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7화
고양이는 강아지를 싫어하는 걸 넘어서 무척이나 혐오하고 있었다. 그것도 손님일 뿐인 내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노골적으로.
뭐 이러나 저러나 답답하기야 하겠지. 딱 봐도 일 잘하는 에이스처럼 보이는데 고문관 같은 강아지가 옆에 붙어버렸으니.
레오레로 치면 다이아 원딜이랑 브론즈 서폿이 봇 듀오를 선 경우였고, 노래로 치면 가왕급 가수가 음치랑 듀엣을 하는 경우였다.
같은 팀이 되어서 뭘 해야 하긴 하는데, 두 사람 중 한 명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모래주머니나 짐짝 정도밖에 안 되는 그런 경우.
서로 사이만 괜찮다면 별일이야 있겠냐만, 아쉽게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양이는 짐짝 강아지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짐짝 강아지는 실력만 낮은 게 아니라 자존감도 퍽이나 낮아 보였고.
둘의 관계를 한눈에 딱 알아본 나는, 일부러 강아지를 칭찬하면서 고양이를 자극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강아지를 수월하게 입양 받기 위한 큰 그림의 일부였다.
어려울 것이야 있겠는가. 성질 나쁜 고양이한테 잔뜩 갈굼 당한 강아지가 어디 뒷골목에 짱박혀서 울고 있으면, 스윽 다가가서 어깨만 토닥토닥 거려줘도 강아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존감 낮아봐서 아는데, 이건 무조건 먹히는 방법이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릴 확률이야 낮겠지만, 낚싯대를 던져볼 만한 가치와 근거는 충분했다.
“앗…그…감사합니다!”
나에게 칭찬받은 게 퍽이나 기쁜지 강아지가 고개를 깊게 숙이고, 큰 목소리(어디까지나 그녀치고는)로 감사 인사를 해왔다.
어떻게 받아 쳐줄까. 어차피 테이블로 가기 전 마지막 멘트니까 선을 조금 넘어서 주접을 떨어봐도 괜찮겠지.
“뭘요. 앞으로 카페 매출 많이 오르겠어요. 알바하시는 분이 이렇게 귀엽게 생기셨는데 일도 잘 하시니까.”
“네?…아으…그…그런…”
버터마냥 느끼한 멘트에 강아지가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겠지. 나도 볼이 많이 화끈 거리는데.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커피 가져다주신다고 했죠?”
“네? 네에!”
나는 몸을 휙 돌리곤 카운터에 가까운 테이블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오그라들었다. 강아지 타입에게는 노골적인 칭찬이 잘 먹힐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던진 멘트들이었고, 효과도 나름 괜찮은 것 같지만, 몸이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돈 벌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그래, 뭐 어쩌겠는가. 이런 짓도 내 돈벌이의 일종인데. 그것도 그냥 돈벌이도 아니고 몇천 단위가 걸려있는 엄청난 돈벌인데.
솔직히 천만 원만 줘도 지나가는 사람 발가락도 쭉쭉 빨아줄 수 있었는데, 이 정도 작업멘트야 어렵고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따져보자면 한참이나 모자라고 부족했다.
걸린 돈이 얼마나 컸는데 이런 구린 멘트라니. 다음에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감성을 깊게 건들 수 있을 만큼 더 그럴듯한 멘트를…
“연주 씨! 바닥에 얼음 다 흘렸잖아요!! 아까도 그러더니 왜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해요? 혹시 저능아에요?”
“죄…죄송합니다…”
이런, 음료를 만들다가 강아지가 실수를 저질렀는지 고양이가 극딜기를 박기 시작했다. 바닥에 얼음 좀 흘렸다고 저능아라니 멘트가 정말 예술적이었다.
나는 카운터 쪽에서 들려온 고성을 못 들은 척 자연스레 주머니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아버렸다.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너튜브에 들어가 아무런 동영상이나 하나 틀어놓고 테이블 위에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핸드폰을 예쁘게 올려놨다.
누가 봐도 집중해서 동영상을 시청하는 모습을 연출하곤, 대신 이어폰의 볼륨을 무음으로 맞췄다.
스으윽-.
