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은하보안관 이브 3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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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와 알터, 소녀와 거한.
마치 미녀와 야수처럼 겉모습이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서도 서로 엇갈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위태위태한 이브는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떨었다. 아직도 여운이 남은 쾌락을 억제하려 손이 자꾸만 아랫도리를 향했으나 제 부끄러운 부분을 만지지는 못했다. 환상통처럼 남은 남근이 아직도 여린 속살을 쑤시는 듯한 기분이 들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믿고 있는 부하의 앞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는 꼴이 아닌가.
속에서 물이 자꾸만 스며 나오고, 속옷은 축축하고, 얼굴과 가슴도 막 뜨겁다. 나노머신이 정액을 배 속에 가득 채우고 소화하고 있다는 기분이 굉장히 더러웠다.
이래선 정액 중독에, 단순히 섹스를 좋아할 뿐인 치녀나 음마 비슷한 것이 아닌가.
반면에 알터는 흑성마교의 등장에 침울한 눈빛이었다. 흑성마교의 청색 용장인 서철현이 100% 준비하여 온 건 아니었으나, 어디선가 정보가 새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물론 이 라임비라는 언론이 공공연히 떠들어댔지만, 인류의 수백만 행성 중 하나에서 발간되는 지역신문은 스타 스트링스의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다. 스타 스트링스에 등록될 만한 정보들은 그만큼 ‘확실한’ 가치가 나가야만 하니까.
가치 있는 자들의 일상다반사. 그러니까 ‘현 재벌가의 총수가 오늘 밥을 먹었다.’ 같은 일은 스타 스트링스에 등록될 만큼 확실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라임비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수백 명이 죽었다는 건 스타 스트링스에 등록되지 않는다. 언론이 힘이 없기 때문이고 그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임비의 언론이 마구 떠들어봤자, 이곳의 알터는 가짜일 수도 있다. 스타 스트링스의 사람들은 그만큼 확실한 가치를 요구한다. 알터는 분명 스타 스트링스의 사람들이 확실하지 않은 방식으로 라임비에 온 것이다.
결론적인 이야기지만,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스타 스트링스에 알터의 확실한 진실을 흘린 게 틀림없었다. 만약 이게 은하보안국 간의 교신에서 정보가 빠져나간 사태라면 은하보안국의 보안 수준에도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물론 안식년을 내고는 3달이라는 시간 동안 사라졌으니 알터를 충분히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점이 지금이라는 게 걸린다. 의도적으로 레드호크가 흘렸을 수도 있을 터.
그렇기에 알터는 더더욱 웜홀 게이트의 행성 코르디스에서 만나야 하는, 그리고 만나기 싫은 인연을 생각했다. 정보가 어디서 흘렀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의 이름은 루드 크로노스.
항상 비밀을 간직한 듯 묵직한 입을 지닌 그를 찾아야 했다. 30년 전 은하보안관이었던 퀘이사 라케이니아의 정보부관으로써, 동료였음에도 항상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였다. 퀘이사가 사라진 뒤로 그는 조용히 은하보안국에서 은퇴했으며 자취마저 감추었다.
그 뒤로 암흑가의 일이든, 보안국의 일이든, 제 마음 가는 대로 일처리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쨌든 그는 알터와 상극까지는 아니었다. 일적인 측면으로 접촉하면 만나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는 코르디스 근방 행성인 ASD-131행성 출신이라 10대 행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대도시 행성이라 할 수 있는 코르디스에 살고 있다.
두 사람은 다시 위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정확히 같은 시점에 교차했다.
“보안관님.”
“알터야.”
이브는 알터에게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알터는 돌아간 이브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유달리도 뜨겁게 느껴져서, 이브는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두근두근 설레듯이 뛰는 이 심장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브는 그에게서 안정감을 찾게 되는 자신이 싫었다. 가증스러웠다. 미칠 것 같았다.
옆에서 걷는 것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딘가 간질거리고. 다른 남자에게 안겨 쾌락을 취한 주제에 섹스 후의 포옹을 이 남자와 하고 싶어져서, 그리고 그게 과거의 동료도 아니고 가장 능력을 총애하던, 사랑 따위의 감정이 하나도 섞일 리 없었던 부하라는 점에서. 더더욱.
물론 이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점은 이브 본인이 잘 알고 있다. 남자에게 약해 빠진 신체가 그저 원할 뿐인 일이다.
“먼저 말해라.”
“루드 크로노스, 코르디스에 도착하면 그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아, 그 음험한 놈?”
이브는 섹스 후의 나른한 머리로 잘도 루드 크로노스를 떠올렸다.
그는 처음 들어왔을 땐 알터처럼 애송이였었다. 보안국의 정식 사관학교에서, 훈련과정에서 몸을 숨기는 게 능하고 스타 스트링스라는 정보의 급류 속에서 정확한 정보를 찾는 재능만 보고 뽑았던 부하였다. 퀘이사가 뽑아 훈련시켰으니, 퀘이사가 빚은 작품이자 퀘이사가 뽑은 진흙 속의 다이아몬드였다.
