라 놨었는데 뭐지? 게다가 이거 메뉴판에서 보니까 꽤 독하던데….
사실 알고 보면 주당이라던가?
“우읍!!”
젠장, 그럼 그렇지.
연주는 사케가 입에 안 맞았는지 우욱 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사케를 뱉어버릴 것처럼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괜찮아요. 연주 씨?! 입에 안 맞으면 얼른 뱉으세요!”
“…우읍?! 우으읍!!”
뱉으라는 말에 연주는 몸을 흠칫 떨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거리더니, 이내 눈을 꾹 감고 사케를 삼켜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얼마나 죽기 살기였냐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건 물론이고, 쥐나 벌레를 통째로 삼키고 있는 사람처럼 얼굴을 잔뜩, 아주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나한테 입안에 있는 걸 뱉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건 알겠는데, 저러다가 또 엄한 짓을 벌일까 봐 무서웠다.
“끄읍!! 끄으읍!!”
“그렇게 무리해서 삼키면…!!”
“우으읍!!! 끄으으읍!!”
“아니, 뱉으라니…”
“푸흡!! 푸후후후흡!!!”
하…안 좋은 예감은 빗겨나가지 않는 다더니.
연주를 만난 지 오늘로써 단 하루.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었던 슬로우 모션을, 오늘 하루 만에 두 번이나 겪고 있었다.
-쏴아아아악!
마치 분무기에서 분사되는 것처럼, 연주의 입에서 아름답게 분비되고 있는 사케 방울들이 한 방울씩 눈에 박혔다.
사케 방울 표면에 당황하고 있는 나의 얼빠진 표정이 비췄다.
하필이면 얼굴이 비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문제였는데, 더 큰 문제는 단순히 한두 방울이 아니라 대부분의 방울에서 내 얼굴이 비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주는 무언가를 쏟아낼 때 꼭 정조준을 하는 습관이라도 있는 건지, 수많은 신체 부위 중 정확히 나의 얼굴을 향해 사케를 쏟아냈다.
그래, 그냥 체념하자.
일본에서는 침으로 술도 만든다던데, 이미 만들어진 술에 침 좀 섞였다고 무슨 대수겠는가.
생각해보면 이런 게 일명 ‘업게 포상’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맞는 사케 방울은 전부 연주의 입에서 최소한 십 초 이상은 숙성된 귀한….
촤아아아아-.
‘아…촉촉하네.’
생각은 무지하게 많았는데, 막상 맞으니까 딱 이런 느낌이었다.
“케헥!! 케헤헥!! 민…민준 씨!!! 죄송해요!! 케헥! 죄송해요!!”
아메리카노 사태 이후로 배운 게 없는 건 아닌지, 연주는 목에 사케가 아직 걸려있는지 케헥거리면서도 다급한 손길로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냅킨을 냅다 들고는 내 자리로 넘어왔다.
연주는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무릅을 꿇어 앉아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춘 뒤, 내 얼굴에 묻은 사케 방울을 필사적으로 닦아냈다.
터더더덕. 터더더덕.
“죄송해요!! 죄송해요!! 민준 씨!!”
“괜찮아요. 연주 씨. 저 괜찮으니까 좀 진정하세요. 이런 거야 그냥 닦으면 되고 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진정하시라고요. 네?”
“흐윽…네…진정할게요…흑…죄송해요…저는 대체…왜 이 모양일까요…”
그러게 뱉으랄 때 좀 뱉지 이 띨빵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연주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현재 포지션이 꽤나 괜찮았다.
내 얼굴을 닦아주기 위해서, 연주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상체를 비스듬히 내게로 기울인 상태였다.
즉, 내가 이렇게 고개만 조금 꺾어주면….
얼굴과 얼굴이 딱 키스하기 좋은 느낌으로 마주 보게 된다.
사케방울들이 아직 남아있는지 얼굴이 좀 촉촉하긴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히끅!…히끅!!…민…민준 씨…”
내가 갑자기 멜로 눈깔을 장착한 채, 지근거리에서 아이컨택을 해오자 깜짝 놀랐는지 연주가 내 얼굴을 어중간하게 닦다 말고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내 볼이 싸악 빨개지는 걸 보면 연주도 영 맹탕은 아닌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탱글탱글한 볼이 빨갛게 물든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고 또 매혹적이었지만, 내가 연주에게 다가가는 것보다는, 연주가 나에게 매달리는 그림을 원했기 때문에 나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정욕을 꾹 참고 한 번 더 기회를 쨌다.
