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40)

[TS] 은하보안관 이브 38편

<-- 코르디스 상공 17스타포트 -->

17스타포트에 워프선 오르비아가 입항하자마자 양측에서 도커가 쭉 뻗어 나와 서로 달라붙는다. 

중성 도킹이다.

아직 나라가 있던 고전 시대, 두 제국이었던 미국과 러시아가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들던 당시 누가 박고 누가 박히느냐의 논란 속에 만들어진 도킹 기술의 방식으로, 중성 도킹 방법이 살아남은 탓이다.

물론 성간전쟁에서는 마구잡이로 도커를 붙이는 기생 도킹 방식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건 전투시에나 일어나는 방식이다. 특히 우주 해적이나 마피아가 저지르는 짓이라 하여 해적 도킹이라 부르기도 한다. 코르디스와 같이 워프 게이트 근처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당장 컴퍼니 군이나 은하보안국에 걸려 우주먼지로 화할 테니까.

“진짜 크네. 키가 작아져서 더 크게 느껴져.”

“라임비처럼 인공중력이 끊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르비아와 비슷한 크기의 라임비 스타포트와는 달리, 소행성 하나 크기만 한 17스타포트는 그 위용도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건축물은 마치 인류와 인공지능이 발전시킨 기술의 정수를 담아낸 듯,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인간과 별다른 점은 없었으나 그녀의 관자놀이에는 푸른 반점이 붙어있었다.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법이었다.

“버블에 타시지요.”

일행은 안드로이드의 안내에 따라 거대한 스타포트 내를 움직이는 자기부상 버블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홀로그램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묻는 안내판이 나왔다. 하지만 코르디스 17스타포트는 일행의 리더를 알터라고 파악했는지 알터의 앞에 떠올랐다.

“원하시는 곳 있습니까?”

“빨리 로비나 갔으면 좋겠군.”

“그러지요.”

버블이 이동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이곳에는 알터의 등장에 라임비처럼 뭐라도 얻고자 알량하고 거슬리게 행동하는 이들은 없었다.

17 스타포트의 직원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라임비의 1지구 소유주만큼의 자본은 지닌 사람들이다. 은하보안관의 비위에 거슬릴 일도 없거니와, 만약 그런 일을 벌이더라도 입 뻥긋할 정도의 힘은 가진 이들이다.

애초에 그들은 마주치는 버블에 누가 타 있는지는 무관심했다.

“선진행성인 답게 긍지를 갖고 살아갈 지어니.”

이브는 곁을 지나치는 버블들을 바라보며 묻어둔 과거로부터 기억을 끌어냈다. 루드 크로노스의 고향 근처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포탈 근처다보니 우주급 마피아들이 이 근방을 거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 번 정도 와본 경험이 있다.

“45년 전 코르디스의 홍보문구였지.”

“오랜만에 듣는 문구네요.”

“물론 자조적인 의미로도 쓰였지. 선진행성인답게, 선진행성이 되지 못한 자들의 발악이라고. 이곳은 세 개의 컴퍼니가 다스리는 곳이니까. 아마 크리크랑 컴퍼니의 홍보 문구였지?”

크리크랑은 코르디스의 남반구를 60% 정도를 차지한 컴퍼니였다. 코르디스의 부동산과 의결권은 세 컴퍼니가 나눠 갖고 있다. 두 컴퍼니가 동의하는 안건은 행성 전체를 움직이는 형태다.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건 알프 컴퍼니고요.”

“그렇게 놓고 보면, 은하의 은행 행성인 아르카만큼 신기한 곳은 드물지. 굴지의 제계1위 트윈스타 그룹이 무려 10대 행성인 아르카의 부동산을 온전히 갖고 있으니까… 설마 내가 저 행성에 갖혀 있는 동안 트윈스타가 망했나?”

“그건 은경련이 망한다는 소리와 같은걸요.”

일행은 안쪽에서 이어진 도커에서 이동하는 동안 일종의 자기부상 버블 안에 갇혀 있었다.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 염려도 없으니 그들은 편안히 이야기했다. 레아는 모든 것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을 눈에 담느라 바빴다.

알터는 레아를 경계했다. 신기한 눈으로 버블 밖의 스타포트를 보면서도, 이브와 알터 사이를 흘끔흘끔 보았다. 꼭 감시당하는 것만 같았다.