아니나 다를까, 매장을 쓱 둘러보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제대로 분위기를 살피는 걸 보면 옆에 있는 짐짝 강아지를 확실하게 조져놓을 생각인 것 같았다.
지금 이 카페에서 고양이가 눈치 볼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매장 스피커에선 고급스러운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를 제외하고 손님은 두 테이블밖에 없었는데, 두 테이블 모두 매장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카운터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와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 시청에 여념이 없는 상태였다. 즉, 딜각은 충분히 나와 있었다.
고양이도 상황 판단이 끝났는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연주 씨…솔직히 이딴 허접한 일 하기 싫죠? 네? 일 하기 싫어서 일부러 멍청한 년처럼 구는 거잖아요? 그쵸?”
“…그런 거…아니에요…”
강아지의 이름은 ‘연주’인 것 같았다. 오케이, 메모.
그건 그렇고, 얼굴 보고 약간 예상은 했다만 에이스 고양이는 일만 잘 하는 게 아니라 딜링도 장난이 아니었다.
단어 선택은 험악과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반면에 목소리는 크지도 않았고 톤도 되게 차분했다.
저런 식으로 조곤조곤하게 단어만으로 사람을 조지는 건 진짜 고급 스킬이었다.
저렇게 맞으면 단어가 뇌리에 팍팍 박혀서 웬만해선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아까는 잘만했잖아요? 네? 방금 잘생긴 손님 왔을 때는 가르쳐준 대로 잘만 하더니 왜 또 이러는데요? 네?”
“그…그런 게 아니라…”
“아~ 연주 씨, 남자한테 꼬리 칠 때만 갑자기 지능이 올라가는 그런 스타일이구나. 그쵸?”
“그런 거!…꼬리 치고 그런 거 아니에요…”
“뭐가 아니에요. 눈웃음 살살치면서 꼬시려고 작정을 하셨더만. 모를 줄 알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귀여운 척하면서 칭찬들을 때마다 해벌레 해가지고…역겨워서 보고 있다가 토할 뻔했네. 남자가 그렇게 좋으면 이러지 말고 그냥 지금 가서 따먹어 달라고 부탁해 보는 건 어때요? 그 역겨운 눈웃음 살살 치면서 부탁해보면 들어주실 것도 같던데?”
와, 이건 생각보다 너무 심한데….
잘생긴 남자 손님이라고 언급해줘서 솔직히 기분 좋긴 한데, 듣다 보니 슬슬 연주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설계한 상황이긴 했지만, 고양이의 딜링이 차마 이 정도로 강력할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교묘하게 말해서 애를 무슨 숫제 걸레로 만들어 버리네….
진짜 걸레 짓을 한 건 사실 난데. 아, 양심이야.
“정혜 씨…말이 너무 심하신 것…”
“심하긴요, 연주 씨 지능 수준하고 연주 씨 몸에서 나는 역겨운 걸레 냄새가 훨씬 더 심해요. 아시겠어요? 그리고, 간단한 일도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저능아가 뭐가 그렇게 당당하다고 자꾸 말대꾸를 하세요? 아~~ 사장님 빽 믿고 그러는 거죠? 맞죠?”
“여기서 저희 엄마 얘기가 왜…”
또 메모할만한 내용이 나왔다. 아무래도 연주네 어머니가 청담동 한복판에 있는 이 초럭셔리한 카페의 사장인 것 같았다.
연주 너, 귀여운 데다가 어마어마한 금수저였구나. 음, 갈수록 마음에 드는구나.
“그런데 어떡하죠? 사장님은 연주 씨 별로 안 좋아하세요. 저한테 집에서 하는 것도 없는 년 알바나 시킬 건데 일 못 하면 그냥 엄하게 혼내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아, 저능아라는 것도 사실 사장님이 먼저 알려주셨어요. 뭐, 연주 씨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굳이 안 알려주셨어도 금방 알아챘을 것 같긴 하지만요.”