그리고 그는 부관으로써 참 정보를 잘 물어다 주었다. 그리 교육하기도 했고, 재촉하기도 했고, 또한 그의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가끔은 알터의 페이 작전부관처럼 오퍼레이터도 하긴 했으나 루드는 기본적으로 첩보부관이었다.
하지만 이브는 이제는 의심을 품을 만큼 여유를 되찾았다.
-어째서, 나를 찾으러 루드 대신 알터가 왔을까?
만약 찾을 의지만 있었다면 이브를 가장 먼저 찾을 수 있었던 부하는 루드였을 텐데…
뭐, 대답은 뻔했다. 루드는 나무늘보(Sloth)다.
“싫다면 굳이 그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지금부터 내가 잡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지.”
이브는 그의 능력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의무가 없는 그에게까지 일을 시킬 순 없으리라. 대표적인 귀차니스트, 뺀질이, 게으름뱅이인 그는 능력에 비해 일하는 걸 참 싫어했다.
하지만 고아원을 운영하던 사이먼 갱단이 필히 은하의 큰손과 관련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그곳에 버려졌다는 것, 그리고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감금시킬 순 없었으니까. 거기까지 떠올린 이브는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나무늘보를 움직이기 위해선 그만큼 큰 동기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이브는 그를 오랫동안 부하로 두면서 장단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마초전문 잡지의 대표주자 ‘어드벤쳐 호’의 반대 성향인, 소녀전문 잡지의 대표주자 ‘As your service’의 애독자인 것쯤은……
“그런데 말입니다. 방금 하시려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별것 아니다.”
이브는 시선을 멀리 두었다. 설마, 혹시. 내가 그 나무늘보한테 미인계를 쓴다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그의 취향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가능할 것이다. 가능을 넘어 오히려 능력 있는 부관을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다룰 수 있겠지.
물론 루드 크로노스가 퀘이사를 이브로 만드는데 일조할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퀘이사 납치 사건에 관여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브는 루드 크로노스의 노예가 되었겠지. 루드 크로노스는 네 명의 직속부관 중 가장 능력이 뛰어난 아이였으니까.
이브는 제 모습이 루드 크로노스의 취향이라는 점을 떠올리니, 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보기 거북해졌다. 그래서 멀어져가는 로우 스트리트를 바라보았다. 함께 저 멀리 알터가 저지른 폐허의 흔적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구덩이를 남겼다.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 이브는 자신의 눈이 알터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했다. 1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열 명을 처리하고, 하나의 대장까지 처리한 모습까지. 물론 그 전의 싸움으로 체력이나 상대의 연료를 빼어놓긴 했겠지만. 마치 이브가 섹스로 상대의 판단력을 흐려놓듯이…
“알려 주십쇼.”
“별것 아니래도.”
알터는 이브가 뭘 말하려던 건지 꼭 알고 싶었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이브는 카멜레온 기능이 꺼져서 코트에 목도리 차림이었다. 그래서 목도리에 입가를 파묻었다. 다시 루드의 취향인 소녀가 유리창에 비쳤다.
“말하기 힘든 말이었다면, 저는 캐묻지 않겠습니다.”
쓸데없이 눈치 좋은 부관 같으니라고,
이브는 조금 전 담아두었던 말을, 흘러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꺼냈다.
“넌 내가 꼴리느냐?”
이브는 이번에도 자지에 져버렸다. 겨우 수컷이 씨뿌리기 위해 존재하는 쾌락의 기관에 사랑을 느껴 제 아랫도리를 대주고, 번식할 수조차 없는 몸으로 허리를 흔들며 쾌락을 좇고야 말았다. 하지만 거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자기최면을 걸었음에도 섹스 와중에 알터가 생각났다는 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자괴감에 물들었으니 확실히 하고 가야 했다.
알터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단언을 들으면, 정말로 이 뭉글뭉글한 이상한 감정을 잊을 수 있을 테니까. 이따위 감정이 얼마나 큰 변수가 되는지는 스스로가 수십 년간의 은하보안관 생활로 잘 알지 않았나.
“제 취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다마다….”
어드벤쳐 호가 생각났다. 태블릿 바탕화면에 어플까지 깔아둔 그 ‘어드벤쳐 호’. 이 거구가 화장실에 몰래 숨어서 71년째 동정을 유지하며 자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진짜 보안국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퀘이사는 그때 조용히 눈감아 주었지…
“걱정 붙들어 매십쇼. 전 도와드린다 했지 당신을 몰아세우진 않을 테니까요.”
이브는 알터의 대답에 호방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은 허심탄회하게 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관계였다. 다소간의 욕설과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은 이전에도 많이 하지 않았던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
기상 나노머신들이 불빛을 끄고 어두워진 시각.