“입항 허가는 왜 하필 17스타포트인가?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전에 이미 와봤던 곳은 3스타포트였던 것 같은데.”

“여기가… 17구역과 17스타포트가 마르테르트의 구역입니다.”

“보안국이 그렇게 마르테르트에게 먹혔나…? 잠깐만, 코르디스의 세 컴퍼니는 크리크랑, 알프, 쿰 라우라 이렇게 세 곳 아니었나?”

“쿰 라우라는 마르테르트에 합병되었습니다.”

이브의 표정이 순간 당혹에 물들었다. 알터는 이브의 기다란 은발이 슬쩍 내려와 새하얀 얼굴과 붉은 눈동자를 가린 모습을 언뜻 관찰하면서 저 표정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취향이 아닌데도 이렇게 남심을 자극하는데, 취향 직격인 루드가 이브를 만난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어째서 이런 고민을 하는지도 신기했다. 이브가 말한 대로라면, 남자는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알터가 여자로 변한 보안관님의 도발에 넘어간 적은… 없었고.

애초에 말하는 게 그분과 판박이지 않는가?

“미친년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몇 년 전이야?”

“2년 전에 쿰 라우라는 완전히 마르테르트에 합병 인수되었습니다.”

“2년 전? …이거, 네가 찾아온 게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나?”

“그럴지도 모릅니다.”

“외통수에 빠진 걸지도 모르겠어.”

이브의 표정은 배신감을 느끼며 일그러졌다. 이브는 부관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자신을 찾은 건 루드라고 생각했다. 루드가 무슨 행동을 하든, 철저히 조사했을 쪽은 마르스 일렉트로닉스, 아니, 이젠 마르테르트의 총수 안젤라고.

아마 루드가 철저히 제가 가진 정보를 보호했어도 창고는 털리라고 있는 것이다. 안젤라의 부유함이 루드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행동했겠지.

“일단 여기로 온 건, 가장 빨리 입항 허가를 내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알았어. 알터, 널 탓하려는 거 아니야.”

안젤라를 만나는 건 영 꺼림칙했다. 이브는 그녀를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놈의 마르테르트.

앞으로 이브가 뭘 하려든 마르테르트가 다리를 잡을 것이다. 어쩌면 온몸을 그녀의 부에 의해 옥죄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녀가 깊숙이 파 둔 함정은 어디까지일까, 은하보안국으로 촐랑촐랑 걸어 들어가는 것도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물론 자존심 조금 버리며 안젤라와 손을 잡으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비틀린 집착을 아는 이브는 그럴 순 없었다. 보호한답시고 서스럼 없이 손발에 족쇄를 달고 노예목걸이를 채우며 몸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 그런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지닌 여자였으니까.

그녀의 기둥서방이 되는 쪽은 정말로 꺼려졌다.

“그래도, 여기선 라임비처럼 대놓고 누군가가 납치를 시도할 일은 없을 겁니다.”

“…강화복 맞추는 일은 그럼 미뤄두지.”

“아, 우주선 안에 필라멘트가 있었는데… 잊었네요.”

알터는 오르비아 내에 있는 필라멘트로 이브의 강화복을 짜두지 않았던 점을 잊었다. 아무리 코르디스가 치안 좋은 행성이라고는 하나, 지금 이브의 몸에 적당한 강화복을 맞춰줘야 했었다.

제 몸 보호하기 위해선 보안관으로서 필요한 38GW식 레일건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할 테니까. 코르디스의 3분지 1이 마르테르트의 땅이기에 여기서 끝내 주는 강화복을 맞출 수 있을 텐데도 이브는 거부했다.

“마르테르트는 안 돼.”

이브는 알터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 양 말했다.

이브는 지나치게 마르테르트를 경계했다. 안젤라 세라피나를 거부했다. 알터는 어째서 전 부하를 거부하는 걸까 알터는 속으로 갸웃거렸다. 물론 그녀가 퀘이사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었던 건 맞지만 이렇게 거부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30년간 이브라는 이름으로 라임비의 남성들에게 튀틀린 집착을 당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스타 스트링스에 변태가 많기는 해도 남의 인격에 간섭하는 멍청이는 없으니까. 그런 사람은 곧잘 스타 스트링스의 밖으로 쫓겨난다. 아니면 그들 사이에 사적으로 뭔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터는 페이에게 묻기로 결심했으나, 이브가 너무 그를 몰아세우지 말라는 말도 떠올랐다.