“저능아…저는…저능아…아니에요…”
“그러세요? 그럼 제발 말이라도 똑바로 해주실 순 없을까요? 느리고, 더듬고…말 좀 똑바로 해보라고요. 일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저는…저는…그러니까…저는 단지…”
“거 봐. 거 봐. 에휴~ 내가 저능아랑 얘기해서 뭐하겠어요. 그래도 부럽긴 하네요, 연주 씨. 연주 씨 부잣집에서 안 태어났으면 지능 딸려서 밥벌이도 제대로 못 했을텐데,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그래도 이런 카페에서 알바라도 하잖아요. 복 받은 줄 아세요. 제가 여기서 일하려고 여태까지 얼마나 노력한 줄 아세요? 부모 빽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연주 씨랑 같은 시급 받고 있는 게 얼마나 엿 같은 기분인 줄 아냐구요.”
“……”
고양이…그러니까 정혜라고 불린 직원이, 연주를 단순히 싫어하는 걸 넘어 극혐하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인 것 같았다.
자기는 죽어라 열심히 해서 여기 들어왔는데, 꼴 같지도 않은 연주가 갑자기 부모 빽으로 떡하니 알바한다고 들어와 버리니 야마가 제대로 돌아버린 거겠지.
하긴, 단지 일 좀 못하고, 조금 띨빵하다고 저렇게 극딜을 박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거의 사람을 말로 패 죽이는 수준인데.
“어머나. 혹시 질질 짜시는 거에요? 내가 말이 좀 심했나? 뭐, 그렇게 못 참겠으면 그냥 지금 나가셔도 돼요. 어차피 돈 벌려고 온 것도 아니잖아요.”
“…안 울어요…”
“그래요? 그럼 이거 서빙이나 하고 오세요. 손님 기다리시니까. 연주 씨도 양심이란 게 있으면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시킨다고 저걸 또 하네. 으휴.’
나는 너무 답답해서 동영상 보는 척도 그만둬 버리고, 서빙을 하러 오는 연주를 뻔히 쳐다봤다.
연주는 카운터에서 쟁반을 들고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오기 시작했는데, 걸어오는 품새가 영 예사롭지 않았다.
눈물을 꾹 참고 있는지 고개는 푹 숙이고 있었고, 느릿느릿 걸어오는 다리는 좌우로 후들거리는 것도 모자라 상하로도 삐걱대고 있었다.
당연히 한 걸음씩 걸어올 때마다 쟁반에 올려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위태롭게 흔들흔들 거렸는데, 그래도 컵에서 음료가 흘러내리지 않는 걸 보면 나름대로 서빙 스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잠깐만. 분명 오늘이 알바 첫날이라고 했는데, 서빙 스킬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나?
턱-.
“앗!!”
그래, 씨발.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치 슬로우 모션에 걸린 것만 같았다. 아마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림이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 딱 맞아 떨어져서 그런 거겠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위태롭게 걸어오던 연주는, 하필 내가 앉아있는 바로 옆 테이블 다리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다행히 중심을 완전히 잃기 전에 다른 발을 잘 디뎌서 연주가 완전히 넘어지진 않았다.
꽉 움켜쥐고 있었는지 쟁반도 놓치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슈우우웅-.
스트라이크 당한 볼링핀처럼 시원하게 쟁반 위에서 넘어진 길다란 컵이 공중부양을 하더니, 이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컵 안에 담겨있던 내용물들이 마치 토사물처럼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착지 예상 지점은 내 티셔츠 부근. 다행이다 방금 만지고 온 머리 쪽이 아니라.
그랬으면 아무리 연주가 귀엽다고 해도 차마 화를 참지 못하고 볼기짝을 매우 쳤을지도 모른다. 뭐, 굳이 화가 나지 않아도 쳐보고 싶긴 했지만….
촤아아아악-.
마침내 내 하얀색 스웨터(이런 날에는 입고와도 꼭 하얀색이지.)에 공중에서 자유 낙하하던 커피와 사각 얼음들이 가득 쏟아졌다. 슬로우 모션에 걸려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다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죄…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내 옷에 커피가 쏟아지는 광경을 나라 잃은 표정으로 지켜보던 연주가, 대역죄인 마냥 고개를 깊숙이 숙여가며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나는 진짜 괜찮았다. 오히려 계획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잘 풀리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탁비니 뭐니 하면서 자연스레 연락처를 따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마음의 빚을 안겨주면서 연주와의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에 커피 좀 묻은 것 치고는 과분한 이득이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진짜 정말로 괜찮다니까요? 너무 그렇게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속으로 실실 웃고 있었지만, 연주는 죽을 맛 이었는지,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린 표정으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손님, 괜찮으신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 때문에…제가 좀 닦아드릴게요.”