“연주 씨는…다 잘 흘리네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머릿속에 상상만 해도 구역질 나는 더러운 멘트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서슴지 않고 역대급 구린 멘트를 장전했다.
명심하자. 내게 구릴수록, 연주에게는 달콤했다.
“네…? 네에?”
“커피도 흘려, 사케도 흘려…”
“아으…그…그게…죄송…죄송…흐윽…”
“그래도 눈물은…안 흘렸으면 좋겠는데.”
구에에에에엑.
강하다. 이번 건 내가 내뱉어놓고도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강력했다.
그래도 참아낸다. 지금은 연주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 역겨움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크흑…’
과도한 역겨움에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걸 억지로 눌러내려고, 멜론 눈깔을 한층 더 강화했다.
그저 부드러울 뿐인 멜로 눈깔이 아니라, 조금 더 감정을 고조시켜서 훨씬 더 고차원적인 사랑의 느낌을 담아낸다.
나는 너를 미치도록 가지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너를 너무나 지켜주고 싶다. 그래서 너의 육체에 손을 대진 않지만, 뜨겁게 바라보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너를 따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무척이나 힘이 드니까!
뭐, 이런 격정 로맨스 소설 느낌.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멜론 눈깔 Mk 2를 장착한 뒤, 코앞에 있는 연주를 지긋이 바라본다. 연주가 오로지 내 눈깔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모든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히끅!…아으…우으…! 우으…히끅!…”
연주는 눈동자를 정신없이 굴려 내 눈과 입술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두뇌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유아 퇴행기 상태로 진입했다.
조금 답답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연주의 성향은 극히 수동적이었다.
연주는 아무리 맛있는 게 눈앞에 보인다고 해도, 설령 좋아하는 사람의 입술이 바로 앞에 먹기 좋게 놓여 있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어떤 액션을 취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타고난 성향 때문이거나,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걸 보면 둘 다 같기는 했다.
뭐, 그런 건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일단 패스.
중요한 건 내가 연주의 그런 수동적인 성향을 간파하고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연주에게 먼저 스킨쉽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연주와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나는 연주가 나에게 매달릴 때까지, 끝까지 연주를 애태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자극이 약했는지 연주는 갈등하되 나서지는 않았고, 나는 연주를 조금 더 극한까지 몰아 부치기로 마음먹었다.
“흐읏…”
나는 연주를 지긋이 바라보다 말없이 연주의 얼굴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연주는 뭘 기대하고 있는지 볼을 시뻘겋게 붉히고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때문에 아까 사케를 뱉어내던 때부터 쭉 연주의 눈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검지를 이용해서 연주의 눈가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방울을 조심히 걷어냈다. 그리고는 연주의 눈가에 촉촉이 고여있는 물기들도 쓰윽 닦아냈다.
“하으…”
내가 눈가를 닦아줄 때, 연주는 질끈 감아놨던 눈을 슬며시 치켜들었다.
어떤 상상을 하고 있었는지, 뜨겁게 달아올라서 멍해진 눈동자에 한 줄기의 의문이 스친다.
분위기는 분명 입술이었는데 정작 내가 훔친 건 눈물이었으니, 이유가 궁금하겠지.
“울지 마요. 연주 씨. 지켜줄게요.”
나는 연주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굳이 느끼한 목소리와 눈빛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누가 봐도 키스를 꼴아박을 후끈후끈하고 달짝지근한 상황에서, 모든 욕망을 참아내고 입술 대신 눈물을 훔쳤다는 것.
이것만으로 연주는 내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지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으…흐응…”
내가 지켜주겠다고 말하니까, 연주는 별안간에 벼락에 맞은 사람처럼 몸을 잔뜩 경직시킨 채 부르르 떨어댔다.