결국 알터는 조사를 명하지는 않았다.

“…만나기로 했던 코르디스 102지구 테라 타운은 중립 지역이었지?”

이브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브는 상당히 지쳐 보였다. 알터도 이브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전 동료들을 만난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보안국으로 돌아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보안관님을 지켜야 했다.

“예.”

“바로 그쪽으로 가지. 17지구에서 머무르고 싶진 않네.”

알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로비에 도착하자 자기부상 버블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린 곳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붐볐다. 수십 층가량의 로비는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언니, 여기서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

레아가 조심스레 이브에게 물었다. 레아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물원과 놀이공원이 같이 있는 테마파크였다. 이브는 힘없는 상태로 반쯤 늘어져 있다가 다시 생기를 억지로라도 되찾았다. 그리고 레아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그럴까?”

“응, 나 저기 구경하고 싶어… 동물도 있대. 나 한 번도 못 봤어.”

레아는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이브를 바라보았다. 이브는 레아와 눈을 마주치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알터에게 물었다.

“그래, 알터.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숙소는 102지구 근처에 있겠지? 체크아웃은 조금 늦어도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알터는 더듬거리며 선글라스로 우주 엘리베이터나 호텔의 체크인 시간대를 조정하고 13스타포트 테마파크의 입장권을 구매했다. 시간 조금 늦어지는 정도로 조정할 필요는 없었으나 이브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 레아니까. 정말 7살 미운나이의 아이 다운 표현이었다.

마르테르트의 사민증이 있는 이브와 레아, 알터는 대기 하나 없이 VIP통로를 통해 테마파크로 입장했다. 부유한 자들만 올 수 있는 공간인데도 테마파크 안은 로비나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알터는 책자를 꺼내 레아에게 내밀었다. 레아는 이것저것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짚는다.

“여기, 펭귄 보고 싶어.”

“그래. 오랜만에 나도 보고 싶네.”

이브는 레아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가자, 뭘 고민해?”

그러나 알터로서는, 이렇게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게 영 꺼림칙하긴 했다. 갑자기 저런 어린아이인 척하는 레아의 의중을 알다가도 모르겠으니 난처했다. 저렇게 순수한 얼굴로 웃는 낯짝 속에는 대체 어떤 악마가 있는 걸까?

**

레아가 처음 보는 동물들에게 빠진 사이, 이브와 알터는 둘만이 남아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 레아는 언제든 알터가 달려갈 수 있는 위치에 두고, 두 사람은 인공적으로 오후 3시의 일조량이 비치는 그늘 아래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레아가 일부러 이런 자리 만들어 준 것 같지 않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알터는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버블을 펼쳤다.

“그래도 보안이 영 안 좋잖아요. 여긴. 사담 나누기엔 불편하기 짝이 없죠.”

“나는 레아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아. 쟤, 저렇게 안 보여도 속은 깊으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꼭 관철시키는 똑똑한 애거든. 나는 자주 휩쓸렸어.”

“앞으로 저희가 하려는 일에 방해될 겁니다.”

알터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브는 알터가 꽤 강력하게 레아를 비난했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러니 하는 차분한 태도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엄청나게 방해되겠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레아는, 내가 이브로 남아있길 원해.”

꿀꺽, 알터는 제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키고야 말았다. 그걸 이미 아는 사람이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으로 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대체 퀘이사 보안관님께, 저 아이가 어떤 의미이기에 그렇다는 것일까?

“레아는, 내가 너와 결혼하길 원하는 것 같다.”

“…제 의견은 없습니까?”

“몰라, 나도. 저 애가 바라면 나도 어느새 저 애의 의도를 따라가게 되거든. 알터, 네가 한번 네 뜻대로 잘 해보아라. 내가 기른 사람들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난지, 네 힘으로 직접 증명해 봐.”

이브의 눈은 알터를 보고 있지 않았다. 벤치에 앉은 채로 레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점은 레아를 향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레아를 관찰하면서 근처의 허공을 향하며 동공이 살짝 풀려있었다.

“재미있지 않아? 나를 둘러싼 나의 과거들 때문에, 내가 스스로 이브로 살아가길 원하게 될지도 몰라. 과연 네가 원하는 나의 미래는 무엇이냐?”

알터는 이브의 물음에 즉답하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열심히 쓰고는 있는데 자꾸 늦어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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