“네? 아뇨, 저는 괜찮은데…”
카운터에서 급히 뛰어온 정혜가,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연주의 어깨를 툭 밀쳐서 치워버리곤 나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정혜는 내가 괜찮다는 데도 기어코 내 앞에 무릎 꿇고서, 손에 쥐고 있던 냅킨으로 내 상의에 묻어있는 커피를 쓱쓱 닦아내기 시작했다.
“너무너무 죄송해요. 저희 직원이 워낙 실수가 잦아서…손님한테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알겠는데, 괜찮다니까요? 냅킨만 저한테 주세요. 감사하긴 한데 좀 부담스럽네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정혜는 순순히 나에게 냅킨을 넘기며 일어났고, 나는 건네받은 냅킨으로 옷에 묻은 커피를 닦아냈다.
닦아준다는데도 정혜를 굳이 말린 이유는, 순전히 내 옆에서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죽은 눈으로 멍하니 나를 보고 있는 연주 때문이었다.
내가 독심술사는 아니지만, 연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쉽게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저렇게 닦아줘야 했구나. 나는 사과만 하기 바빴는데…이런 것도 생각 못 하고 나는 정말 저능아인 걸까…? 나 같은 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백프로 똑같진 않겠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겠지.
서 있는 자세나 얼굴 표정 그리고 미세하게 달달 떨리고 몸을 보면, 정말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정혜가 갈궜던 말들이 계속 뇌리에 박히고 있었을 텐데, 딱 그 지랄맞은 타이밍에 거하게 트롤까지 쳐버렸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이상은 정말 위험했다.
이제는 큰 그림이고 뭐고 정혜의 유능함도 연주의 무능함도 드러나지 않게끔 상황을 빨리 끝내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자칫 더 심한 자극을 줬다가는 연주는 오늘 밤에라도 직접 수온 체크를 해보고 싶다며 한강 물에 몸을 던져버릴 것 같았다.
“연주 씨. 손님 분한테 제대로 사과하세요.”
“…”
“연주 씨. 제 말 안 들려요? 제대로 사과하시라고요!!”
“죄…죄송…죄…”
“그 정도만 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정혜는 연주가 정말로 한강 물의 수온을 체크해 보길 원하는지 건지 도저히 멈출 줄을 몰랐다.
정혜의 앙칼진 외침에 제대로 쫄았는지, 미세하게만 떨리고 있던 연주의 몸이 단톡방에 초대돼서 테러당하고 있는 핸드폰마냥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런 상태로 무슨 제대로 된 사과를 하겠냐고.
정혜야, 넌 진짜 사탄도 감탄하면서 쌍따봉을 마구 날려줄 년이다.
뭐,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의 피를 쭉쭉 깎아놔서 막타 먹기 쉬워진 건 고맙긴 하다만.
“죄…죄…”
“하, 진짜. 미치겠네. 사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거 아니죠, 연주 씨? 손님한테는 이렇게…”
자꾸 더듬고 버벅대는 연주를 보며 아예 눈깔이 돌아버렸는지, 정혜가 연주의 뒤통수를 잡아서, 연주의 고개를 억지로 쑤셔 내렸다.
“고개 숙여서 사과하셔야죠.”
“죄송…흐윽…죄송…흐으윽…”
“울지 말고 사과를 하시라고요. 네? 피해는 손님이 보셨는데 연주 씨가 왜 울고 그래요?”
오케이. 거기까지.
아무리 그래도 억지로 뒤통수 눌러버린 건 명백히 정혜의 실수였다.
안 그래도 타이밍만 재고 있었는데, 이렇게 끼어들 여지를 줘버리면 내가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저기요. 지금 장난하세요?”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직원 교육을 단단히…”
“아니, 당신이요. 당신 지금 뭐하냐고요.”
“네…?”
탁.
나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서, 연주의 뒤통수를 눌러 내리고 있던 정혜의 손목을 탁. 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