알터는 호텔에 돌아와 다 같이 앉은 자리에서 조촐한 3인의 잔치를 벌였다. 이브가 30년간 고생했던 라임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으니까. 요 며칠 사이에 수많은 일이 있었던 이브는 알터가 열어준 파티에 감회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식탁에는 케이크 하나와 촛불, 그리고 주스병과 함께…
“보안관님을 위해 가져왔습니다.”
테라의 고급 위스키, 발렌타인 300년산과 로열살루트 350년산이 있었다. 이브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삼켰다. 눈앞에 놓인 위스키를 엄청 마시고 싶었다. 죽도록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몸속에 나노머신이 있는 걸 어찌하나, 또 저걸 먹었다간 죽도록 섹스하고 싶어질 거다. 심신미약인 상태로 호텔 숙소에 하나뿐인 수컷을 찾아 덮쳤다가 어떤 끝을 보려고 그러나. 게다가 알터의 취향은 이런 미발달 신체도 아니라는데…
“나는 먹으면 안 돼.”
“드셔보시지요.”
“안 돼.”
이브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고개가 떨어지고 표정이 급격하게 어둠에 물들었다. 알터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이브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썩어갔다.
“…술 마시면 발정 나.”
알터는 과거의 퀘이사를 떠올렸다. 빈틈 많고 아무 대나 불의를 보면 들이대던 사람. 왈가닥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용감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잔치라면 술에 취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날에 술 앞에서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힘드시면 맛만 보시죠.”
“하, 한 모금만….”
이브는 바라듯 손을 뻗었다. 알터는 크리스털 글래스에 한 모금 따라서 이브의 앞에 놓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레아가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의 교환을 노려보았다.
“아저씨, 언니는 술 하면 안 돼요.”
“레아야. 언니는 술 잘하거든?”
“언니가 더 잘 알잖아?”
“한 모금은 괜찮아.”
레아가 만류하고 이브가 간절히 원하니, 레아는 도저히 이브가 뒷걸음질 치지 않으리라 여겨 이브를 말릴 수 있는 아저씨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알터가 이브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니 이브는 단호하게 글래스를 잡았다. 이브도 지지 않고 레아를 노려보니, 레아는 한숨을 푹 쉬고는 언니를 포기했다.
“에휴… 아저씨.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몰라요.”
“한 모금은 괜찮다고 했으니 네 언니는 한 말에 대해 책임 질 거다. 그런 사람이잖니. 그러면 레아는 어떤 주스가 좋으냐?”
“포도요.”
알터는 보라색 주스를 골라 레아의 글래스에 따라주었다. 연한 금발에 연녹색 눈동자, 숲에서 날 법한 푸르른 아이는 두 손으로 글래스를 받았다. 잔이 다 찬 걸 확인하자 이브가 툭 내던졌다.
“건배사는 누가 해?”
“제가 하죠.”
알터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사한 보안관님의 귀환을 위하여 건배!”
“건배!”
**
이브는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벌써 취한 지 오래였다. 알터는 한 모금 들이켠 시점부터 폭주하기 시작한 이브를 말릴 수가 없었다. 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중간부터 자러 들어가 잠들었다.
“차라리 너도 원한다면 말훼! 왜 거기셔 루드 이야기가 나와?”
“말씀드렸지만, 전 보안관님께 그럴 마음 없습니다.”
“스쿄르피우스에서 니꺼 선거 다 봤거든?”
이브는 갑자기 제 앞섶을 푸르더니 순식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알터의 앞에 섰다. 소담하니 부푼 가슴과 흠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 그리고 아직 여물지 않은 여체의 곡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알터는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이브는 변하지 않는 알터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봐,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다고? 없다고? 진짜로?”
“네.”
“진짜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고? 그때는 뭔데에? 아니면 니가 고자새끼냐?”
“이러시면 나중에 후회하실 걸 잘 알기에 그럽니다.”
“내가 진짜 매력이 없셔?”
“매력이야 넘치시죠. 그러나 지금 모습으로는 문제가 있다 이겁니다.”
“날 잡아와 놓고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알터는 이브가 보채는 모습에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제 취향이 아니라고는 하나 페로몬 냄새를 잔뜩 풍기면서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유혹하는 소녀의 모습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란 없었다. 게다가 실제로 12세 정도의 신체조건이 아니라, 나노머신에 의해 의도적으로 색기 띄게 조정된 몸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알터는 이브를 안지 않았다. 저 붉은 눈으로 자신을 쓰레기 보듯 보는 눈을 보게 될 때, 30년 동안 찾아온 노력이 다 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퀘이사는 여전히 자신의 등대였고, 저 우주에서 빛나야만 하는 존재였으니까.
“이거 봐, 진짜 안 섰네? 응? 내가 빨아주께.”
이브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있었다. 속된말로 꽐라 된 상태였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더 헛소리하더니 제 풀에 나가 쓰러졌다. 알터는 이브를 침대 위에 누여주고 오늘도 밤을 샜다.
내일은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니, 레드호크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테니까.