그렇게 몸을 몇 번 떨어대더니 무언가를 더없이 갈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흐응…헤흐응…”
나를 보고 있는 연주의 숨이 점점 달짝지근해져 갔다. 분명 지켜주겠다고 말했는데도, 연주의 마음속에서는 되려 나에게 따먹히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지고 있었다.
‘연주가 아무리 수동적이어도, 이건 못 참지.’
소중하다고 백번 천 번 말해주는 것보다, 단 한 번이라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행동으로 증명시켜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내 안에 몰아치는 보잘것없는 성욕보다, 너를 훨씬 더 아낀다고.
나는 연주에게 말 대신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고, 연주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하으응…하으…”
나는 연주가 날 단순히 좋아하고 사랑하는 걸 뛰어넘어서, 지금까지 삶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지켜왔던 것들.
예를 들면 관습, 통념, 정체성, 규범, 예절, 매너 등.
사회 속에서 학습되어 있는 그런 고리타분한 것들을 모조리 벗어 던지고,
나에게 미쳐서 오로지 나만을 욕망하고 갈구하길 바랬고, 연주는 결국 나의 바램대로 나의 손아귀에 완벽히 굴러떨어져 버렸다.
사람을 복종시키는 건 쉬웠지만, 그 사람의 모든 걸 정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오직 나만의 색깔로 물들어가는 연주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깊은 정복감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쪽.
연주는 한없이 풀린 눈으로 나를 지켜보며 신음을 계속 흘리더니, 결국 나에게 입술을 맞춰왔다.
연주치고는 대단히 과감했지만 그럼에도 뽀뽀로 끝났다는 점에서 다분히 연주다웠다.
정욕에 뇌가 잠식된 상태에서도 해온다는 게 고작 뽀뽀라니.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귀여움에 취해 실실 쪼갰다가는 좋은 분위기를 깰 수 있으니, 나는 단지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연주를 바라봤다.
“흐응…하으…”
뽀뽀를 쪽 갈기고 입술을 떼어낸 연주는 여전히 내 입술만을 바라보더니,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듯 또다시 입술 박치기를 시도했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잠시 미쳐서 뽀뽀를 갈겨 놓고도 금방 내 눈치나 살살 살폈겠지만, 연주는 지금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안에서 몰아치고 있는 욕망을 채우고 싶은데 도저히 채울 방법을 모르는 가엾은 새끼 강아지는, 자꾸 애꿎은 내 입술만을 탐할 뿐이었다. 그것도 고작 뽀뽀로만.
-쪼옥.
두 번째 뽀뽀에서는 입술과 입술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대략 0.5초에서 1초 정도로 늘어났다. 확실히 칭찬해줄 만한 부분이었다.
나는 1초간의 뽀뽀를 끝내고 입술을 떼어내는 연주에게, 조금 더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직 연주를 더 애태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적극적인 액션은 잠시 미뤄두고, 단지 욕망에 잠식돼가는 눈빛과 거칠어지는 숨소리로 힌트만 줄 뿐이었다.
네가 하고 있는 응큼하고 귀여운 시도가 절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나도 네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연주에게 보내주는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쪼오옥. 쪼옥. 쪼오옥.
시그널이 제대로 도착해서 자신감이 돋아났는지, 연주는 나에게 연속으로 세 번이나 뽀뽀를 갈겨대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트리플 악셀도 아니고 트리플 뽀뽀라니. 이런 상황에서도 연주는 확실히 악마적으로 귀여웠다.
그래도 몰캉몰캉하고 쫄깃쫄깃하고 촉촉한 연주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을 때마다, 내 자지가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으니 마냥 귀엽기만 한 기술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쪼옥. 츕. 츄릅. 츄르릅. 쮸웁. 쯉.
“하으읍…으읍…흐읍”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단번에, 그리고 격렬하게.
나는 또다시 뽀뽀를 갈기는 연주의 뒷목을 양손으로 확실하게 잡고, 연주와 진한 프렌치 키스를 나누었다.
-쮸웁. 쯉. 쮸으읍. 쭙.
“으읍…흐읍”
연주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격렬하게 내 입술과 혀를 빨아댔다.
테크닉 따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연주는 그저 본능적으로, 마치 굶주린 아이가 엄마의 젖통을 빨듯, 나의 입술과 혀를 마구잡이로 빨아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